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주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한미동맹 70주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2023-06-27 0 By 월드뷰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해서 송대성 박사와의 인터뷰로 커버스토리를 꾸몄다. 그는 공군사관학교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 대학교(The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군에 복귀하여 공군 준장으로 예편한 후, 세종연구소에서 19년간 연구 생활을 했고, 6년간 세종연구소장직을 수행했다. 현재 한미연합회(AKUS) 한국 대표로 활동 중이다(편집자 주).

송대성 / 한미연합회(AKUS) 한국 대표

김승욱 지난해 7월호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처럼 미국과 순수민간협의체인 한미연합회(AKUS)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소개하셨습니다.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앞으로 안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한미동맹이 어떻게 변화되어가야 하는지 견해를 듣고자 합니다. 먼저 역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현안 그리고 미래 발전 방향의 순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1950년 6월에 시작된 전쟁의 미군 참전병들은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휴가는 고국에서 지낼 줄 알았는데, 무려 3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이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휴전이나 정전은 전쟁이 잠시 멈춘 상태로 불완전하므로, 그만 전쟁을 끝내고 종전선언과 평화선언을 하자는 논의가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지난 70년간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남한과 미국에 제의한 것, 그리고 남한이 북한에 제의한 것의 패턴을 분석해보면 각 진영의 근본 의도가 어디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한결같이 종전을 외치며, 정전 또는 휴전체제를 종전(終戰)체제, 평화체제로 바꾸자고 합니다. 거기에는 숨은 계략이 있습니다. 종전선언을 하면 한반도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공표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의 명분이 됩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 주한미군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1) 종전선언→ 2) 평화협정 체결→ 3) 주한미군 철수→ 4) 한미동맹 파기→ 5) 공산화 통일, 이 5단계가 북한의 오랜 숙원과제(宿願課題)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산화 통일을 위한 ‘가짜 평화(Pseudo Peace)’인 것을 아니까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지요.

