교육(학)의 영역에서 난무하는 세계관들의 충돌
2019-02-04교육(학)의 영역에서 난무하는 세계관들의 충돌
월드뷰 02 FEBR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
김성수/고신대 기독교교육과 명예교수
교육(학)은 어떤 사람을 형성하기 위해서(교육목적), 무엇을(교육과정),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교육 방법)에 관한 사회과학적 연구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철학, 교육과정, 교육평가, 교육 심리, 교육방법, 교수 및 학습이론, 교육사회학 등이 교육의 현상을 탐구하는 주된 학문 영역이다. 교육 현상과 실제는 가장 기본적으로 가정과 학교, 그리고 종교기관을 포함하여 사회의 각종 기구들을 통해서 의도적이며 무의도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교육의 실제가 이루어지는 교육의 장(field)을 중심으로 접근하면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교회 교육 등으로 분류가 되고, 교육의 대상을 중심으로 접근하면 유아교육, 아동교육, 청소년교육, 성인교육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이라는 가치를 창출해 내는 교육의 상호작용 과정에 연루되어 있는 각종의 매개 요인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관점 곧 세계관은 다양한 교육 이론과 실제를 주창할 수밖에 없다. 교육의 대상인 아동 및 청소년, 그리고 교사라는 매개 요인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인간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와 관계되는 실재관, 어떤 인간을 형성할 것인가와 관계되는 인간 삶의 목적을 보는 관점들, 그리고 가정과 학교의 구조와 그 상호관계성을 규정하는 관점들은 다양한, 심지어는 상반되는 교육 이론과 교육 실제를 주창하기도 한다. 교육의 이론과 실재의 뿌리에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세계관들이 깔려있다. 가치를 내포하지 않는 중립적인 사실 즉 관점이 적재되어 있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교육의 이론과 실재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교육의 종교적 중립성에 대한 신화
로이 클라우저(Roy A. Clouser)는 종교적 믿음과 그에 부합하는 이론의 구성은 인간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심리학, 물리학, 심지어는 수학과 같은 현대 학문도 종교적으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종교적 중립성의 신화, 2017, 아바서원).
개혁주의 세계관을 기초로 교육의 이론과 실제를 탐구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교육의 종교적 중립성은 허구라는 지적을 한다.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호주의 기독교 교육학자 리처드 에들린(Richard Edlin)은 교육이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장 유해한 거짓말이며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갈파한다. 그는 북미와 서구 세계에서 근대 공교육의 틀을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호러서 만(Horace Mann)과 존 듀이(John Dewey)의 교육 이론이 중립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명백하게 세속적이며 인본주의적인 편향성을 보이고 있음을 분석하면서, 미국의 사법제도와 고등교육기관들도 결코 종교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는 “교실 안에서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도록” 한 결정도 학교 프로그램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심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았다(리처드 에들린, 기독교 교육의 기초, 2015, 그리심).
교사교육과 교육현장의 현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사교육 및 교육현장의 현실은 교육의 이론과 실제의 근간을 이루는 세계관과 그 세계관들의 갈등과 충돌의 문제를 그렇게 심도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다양한 교육 이론과 실제의 근본 뿌리를 탐구하고 평가하기보다는 교육현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 정도로 피상적으로 보면서 접근하기 때문에 교육현장에서 난무하는 세계관과 세계관의 충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우리로 하여금 이원론적 접근을 수용하거나 아니면 당시에 유행하는 교육의 이론이나 실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인도한다.
교사교육의 한 예로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다. 내가 1968년도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해서 교육학을 공부할 당시에 교육철학 분야에서는 존 듀이(John Dewey)의 실용주의 철학과 진보주의 교육 이론(Progressive Education), 교육과정 분야에는 브루너(J.S. Bruner)와 피닉스(Philip H. Phenix)의 ‘지식의 구조’를 중심으로 한 ‘학문중심 교육과정’(Discipline Centered Curriculum), 교육심리학 분야에서는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이론이 탐구의 주된 관심사였다. 교육사를 공부할 때는 당연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해서, 중세 시대와 스콜라철학, 그리고 루소(J.J. Rousseau), 존 듀이와 킬 패트릭(W. Kilpatrick)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주창하는 교육 사상에 대해서 배웠다. 교육철학 분야에서는 이상주의, 현실주의, 스콜라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존재론, 실재론, 가치론을 탐구하고, 본질주의, 항존주의, 진보주의, 재건주의와 같은 교육철학의 관점에서 주창하는 교육목적, 교육과정, 아동관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공부하였다.
