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연을 쫓는 아이들
2019-01-04세속법과 교회법의 충돌
세속법은 왜 교회법에 관여해선 안 되는가
한국교회의 바벨론 포로 사태, 사랑의 교회 사건
월드뷰 01 JAN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4 |
이영진/ 호서대 평생교육원 신학과 교수
1. 한 교회 속 두 세계관
한 공동체 안에는 종파이든 정파이든 복수의 계파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또 모종의 임계치가 상승할 때 분립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근자에 한국교회를 극명한 두 세계관으로 가른 사건이 있다. 그것은 전(前) 정부 시절 국무총리 지명을 받았던 문창극 후보가 14일 만에 사퇴한 사건이다.
2014년 당시 KBS는 문 전 총리후보가 지명된 직후 저녁뉴스를 통해 문 후보가 몇 년 전 한 교회에서 장로로서 강연한 내용 가운데, ‘일제시대와 6·25사변은 우리 민족에게 뼈아픈 고통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취지로 말한 내용을 단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부분만 편집해 보도했다. 이 보도로 한국교회는 고난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과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세계관으로 양분되어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같은 강연에서 ‘조선시대의 왕족·귀족·공무원에 의한 착취 구조는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취지로 언급한 맥락들을 단지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조선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고만 말한 것처럼 알려져, 심지어 기독교 지식인들 간에도 혼돈이 이는 양상을 보였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조선시대의 착취구조를 고질적 악습으로 보는 세계관과 그렇지 않게 보는 세계관 간의 충돌에도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다.
왕족, 세습귀족, 그리고 동포에 대한 착취는 전통인가 악습인가? 우리와 비슷한 전통을 가졌지만 현재의 우리 모습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봉착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 한 편 소개할까 한다. 우리와는 정반대의 역사 결과를 맞이하게 된 과정을 볼 때 모진 우리의 역사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2. 세계관을 좀 먹는 세계관
1973년에 군주제가 폐지되고서 소련의 침공, 그리고 이어서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기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연을 쫓는 아이>의 주인공 아미르는 군주제가 폐지되기 10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부유한 집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어머니를 여읜 아미르는 종의 아들인 하산과 형제처럼 자란다. 언청이인 하산은 아미르가 아무리 놀려도 화내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요 형제처럼 지내지만 하산은 분명한 아미르의 종이다. 실제 하산은 어리면서도 충직한 종의 임무를 다한다. 아미르가 동네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 곤경에 처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고 아미르를 위해 싸운다. 그러면서도 아미르는 아버지가 하산을 자신과 똑같이 사랑하고 아껴 주는 것이 언제나 샘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연례행사로 열리는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아미르는 날아간 연을 하산에게 가져오도록 시킨다. 돌아올 시간이 지나자 아미르는 하산을 찾아 나섰다가 그만, 자기를 괴롭혔던 불량배들이 하산에게 보복으로 성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하산이 자기를 구해줬던 것처럼 나서서 구할 용기가 없다. 집으로 도망쳐 왔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미르는 착한 하산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를 집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그 일이 있은 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부르주아지였던 아미르 가정은 피신을 가야만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적응할 무렵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친구 칸 아저씨에게서 아미르는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첫째, 하산이 탈레반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 둘째, 하산이 다름 아닌 아미르의 이복동생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그의 아들 소랍이 아프가니스탄에 살아있다는 사실.
1973년 마지막 국왕 ‘자히르 샤’가 해외 순방길에 있는 동안 ‘다우드 칸’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첫 대통령이 된 것은 아프카니스탄 군주제의 종식이자 공화국의 출발이다. 그러나 이때 찾아온 것은 공화정이 아니라 공산주의 망령들이었다. 5년 뒤인 1978년 4월 공산혁명이 불어 닥치고 인민민주당(PDPA)이 실권을 거머쥐고 곧바로 이듬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이어지면서 비극의 서막이 오른다. 부모, 자식, 친구, 동료, 이웃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아랍어로 ‘동무’를 ‘라피크’라 불렀는데 이 라피크가 부모까지 감시하라고 가르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소련 공산군이 약 20여 년간 주둔하다 남기고 간 것은 여러 종파 및 정파로 대변되는 무장세력 간의 유혈 투쟁이었다. 그러다 1996년 탈레반이 권력을 쥐고서는 하자라족을 대량 학살한다. 바로 하산이 하자라족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충실한 자기 종의 아내를 범해 낳은 이복동생 하산의 소생을 구하고자 아미르는 목숨 걸고 고향으로 출발한다. 고향에 당도했을 때 아미르를 한 눈에 알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하산을 성폭행했던 불량배 아세프였다. 그는 어엿한 탈레반 전사로 변모해 있었다. 그는 하산의 아들 소랍을 인신매매로 데려다 성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소랍의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 소랍을 데려가겠다고 나섰을 때 불량배 아세프는 놀랍게도 이런 강변을 늘어놓는다.