김승욱 미국은 일본의 오키나와 등 휴전상태가 아닌 여러 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결되었다고 미군이 주둔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요? 러시아와 중국은 국경이 북한에 육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유사시 언제든지 군사적 지원을 할 수 있지만, 한국은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유사시 신속한 지원이 어렵습니다. 자유 진영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주장을 떳떳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송대성 그것은 우리나라 정부 때문입니다. 우파 정부는 얼마든지 그런 주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북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의 눈치를 보고, 북한에 동조해서 미군 철수에 동조합니다. 나라의 안보, 대외정책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적대국과 상의하는 것이 아님에도 지난 70년 동안 친북 정권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해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을 상대로 소위 대북 화해 정책, 햇볕정책을 폈고, 문재인 정부 때는 김정은을 상대로 친북정책을 폈습니다. 결국 이것은 한국 정부의 문제입니다. 어떤 정부냐에 따라서 한미관계, 대북(對北)관계, 대중(對中)관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김승욱 과거 카터 행정부 때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지요. 트럼프 대통령 때도 북핵 협상을 통해서 마치 철군할 것처럼 이야기했었는데요. 우리 정부의 성격도 문제지만 미국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있습니까?
송대성 6·25 전쟁 전의 에치슨 라인 같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군의 최종 방어선을 이 정도로 내려도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착각이었던 것이지요. 카터 대통령은 한미 간 이슈를 정치화시킨 면이 있습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 내 인권 사항을 문제 삼으면서 주한미군철수를 운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카터 대통령 스스로 이를 수정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때도 문재인 대통령을 길들이겠다고 방위비를 5배 올려 지불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때그때 미국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 의해서 그런 차이점들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철군하겠다 하는 의견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승욱 미국이 제일 큰 해외 미군기지를 평택에 설치한 것만 봐도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에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불이익이라는 것은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송대성 맞습니다. 지구촌에 42개 미군기지 중에 평택기지가 제일 규모도 크고 현대화되어있습니다. 철군을 전제로 할 것 같으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기지를 한반도에 만들지 않았겠지요. 어떤 면에서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인 사령부 개념으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수십 년을 내다보는 정책적 목표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승욱 과거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전과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군사력을 빼갈 수는 있겠지만 한반도 미군철수 자체는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정전협정 당시 과거 문제로 돌아가서 1년 이내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정전 협상하는데 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송대성 6·25 전쟁 발발 1년 후 미국과 소련 양측에서 휴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끌었느냐는 타임라인으로 주요 사건을 보면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먼저 1951년 4월 12일에 미국이 맥아더 장군을 해임합니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다는 것은 곧 휴전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후로도 2년이란 세월이 걸렸는데 그 이유를 8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참전했던 각국의 전략적 목표가 전부 달랐습니다. 미국은 전쟁 1년 동안 3만 3,642명이 희생되면서 내부적으로 반전의식이 높아졌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을 끝내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스탈린도 마찬가지로 이길 가망성이 없으니 한반도 공산화의 가능성 정도만 확보한 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공은 전쟁에 직접 개입했으니 개입한 만큼 이득을 좀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16개 유엔국이 참여했으니 이 힘으로 북진하여 한반도 자유통일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이익 관계가 다 다르니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입니다. 전쟁 중 점령지역이 동쪽은 38선보다 더 올라가 있고, 서쪽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울퉁불퉁한 상태였습니다. 유엔군 측에서는 현재 상태를 새 휴전선으로 하여 휴전하자고 제안했지만, 공산 측은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이 더 줄어드니까 6·25 전쟁 전인 북위 38도선 기준을 주장했고, 타협이 안 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세 번째는 군사작전, 즉 전투를 언제 멈출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휴전협상 시 협상 최종안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군사작전을 계속하다가 합의가 종결될 때 군사작전을 중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휴전회담장에서는 말의 전쟁, 즉 설전(舌戰)이 오가고, 실제 전선에서는 피의 전쟁, 혈전(血戰)이 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휴전상태를 감시하는 ‘중립국 감시단’ 구성의 문제였습니다. 공산 측에서는 소련이 반드시 중립국 감시단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유 진영에서는 소련이 전쟁 당사자이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련이 계속해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시간을 오래 끌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공산권에서 폴란드, 체코를 선정하고 자유 진영은 스웨덴, 스위스를 선정해 소련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포로 교환 문제입니다. 유엔군 측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하는 ‘자유송환방식’을 택했습니다. 잡혀있던 중공군 포로 17만 명을 조사해보니 10만명 정도가 공산권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들의 인권을 고려해 이들이 대만이나 일본으로 갈 수 있도록 자유송환방식을 택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산권이 이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제송환방식’을 선택해, 국적별로 중국 포로는 중국으로, 북한군 포로는 북한으로 보내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반도 전쟁 명분이 남조선을 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는데, 해방군이 자기 조국에 안들어가겠다고 하면 그들의 전쟁 명분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었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거제도에서 유엔군이 관리하던 반공포로 3만 7천 명 정도를 일방적으로 석방해버렸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한미동맹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지요.

여섯 번째는 북한과 중국이 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언권에서도 여러 제한이 있었고, 유엔 분위기를 모르는 것도 있어서 지연되었습니다.

일곱 번째는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지도자 간의 갈등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주 완강하게 북진통일을 후 휴전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미국이 이를 조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휴전협정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휴정협정문이 간단한 몇 줄의 짧은 내용이 아니고 굉장히 긴 내용입니다. 세계사 정전 휴전협정치고 이렇게 긴 것이 없을 겁니다. 본문이 5조 63항이 있어요. 부록이 11조 26항이 있고, 또 정전협정에 대한 임시적 보충협정이라는 것이 5항으로, 무려 25페이지 분량입니다. 이 모든 협정문을 만드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런 8가지 이유로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김승욱 스탈린이 사망한 후 급속하게 7월 27일 정전협정이 이뤄졌습니다. 그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에 사망했습니다. 사실 당시 중국과 소련의 관계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전쟁을 통해서 이익을 챙기려고 했고, 스탈린도 그것을 알고 전쟁을 통해 중국의 힘을 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산 측 내부에서도 조정이 잘 안 되던 참에 스탈린의 사망으로 진척이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탈린이 사망함으로써 휴전협정에서 소련이 중립국 감시단에 들어가려 했던 부분과 38선을 휴전선으로 돌리자고 고집했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스탈린의 죽음으로 정전협정 과정이 앞당겨진 것이지요.

