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거,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의 선거,무엇이 문제인가

2024-03-12 0 By 월드뷰
황승연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이호선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명예회장)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굿소사이어티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율촌 우창록 명예회장과 굿소사이어티 산하 조사연구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경희대학교 황승연 명예교수, 그리고 국민대학교 이호선 교수 세 분과 함께 좌담회 형태로 구성하였다(편집자 주).

“민주주의 망국병 포퓰리즘 – 정치 편”

기업의 중요성

김승욱 : 유튜브에 공개된 우창록 회장님 신앙고백을 보면서 감동받았습니다. 중학교 진학도 어려운 경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서, 법무법인 율촌을 창립해 5대 로펌으로 키우신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형사 사건보다는 민사 사건, 특히 기업 관련 업무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기업에 대해서 잘 아실 것 같습니다. 기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창록 :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했습니다. 농업이 주였던 봉건시대에는 농토에서 부의 창출이 이루어졌고 영주가 그 생산 수단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기업이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기업제도가 발전해 주식회사가 등장했고, 이제 누구든지 주식만 소유하면 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기업이 창출하는 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의 창출 수단이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가들이 기업을 적법하게 그리고 창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기업가를 매우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제 경험으로는 기업가들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가장 뛰어난 집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기업일수록 기업가는 더 창의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창의력이 제일 뛰어난 사람은 시장 상인입니다. 회사 직원이 상인을 이길 수 없고, 대기업 직원이 중소기업 직원을 이길 수 없고, 공무원이 대기업 직원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의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가는 상상력 측면에서는 최악입니다.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대학생 때 고등학교 선배인 대기업 사장 집에서 입주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선배님이 저에게 ‘너는 법률가이기 때문에 사고의 틀이 경직되어서 창의력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제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기업이 현대사회에서는 국부 창출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므로, 그들이 합법적이고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제도와 체제를 유지해 주는 것이 법률가나 정치가 또는 행정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 기업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근로시간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최저임금도 갑자기 많이 올려서 한계 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저항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우창록 : 법률가들이 추구하는 이념 두 가지는 첫째, 법적 안정성이고, 둘째는 예측 가능성입니다. 이 두 이념하에 적법하고 자유로워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어요. 법적 안정성이나 예측 가능성이 없으면 의사결정을 못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너무 높으면 사용자뿐 아니라 종업원도 못 지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우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일하고 싶어하는 종업원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법적 가이드라인을 못 지킬 상황이 많아집니다. 이렇게 제도를 너무 경직적으로 운영하면 창의성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 경제가 경직적인 통제 경제보다 훨씬 더 생산성이 높은 것입니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직후 가장 먼저 불평이 나온 직종이 대기업 운전기사들입니다. 기사들은 운전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 노동강도가 높지 않습니다. 퇴근 후 저녁에도 약속에 모시고 가고, 주말에 골프장에 가면 초과근무(over time)와 팁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어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초과근무를 인정받을 수도 없고, 점심값 용돈도 받을 수 없어졌으니 난리가 난 겁니다. 그래서 기사들이 서로 바꿔서 다른 곳에 가서 또 일하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또 연구자들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실험실을 운영할 수가 없다고 하고, 건축사는 주 52시간제로 인해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다가 형사 처벌받기 딱 좋다고 합니다. 설계사는 아이디어가 나오면 밤을 새우더라도 그걸 완성해야 되는데 한참 아이디어가 나와서 일을 하다가 주 52시간제 때문에 나가라고 하면 일이 비효율적이라는 거지요. 어떤 기업들은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위해서 빨리 퇴근하라고 밤에 사무실을 소등한다든지 심지어 컴퓨터 전원을 끈다고 합니다.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52시간 이상 일하겠다고 해도 허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고발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도 비슷합니다. 서울과 농촌의 생활 물가가 같을 리 없는데, 어떻게 최저임금이 같습니까?