“…네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뭘 알아? 공산주의자들이 성전을 파괴할 때 넌 없었어. 이 나라는 쓰레기 천국 같았어. 우리가 쓰레기를 치우고 법과 정의를 가져왔어…”
그러자 아미르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의 법과 정의를 이미 목격했어.”
아미르가 이미 목격했다는 정의는 무엇일까. 아미르가 소랍을 구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해 들어와 목격한 정의는 한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다말고 하프타임에 법을 집행하는 장면이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 여성 하나를 트럭에 태우고 등장한 탈레반들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 앞에서 그 여성을 세워놓고 이렇게 외친다.
“형제여, 자매여! 우린 오늘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정의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신의 말씀을 따르려고 합니다. 신의 말씀이 뭡니까? 죄인은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말도 아니고 형제의 말도 아닙니다. 신의 말씀입니다! 간음자에게 무슨 처벌을 합니까? 결혼의 신성함을 더럽힌 자들을 어떻게 처벌합니까? 신에게 불복종한 저들을 어떻게 다룹니까? 신의 창문에 돌을 던진 자들에게 어떤 대답을 주겠습니까? 돌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러고서는 아세프가 먼저 돌을 들어 여성의 머리를 후려치자, 나머지 탈레반들이 여성에게 일제히 돌을 던져 처형한다. 이슬람의 율법 샤리아를 집행하는 이 모습은 이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산주의 세계 속에서 자행되었던 인민재판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샤리아를 집행하는 그들 자신은 그것이 샤리아인 줄로만 알고 있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법과 정의’였던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에게 좀 먹는 방식이기도 하다.
3. 세계관을 회복시키는 세계관
조선시대는 자기 아버지가 여종(또는 남종의 아내)에게서 낳은 이복형제를 그 아버지에게서 (형제가 아닌) 노예로 상속을 받아 그들에게서 생산되는 천출들을 다시금 노비로 재상속하는 잔혹한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어떠한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전체 인구 중 70퍼센트가 노예로 살던(실제 노비는 40%) 사회. 그런 옛 사회로부터, 현대로 건너와 이제는 대다수가 김씨·이씨·박씨 곧 주인의 성씨를 지니고 살면서 하나같이 스스로를 양반의 후손으로 자부하도록 사회 전체를 승격시킨 힘은 무엇인가? 그 힘의 실체는 왕손도 아니요, 귀족도 아니요, 공무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 자신이었다. 그 내용이 비극이었든 희극이었든 이 같은 역사를 가리켜 신학에서는 신의 정신(Geist)이라 부른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아직도 동포와 형제를 노예로 삼고 또 상속을 해오는 그런 사회가 우리가 거주하는 지대로부터 북쪽으로 지척 거리에서 여전히 그 체제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가면서. 그러한 사회와 풍토를 기독교인이 규탄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게으르고 나태한 직무유기의 세계관은 없을 것이며 이는 자기들이 신봉하는 평화의 신의 규범에 기인한 것이라 스스로 믿고 싶겠지만 실은 사회주의를 넘나들기에 적합한 탈레반의 샤리아에 더 근사할 따름이다. 언제나 자신들만이 정의롭다 믿기 때문이다.
문 전 총리후보가 후보로 계류되던 14일간은 정파적 사회 분쟁 이면에서 기독교 사회에는 꽤 의미 있는 일들을 드러내주고 지나갔다. 거기서 비롯된 세계관 충돌은 곧바로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경기장에 기독교인이 대거 가세하면서 심화되었는데, 정식 절차에도 이르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한 여성 대통령에게 관음증 어린 돌팔매질을 아끼지 아니할 때 놀랍게도 그 중에는 유수한 개신교 목회자들이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북쪽의 현존하는 노예사회에 대해서는 절대로 돌을 들지 않는 자기 세계관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신명기 법전은 이런 목회자들의 선동과는 달리 확실한 증인이 ‘먼저’(רִאשׁוֹן) 돌을 들게 함으로써 그 법률이 공산주의식 샤리아 인민재판화 되는 것을 막고(신 13:9), 동시에 자비와 관용의 세계관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모세의 시대로부터 그리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간음에 관한 그 모든 증언이 허위로 드러났음에도 자신들이 누구보다 ‘먼저’ 돌을 들었던 사실에 대한 일말의 뉘우침도 없다.)
이 영화에서 아미르가 기울어진 모든 사태를 회복하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사력을 다해 이복동생인 하산의 아들을 구하였을 때 참된 세계관이 복원되고 있다.
(young@hose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