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한국 경제
2024-04-08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를 만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에 대하여 들었다. 그는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을 맡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경제사와 인구·보건경제학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대학, UCLA, 옥스퍼드대학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혁신의 시작>(2021, 공저), <반기업 정서: 미국과 일본>(2016, 공저), <한국의 고령노동>(2006) 등이 있다(편집자 주).
인구 감소와 한국 경제: 영향과 대책
김승욱 월드뷰 4월호는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개혁 방안을 특집 주제로 잡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라고 불렸던 싱가포르는 일 인당 GDP가 8만 달러를 넘었는데, 우리는 3만 달러 중반에 머무르고 있고, 경제성장율도 2%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호소하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습니다. 지난 4분기 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최저대로 떨어졌습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0.7명인데 그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잠재성장률은 생산성과 인구 증가에 달렸는데, 생산성은 크게 안 오른 데 비해 인구 감소 속도는 너무 빠릅니다. 이렇게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이하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지역 간 격차도 더욱 크게 벌어집니다. 한국의 경제문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인구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염려합니다. 이철희 교수님은 경제사를 전공하셔서 단기적인 변화보다는 장기적인 변화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셨고, 인구·보건경제학도 전공하셔서 인구 변화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고견을 기대합니다. 그동안 저희 월드뷰는 출산율 대책이나 고령자 복지 등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었지만, 인구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처음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이철희 출산율 감소는 결혼 감소가 중요한 요인입니다. 서구는 출생아의 40%가 미혼 가정에서 태어나지만, 우리나라는 3%도 안 됩니다. 그래서 결혼이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1990년도 이후부터 최근까지 출산율 감소의 대부분이 혼인율 감소의 결과입니다. 2015년 이후에는 출산율이 더 빠르게 떨어졌는데, 결혼 기피 이외에도 이미 결혼한 여성들이 자녀를 낳는 ‘유배우(有配偶) 출산율’ 비율이 매우 낮아진 점 또한 출산율 하락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결혼을 했는데도 첫 번째 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늘었습니다.
김승욱 그럼 혼인율이 줄어드는 것과,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게 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이철희 첫째는 고용과 일자리의 질 때문입니다. 취업 시장과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면서 자녀 양육에 필요한 비용 마련이 어려워졌고,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훨씬 더 커지면서 장기적인 전망에 기초한 결정을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날수록 결혼하는 사람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둘째, 결혼비용 상승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거비용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집값과 전세비용이 많이 올랐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셋값이나 주택가격이 높아지면, 무주택자의 결혼율이 떨어지고 기혼자의 출산율도 떨어집니다. 더욱이 도시 지역의 주거비용이 올라가면 청년층이 외곽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어 힘들어집니다.
셋째, 지난 몇 십 년 동안에 여성들의 교육과 노동 시장 성과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그 속도가 느립니다. 과거에는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 어려우면 일을 포기했는데, 이제는 일 대신 가정을 포기하겠다는 여성들이 많이 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느끼는 결혼과 출산의 페널티가 굉장히 커지고 있고 이것이 곧 저출산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본인의 생애 및 세대에 대한 전망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면 현재의 상태보다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출산은 다음세대의 미래 전망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나 전망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죠. 최근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자녀를 왜 낳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1/4 정도가 ‘아이가 행복하기 힘든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불평등이 높아지고 사회적 이동성이 약화하고 교육 경쟁도 격화한다는 인식 속에서는 본인의 미래뿐만 아니라 자녀의 미래마저 불투명하므로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김승욱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라며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데 정말 그렇게 된다고 보시는지요?
이철희 한국의 인구 감소는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시기 인구 감소와 비교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은 현재와 같은 저출산이 지속될 경우, 한국은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 유럽이 겪었던 수준의 재앙적인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고, 이로 말미암은 심각한 존립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흑사병 확산 이후 유럽의 인구는 약 1/3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3년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향후 50년 동안 한국의 인구도 약 3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므로 인구 감소의 속도와 규모 면에서 21세기 한국은 흑사병 이후의 유럽과 비견될 만합니다.
