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의 개인-집단주의에 관한 대안

교육복지의 개인-집단주의에 관한 대안

2018-09-25 0 By worldview

복지 국가의 자발적 노예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비판
인간은 맥락적 존재이며 사회적 피조물
학교의 종교 고백적 다원성

국가와 학교 그리고 복지: 교육복지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collectivism)에 대한 비판과 성경적 대안으로서의 구조적 고백적 다원주의(pluralism)

 

월드뷰 09 SEPTEMBER 2018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김정효/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교육 복지의 책무와 국가 개입의 확대 문제

최근의 교육 이슈 중 하나는 복지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교육이 개인의 성공과 국가의 발전이라는 이슈에 주목해 왔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특히 교육에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좀 더 일찍 주목했어야 했던 이슈였던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교육의 복지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가난으로 인하여 교육 문화의 결핍과 교육 접근의 기회 제한을 겪는 이들에 대한 교육정책이 어떻게 마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사회, 철학적 깊은 숙고가 필자를 포함한 기독교육학자들에게서 보다 진지하게 있어야 했다.

신명기에는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칠지라( 15: 11)’라고 하셨다. 성경에는 도울 자가 없는 가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여러 군데 드러나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라고 하시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따르리라(잠언 28:27)’고 엄히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교육의 영역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복지에 대한 기대가 증가할수록 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어 가고 있는 데에 대한 우려가 서구사회에서 있어왔던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출판된 마크 파이크의 『C.S. 루이스의 순전한 교육』(IVP)에서 루이스는 ‘복지 국가의 자발적 노예(willing Slaves of the Welfare State, 1958)’라는 글을 통해 ‘시민의 경제적 삶이 곤경에 처해서 정부의 역할이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되면, 통치자가 시민의 권리와 평등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시민을 소유해 버린다’고 진단한다. 루이스는 국가의 최소한의 시민 ’권리 보장‘이라는 것은 국가 ’개입주의‘에 복종을 의미하며 이로써 ’개인의 사생활과 독립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의 삶이 더욱 완전하게 계획될수록 국가를 대리하는 사람들의 권한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마크 파이크/송은정 역 | 출판사: IVP | 발행일 : 2017-07-21

미국의 교육 역사에서도 식민지 초기의 개인주의적인 경향들이 독립 혁명기를 거치면서 집단주의로 나아가게 되었고, 최근의 공적 정의와 교육 평등의 이슈로 인해 교육정책은 교육에서 국가의 복지 기능에 대한 기대 증진과 역할의 확대로 집단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분석과 국가 역할의 불균형적 확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담은 글이 캘빈대학 the Calvin Center for Christian Scholarship의 펠로우들에 의해 Society, State & Schools (1981)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것이 있다. 이 책의 주요한 기여는 사회사상의 양대 접근 즉, 개인주의(individualism)과 집단주의(collectivism)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개인과 국가의 궁극적 권위의 정당성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한 비판

먼저 이 책의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는 개인주의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개인의 궁극적 절대적 권리란 성경적으로 볼 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개인이 개인의 법이 될 수 없으며 개인을 초월하는 규범이 있다는 것이다. 즉, 개인은 그가 종속되고 그가 누구인지를 규정짓는 관계가 존재하며 그 관계 가운데 요구되는 규범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그들 존재 자체에 있어서 내재적(intrinsic)이다. 즉, 처음부터 인간은 관계망에 복잡하게 묶여 있다는 의미이며 인간은 맥락적 존재이며 사회적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통합적으로 사회질서와 관련이 있고, 그 사회적 환경 가운데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개인주의가 개인을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정의하고 출발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역으로 인간은 공동체 가운데서 다른 이들과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자족적이다. 즉 개인주의는 공동체와 사회가 개인의 내면적 존재의 창조에 구조적으로 개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Herman Dooyeweerd는 개인을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보는 견해는 개인을 자율화시키고 진정한 공동체를 파괴하며 사회를 분절화 시킨다고 비판하며 ‘부모의 연합에 의한 모든 자녀의 탄생 자체는 개인주의적 이론과 병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주의에 대해 비판하며 등장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집단주의 역시 문제가 있다. 집단주의는 개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구조들 예컨대, 가정이나 학교, 교회 그리고 자발적 단체 같은 매개구조(mediating structure)의 영역과 주권을 침식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우리의 교육적 권리의 정당성을 순전히 개인에게서 찾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인간의 교육적 정당성을 국가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의 동기와 자유 등은 집단의 목적에 부합할 때만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무중력 상태의 자유를 누리는 독자적인 개인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망을 가지고 천성적으로 타고 나지만 그것이 국가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국가를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구조들 즉 가정, 학교, 교회, 자발적 단체 등은 각각의 궁극적 기능과 영역이 있다. 그것은 국가나 그 어떤 사회집단으로 대체되거나 수렴될 수 없는 것이며 최종적인 정당성은 국가나 다른 궁극적 집단의 번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은 각 가정에 주권이 있으며. 학교의 주권은 교육자에게, 교회의 주권은 전문 목회자들에게 맡겨져야 하고 단지 국가는 이들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하나의 축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교육과정이나 평가의 일까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는 중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만일 개인이 자신을 가정에 그리고 가정은 지역사회에 그리고 그 지역사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위계적 질서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각 영역의 주권은 사라지며 국가주의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학교가 교회 혹은 국가에 종속되어, 교세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구조 고백적 다원주의(structural and confessional pluralism): 성경적 대안