김승욱 : 서울과 농촌뿐 아니라 같은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의 생활물가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미국의 경우 지역별로 물가가 다르기 때문에 50개 주가 각자 최저임금을 정하지요. 미국은 넓어서 지역별 격차가 크기 때문에 차이도 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스위스의 경우에도 주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책정합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업종별로 별도로 최저임금을 정하고 그것도 3년에 한번 정합니다.

이호선 : 매년 최저임금을 새로 정하도록 법으로 되어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빼고는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2년마다, 짝수년에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도 반드시 새로 확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김승욱 :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해서 중소기업인들이 실시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창록 :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영세기업이 83만 개라고 하는데, 바로 채용해서 근무시킬 수 있는 안전관리 자격자는 1/100인 8,300명도 안 될 것이라고 합니다. 법은 쉽게 지킬 수 있어야 지키게 됩니다. 게다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안전 관리자에게도 적어도 최저임금은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추가적으로 이런 인력을 고용하고도 버틸 수 있는 소기업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을 보니 수산그룹 정석현 회장은 안전 관리가 그렇게 중요하고 효과가 있으면 국가에서 퇴직한 유경험자를 교육해서 안전 관리사 자격증을 주어 20인 미만 사업장 위주로 파견하고 지자치에서 관리하는 것을 제안하더군요. 예산이 부족하면 한 관리자가 여러 회사 관리해도 되니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승연 : 밀양에 소재한 한 중견기업에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했다는 소송이 있답니다. 그 회사 회장에 의하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창원이나 부산에 비해 임금이 더 낮은 밀양에 공장을 세웠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는 바람에 밀양에서 이전의 임금수준으로는 근로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농촌 공동화 때문에 젊은 사람들도 아예 없고요. 최저임금이 오르니 근로자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올 이유가 없어졌고, 그래서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자꾸 난다고 하면서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것과 안전사고가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소기업에 적용되면, 처벌받고 감옥 가는 것이 두려워서 사업을 계속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런 사업 영역을 중국에 다 빼앗기는데 중국으로 한 번 넘어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최저임금제와 중대재해처벌법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산업 구조를 붕괴시킵니다. 그런데 노동계에서는 산업계의 고충까지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창록 :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지금 젊은 층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기업 운영하면 큰일 난다면서 창업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0년대 중반 노동운동이 심했던 시절에 노동 관련 사건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그 당시 어느 사장이 “현재대로 가면 3개월 후에 제가 임금 체불로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가 회사의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싶어도 사임할 자유도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 후 몇 달 후에 그 회사는 부도가 났습니다.

김승욱 : 원래 노동자에게는 파업권이 있고, 사용자에게는 폐업권이 있는데 왜 대표이사가 사임을 못합니까?

우창록 법상 대표이사는 후임이 선임될 때까지는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회사가 그런 상황에서 누가 후임을 맡겠습니까?

황승연 : 왜 폐업을 못하느냐 하면 돈 받을 것도 있고 줄 것도 있어서 회사 문을 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건설회사의 경우 폐업신고를 해도 하자 보수를 해 주어야 해서 법적으로 5년 동안은 회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회사들이 서로 서로 연결돼 있어서 법적으로 못 닫게 해놨습니다. 구멍가게처럼 그냥 닫아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포퓰리즘

