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와 기부금 소득공제 개혁은 국가를 풍요로 이끈다
2018-09-21상속세와 기부금 소득공제 개혁은 국가를 풍요로 이끈다
월드뷰 09 SEPTEMBER 2018●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김용민 교수
전 세계적으로 통 큰 기부자 순위 맨 위에는 미국 부자들이 랭크되어 있다. 예전에는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최근에는 워렌 버핏(Warren E. Buffett)과 빌 게이츠(Bill Gates)가 그들이다. 일부에서는 통 큰 기부를 한 미국 부자들이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라고 인정받는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에 대해서 살펴본다.
록펠러는 신앙심이 깊은 크리스천이었던 어머니 엘리자(Eliza Rockefeller)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십일조 내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았으며, 16세부터 기부를 시작하였다. 어머니로부터 검소하고도 부지런한 생활습관을 물려받아 신실한 크리스천이자 부자가 되는 조건을 어려서부터 갖춘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와 훈육 덕분이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그는 생전에 총 5억 5천만 달러(현재 가치로 100억-150억 달러)를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하였는데, 2차대전 참전 직전 미국의 연간 국방비가 15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말 엄청난 금액이다. 록펠러가 1913년 설립한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록펠러 가문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그런데 록펠러의 기부행위는 마냥 칭송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1916년에 미국의 상속증여세가 10%의 세율로 처음 도입되었지만, 당시 상속세법의 미비로 록펠러는 많은 재산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식들에게 증여했다고 한다. 또한 록펠러가 사망하기 전인 1932년 45%의 상속세율이 1937년 70%로 올라감에 따라 이를 미리 알게 된 록펠러가 기부를 늘렸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록펠러도 사망 시 엄청난 상속세를 내게 된다. 록펠러는 생전에 정유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십일조와 기부를 신조로 생활한 모습과는 달리 독점적 기업행위로 비난을 받게 된다. 그는 1870년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후 다수의 경쟁회사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협박, 회유, 가격후려치기 등 무리한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공분을 사게 된다. 결국 1911년 대법원의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 위반 판결로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고율의 상속세 부과만으로 경제 정의 실현은 불가능
록펠러의 기부활동을 촉진했다는 미국의 상속세는 지금 어떻게 변해 있는가? 한때 77%에 달했던 상속세율은 점차 감소하여 현재는 40%로 줄어들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상속세 면세한도를 이전의 545만 달러(한화 62억 원)에서 1120만 달러(한화 126억 원)로 대폭 늘렸으며, 부부를 합산하면 2240만 달러(한화 253억 원)로 늘어나 우리나라의 상속세 일괄 면세한도 5억 원에 비해 무려 25-50배가 많다. 정말 큰 부자가 아니고는 상속세를 내지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상속세 납부 대상자 중 0.2%만이 실질적으로 상속세를 납부하여 우리나라(2.2%)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미국 부자들은 자식에게 이미 충분히 재산(부부합산 2240만 달러)을 물려주었으므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자선사업(charity)에 기부할 충분한 인센티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적지 않은 국가들이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상속재산이 무상으로 이전되는 불로소득이며, 과다한 상속재산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또한 상속세를 내는 부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도 집단적 저항이 크지 않은 효과적인 세수증대 방안이라는 것도 실리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 역시 ‘부의 집중’이나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고세율을 매겨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상속증여세율이 50%에 달한다. OECD 35개 국가 중에서 일본(55%) 다음으로 상속세율이 높으며, 최대주주 할증(65%)을 적용하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이다. 또한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조세 중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7%로 OECD 평균(0.5%)의 3.4배이며, 벨기에(2.4%)와 프랑스(2%)에 이어 3번째로 높다. 미국(0.7%), 독일(0.9%)과 비교하면 2배 수준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OECD 국가의 43%에 해당하는 15개 국가가 상속세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들어서 멕시코,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많은 국가들이 잇달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885년 세계 최초로 상속세를 도입하여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다가 최근 들어 완전히 폐기한 스웨덴을 사례로 설명해 본다.
첫째, 아무리 높은 상속세를 물려도 조세수입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상속세의 가장 큰 목적인 기회균등이라는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높일수록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부자들의 온갖 절세 노력으로 인해 상속세 수입이 전체 조세수입의 2%를 상회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은 이미 많은 소득세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상속세는 중복과세라는 비판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셋째, 상속세를 내지 않는 대신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를 부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상속시점에 이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서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때 과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가업 상속을 통한 기술과 경영의 노하우 전승
전 세계적으로 부자들이 대부분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어느 나라이든 사업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현대 경영학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의 마지막 과제는 승계’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말하는 승계의 핵심은 부의 대물림이 아닌,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기업가정신과 기술 및 경영 노하우의 대물림에 있다. 기업이 존속해야 부가가치도 만들어내고,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모든 기업가의 최대의 고민거리다. 후계자로 전문 경영자를 영입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믿을 만한 후계자는 자식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고율의 상속세로 가업 승계를 어렵게 만든다면 경영자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독일과 일본 같은 기술 강국들은 파격적인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혹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기업을 왜 자식에게 꼭 물려줘야 하냐고?” 글쎄,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심정이듯이,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군다나 사업가의 자녀들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수완이 남다르고 성공 확률도 높다는 것도 대물림을 지지하는 이유가 된다. 어려서부터 바로 옆에서 부모의 사업 수완과 사업가로서의 행동 패턴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유대감과 전통도 가업의 존속과 발전에 무시 못 할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과 일본을 보자.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내로라하는 강소기업들이 대부분 가족기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히든챔피언’과 일본의 ‘장수기업’을 부러워하는데 이들이 몇 세대를 대물림한 가족기업인 것이다. 상속세 면제 등 강력한 가업상속 제도 덕분이다.