김승욱 이제 한미동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 없는 휴전에 계속 반대했었지요. 스탈린 사후, 정전협상이 타결 직전까지 진척을 보이자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 포로를 석방함으로써 벼랑 끝 외교 전략을 펼쳤고, 결국 미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타결 후 불과 2개월 만인 1953년 10월 1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체결된 이유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입을 모아 이승만 대통령의 기막힌 협상 실력과 외교술 덕이었다고 높게 평가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지 않는 상태의 휴전은 곧 한국의 공산화라고 보고, 소위 바게닝 칩(bargaining chip, 협상카드)을 꺼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전에는 휴전도 할 수 없고 포로 석방도 못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음에도 미국이 이를 무시하려고 하자, 이 대통령은 미국과 상의도 없이 6월 18일에 3만 7천여 명의 반공 포로를 석방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빼고 협상하면 정전협정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준 것이죠. 이로 인해서 급속하게 진전되던 정전협정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미국 국방장관, 참모총장, 합참의장 등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휴전협정이 되어도 이승만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겠다고 판단하고, 고민 끝에 “대한민국이 휴전협정을 잘 지킨다고 약속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겠다.”는 전제하에 비로소 타결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70년간의 대한민국을 지키는 방패가 되고 대한민국 생존·발전의 인프라가 된 것입니다.

김승욱 지난 70년 동안 한미동맹의 발전과정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송대성 저는 70년의 한미동맹 관계가 미국보다는 한국 정부에 의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 정부를 기준으로 한미동맹 발전과정을 5개 기간으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 건국에서부터 1950년대 말까지 한미가 강력히 결속된 기간입니다.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까지 별 문제 없이 한미동맹이 결속·강화되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 때 미국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공산화냐 민주화냐의 근본적 갈등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좌파 정권이 들어온 1990년대 말에서 2007년까지입니다. 이때 한미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생겨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는, 정상회담은 하되 푸대접을 받는 등 서로 갈등하는 면들이 노골화 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는 다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회복된 기간(2008~2017)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당시에 축포를 쏘면서 대환영하는 펜타곤 방문도 있었습니다. 네 번째는 친북·반미정권인 문재인 정부(2017~2022) 시절입니다. 이 시기가 한미동맹의 수난기이자 가장 최악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가 현재 윤석열 정부입니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한미관계는 다시 급속도로 회복·강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6일 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작년 5월 21일~24일 사이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해서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그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의 한미관계를 두고 “Global Comprehensive Strategic Alliance”, 곧 “지구촌 차원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안보 동맹, 경제 동맹, 신뢰 동맹 이렇게 분야별 동맹을 말했다면, 이제부터 한국과 미국은 ‘전방위’에서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미국에 일방적 지원을 받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서로 주고받는 ‘파트너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에게 반도체를 달라고 하기도 하는 등, 한국이 기술 분야에서 상당히 앞선 것도 있다 보니 이제는 파트너 개념으로서 전략적인 것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관계로 들어선 것이지요.