그리고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사회경제적·제도적 불균형이 확대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모든 연령층의 사망이 늘었던 흑사병 시대의 유럽과 달리, 한국은 가파른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해 인구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지요. 또한 사회보험, 복지제도, 의료시스템, 교육기관 등 중세 유럽에는 없었던 제도들이 형성되면서 인구 변화의 영향도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21세기 한국의 인구 변화는 14세기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복잡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김승욱 어려운 도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철희 인구 규모가 감소하면 노동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에 따라 생산성이 낮아집니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이 낮아집니다. 또한 인구가 감소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기술진보를 포함한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집니다. 가까운 장래에는 출생아 수의 빠른 감소로 인하여 출생 코호트(특정 기간에 출생한 집단) 간 불균형이 커지고 이로 인한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제도는 매년 태어나는 인구(출생 코호트)의 규모를 고려하여 형성됩니다. 예컨대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 보육 시설과 학교의 교사 수, 군대의 징집 인원과 총 병력 규모, 특정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서비스의 공급량 등은 나이에 따른 인구수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출생 코호트의 규모가 급격하게 변하면 제도에 균열이 생깁니다. 작년에 태어난 출생아 수가 10년 전의 절반, 30년 전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한국의 출생 코호트 규모는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가 폐원하고, 대학은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군대는 병력 자원 부족에 직면하는 등, 총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전에 이미 사회경제적 불균형의 징후가 뚜렷한 것은 인구 구조 변화의 영향을 반영합니다. 연금을 포함한 사회보험 재정의 악화도 이로 인한 것입니다.
김승욱 반면에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적은 노동력으로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 총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철희 기술 변화로 인해 특정한 부문 또는 특정 유형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대다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변화로 인하여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견이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기술은 그것이 대체할 수 있는 유형의 노동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켰지만,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현재의 기술진보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것이 대체할 수 있는 숙련의 범위가 넓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기술 변화로 인한 일자리 파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떠한 미래가 전개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전체 노동 인구의 감소보다 노동 수급 불균형의 문제에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산업별, 노동 유형별, 학력이나 연령별로 현재의 수급 불균형 정도가 다르고, 향후 수급 불균형 전망에도 차이가 클 것입니다. 저는 2021~2031년간 인구 변화가 각 중분류 산업의 학력별, 연령별 노동 공급에 미치는 효과를 추정하고, 이를 동 기간 노동 수요 변화 전망과 결합하여 인구 변화가 산업별 노동수급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분석 결과 향후 앞으로 특히 사회복지서비스업,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 운송업, 전문직별 공사업,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업 등 산업에서 인구 변화 및 기술 변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심화할 것을 보여줍니다.
김승욱 학력별 그리고 연령별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이철희 산업에 따른 취업인력 규모의 변화 전망은 고학력과 저학력 간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는 산업별 전체 노동 공급 변화 추정 결과가 인적자본 수준에 따른 차별적인 노동 공급 변화 전망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연령별로 볼 때, 학력을 불문하고 20~34세 취업인력이 대부분의 산업에서 감소할 것입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연간 출생아 수 감소에 따라 젊은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데 기인한 것입니다. 이 연령층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학력의 경우 보건업과 자동차를 제외한 소매업, 도매 및 상품중개업, 음식점 및 주점업, 사회서비스업, 전문 서비스업, 사업 지원 서비스업,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금융업 등의 산업에서 젊은 취업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김승욱 고령자들의 은퇴를 미루어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할 수 있을 텐데, 젊은 노동력의 감소가 왜 더 중요한지요?
이철희 한국 인구구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젊은 노동 인구 비율의 감소가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인구 고령화 현상과 관련하여 주로 강조되었던 점은 고령층 인구의 증가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미 20~30년 전부터 청년층 인구 감소가 시작되어 노년층 인구 증가보다 청년층 인구 감소가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35세 미만 경제활동 인구가 전체 경제활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 정도입니다. 이 수치는 지금처럼 매우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계속 실현될 경우 30년 이내에 15% 아래로 떨어질 것입니다.
