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바탕 ‘신앙 동맹’

한미동맹의 바탕 ‘신앙 동맹’

2023-06-27 0 By 월드뷰

EDITORIAL l 조평세(부편집장)

“나라보다 교회가 먼저 섰던 것”


지난 4월 27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은 미국인들의 주목을 사로잡는 충실한 내용과 유창한 스타일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놀랍고 뜻깊었던 대목은, 바로 한국에 자유의 가치를 소개해 준 미국인 선교사들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Alliance of Freedom, Alliance in Action)”이라는 제목의 이 연설에서, 19세기 말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큰 영향을 미쳤고, 헌법의 기초가 되는 자유의 가치를 전해 주었다고 말하며, 특별히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매리 스크랜튼, 로제타 홀을 거명했습니다.

South Korea’s President Yoon Suk Yeol addresses a joint meeting of Congress, Thursday, April 27, 2023, in Washington. (AP Photo/Alex Brandon)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초에는 다름 아닌 기독교의 정신과 진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우리 모든 기독교인이 분명히 기억하고 확립해야 할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해방과 건국 당시 서울에 현재 영락교회의 전신인 베다니교회를 세운 한경직 목사는, 1947년 “건국과 기독교”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바로 이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 건국 도상에 있는 이 시대에 해방 전후 본 교회가 창립된 것은 뜻이 깊을 줄 압니다. 나라보다 교회가 먼저 서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시내산에서 먼저 교회가 서고, 그 후에 나라가 가나안 복지에서 섰습니다. 북구에서 내려오는 [야]만족들이 먼저 기독교의 감화를 받은 후에 오늘의 구주(歐洲, 유럽)제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북미에 가서 먼저 교회를 세우고 그 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조선 말에 기독교를 한국에 보낸 것은 장차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준비하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분명히 있습니다. 고로 기독교는 반드시 새 한국의 정신적 기초가 될 것입니다. 한말(韓末) 대원군(大院君)이 버린 돌, 곧 기독교는 새 한국의 영원한 머릿돌이 될지어다! ❞

같은 해 “대한민족아, 깨어라”라는 제목의 또 다른 설교에서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과거 50년 역사에 있어서 오직 기독교만이 지금 많이 듣고 말하는 소위 민주주의 사상의 교육자였습니다. 개인의 생명, 인격, 권리에 대한 존중 사상, 인간의 자유사상과 인간의 평등사상은 오직 기독교만이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이 사상의 근본인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에 대한 견지인 까닭입니다. 또 왜정이 기독교를 압박한 이유도 사상적으로 기독교는 일본 제국주의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이 민주주의 사상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모든 신교 특히 장로교회는 민주주의 정치의 실행자였습니다. 장로교회는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 정치를 각 지교회(支敎會), 노회(老會)와 총회에서 실행하여 왔습니다. 지교회에서 장로와 집사를 선거하는 것, 목사를 청빙하는 것, 노회에서의 모든 정치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것입니다.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한 후에 헌법과 모든 정치를 민주주의로 한 것은 그들은 이미 각자 교회에서 그러한 정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금일 대한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정치 훈련을 받은 이는 기독교 신자밖에 없습니다… 과거 대한 50년 역사를 정관(靜觀)하면 하나님께서 벌써 1945년에는 해방이 있을 줄 아시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 날에 대비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보내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70년을 맞은 한미동맹의 근간에는 이미 그 전부터 양국의 국민이 공유했던 성경의 진리와 교회공동체의 사상교화 및 수십 년의 정치 훈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서로가 마주 앉아 약속하지 못했더라도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정신적 바탕으로 맺어졌던 ‘신앙 동맹’이 있었습니다. 이듬해 8월 15일, 해방 3주년과 대한민국 건국을 경축할 때 이승만 대통령도 그렇게 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민주 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져서 속으로 민주제도를 배워 우리끼리 진행하는 사회나 정치상 모든 일에는 서양민주국에서 행하는 방식을 모범하여 자래로 우리의 공화적 사상과 수난을 은근히 발전하여 왔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실로 뿌리가 깊이 박혔던 것입니다. 공화주의가 30년 동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지금 결실이 되는 것이므로 굳게 서 있을 것을 믿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 2년 만에 당한 침략전쟁에 미국이 즉각 분연히 일어나 ‘알지도 못했던 나라와 만나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런 바탕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다음 전보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위기를 맞은 대통령께 지혜를 주실 것을 수백만 미국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즉각 공산주의에 맞서 싸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남한은 기독교인 비율이 세계 어느 곳보다 높은 곳입니다. 그들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달의 특집