안타깝게도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가업상속과 관련된 세금은 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상속 자산의 50%에 30%의 할증을 추가해서 최고 65%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회사 주식의 과반수인 60%의 지분을 가진 창업주가 상속세 65%를 납부한다고 가정하면, 자식은 21%(60%*35%), 손자는 7.35%(60%*35%2), 증손자는 2.57%(60%*35%3)로 소유지분이 급속하게 줄어들어 가업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의 ‘히든챔피언’이나 일본의 ‘장수기업’과 같은 기업은 꿈도 꿀 수 없다. 가히 약탈적 상속세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더군다나 정부는 세법 개정을 통해 2018년부터 가업승계 공제 대상을 오히려 강화하여 가업승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최근에 실시된 중견기업 실태조사에서는 상속증여세 부담과 엄격한 승계 요건 때문에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중견기업이 78.2%에 달했다. 기회만 되면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강조하는 정부가 정말 중소기업을 살리고, 혁신성장의 물꼬를 틀 의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아직까지 국민적 반감이 큰 대기업의 가업상속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중소・중견기업만이라도 가업승계에 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서 혁신성장을 통해 풍요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기부를 유도하기 위한 과도한 규제 개혁 필요
국가를 풍요로 이끄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는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이다. 기부자를 ‘레인메이커(rainmaker)’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레인메이커가 비를 내리게 하여 만물을 소생시키듯 기부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줘서 소생시키기 때문이다. 기부가 활성화되면 사회 전체가 생기를 얻어 훈훈하고 풍요롭게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하고 이들 간에 증오와 반목을 키워서는 절대로 훈훈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가진 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반 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작금의 상황이 정말 우려스럽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자와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둔다 한들, 세금을 내는 사람들도 기분 나쁘고, 더 거둔 세금으로 수혜를 누리는 사람들도 기분 좋을 리 없다.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이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서로 배려하는 사회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 기부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즉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 같은 유인책을 마련하고 기부와 관련된 과도하면서도 복잡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적 인식의 개선으로 기부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과 기업의 통 큰 기부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과 법제도 및 공익단체 운영방식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비근한 예로 장학재단에 거액의 주식을 기부한 기부천사가 세금 폭탄을 맞는 등 아직까지 보완해야 할 법제도 및 규제 조항들도 많이 있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공익재단의 비리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불신도 극복해야 할 요인이다. 법과 제도의 미비도 장애물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규제 시스템이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로 손꼽힌다. 또한 비영리단체 입장에서는 상대해야 하는 정부기관 수도 많아서 15∽35개의 각기 다른 기관과 상대해야 한다고 한다. 부처 소속으로 공익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찾아가면 심지어 귀찮아하는 부처도 있다고 한다. 아시아권에서 공익부문이 가장 발달했다고 평가받는 싱가포르는 정부 조직으로 ‘자선위원회’를 두어 비영리 기관의 설립이나 운영 감독을 총괄하고 있다. 공익단체로선 상대해야 할 정부부처가 통일되어있어 행정낭비가 적고, 정부는 공익단체들이 기부금을 보다 용이하게 확보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다.
세금 감면 제도를 통한 자발적 기부의 활성화
또 한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금을 출연하여 공익 재단을 설립한 설립자가 재단 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기부자는 돈만 내고 재단 운영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세금 회피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한 다음 설립자나 그의 가족이 대대로 재단 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서 비롯된 시각이다. 그런데 이런 견해가 과연 바람직한지, 혹시 너무 속 좁은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대대손손 자녀들이 재단 운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여 설립자의 뜻을 받들어 의료, 보건, 교육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또 다른 예인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은 빌 게이츠와 아내 멀린다 게이츠가 공동 이사장으로 재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미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빈곤을 퇴치하고 보건위생을 크게 증진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이 재단 설립자와 가족이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는 것이 제3자를 책임자로 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독립적인 감사 인을 선정하여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에 기금을 집행하였는지를 감사하고,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금 감면 제도를 집어보자. 아무리 기부하라고 사람들을 붙잡고 설득해도 소용없다. 결국 인간은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세금 감면 제도는 강력한 기부 촉진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소득공제가 아니라 세액공제를 하는 나라이고 공제의 폭이 아시아권에서도 최하위에 속한다. 2019년부터 시행되는 세제 개편안은 개인의 경우 1000만 원 미만의 기부금의 15%, 1000만 원 이상은 30%, 기업(법인)의 경우 지정기부금의 10%를 세액공제로 비용처리해 주고 있지만, 이는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이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 지원이 큰 싱가포르는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기부금의 250%까지 소득공제를 해준다. 연 4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개인이 1억 원을 기부하면, 기부하는 해를 포함하여 향후 5년간 나누어서 전액 세금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가 소득공제 혜택을 250%로 상향시킨 해에 국가 전체의 기부금 총액이 크게 늘어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같은 국가들도 기부금에 대해서는 100%의 소득공제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부금 소득공제 혜택이 마중물이 되어 자발적인 기부를 활성화함으로써 하루속히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풍요로운 국가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