청년 노동 인구 비율의 감소는 결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 집단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청년 노동 인구는 고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적자본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가장 최근의 노동시장 변화 상황을 참고하여 본인의 직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노동시장 수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집단입니다. 그렇기에 청년 노동 인구는 전반적으로 인적자원을 필요로 하는 부문에 재배분하는 노동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이전에는 100만 명이 담당했다면 지금은 30~40만 명이 하게 되므로, 결국 노동시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김승욱 젊은이들의 노동력이 감소함에 따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 교육도 바뀌어야 하는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제도 개혁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이철희 결국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줄어든 청년 노동 인구가 과거 수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이 더 유연해지고 노동 이동성이 높아져야 합니다. 먼저 대학 교육이 노동시장 밖에서 대학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기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기존의 경직된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장 수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학제 간 융합이나 새로운 학문 분야 개설 등 대학 교육 시스템의 유연화가 필요합니다. 노동시장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노동 이동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여 배치하는 등 줄어들 신규 취업 인력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승욱 지방 소멸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가 가장 심한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 강원특별자치도로 만들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철희 인구구조의 불균형과 관련하여 수도권 밀집 현상과 지방 소멸 등 지역 간 불균형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전체 인구의 감소는 천천히 진행될 것이지만, 부문별 불균형과 지역별 불균형은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의 지역별 불균형은 재정지출에 상당한 비효율을 가져오는 등 경제적 비용을 유발합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감소하면 지방의 재정 자립도는 떨어집니다. 지방의 재정 자립도가 떨어지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늘릴 수밖에 없고 결국 재정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지역 간 불균형 문제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논의되는 접근 방법은 먼저 거점 도시 중심으로 재편하는 도시 압축의 방식과 인구가 감소하는 각각의 지역을 살리는 방식으로 크게 두 가지입니다. 두 방식은 서로 상충되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부처 간 의견도 다릅니다. 결국 정책적인 조율 및 행정구역과 재정 개혁이 필요합니다. 작은 지자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 간 불균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행정구역 개편 등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김승욱 젊은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력단절과 아이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성 노동력의 고용을 높이기 위해서 어떠한 정책을 사용해야 할까요?
이철희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경제 활동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는 보육 지원, 그중에서도 보육 시설의 양적 및 질적 공급 개선입니다. 보육비 지원 정책의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에 대한 효과 연구 결과, 보육비 지원만으로는 여성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보육 시설의 공급률과 질적 수준 개선이 병행되어야 여성의 노동 공급이 증가합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노동 시장 조건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노동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여성들은 과거와는 달리 본인의 커리어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은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현재의 노동 시장 여건 하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더 가파르게 감소할 수 있습니다. 결혼 및 출산과 본인의 경력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출산과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서는 기혼 여성이 불리함 없이 경쟁할 수 있는 노동시장 여건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김승욱 요즘 출산율이 떨어지자 외국인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외국인 고용과 관련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이철희 향후 최소 20년 동안은 총량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보다는 특정 업종이나 인력 유형에 대한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가 더 심각할 것으로 봅니다. 이는 청년 인구의 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 국내의 노동 인구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 인구 수급 불균형 문제 해결 방안으로 외국 인력 도입 문제는 중요합니다. 사실 이미 한국 사회는 외국인 근로자 유치가 인구 변화에 의해 초래될 노동시장 수급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정선영 박사와 공동으로 외국인 노동력의 국내 노동시장 진입 경향을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숙련 정도와 일자리의 질이 낮고 고령 인력의 비중이 높은 부문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국인 근로자가 진입을 꺼리거나 내국인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문에 대해 외국인이 보완적인 노동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숙련, 비전문인력 중심의 외국 인력 도입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별도의 공동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마이크로 데이터로부터 생성한 외국인과 전체 내국인 근로자의 산업별 데이터를 이용하여, 장래 인구 변화로 인해 추가적인 노동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과 현재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산업이 부합되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현재와 같은 구조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각 산업에 진입하는 경우 인구 변화로 인한 산업 간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향후 외국인 근로자를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은 산업은 젊은 노동 인력이 빠르게 감소하고 고령 취업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산업입니다. 반면 현재는 청년 취업자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고령 취업자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증가하는 산업에 외국인 노동이 집중되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이러한 결과가 저학력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외국인 근로자는 대부분 저학력자입니다. 고학력 근로자의 경우 현재 외국인 취업이 집중되는 산업과 장래에 외국인 유입이 필요한 산업 간의 괴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향후 발생할 업종별, 인력 유형별 다양한 노동 수요에 대응하려면 보다 다양한 유형의 외국 노동 인력 도입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인적자본과 인력 유형 등을 파악하여 수요에 맞게 도입하는 시스템 구축입니다.