김승욱 : 이제 주제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우창록 회장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교육봉사단, 온율, 굿소사이어티 등 많은 사회봉사를 하셨는데, 오늘 저희 좌담회와 관련된 ‘굿소사이어티’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창록 : ‘굿소사이어티’는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을 좋은 사회, 행복한 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재단법인입니다. 전신은 2004년 4월에 김인섭(법무법인 유한 태평양 명예대표 변호사), 정진홍(서울대 명예교수) 두 전 이사장님을 주축으로 세워진 ‘포럼 19-21’입니다. 포럼 명칭에 들어간 숫자 19와 21은 19세기의 낙조(落照)를 확인하고 21세기의 여명(黎明)을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21세기는 다원주의, 보편주의, 개방주의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지난 세기의 한계와 21세기의 가능성을 유념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 합리적 시장경제, 문화적 다원주의라는 다섯 개의 원칙을 지향합니다. 이 포럼이 2008년에 공익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로 개편되었고, 저는 2012년에 이사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공개토론회와 포럼 등을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출판하기도 하고, 또 뉴스레터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건전한 토론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기대한 만큼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객관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 판단하여 최근 재단 산하에 ‘조사연구소’를 발족시켰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두 분이 대표를 맡고 계시고, 김주성 전 교원대 총장님과 박선경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가 중요한데, 선거철만 되면 포퓰리즘의 유혹을 받습니다. 정치가가 포퓰리즘에 영향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창록 :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인간은 자유를 제대로 인식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자유는 적극적으로 사색한 결과로 나온 가치인데, 가치에 충실하기 위하여 일정 부분을 희생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반면에 보호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렇게 가치와 본능을 대비할 수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가치를 위해서 본능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포퓰리즘은 바로 이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에서 포퓰리즘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포퓰리스트는 좌파라고 인식합니다. 과거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지요. 그런데 우파 포퓰리스트도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표적입니다. 우파적 포퓰리스트란 시장과 선택의 자유를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여 인기를 얻고 표를 얻는 것을 말합니다. 선거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인데,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표를 얻지 못합니다. 유권자는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서 본능을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치가는 포퓰리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수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은 포퓰리즘에 호소하더라도 우파적 방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게 좌파적 포퓰리즘 보다 훨씬 어렵지요.

복지국가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 스웨덴이 우파적 포퓰리즘을 실천하는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은 교육의 경우 국가가 비용을 다 부담하지만, 학교에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바우처를 주어서 부모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주지요. 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학교들이 경쟁합니다. 우리나라는 학교에 직접 지원을 하니까 경쟁이 사라져서 좋은 교사들은 전부 사교육 현장으로 가고, 공교육이 붕괴되는 갖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스웨덴처럼 선택의 자유와 경쟁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은 ‘퍼주기식’의 좌파 포퓰리즘과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 관점으로 보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을 대표적인 근거로 사회주의, 평등주의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인들이 자기 의사로 자발적으로 처분해서 나눕니다. 그런데 좌파적 평등주의는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로 나누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유무상통은 누가 강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황승연 : 저는 인간이 가치를 따라 살지 않고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노비 근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예로 살아온 역사가 훨씬 깁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두 개를 꼽으라면 농업혁명과 종교개혁이라고 봅니다. 농업혁명으로 생산성이 크게 오르면서 사람들은 모여 살게 되었지만, 토지를 소유한 영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농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성직자든 평신도든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들어간 종교개혁으로 사적 자치의 주체로써 개인 자유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인식이 서구에 들어온 것이 불과 500년 전인데, 한국에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이 처음이니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7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인류 본성에 아주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 본능에 충실한 것, 곧 제 표현으로는 노비 근성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비의 안도감입니다. 노비가 되면 책임질 일이 없으니 사실 편합니다. 이것 때문에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는 포퓰리즘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노비 근성을 거지 근성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거지는 한번 맛 들이면 다른 직업 못 갖는다고도 하잖아요.

김승욱 :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노비에게는 책임이 없으니까 자유 또한 없겠네요. 본능에 충실한 것을 노비 근성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칼 마르크스가 말한 ‘총체적 노예제’가 생각납니다. 칼 마르크스는 유럽의 경우 귀족 신분은 왕도 빼앗을 수 없는 세습 신분인 데 반해, 동양의 경우 왕의 말 한마디로 관료나 백성의 가족 몇 대까지 몰살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동양 사회는 왕 한 사람만 자유인이고 나머지 모두가 노예와 다름없다는 의미에서 총체적 노예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유럽보다 더 본능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유를 취하기보다 본능에 충실하여 당장 나에게 유익한 것만 택하려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이 원래 가치보다 본능에 더 충실하려는 습성때문에 정치 영역에서 포퓰리즘을 벗어나기 어렵고, 특히 역사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이 유입된 지 얼마 안 된 한국 사회는 더욱 그렇다는 것으로 정리될 것 같습니다.