김승욱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북한이 곧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햇볕정책을 펴서 북한이 회복했다는 말도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한미군 철군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점에서 한미동맹이 약해졌습니까?
송대성 북한의 대남전략은,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그 정부를 통해서 주한미군철수 시위를 부추기고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만들 때 반대하는 식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북한의 숙원과제는 주한미군 철수이며, 좌파 정부는 이에 동조하여 모든 정책을 수립합니다. 예를 들면 1년에 한 번씩 한미간에 하는 한미군사위원회회의(MCM, military committee meeting)와 한미안보협의회(SCM)의 내용을 보면 보수 정권과 좌파 정권은 주제가 매우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수 정권 때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어떻게 한국과 미국이 함께 훈련할 것이며, 어떻게 북한의 도발을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 주제지만,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어떻게 한미연합훈련을 중지시킬까 등의 내용을 논의합니다. 북한은 70년간 일관되게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한미동맹파기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 특별히 문재인 정부 기간에는 한미간의 훈련을 전부 중지시켰고, 북한의 핵무기 공격을 방어하는 사드 설치에도 반대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친북적인 입장이 구체적 정책으로 나타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승욱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과거 김일성은 틈만 나면 회갑 잔치를 서울에서 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실제로 청와대를 기습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려고 했고, 100명이 넘는 무장 공비를 침투시켰고, 전두환 대통령을 아웅산에서 암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당시에는 북한의 군사력이 한국보다 월등하게 강했지요. 이렇게 고비마다 위험한 시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미군 지상군이 주둔한다는 것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북한, 중국, 소련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적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경제성장에 전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철통같은 한미동맹 덕분이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여러 가지 복(福)을 주었지만 가장 큰 복은 한미동맹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미동맹 때문에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우리의 보은국(報恩國)이고, 언젠가 그 은혜를 꼭 갚아줘야 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승률 1/5,000밖에 안 되는 인천상륙작전을 목숨 걸고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 미국도 우리를 도와준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이 있지만, 한국만큼 이렇게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성공시킨 나라는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한미동맹을 비웃은 자들은 저 판문점 휴전선에 가서 양 세계를 보라. 한쪽은 캄캄하고 칠흑같은 암울한 세상이 되어 있고, 다른 한 쪽(한국)은 찬연히 빛나는 밝고 좋은 세상이 되어있다.”라고 하며, 미국 입장에서도 굉장히 보람을 느끼게 하는 명연설을 했습니다.

❝ 하나님이 대한민국에 여러 가지 복(福)을 주었지만 가장 큰 복은 한미동맹이다. ❞

또한 한미연합방위체제는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보루역할을 했습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판문점에서 손잡고 얘기한 것이 “옛날 선대들도 이런 회담을 했지만, 실천이 안 되고 속도가 느렸으니 이번에는 만리마 속도로 하자”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곧 ‘만리마 속도’로 빨리 ‘공산화’하자는 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안 된 것이 바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있어서였습니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세계 각국에 다니면서 북한을 지지했는데, 북한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니 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주한미군철수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한다고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역사적 의미는 대한민국의 부흥, 발전에 한미동맹이 하나의 인프라(infrastructure, 하부구조)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나 항구만 경제 하부구조가 아닙니다. 한미동맹은 한국 경제발전의 하부구조입니다. 미군이 떠나서 한국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모든 해외 투자가 끊어집니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곧 한국경제 발전과 번영을 위한 하나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발전은 ‘수출주도형 발전(Export-led Development)’이라고 하는데, 사실 미국이 한국 물건을 많이 구매하고, 부족한 부분에서는 기술지원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미동맹의 역사적 평가는 ‘하나님이 주신 최상의 복’이라고 봅니다.

