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다: ‘남양주 희망케어’의 작은 기적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다: ‘남양주 희망케어’의 작은 기적

2018-09-21 0 By worldview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다: ‘남양주 희망케어’의 작은 기적

 

월드뷰 09 SEPTEMBER 2018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정부가 세금으로 하는 복지행정에는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복지를 행정에만 맡긴다면 정말 복지가 필요한 이에게 도움이 가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강남 3구라고 하는 서울 송파구에서 살고 있던 세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사건이었다.
강남 중산층으로 살 던 가정의 몰락이 빚은 비극이었는데 법적보호 대상에는 미흡하나 긴급지원을 요하는 가정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이런 경우 본인이나 공무원 모두 도움을 주고받기 어렵다는 점을 알기에 구호의 사각지대가 된다. 하지만 민간이 복지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자발적 복지 시스템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필자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남양주의 사회복지 프로그램 ‘희망케어’를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희망케어 복지시스템’은 남양주시가 최초로 개발해 국내 지자체와 중앙부처로 확산된 보건·복지 원스톱 서비스이다. 이 시스템은 시민이 시민을 돕는 운영방식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지원되는 모든 사업은 세금이 아니라 시민들의 후원금과 재능기부로 이루어진다.

2007년 시작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나눔은 4억에서 2016년 약 25억으로 확대되었으며 10년간 총 후원금품 260억 원이 모금되었고, 170만 건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놀라운 성공을 이뤄냈다.

 

사회적 자본과 자발적 참여의 발렌티어리즘

‘시민이 시민을 돕는’ 자발적 민간복지 프로그램인 <남양주 희망케어>는 그 성공적 사례로 인해 사회복지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OECD와 독일의 나우만 재단에서도 주목해 전 세계에 알렸던 자조(Self-Help)를 바탕으로 하는 자발적 시민주도, 시민참여 복지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대답은 바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남양주가 고향인 다산 정약용의 애민(愛民) 사상이 만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한마디로 ‘물질이 아닌 정신적 자본’이다.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OECD(2000)는 사회적 자본을 ‘집단 내 혹은 집단 간의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네트워크, 규범, 가치 및 이해’라고 정의했다. 특히,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과 집단에 의해 공유되므로 공공재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인적 자본이나 물리적 자본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싱가포르의 경우, 사회적 자본이 정부와 시민사회를 묶어주고 동원할 수 있는 중요 도구의 역할을 한다고 여기고 있다. 싱가포르는 시민사회를 활성화시키고 민간관계를 보다 긴밀히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자본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 축적 전략을 통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향상시키고 관료들이 국가를 이끌어나가고 변화를 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적 연대 규범을 통해 사람들이 공익을 추구하도록 격려하거나 제약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자발적이고도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규범이 효과적으로 기회주의를 제재할 수 있게 되면, 감시․감독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되어 다양한 투자와 경제적 거래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된다.1)
무엇보다 사회적 자본의 가장 강력한 힘은 시민적 도덕감을 증대시켜 유권자로 하여금 공직자의 업무 수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여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회적 자본을 연구한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지고 있다.2)

첫째, 사회적 자본은 조직 및 지역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신뢰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정책의 장기적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정책 수행이 보다 추진력을 갖게 된다. 둘째,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수익률이 높아진다. 조직 내 사회자본이 형성, 축적되면 구성원들의 활동이 원활해짐으로써 조직의 역동성이 증가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증진된다. 또한 신뢰 문화가 체화되게 되면 생산성이 향상되며, 더욱 효과적인 생산 단위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셋째, 정보 공유, 상호 학습에 유용한 지역 학습조직에 기반을 둔 지역산업은 개인 학습을 하는 조직보다 훨씬 유연하고 역동적이라는 점에서 사회자본은 지역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사회자본은 사람들의 구직 과정에도 도움을 주며, 신뢰에 기반하여 구축된 사회적 인프라는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자본이 많이 축적된 국가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경험적 연구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복지는 행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깨달음

남양주시는 10여년 전 사회적 자본의 본질을 우리 전통문화 안에 있는 협동과 자조(自助) 정신, 즉 ‘어울 더울’의 대동(大同) 개념으로 파악했다. 물론 이러한 행정 철학에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이석우 전 시장의 ‘행정은 책임이고, 복지는 사랑’이라는 독특한 행정 철학이 작용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남양주시의 직원들과 시장은 남양주가 고향이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애민(愛民) 정신을 정규적으로 학습했다. 관이 나서서 주도하기보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하도록 했던 소통과 참여행정 ‘남양주 4.0’은 시민들로 하여금 시정(市政)을 자신의 일로 여기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주변 이웃의 누가 어렵고 힘든지, 어떻게 도우면 되는지 등에 대해 그 방안도 알고 있었다. 규제와 개입을 줄이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는 결과적으로 ‘크고 책임 있는 시민’을 만든다. 그러한 소신과 노력은 적중해서 남양주는 시민이 시민을 돕고, 시민이 시민을 가르치며 배우는 가운데 범죄율이 하락하고 복지에 효율과 전달률이 올라갔다. 그 결과 주민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커뮤니티로 진화해 나갈 수 있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복지는 정부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자발적 복지’라는 개념의 발렌타리즘(voluntarism)이다. 민간이 민간을 돕는 자조(Self-help)를 중심으로 이웃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자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은 ‘모든 사람들은 더부살이(今天下之人 無非寄也)’라 생각했다. 사람은 ‘人’ 자에서 보듯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는 심리학자 아들러가 ‘기여하는 삶’에서 인간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본 것과 같다.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한정된 삶을 사는 것이니 물질이나 이념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식이 담겨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권분(勸分)이라는 개념으로 기여를 통한 자발적 구휼정신을 강조한다. 즉 여유가 있는 이들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긍휼한 마음으로 자선을 베푸는 정신이다. 200년 전, 기독교적 사랑과 공의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다산은 목민관이 그러한 권분의 공동체 가치를 백성들에게 잘 설득시켜 교화해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1.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 Robert D. Putnam / 안청시역/박영사/2000.9
  2.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적 자본 형성 전략연구 /홍영란外/한국교육개발원/2006.12.

 

Jason Han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Chicago Mercantile Institute에서 Future Trading & Market Research를 전공했다. KBS에서 PD로 근무했으며 현재 미래한국 편집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