상속세

김승욱 : 이제 상속세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요. 최근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역이민자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미국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노년에는 한국이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이민자들이 한국의 상속세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고민한다고 합니다. 잘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부부간 상속세가 없고, 자녀에게 상속할 경우 부부가 합산하여 340억 원까지 상속세가 없으므로 큰 기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상속세를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면 상속세 공제 한도가 너무 적어서 상속세를 많이 내게 됩니다. 이제 상속세는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많은 국민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최근 굿소사이어티에서 상속세 관련 세미나를 여러 차례 개최하셨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록 : 제 경험을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1982년에 미국 유학을 갔는데, 가기 전에 ABB라는 스웨덴 중전기 회사가 저희 고객이었어요. 1984년에 돌아와 보니 이 회사가 스위스 회사가 돼 있었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스웨덴에서는 소득세와 상속세 등 세금이 너무 높아서 기업을 운영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 기업은 국제적으로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세제가 기업 본사 위치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의 바탕에는 농지개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지개혁 덕분에 당시 국민 대다수인 소작인들이 부를 창출하는 수단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는 기업이 국부를 창출하는 것을 바탕으로, 기업이 창출한 부를 국민이 나눌 수 있으면 빈부격차 문제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주식을 통해 모든 국민이 부의 창출 수단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주식회자 제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주식 가격이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주가와 자산 가치를 비교하면(주가순자산비율, PBR) 거의 비슷한데, 선진국들은 주식 가치가 자산 가치의 2배 이상 됩니다. 우리나라 주식 가치도 선진국처럼 높아지면 전체적으로 국부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주식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세금 제도입니다. 이를 오랫동안 주장했던 황승연 교수님이 자세히 설명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승욱 : 황승연 교수님께서는 한국 주가가 너무 저평가 되었다고 하는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셨고, 상속세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사회, 경제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를 10여 년 전부터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월드뷰>에 “상속세의 저주”라는 칼럼을 시리즈로 쓰기도 하셨고, <국가의 약탈, 상속세>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습니다. 이 주장이 사회에 널리 퍼져서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하여 임기 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과도한 세금제도를 지목하며 법률 개정으로 안 되면 대통령령으로 밀어붙이고 정치적 불이익이 있어도 감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를 낮추거나 없애고 회사법과 상법을 손봐서 거버넌스(governance)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의 오랜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도적으로 개선이 되어야 열매를 맺게 되겠지만, 최근 변화를 좀 소개해 주십시오.

황승연 :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발언 이후 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가 증시 핫이슈로 떠올라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대기업 집단의 주가들이 일제히 올랐습니다. 증권업계나 개미투자자들은 모두 낮은 PBR 주식 찾기에 분주해졌고, 대표적인 저 PBR 주식인 금융주와 자동차주가 급등했습니다. 이 또한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주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PBR 주식으로 꼽히는 평균 PBR 0.3인 유통, 0.4인 금융과 보험, 0.5인 철강, 그리고 0.6인 건설, 자동차, 정유, 증권 등의 주식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낮은 주가를 유지한다고 여겨 제가 자주 예로 드는 대표적 기업 태광산업의 주가는 일주일 만에 58만 원에서 94만 원까지 60% 이상 올랐습니다. 정부는 대통령의 이런 의지에 맞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으로 여러 가지 기업경영권 방어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는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 경영권 방어제도인 포이즌 필(poison pill,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차등의결권(대주주의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황금주(보유한 주식의 수량과 관계없이 주총에서 의결된 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 주식제도) 등의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드디어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벗고 국제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준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당은 또 ‘지역 기회 발전 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은 상속세를 면제하는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지역 격차 해소와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공약’이라는 설명을 붙였지요.

이렇게 대부분의 언론이 공론화하여 상속세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이 외에도 현재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상속 재산이 기업의 주식일 경우 이익이 실현되는 때, 즉 주식을 매각할 때 과세하는 상속세 이연제도에 관한 법안을 상정해놓고 있습니다. 오는 4월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한다면 통과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렇게 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어 투자문제, 세수부족문제, 연금고갈문제, 국가부채문제 등 우리나라 경제의 고질적인 모순들 대부분이 사라질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10년 내 명실상부한 경제 G7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 봅니다.