김승욱 이제 최근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지금도 북한은 자주 도발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미사일이라고 하지 않고, 발사체라고 했습니다. 대북유화책이 실효성이 없었다고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유엔 결의 어떤 부분이 위반된 것인지요? 우리도 지난 5월 25일에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해서 세계에서 자기 기술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7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북한에서도 위성을 발사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소위 “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를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라며 “어떠한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왜 북한의 위성 발사는 위반이고, 우리는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어느 동네에 새 잡는 공기총을 가진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그 공기총을 불법 개조해서 멧돼지 사냥도 하고, 자칫하면 사람도 다치게 하는 살상 무기가 되어 위험합니다. 그래서 몇 번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그 총을 검사하려고 했는데, 이 사람은 개조하지 않았고 살상용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검사에 응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주기적으로 자진 신고해서 자기 총을 경찰에게 검사받고 사용합니다. 이럴 경우 두 번째 사람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지만, 첫 번째 사람이 사용할 때는 충분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지요. 북한은 첫 번째 사람과 같이 주변국의 신뢰를 잃은 것이지요. 2006년에 1차 핵실험을 했고, 그때 유엔 제재 결의 1718을 체결해서 조사 받으라고 했는데, 이에 응하지 않고 개발을 계속하니까 유엔에서 제재하겠다 했습니다. 그래도 약속을 어기니 2009년에 1874라는 유엔 결의가 나오게 됐고, 2013년에 2087와 2094가, 2016년에는 2270와 2321가, 2017년 2356, 2371, 2475가 나오게 된 겁니다. 이렇게 위반할 때마다 유엔이 결의했는데 그것을 매번 실천하지 않으니 북한은 완전히 상습범이 되어버렸지요. ‘발사체 자체를 시험을 못 한다’하는 결의를 여러 번 어기니까 이번에는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해도 유엔도, 세계인들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그간 신뢰를 쌓았으니 인공위성이라 하면 그대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김승욱 현재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회원국인데 이들은 유엔 결의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송대성 중국과 러시아는 어떨 때는 서방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 제재에 동참하는 듯 하다가 어떨 땐 또 풀어줍니다. 그래서 유엔 경제 제재에 구멍을 냈지요. 물론 제재에 동참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잡을 때 함께 망을 잡고 고기를 몰아가야 하는데, 그 그물에 구멍을 내버린 격입니다. 그러니까 제재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김승욱 이번에는 방위비 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미동맹이 처음 시작할 때 분명히 미국은 한국에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방위비를 상당 부분 부담하게 됨으로써 한국과 미국이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라기보다 미국의 동북아 지역의 역할을 유지하는데 거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 세계 군사력 6위인 한국의 국방력을 생각하면 대등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국방력도 상당한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해서 미국의 요구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송대성 방위비가 비싸다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감정 기복이 심한 것처럼 비치지만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서 직간접적으로 유엔경제제재 결의를 위반했던 사실을 다 알았습니다. 북한에는 퍼주면서 자국을 지켜주는 동맹국 미군 주둔비에는 인색하게 구니, 트럼프 대통령이 즉시 5배나 올려버린 것입니다. 그때 우리 국민은 한미관계가 균열되고 깨지는 것을 겁냈어요. 그래서 대한민국 수호예비역 장성단이 ‘방위비 분담은 돈으로 따질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인색하게 굴면 국민 모금 운동을 해서라도 지불하겠다’라고 크게 광고를 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형편이 되면 미군 주둔비는 최대로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대한민국 수호예비역 장성단을 언급하셨는데 송 박사님께서 주창하시고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이 단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1년을 관찰하면서 저는 한 사람의 안보 전문가 입장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2018년 9월에 북한의 노광철 조선인민군 대장과 한국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9·19 남북군사분야합의”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등’을 주요 골자로 했는데, 안보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대한민국 군대가 싸움 한 번 못하고 망가지는 심각한 합의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반 국민은 ‘적대행위 중지 및 평화’라는 용어들을 앞세우니까 진정한 평화를 위한 합의인 줄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북한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잘 알고있는 안보전문가들이 볼 때 그 평화는 가짜 평화였고, 대한민국 안보역량을 일방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저는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가로부터 많은 교육 혜택들을 받고 장군으로 진급까지 했고, 31년간 군 현역에 복무한 평생 국가안보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관학교 4년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위탁교육 3년, 고려대학교 정외과에서 석사과정 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5년간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국가 돈으로 공부한 사람입니다. 저는 평생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입니다. 2017년부터 점점 공산화되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 “장군들을 단합시켜 공산화를 막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애국장성단 결성에 나섰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수호예비역 장성단(약칭 대수장)”의 태생정신입니다. 그때 “‘9·19 남북군사분야합의’가 국익에 부합되는 것인지 아닌지, 당시 위정자들을 전부 불러서 국민 대토론회를 개최하겠다” 하고 일간지에 크게 광고를 냈습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하고! 사는 동안 행동한다!’, ‘이적성 9·19 남북군사분야 합의! 국민들 심판받아보자’, ‘장군들은 나라가 전쟁을 맞으면 전쟁의 현장에 있어야만 하고, 나라가 위기를 맞으면 위기의 현장에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육·해·공·해병대 장군들을 결집시켰습니다. 