문제는 외국인 선별 및 채용에 필요한 해외 구인 네트워크 기반에 있어서 기업 간 차이가 크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대기업의 경우 해외 지사를 활용하여 필요한 외국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러한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중소기업은 숙련 수준이 높은 외국 인력을 찾아서 채용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보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수요에 맞는 외국 인력 선별 및 도입 시스템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김승욱 한국이 은퇴 준비가 가장 안 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앞으로 고령자 빈곤문제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철희 고령 빈곤은 정책적인 개입을 통해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복지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 주거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 제공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고, 기초 연금 등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지원하는 방법 외에 획기적 개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장기적인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변화 가능한 현재의 40대가 고령층이 되는 20년 후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장차 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고령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이들의 건강증진과 인적자본 축적에 투자하고, 이른 교육·훈련 및 전직 지원 등을 통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변화 가능한 세대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통해 장기적으로 미래의 고령 빈곤 문제를 줄여나가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김승욱 고령자 고용연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철희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경우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당면한 인구문제 대응과 관련해 정년 연장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선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 있어 주로 강조되는 것은 노동 인구 부족인데, 생산성의 향상 등으로 인해 향후 적어도 15~20년 정도는 총량적인 노동 부족 문제의 발생 가능성은 낮습니다. 따라서 당장 고용 확대를 목표로 무리하게 정년 연장을 추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년 연장의 부작용 중의 하나는 세대 간 고용 대체 문제입니다. 청년과 고령자는 인적자본이나 일자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고령 취업자 증가로 인한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간접적으로 세대 간 고용 대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 연결 고리 중 하나는 바로 인건비 부담 증가입니다. 현재와 같은 임금구조 하에서 정년이 연장되어 고령자 고용이 증가하게 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책정된 인건비에서 고령 인구 고용이 늘게 되면 상대적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60세 정년 연장에 관한 실증 연구들에 따르면, 2016~2017년 60세 정년 연장 이후 특히 대규모 사업체에서 고령층 고용은 증가하고 신규 채용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년 연장의 형태도 문제입니다. 한 사업체에서 정년까지 지속적으로 일하는 계속고용의 경우 점점 직무 적합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령 인구를 활용할 만한 직무가 없는 사업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계속 고용의 형태로 정년 연장이 이루어지는 경우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은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집니다. 취약한 처지에 있는 다수의 고령자들은 이미 재취업 시장에 진입해 있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에 대한 교육, 훈련, 취업 지원 등의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정년 연장이 시행되더라도 보다 유연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같은 업종 혹은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인근 영역을 포함한, 좀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고용이 연장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김승욱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와 국민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반면, 의사들은 의사 숫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 공급이 부족한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의사 숫자가 늘어나도 특히 지방의 경우 필수의료 부족현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령화와 의료수급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이철희 현재 의사가 부족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연구는 하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적인 증거들은 적어도 일부 전문과목과 지역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래의 인구 변화로 의사 인력이 현재보다 더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2050년경까지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 효과가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 효과를 압도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의사 1인당 업무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2만 명 이상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2050년 이후에는 인구 감소의 효과가 더 커져서 의료 서비스 수요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의대 정원 조정은 2050년까지의 수요 증가와 이후의 감소 추이에 맞추어 세밀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의료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법이 의사 인력 증원만은 아닙니다. 예컨대, 사람들의 의료 이용이 지금보다 감소한다면, 정부의 현재 계획보다 의사 인력을 덜 늘려도 될 것입니다. 의료 개혁을 통해 환자와 의사 모두 과잉 진료의 유인이 줄거나, 의사의 업무 중 가능한 일부를 다른 의료 인력에 맡긴다면 의사 업무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비대면 진료 확대는 지방의 의사 인력 부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건강해져도 장래의 의료 이용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 내는 의료 개혁에 성공한다면 의사 수를 덜 늘려도 될 것입니다.