선거

김승욱 : 이제 선거 이슈에 대해서 논의하겠습니다. 황승연 교수님은 조사방법론을 전공하셔서 경희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이를 가르치셨고, 굿소사이어티 산하 조사연구소의 중심 역할을 하고 계시므로 몇 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부정선거 이슈로 인해서 선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지난 총선은 물론, 얼마 전에 있었던 강서구 보궐선거에서도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강서구 보궐선거 후에 강서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때 얻은 결과를 요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승연 : 강서구 보궐선거 전에 어느 조사 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국민의힘이 이기는 것으로 나왔고 이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믿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그 조사의 조사 방법을 알아보니 유선전화 ARS(전화 자동응답시스템)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스마트폰만 사용하기 때문에, 유선전화는 고령층이 응답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또 ARS는 응답률이 대단히 떨어집니다. 따라서 그 설문조사는 보수층이 많은 고령층을 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 선거 결과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부정선거라는 논란이 있었고, 이에 대한 의뢰가 있어서 급하게 사후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여론조사 회사 RNR(Research & Research)의 패널을 사용해 전화 면접을 실시한 결과 실제 선거 결과와 거의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전 다른 조사 결과들에서도 대부분 민주당이 이기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굳이 부정선거를 하지 않아도 이길 것이 예상되는데 부정선거를 획책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김승욱 : 선거철에 각종 여론조사를 많이 하는데, 보수 일각에서는 여론조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황승연 : 신뢰 못할 조사를 신뢰받는 조사로 만드는 많은 방법들이 있고, 세밀하게 보정하여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조사대상 선정이고, 다음이 조사 방법입니다. 이런 것조차 모르는 조사 기관이 많습니다. 조사 기관들의 수준을 높이고자 제가 2002년에 한국사회학회 임원일 때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제도를 제안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험을 실시하도록 넘겼지요. 그때의 제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2020년 지난 21대 총선 이후,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는 단체가 많아 직접 조사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에서 직접 조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직접 조사를 기획했으니 4년 정도 되었네요. 2020년에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에서 처음 했던 조사에 대한 반향이 컸습니다. 심층 분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조사를 하려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 많은 단체들에서 조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김승욱 : 그 당시 조사는 어떤 방법을 사용했고, 결과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황승연 :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전 국민 의식조사였습니다. 설문 문항이 80개가 넘는 온라인 조사였고, 응답하는 데만 30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따라서 RNR 사가 갖고 있는 RNR 패널을 사용해서 2천 명의 응답을 받았는데 응답률이 35%였습니다. 2-3%의 ARS 조사와는 근본적으로 격이 다른 것이지요.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서 응답자들에게 사례도 하는데 2천 명이면 이들에게 지급되는 사례비만 총 2천만 원 정도 됩니다. 그래서 좋은 조사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입니다. 당시는 총선에서 우파 정당이 참패한 후였는데 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은 의석 수에 비례할 정도로 좌경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의식은 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와 시장에 대한 태도나 친미, 반중, 반북한이라는 정서는 우파적 지향이 월등히 우세하였습니다. 후보를 잘못 낸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의 메시지는 괜찮다. 문제는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메신저가 신뢰를 못 주는 것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신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는데 곧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대표도 바꾸고 후보들인 메신저를 바꾸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아서 저는 이번 선거 결과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김승욱 : 국민 의식에 대한 심층 분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황승연 : 우리나라 국민들의 세대 간의 의식 격차가 큽니다. 그래서 2030과 4050, 그리고 60대 이상 연령층 사이에 갈등이 심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각 연령층을 남녀로 나누어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연령과 성별 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보았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가치관과 정치적 측면에서의 가치관 차이를 두고 ‘포지셔닝 맵’을 그려본 결과 2030 연령층 남녀 간 의식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제가 쓰는 표현인데 “함께 식사를 하면 식사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컸습니다. 반면에 40대 남녀는 가치관이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40대 부부는 행복하고 2030은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결혼이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런 분석이 가능한 것은 우선 2천 명이라는 충분하고 정확한 표본이고, 사례를 해서 받은 진지한 답변들이고, 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정교한 조사 설계이기 때문이지요. 2030 여성들은 대단히 의존적이고 수혜적이고 평등지향적입니다. 반면 2030 남성은 자율적이고 경쟁을 중시하고 노력의 대가를 인정합니다. 연령으로는 40대가 가장 좌파적이고, 지역적으로는 호남이 가장 좌파적입니다. 노력의 대가는 나누어야 한다는 결과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김승욱 : 그런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보수 쪽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 기관이 공정해야 될 텐데 정말 여론조사가 편파적입니까?