최종적으로 417명의 장군들이 분기탱천(憤氣撑天)하며 용산 전쟁기념관에 집결해 2018년 11월 21일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2달 후 2019년 1월 30일 ‘대수장’이 공식적인 대한민국 애국 장군단 NGO로서 출범했습니다. 현재는 878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있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애국장성 NGO입니다. 장군 출신이 아닌 일반 국민 900여 명이 명예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애국함에 있어 개인 혼자 한다는 것은 힘도 약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국민이 ‘대수장 명예회원’으로서 대수장을 도우면서 애국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함께 동참하여 우리나라 좋은 역사 창출에 함께 기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승욱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장기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없는 간첩단을 만들어서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송대성 제가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에서 십여 년 이상 근무했습니다. 제가 근무할 때 7천 명 이상의 간첩을 잡았더군요. 하나를 잡으면 곳곳에 있는 간첩 조직이 줄줄이 발견됩니다. 어떤 간첩의 경우 7~8년을 계속 관찰하다가 검거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교수가 계속 간첩의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징후들이 포착되는 경우, 괜히 무고한 사람을 잡아가서 ‘너 간첩이지’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을 경우, 몇 년을 관찰하고 증거를 수집해서 신중히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극히 드문 예지만, 증거가 잘못되어 억울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혐의점 하나를 가지고 침소봉대해서 생사람 잡는 식으로 간첩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간첩을 잡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김승욱 얼마 전에 간첩단 적발이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 하면서 간첩 잡는 것은 공안몰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첩 이야기하면 과거 유신시대에 정권 유지하기 위해 겁주려던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유민주연구원의 유동열 원장은 고정 간첩이 2만 명이 된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한 여장교 출신 김정아씨는 북한 고정간첩이 이보다 더 많다고 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스파이를 보내고 남북 대립 상황에서 서로 간첩을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왜 유독 한국사람들은 북한의 간첩 활동에 대해 무감각한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송대성 간첩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친북주의자거나 반체제 세력이거나 세뇌 교육을 받았거나 아니면 나라의 미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봐도 간첩의 존재는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민노총이나 일부 정당 등을 압수수색해서 간첩 활동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것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를 저는 “이적성문화(利敵性文化)”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용어는 제가 10여 년 전 조선일보에 “이적성 문화의 소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적성 문화란 ‘적을 이롭게 하고 우리를 해치는 문화’를 의미합니다. 저는 ‘이적성의 정의’를 다섯 가지로 내립니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문화예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을 인정하지 않고 만주벌판 어디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것이거든요. 둘째로, 반미 친북 성향을 보이면서, 한미관계를 이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정부와 국민을 이간하는 행위. 넷째는, 군인을 비하하고 한국의 국방 안보 역량은 필요 없다며 안보 역량을 훼손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민주주의를 위장해서 사사건건 친북 성향과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성 주장을 하는 것을 이적성 문화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이적성 문화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이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간첩과 친북세력이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사실 이 점에서 과거 보수 정권들이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보수 정권의 위정자들이 알았음에도 이를 방치하고 무책임하게 두다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버린 거예요. 사회 곳곳에 이적성 문화가 퍼져서 간첩이 조금 있어도 문제 없다면서 무감각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김승욱 이미 한 10여 년 전에 미국의 폭스 뉴스에서는 북한은 미국에 CIA와 맞먹는 사이버 전사를 3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 국정원과 국방부가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처벌도 받았습니다. 적은 사이버 기술로 우리나라 정치에 개입하는데,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사이버 전쟁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사이버 공간에서 나라를 해치는 자들을 “소프트 에너미(soft enemy)”라고 합니다. 기성세대 때는 현실 공간이 전쟁 공간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삶의 공간 절반이 사이버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삶의 공간에 적(敵)은 반드시 침투하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 6·25 전쟁 때는 전선이 보이고, 전우들의 시체가 보이고, 희생이 보였지만, 현대의 전쟁 공간의 소프트 에너미는 보이지 않는 실체입니다. 어디서 침투하는지, 내용은 무엇인지, 방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사이버 공간의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망하는지 흥하는지 그 내용도 모르고 그저 당하는 겁니다. 소위 MZ세대들은 이 사이버 공간에 아주 익숙하지만, 정작 국가 차원에서 소프트 에너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합니다. 소프트 에너미는 사이버 공간에 올바른 가치나 진실을 전도(顚倒)시키는 댓글을 퍼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영웅시하고, 그런 댓글을 놔두고 관리하지 않습니다. 이런 분야는 전문성을 가지고 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 세계 해킹 실력 1등이 미국, 2등이 중국, 3위가 러시아, 4위가 이스라엘, 그리고 북한을 5위 정도로 봅니다. 따라서 현역 전투 병력을 양성하는 것 못지않게 소프트 에너미를 방어하는 요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자기술이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해킹을 통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선관위가 북한의 해킹 공격을 당했다는 의혹이 나오면 빠르게 조사받으면 되는데, 이를 감추면서 조사를 못 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행동들이 사이버 선상의 소프트 에너미를 키우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소프트 에너미까지도 다 잡아내는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김승욱 4월 26일부터 5박 7일간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고, 한미동맹이 그간 걸어온 역사를 되새기며, 한미동맹이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의 주춧돌 위에 안보동맹, 산업동맹, 과학기술동맹, 문화동맹, 정보동맹이라는 다섯 개의 기둥을 세웠다”고 미국 국빈 방문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가 한미동맹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십니까?