의사 부족은 일부 지역과 분과를 중심으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인구 변화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가 판단하듯이 의사가 많아지면서 부족한 과목과 지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지만, 의사들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더 강하고 직접적으로 방안이 요구됩니다. 특히 과목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 과목 붕괴의 충격은 의료 취약 지역의 확대보다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승욱 인구 감소가 국방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입니다. 이제 남성 인력만으로는 인원을 다 채울 수 없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 같은 국방력을 가진 나라도 인력 충원에 애를 먹고 있어 해외 이민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데,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거대한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경우 모병제는 실제로 어렵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물론 최근 국방력이 인력보다는 첨단 장비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너무나 높은 비용으로 인해서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철희 병역 자원 감소 문제는 단기적인 방안과 장기적인 방안으로 나누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의 매우 급격한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해서 2020년에서 2025년까지 군 입대 연령 남성 인구가 약 1/4가량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대책을 통해 문제를 신속하게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이 기간 병역 자원 감소는 전환 복무의 단계적 폐지, 대체 복무 감축, 여군 채용 확대, 부사관 임용 연령 상한 완화 등 비교적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제도 개편으로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30년대 중반부터 2040년대 중반까지는 2012년 이후의 급격한 출생아 수 감소를 반영하여 군 입대 연령 남성 인구가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의 저출산 기조가 지속되면 2040년대 중반 이후 병역 자원 감소 폭은 최근 인구추계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 시기의 급격한 병역 자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첨단과학 기술 도입 및 예비전력 내실화를 통한 군 병력 감축이나 모병제 도입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승욱 마지막으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어떤 대비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지 정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철희 가까운 장래에 있어서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핵심은 인구 축소 자체보다는 인구 변화의 빠른 속도와 이로 인한 구조적 불균형의 심화입니다. 즉, 출생아 수가 가파르게 줄면서 일정한 연간 출생 인구에 맞추어진 각종 시스템에 불균형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혼란과 비용이 초래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인구 변화의 속도를 가능한 한 늦추고, 앞으로 발생할 여러 가지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각 유형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시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예컨대 지역 간 인구 불균형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전체 인구 불균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얼마 전부터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정원 수보다 적어지고 그 격차가 앞으로 빠르게 확대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학의 위기를 완화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20세 남성 인구가 이미 20만 명대로 축소된 만큼 군 복무제도 개혁 작업도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와 제도 개혁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발 앞선 대응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앞으로 5~6년 후부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인력의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적자본의 질과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청년 인력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교육 및 노동시장 개혁은 지금 시작해도 빠르지 않습니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를 고려할 때 의대 정원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도 미루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합의의 어려움과 재정적 불균형 확대 추이를 고려할 때 연금 개혁도 이제는 실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무엇보다 과학적,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굵직한 사건이나 통계가 알려질 때마다 즉각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는 강한 요구가 제기되곤 합니다. 그러나 인구 정책에 빠르고 강한 만병통치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압력에 떠밀려서 면밀하게 계산되지도, 충분하게 준비되지도 못한 정책들이 양산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신속한 대응으로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도 좋지만, 올바른 방향의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김승욱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