황승연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 경험이 있거나 정치 언저리에 머물다 나온 사람들은 많은 경우 여론조사 회사를 차립니다. 왜냐하면 선거로 선택받는 사람들이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을 늘 봐왔기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을 만들어 그것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사 관련 예산을 받으려는 의도도 있고요. 후보의 의뢰를 받아서 조사를 핑계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기도 하지요. 조사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다른 조사 기관에 의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여론조사 회사 명함을 파고 다닙니다. 누가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었다 하면 대부분 좌파들입니다. 우파들은 드물죠.

김승욱 : 부정선거 이슈로 보수 진영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부정선거 여부는 차치하고, 관리 부실은 확실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전투표에 대한 문제점도 많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호선 교수님께서는 사전투표 위헌소원을 내셨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호선 : 현재 사전투표가 부정선거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사실 사전투표제는 2014년 도입 당시부터 이미 헌법 학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위헌성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술적 결함, 관리 소홀은 부차적인 겁니다. 예컨대 전자개표를 하지 않고, 사전투표 관리관이 자기 개인 도장을 찍고, 또 관외 사전투표의 경우 투표함 보관부터 개표 장소 이동까지의 투명성만 보장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4~5일 간격을 두고 누구나, 아무데서 할 수 있는 사전투표는 근본적으로 위헌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의미 있고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독일의 사례가 있습니다. 2022년 11월 16일 독일 베를린주 헌법재판소에서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의회 및 하원 의원 선거를 전 지역에서 무효화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몇 개 투표소에서 투표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또 투표용지가 모자라 다른 지역의 남은 투표용지를 가져오느라 시간이 걸려서 선거마감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선거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일 시간에 투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베를린주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투표소에서의 투표뿐만 아니라 전 지역의 투표를 무효화시켰습니다. 그러자 이 선거로 당선된 사람들이 문제가 된 투표소만 다시 투표하면 되는 것이지, 베를린 전역의 투표를 무효로 해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주 헌법재판소는 ‘주권이란 동일한 시점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일부 투표소만 나중에 따로 떼 가지고 다시 투표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독일 역사상 처음 연방 하원과 지방의원 선거가 베를린 주에서 전면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전투표를 4~5일 일찍 실시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이 독일의 사례를 생각해 봐도 사전투표는 당연히 위헌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유권자 정보 비대칭에 따른 실질적 투표 등가성 침해,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기간 중의 사전투표와 선거운동이 금지된 본 투표일에의 투표에 따른 차별, 사전투표는 좌파, 본 투표 고수는 우파 식으로 이미 낙인찍혀 버린 투표 성향에 따른 공개 투표화 등을 고려할 때 사전투표는 확실히 위헌입니다. 제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년 10월에 변호사 개인으로서 사전투표 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했고, 12월 22일에는 교수 등 시민 100명을 청구인단으로 하여 제가 대리하여 심판청구를 하고, 4월 10일 총선 전에 사전투표 시행 관련 법률 조항들에 대하여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지금 뜻있는 분들이 조속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위해 매일 헌재 앞에서 이와 관련한 릴레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 투표지 관리관이 누구였는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개인 도장을 찍지 않고, 편의상 투표용지에 도장을 인쇄해서 사용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지적을 했지만,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문제 제기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호선 : 제가 어느 신문에 “선관위, 사전투표 날로 먹기 안 된다”라는 칼럼을 실은 적이 있어요. ‘사전투표 관리관이 투표용지에 자신의 도장을 찍는 경우, 도장의 날인은 인쇄 날인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선거관리 규칙은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상위법을 제멋대로 바꿔 위반한 겁니다. ‘인쇄 날인’이라는 말은 ‘익힌 생고기’라는 말처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사전투표 관리관 개인의 인영(印影)이 없고, 또 찍는 행위가 없어도 된다는 건 투표용지가 문서로서 효력이 없다는 겁니다. ‘관리관’ 도장이 그 자리에서 찍혀야, ‘관리행위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겠습니까. 