‘정전협정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으로 준비한 이번호에는 표지 인물로 송대성 한미연합회 대표를 모시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공군 준장 예편 후 세종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과 한미간 순수민간협의체인 한미연합회(AKUS)를 이끌고 있는 송대성 대표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의 체결 및 발전 과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에게 여러 가지 복을 주었지만 가장 큰 복은 한미동맹이다.”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했던 지난 정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민간 차원의 한미간 결속력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집에 강도가 들어와 폭력을 행사하면 폭력으로라도 맞서 싸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이야기하며,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라는 기만적 구호를 외치는 가짜 평화를 경계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어지는 특집 칼럼들은 ‘정전협정 70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 두 파트로 구분하여 각각 여섯 편과 다섯 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먼저 육군사관학교 나종남 교수가 6·25전쟁 발발 1년 후부터 시작된 2년간의 휴전회담 과정과 주요 쟁점 등을 구체적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이어서 연세대학교 김명섭 교수는 정전협정에 이승만 대통령의 서명이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일부 잘못된 인식에 대해, 정전협정문에는 원래부터 대통령이 서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과 국제연합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의 서명만으로 한국군이 정전협정에 기속(羈束)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신상범 단장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 간 군사 질서의 기준이 된 정전협정을 설명하며, 핵 개발 등을 통해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 정권의 각종 도발에도 불구하고 유엔군과 한국군이 지금까지 정전체제를 잘 지켜냈기 때문에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올리는 감사기도문이 특별히 마음을 울립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홍성표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군사도발과 협정위반 행태가 크게 증가하는 마당에 정전협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일부 주장에 대해, 북한의 협정 무력화 시도에 굴복하는 것은 불법이 합법을 덮어버리도록 허락하는 것이며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합법적으로 구축한 정전체제를 오히려 다시 복원하고 긴밀하게 관리할 것을 주문합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문상균 교수는 지난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추진하기로 합의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이 사실상 정치적 선언일 뿐 남북 간 실제적 입장 차이로 인해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앞으로의 평화논의는 더구나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연동되어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전협정에 대한 마지막 칼럼으로 이병재 박사는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을 이야기하면서, 억제의 최소한의 목표가 정전협정체제인 만큼 북한 정권에 대해 그 내용을 한미 양국이 보다 분명히 제시하고 더욱 긴밀한 한미동맹을 투철히 할 것을 주문합니다.
다음으로 한미동맹에 관련한 첫 번째 글에서 국민대학교 박휘락 교수는 미국의 ‘핵우산’ 등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 양국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정리하고,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미국의 핵우산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에도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자강 조치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을 주문합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다시 한번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된 과정을 요약하면서 특별히 이승만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을 상기합니다. 그리고 이제 한미관계가 보다 수평적 관계로 진화하게 된 만큼 앞으로도 한미동맹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잘 지켜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같은 연구원의 김태우 핵안보연구실장은 지난 70년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 역사가 실로 ‘기적’이었으며 그 기적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한미동맹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현재도 대한민국은 ‘제2의 6·25 전야’라고 평가할 정도로 위태로운 순간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한미동맹의 기적이 멈추면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과 번영이라는 기적도 사라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본지 대표주간 이상원 교수가 보다 큰 원칙 차원에서 기독교 입장의 전쟁론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교수는 먼저 전쟁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라는 기독교적 인간관을 큰 전제로 제시하고, 이에 따른 핵 평화주의의 비현실성과 위험성을 조목조목 고발합니다.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마지막 글로는 본지에 [이승만의 독립외교]를 연재하고 있는 김정민 박사의 칼럼을 이번호에서 특별히 특집으로 올렸습니다. 김정민 박사는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결코 갑자기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승만의 오랜 외교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대한민국을 미국과 같은 ‘기독교 민주주의’로 구상했던 그의 혜안과 비전이 결국 한미동맹을 낳았음을 강조합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와 대한민국의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을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첫 문단을 인용하면서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자유로 잉태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 위에 바쳐진, 새 나라’ 미국 시민 여러분.”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링컨이 했던 이 짧은 연설은 미국뿐 아니라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외워지고 읊어지는 명연설입니다.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링컨의 표현은 장내 분위기를 단숨에 휘어잡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게티즈버그 연설 두 번째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미국)가, 혹은 그렇게 잉태되고 바쳐진 그 어떤 나라라도(or any other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과연 지속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위대한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이 그렇게 기독교 민주주의의 자유와 독립정신으로 잉태되고 헌정된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이제 태어난 지 75년, 전쟁으로 죽었다가 간신히 소생된 지 70년이 된 것입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직후 대국민 성명에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정했습니다.

북한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체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 즉 북쪽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자는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취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로부터 70년을 맞는 우리는, 링컨이 단 12문장의 짧은 연설을 통해 당시로부터 “팔십하고도 7년 전(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의 기독교적 건국 정신을 되살려 나라를 소생시킨 것처럼, 대한민국의 기독교적 건국 정신과 기본 목표를 다시 기억하고 회복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연구하면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링컨이 시편 90편에 나오는 ‘인간 연수’, 즉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three score years and ten, and if by reason of strength they be four score years)”이라는 인간 연한을 염두에 두고 “팔십하고도 7년”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입니다. 링컨은 시편 90편의 저자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채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올려드렸던 것처럼, 인간의 연한을 넘어가는 그 시기에 국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하나님께 호소했던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에 익숙했던 당시 미국인들은 링컨이 이 표현으로 연설을 시작했을 때 단번에 시편 90편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70년은 또한 “한 왕의 연한(사 23:15)”이자 ‘땅의 안식년수(대하 36:21)’, 즉 한 세상 정권 및 체제의 한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70년은 하나님의 심판 기간(렘 25:11)이자 회복의 근거(슥 1:12; 7:5; 8:19)였습니다. 이 연수를 깨달은 다니엘도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단 9:3)”하였던 것이지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가 한국 교회에게 그런 결심의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앞서 인용한 1947년 한경직 목사 설교의 절규로 이번호 발행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대한 민족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야말로 민족의 존망지추(存亡之秋)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반인 기독교를 떠나서 어떻게 잘 실행되겠습니까? 민주주의는 국민의 각성과 도덕적 향상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기독교를 떠나서 어디서 이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유물론적, 폭력적, 독재적 사상의 기초 위에 민주주의 대한이 건설될 듯싶습니까?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은 자유인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생명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에게 독립이 있지, 자유보다도 자기의 이권부터 찾는 민족에게 독립이 있을 듯싶습니까? … 대한 민족아, 깨어라!

글 | 조평세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이사)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BA)과 전쟁학(MA)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의 이사로 활동하며 영미식 보수주의를 한국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역서로 <레이건일레븐(열아홉, 2020)>, <예수는 사회주의자였을까(개혁, 2021)>, <사회정의는 성경적 정의인가(개혁된실천사, 2022)> <모든 사회의 기초는 보수다(기파랑,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