다양한 사상과 이론들을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평가하는 사고의 훈련은 고사하고, 이들의 교육 이론과 실재에 대한 철학적 뿌리를 검토하는 일 조차도 지극히 미흡하였다. 당시 교육현장에는 존 듀이의 교육철학에 영향을 받아 아동은 ‘행함으로 학습한다’(learning by doing)는 학습 원리를 강조하는 ‘경험 중심’, ‘아동 중심’ 그리고 ‘생활 중심’ 교육의 방법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방법은 듀이의 교육 이론이 싹이 트고 성장 발전한 서구의 사회 문화적 토양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채 방법론만 도입하였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사회 문화적 토양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고사했다.
교육의 현상에 대한 이와 같은 피상적인 접근은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교육의 이론과 실제의 바탕에 있는 뿌리를 혁신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교육(학)의 영역에서 난무하고 있는 세계관들을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들고, 이들 세계관들을 단순히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점 정도로 이해하고 수용하게 만든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관점들을 축적함은 물론, 최신에 유행하는 관점과 방법을 활용하는 교사를 유능한 교사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세계관들의 충돌, 어떻게 돌파할까?
교육(학)의 영역에 난무하는 세계관들을 분별하고, 이들 세계관들의 충돌을 효과적으로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성경적 세계관의 틀(창조-타락-구속-영화)(A. Wolters), 또는 우리가 내주해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Alasdaire MacIntyre, Lesslie Newbin, N.T. Wright, M. Goheen)를 분명히 해야 한다. 동시에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이나 틀이 하나의 지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스미스(James K.A. Smith)의 지적대로 기독교를 앙상한 지적 구조로 환원시키고, “교회의 중재 없이도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신념 체계”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적 신념체계와 함께 교회와 예배의 실천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인간의 근원적인 열정을 건드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충돌하는 세계관을 분별하는 지식은 갖지만 그런 세계관들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실천적 능력은 갖지 못하게 된다.
둘째는, 성경적 세계관 또는 성경적 ‘거대 이야기’(Grand Story)의 교육적 함의, 다시 말하면 성경적 관점과 이야기가 교육 목적, 교육 과정, 교육 방법 및 평가, 사회 구조 등 교육의 전반적 과정과 요인들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을 한 번 더 예로 들어보자. 나는 소위 일반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는 6년 동안 한 번도 나의 신앙이 나의 전공과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였다. 그냥 주일에는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좋은 크리스천이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나의 신앙과는 전혀 관계없이 교육학의 다양한 이론과 실제들을 탐구하는 좋은 학생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며 내주하고 있던 나의 이야기의 관점에서 교육의 현상을 바라보라는 도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가르쳐준 교수님들 중에는 교회의 신실한 중직자요 한국교육학회에서 권위 있는 교육학자이신대도 한 번도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서 교육현상을 탐구하도록 도전을 주지 않았다. 물론, 자신들의 연구도 철저하게 이원론적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셋째는, 성경적 세계관 또는 성경적 ‘거대 이야기’와 경쟁하는 인본주의적 세속적 세계관의 틀(관점) 또는 인본주의적인 ‘거대 이야기’의 교육적 함의를 탐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선험적 비판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우리의 선험적 비판은 무례하거나 억지 주장, 또는 독단적인 승리주의에 도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선험적 비판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에서부터 ‘변화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내세 지향성’에서 ‘현세 지향성’으로, ‘초자연적인 것’에서 관찰, 실험, 성찰의 방법을 통한 ‘자연적 활동’으로 관심의 초점을 전환시킨 근대교육의 세계관과 그 교육적 함의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넷째로, 선험적 비판(Transcendental Criticism) 능력과 함께 내재적 비판(Immanent Criticism)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교육(학)의 영역에서 난무하는 다양한 세계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동일한 세계관의 관점과 틀을 통해 교육현상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범하고 있는 논리적 모순과 약점을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교육적 함의만을 소리 내어 주창하게 될 것이다.
<sungsooshalom@gmail.com>
글/ 김성수 (전 고신대학교 총장/고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명예교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7년부터 고신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고신대 총장을 역임했다. 기독교학문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본보 2017년 8월호 커버스토리에 소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