관리행위가 있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투표소에서 나눠 주었다는 것만으로 그 투표용지가 유효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선관위 말로는 사전투표 관리관 앞에서 출력되어 문제없다고 하던데, 투표자 앞에서 출력한다는 말이, 투표자가 없는데서는 출력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될 수 없는데도 선관위는 견강부회하면서 말장난을 하고 있어요. 본질적 위헌성을 떠나서라도 사전투표에서 ‘익힌 생고기’와 같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인쇄 날인’으로 주권자를 우롱하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김승욱 : 얼마 전 유튜브에서 선거함 봉인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계속 표를 넣고 있는 선거함 관리 실태에 대한 고발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점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호선 : 이것도 투표 관리를 포기하거나 방치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봉인이란 그 기밀성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의 파손 여부가 바로 기밀이 보존되었는지 아닌지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에, 봉인을 떼었는데 흔적이 남지 않으며 다시 붙일 수 있다는 것은 봉인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참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데, 어쨌건 이런 모든 걸 고친다 해도 위헌이라는 본질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전투표제는 고쳐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창록 : 특히 사전투표와 관련하여 부정선거 의혹이 많이 제기되는데, 이것을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로서는 헌재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서 법률은 개정할 수가 없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자기들의 규정이 있는데 헌재가 그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을 해 주었기 때문에 그 규정대로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호선 : 기본적으로 확인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팩트는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것, 즉 제도가 허술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칠 수 있는 것도 안 고치고 방치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전투표 관리관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안 찍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관외 사전투표의 경우 투표지의 보관과 운반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개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뗐다 붙였다 해도 표시가 남지 않는 봉인은 적어도 부정의 소지가 충분히 개입될 허점이 있다는 정도는 인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허점을 허용해 국민 불신을 키운 것은 좌파 운동권 정부입니다. 지금까지 좌파 운동권 정부는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과 선동, 불법도 거리낌 없이 자행해 왔고, 지금도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전투표에 대한 국민 불신이 이 제도를 존치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불신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게 제가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지난해 11월에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서 나온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조사 결과 ‘사전투표를 믿지 못해 당일 투표만 고수한다’는 답변이 27%였습니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어떤 제도를 결사반대하면서 보이콧한다면 이건 제도로서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전투표제를 도입한 이유가 투표율을 올리기 위함인데 효과가 전혀 없었습니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사전 투표율이 36.9%로 역대 최다였지만, 전체 투표율은 77.1%로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77.2%에 비해 오히려 0.1% 하락했습니다. 그 이후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사전투표율은 20.6%로 이전 지방선거의 사전 투표율보다 올랐지만, 전체 투표율은 되레 9.3%나 낮아졌습니다. 가장 최근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투표제의 유일한 논거였던 투표율을 올린다는 편의성조차 완전히 사라졌고 남은 건 국민 불신과 국론 분열뿐입니다.