송대성 한미 두 정상은 이번에 워싱턴 선언을 체택했고, 윤 대통령은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습니다. 펜타곤의 전쟁상황실(NMCC)과 달파(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도 방문했습니다. 달파는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방연구원(KIDA)를 합친 것과 같은 곳으로 군사 안보에 관한 모든 기술을 개발 관리하는 곳인데 여기는 아무나 방문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하버드 대학에서도 연설을 했습니다. 그 일정 하나하나가 매우 의미가 있었고, 미국도 한국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동맹국으로 대하면서 성의를 갖고 대해주었습니다. 다른 나라 수반들은 미 국방부의 국가군사지휘센터(NMCC, National Military Command Center)에 가서 브리핑을 받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더 크고 중요한 것은 정상회담 기간 중 50건의 MOU를 맺었다는 점입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윤 대통령의 5박 7일 방미 일정은 한마디로 한미동맹을 격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김승욱 북한은 곧 7차 핵실험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핵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핵 위협 하의 안보 미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다급한 문제는, 북한은 핵보유국이고 우리나라는 아니라는 현실입니다. 핵을 갖지 않은 쪽이 살아남으려면 노예가 되거나 가루가 되는 수밖에 없어요. 아랍의 1/50밖에 안되는 인구의 이스라엘이 견디는 것은 미국의 도움도 있지만, 핵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아랍 7개국은 핵이 없으니 꼼짝 못 하는 거예요. 핵무기가 그만큼 무서운것인데, 핵에는 핵으로 대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이룬 방미 성과를 다섯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서 ‘워싱턴 선언’을 한 것을 두고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1953년 10월 1일 맺었던 것이 1차 상호방위동맹이고, 이번 것이 2차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제1차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도 남한도 핵보유국이 아닌 70여 년간 북한의 남침야욕을 철저히 무산시키고, 실효를 거둔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습니다. 2차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고, 남한은 비핵국인 상황에서 북한의 핵 침공을 차단하기 위해 새롭게 결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두고 “Global Comprehensive Strategic Alliance”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전방위적으로 미국과 한국이 전략을 같이 하는 파트너십으로 격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핵은 핵으로밖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핵 보유국인 북한을 꼼짝 못 하도록 하기 위해 “핵협의그룹(NCG: Nuclear Consultation Group)”을 만들어 “Balance of Terror(공포의 균형)”를 구축했습니다. 이것은 한미연합체제와 유사합니다. NCG의 내용을 보면 한국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근무하고,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훈련도 같이 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전쟁을 같이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이 채택한 핵공격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방식은, 미국의 핵무기 100여기를 다섯 개 나라에 직접 갖다놓고 관리는 미국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는 그 나라 조종사가 핵을 투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NCG는 미국의 핵무기를 함께 기획하고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훈련도 전쟁도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또 워싱턴 선언에서 ‘확장억제력’을 언급하며 미국이 팔을 뻗어서 우리나라 안보 영역에 여러 가지 확장억제력을 이송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이를 성의껏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10월,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라는 한국 공군과 미국 공군 합동훈련을 했는데 최첨단 F-35B와 F-22 전투기까지 동원할 정도입니다. 오클라호마급 잠수함(SSBN)을 거의 상주시키다시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오클라호마급 잠수함은 길이가 170m, 폭이 13m이며, 그 안에 핵탄두가 80여 개가 실려있어요. 그게 우리 바다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겁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함부로 우리를 공격해오지 못합니다.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 실전배치를 꺼려하는 이유는 반체제 세력의 반대도 문제가 되지만, 한국이 다시 좌파정부로 넘어가는 경우 좌파 정부에서 그 기술정보를 엉뚱하게 쓸 수 있다는 위험성을 걱정하는 점도 있습니다. 북한이 핵 어뢰인 “해일-1”, “해일-2”를 발명했습니다. 이것이 2~3일간 바닷속 80m~150m 사이를 떠다녀요.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발사하면 600m 고공에 솟아 폭발하는데, 우리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오클라호마급 잠수함이 없으면 북한이 이런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사라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런 핵잠수함 같은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배치해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신속하고 압도적이고 결정적인 안보역량으로 완전히 박살을 내겠다 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쉽게 말하면 핵갖고 장난치면 북한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발란스 오브 테러(Balance of Terror)” 즉 공포의 균형이거든요. 핵 갖고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못 해요. 워싱턴 선언의 큰 의미는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핵을 가진 것과 같은 한미결속체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동맹국이 없어서 세계에 무기를 달라고 요청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공포의 균형