이 책에서는 P.L.Berger와 R.J.Neuhaus의 교육정책 분석을 인용하면서 교육문제에 대해 복지가 강화되면서 국가주의적인 접근이 강화되고 있는 데에 대해 비판하면서 개인주의와 국가주의적 접근에 대한 대안을 위해서는 다양한 매개구조가 재생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은 그 대안을 구조적 고백적 다원주의(structural and confessional pluralism)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가 아는 부정적 의미의 문화적 다원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와는 다르다.) 구조적 고백적 다원주의라는 것은 개인과 국가 이외에 다양한 매개구조들이 그 영역의 주권을 회복하고 국가의 기능의 일부를 감당하여 각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가 개인이 가지는 삶의 오리엔테이션으로서의 종교적 가치에 부합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사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원주의에는 두 측면이 있는데 먼저 구조적 측면에서는 학교는 학교이고 국가는 국가이다. 각기 개별적인 권리와 주권을 가지고 학교와 국가는 존재하며 3가지 정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즉 1) 국가는 학교가 교육의 종교적 헌신과 철학에 대해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여야 하고 2) 공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업을 추구함에 있어서 국가는 교수진과 학생 집단의 건강, 안전, 질서, 정당한 대우와 복지를 보장하여야 하며 3) 특히 학문적인 결정은 국가 관료들이 아니라 학문 공동체에게 주어져서 행사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과정이나 교사 자격, 학생의 성취라든가 교육기간 같은 것 등은 교육지도자들에 의해 자율 규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지 국가는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데 역할을 하여야 한다. 즉 학교는 학교가 그 사회에 존재해야 할 권리와 이유에 관계된 학문적 기능을 자율 규제하여야 한다.

또한 다원주의의 고백적 측면은 실제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학교의 종교적 고백적 다원성은 법 앞에 구조적인 입지가 주어져야 할 뿐 아니라 모든 학교는 그가 가진 어떠한 세계관에 의해서도 교육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강압도 받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행동들 예컨대 교육복지에 대한 입법, 소송 그리고 헌법 개헌 등을 통해 교육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부모와 가정의 권리와 역할을 강화하며 학교의 자율성과 기타 매개 구조의 임파워먼트가 함께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현대인들은 공적 정의와 교육평등이 주제가 되어 복지국가에 대한 기대를 보이지만 동시에 정부와 관료 그리고 거대함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때문에 교육을 위한 공적 자금 혹은 교육복지 재정은 학교가 아닌 가정에 주어져 다양한 학습 스타일, 다양한 교육목적, 그리고 다양한 교육이념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 자신에게 적합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 책에 인용되어 있는 Coons와 Sugerman의 『Education by choice: The case for family control』에서는 아동의 필요는 전문가가 아닌 가족이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교육의 선택지는 보다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접근은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이들은 2가지 교육의 목표 즉 헌법적 질서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함양하는 일과 사회적 (인종적) 통합을 달성하는 일등은 교육의 중요한 사회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과 주정부와 지역사회의 재정 지원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의 선택권 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장학금이나 바우처(voucher)를 이용하여 공립학교는 정부가 아닌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맞추어내야 선택될 수 있도록 하여, 사립 혹은 영리 학교이거나 교회학교 등 다양한 학교가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에서 다양한 학교 즉 전통 고전교육이나 열린 교육, 혹은 진보적 학교나 가톨릭 학교 혹은 자유주의 학교나 근본주의적 학교 등등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할 때 국가의 요구는 본질적인 사회적 기술과 헌법질서의 존속을 위한 기초적 교육을 보장하는 정도에서 제한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육의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바우처 프로그램을 선호하는데 진보적 재정지원제도(progressive funding system)란 제도는 저소득 가정이 더 많은 바우처를 받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서는 모든 학교는 바우처 보다 조금 더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여 가난한 가정은 좀 더 적은 돈을 부유한 가정에서는 좀 더 많은 돈을 보태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교육의 질을 개선하고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와 아동 모두에게 이점이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기독교육자들은 최근 교육복지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다. 필자의 소견에는 우리 사회의 고도 산업화로 인한 교육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집단주의적인 패러다임을 기용하려는 일로에 서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 이상의 외국 기독학자들의 제언들은 우리나라 맥락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가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하여 교육복지를 접근할 때 고려해야 하는 국가, 학교 그리고 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전제들에 대한 검토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교육복지에 대한 집단주의적 해결책에게 무턱대고 동승하기보다는 좀 더 기독교 세계관적인 접근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JUNG HOY KIM 김정효 | 미국 오아이오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초등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기독교교육과정개발과 인성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기독교학문학회의 교육분과장, 부속초등학교교장, 초등교육학회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