게다가 사전투표는 어감상 본 투표에 비해서 소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17개 광역지자체 중 6개 지역에서 사전투표 비율이 전체 투표 비율 중 과반을 넘었습니다. 전남, 전북, 광주, 세종, 경북, 강원도입니다. 가장 낮은 지역이라 해도 대구가 43.1%, 경기도가 43.9%입니다. 이 지역들을 뺀 나머지 지역들은 과반에 근접한 40% 후반대입니다. 이 정도면 사전투표와 본 투표를 1:1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추세를 보면 이게 역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요. 따라서 이제는 사전투표가 아니라 제1차 본 투표라고 명명해야지요.

그런데 여기에 더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4~5일 간격을 두고 이루어지는 두 번에 걸친 투표인데,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일 4~5일 전에 결정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32%, 심지어 투표 당일 결정하는 사람도 10%입니다. 즉 사전투표와 본 투표 사이에 어디에 투표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42%라는 겁니다. 사전투표일과 본 투표 사이의 4~5일 사이에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온갖 뉴스, 정보의 양은 엄청납니다. 가짜 뉴스가 이 시기에 집중되고, 온갖 폭로가 여기 모이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사전투표자와 본 투표자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요. 완전히 정보 비대칭이지요. 그런데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슨 일이 새로 밝혀지거나, 알고 있는 것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선택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64%가량 나옵니다. 이건 5일 전에 뭔가 이슈가 터지면 내가 누구를 찍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가도 가서 바꾸겠다는 건데, 이미 사전투표를 한 사람들에게는 그게 불가능하지요. 전체 투표자의 약 50%가 사전투표를 하는데, 유권자 64%가 선택을 달리할 의향이 있다고 하니 결국 이 둘을 곱한 30% 이상의 유권자는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경우 공휴일로까지 지정해서 투표하도록 한 진짜 투표일 기준으로 자기 정치적 의사를 올바르게 투표에 반영할 수 없는 겁니다. 따라서 사전투표는 고쳐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헌재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이번 총선일인 4월 10일 이전에 효력정지를 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정말 큰 문제가 터지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난국에 처한다면 그 책임은 헌법 재판관들에게 있는 것이죠.

김승욱 :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최근 경제를 넘어 문화 영역에서까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 자살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져 미래가 암울하다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갈등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양극단의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국민에 달려있습니다. 결국 국민의 분별력과 관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한 분씩 결론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창록 : 저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들이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훈련을 시작해야 된다고 봅니다. 가치 체계로서 자유에 관해서 확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더 이상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시장경제 제도가 인간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황승연 :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구 감소인데, 안보와 교육과 성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두 인구문제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이라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안보문제는 모병제로 바꿔서 우수한 인재가 국방을 담당하게 해야 합니다. 이제는 보병이 국방을 담당하지 않고 첨단 시스템이 담당합니다. 교육부를 폐지하고 교육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담당하고, 대학은 완전 자율화를 시켜야 합니다. 대학이 변하면 초 ·중 ·고 교육도 변합니다. 대학 교육에 공무원이 손을 떼야합니다. 망하고 흥하는 대학들이 나오면 스스로 길을 찾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이 성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상속세를 없애거나 납부를 이연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기업 승계 과정에서 국가가 절반을 약탈하는 제도를 없애면 그때부터 선순환이 시작될 것으로 봅니다.

이호선 :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선전 선동이 먹히는 것은 생각의 근본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이름 더럽히기’, 즉 오명(汚名)이 너무 쉽게 되고, 그것이 우리 사고 체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외국에서 미스(Miss.), 마담(Madam)이 존칭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멸칭 비슷하게 되어 있지요. 민주주의, 법치주의, 공화정도 공통적인 원래의 의미가 없어졌어요. 이건 사회적 게임의 규칙 실종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첫 번째 과업이 ‘이름 짓기(命名)’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분별이 필요합니다. 자유, 건국, 문명, 진보 등의 의미를 다시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건국전쟁”(2024)에도 나오듯 이승만 대통령이 힘썼던 것이 바로 교육이었죠. 교육을 통해 제대로 통찰하고, 주체적으로 이름에 붙어 있는 때들을 씻어내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정명(淨名)’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명의 바람이 이 사회에 한번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승욱 : 장시간 귀한 말씀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