세 번째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민과 정서적으로 결속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을 때 차 한잔, 대화 한마디 안 했는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 마이크도 같이 잡고, 미국인이 좋아하는 노래도 한 소절 부르면서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네 번째로, 대한민국 국민과 해외 동포들의 자부심이 매우 고양되며 미국 내부적으로 한미 간 국민적·정서적 결속이 이뤄졌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5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얼마나 많은 부대 효과를 일으킬 지 모릅니다.

김승욱 미래 한미동맹의 발전 방향은 단지 국가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송 박사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들어서 국제민간조직인 한미연합회(AKUS, America Korea United Society)의 필요성을 역설하셨고, 실제로 2021년 5월에 뉴욕주에서 공식 등록을 했고, 한국에서도 사무실을 가지고 있고, 이 한미연합회의 회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왜 민간조직이 필요한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대성 정부와 정부 관계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클라우즈 모델(Clouds Model)”이라고 하는데, 한미 간 정부와 정부 관계는 일종의 클라우즈 모델입니다.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중요시 여기는 윤정부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만약 좌파 정부로 들어서면 이게 전부 변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면 한미관계가 정부-정부 관계도 중요하고, 사람-사람으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의 에이펙(AIPAC)과 같은 효과를 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AIPAC은 ‘미국 내 유태계 미국인들+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미국인들+이스라엘 내 미국과 이스라엘 결속을 주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는 국제민간조직입니다. 미국 정부가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관계없이 이스라엘과 미국은 공동 운명체(common destiny)이라면서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한미관계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 민간인이 결속해서 국제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추진하는 것이 한미연합회(AKUS)입니다. 지난 3월 26일 아틀란타에서 창립총회도 했고, 미국에 현재 36개 지부가 생겼고, 금년 내로 70개가 생깁니다. 한국에도 대응하는 지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대구, 경주, 포항 등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설사 정부가 한미관계 개선에 노력을 보이지 않아도 민간이 결속해서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야 합니다.

김승욱 저희 <월드뷰>는 기독교인 독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이고, 따라서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핵전쟁의 경우 모두가 피해자이므로, 기독교인 중에 핵전쟁에 반대하는 천진난만한 평화주의자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평화주의와 반핵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송대성 적이 쳐들어오는데도 절대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란, 가정에 강도가 들어와 폭력을 행사하면 폭력을 행사해서 막을 수도 있고, 대화를 시도하면 대화로 대응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평화에는 진짜 평화(Real peace)와 가짜 평화(Pseudo peace)가 있습니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라고 하면서 전쟁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은 사이비 평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도발하는데 여기서 대응하는 것을 두고 강경한 대북정책이라고 하면서, 그걸 도전적이고 비평화적 태도로 보는 좌파 정권이나 체제전복세력의 사이비 평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대화만 하면 비핵화 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바로 이러한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이 냉정히 판단하고 북한에 조정되지 말아야 합니다.

김승욱 장시간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