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가?

왜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가?

2023-01-06 0 By 월드뷰

2023년을 시작하며 첫 번째 인터뷰는 교회사를 전공한 이상규 교수를 초대했다. 이상규 명예교수는 1983년부터 2018년까지 고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백석대학교 석좌교수이다. 그는 2012년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에서 올해의 신학자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에서 학술상을 받았다. 한국장로교 신학회 회장과 개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 국제신학저널인 Unio cum Christo의 편집위원이다. 고신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 Div.)와 신학석사(Th. M.)를 호주신학대학(ACT)에서 신학박사(Th. D.)를 했다(편집자 주).

김승욱 교수님께서는 신학자로서 고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으며, 현재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계시지요. 한국교회 사료 발굴에 많은 공헌을 했고 한국 교회사가로 높이 평가받고 계십니다. 고신대에서 가르치셨던 과목은 주로 어떤 과목이었는지요?
이상규 저는 한국교회사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만 고신대학교에서는 교회사 전 분야를 가르쳤습니다. 교회사에는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종교개혁사, 근현대교회사, 한국교회사 등이 포함되는데, 이런 분야의 과목을 가르쳤고, 석·박사 과정에서는 기독교문헌연구, 초기 기독교와 사회, 개혁주의 사상, 혹은 선교운동사 등과 같은 세부 영역을 가르쳤습니다.

김승욱 신학의 여러 분야 중 교회사학 혹은 교회사를 전공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상규 ‘신학’은 전통적으로 신약학, 구약학, 조직신학(교의신학), 역사신학(교회사), 실천신학(봉사신학) 등 다섯 영역으로 크게 구분합니다. 그 아래 더 세분화되지요. 제가 교회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첫째, 학생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호고주의(好古主義)라고 할까요? 옛것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또 연원(사물의 근원)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책도 읽고 자료도 수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교회사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신학 중에 비기독교인에게도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신학이나 교의학은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학문 영역이지만 비신자들과는 접촉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역사 연구는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공유하는 것이므로 양쪽에 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김승욱 교회사 분야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신 분야는 무엇인지요?
이상규 우선은 ‘한국교회사’ 분야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민경배 교수님의 <한국의 기독교회사>라는 문고본을 접했는데, 제가 읽는 첫 번째 교회사서였고 이 영향으로 한국교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두 번째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3세기 이전의 ‘초기 기독교회’입니다. 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니 본래적, 또는 원형적인 것에 관심이 생겨 초기교회와 그 교회가 처한 상황을 연구했고, 그러다보니 로마 사회와 기독교에 관해 공부하게 되어 이 분야에 관한 <초기 기독교와 로마사회>와 같은 책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의 기독교 전파의 배경이 되는 ‘근대선교운동’ 그리고 최근에는 ‘기독교와 평화’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승욱 올바른 역사 인식이 모든 것의 시작이므로 공교육 현장에서 역사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독교가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왜 역사 인식이 중요한지, 그리고 젊은이들이 왜 바른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상규 저는 역사를 ‘사례(examples)를 가지고 가르치는 설교’라고 말합니다. 구약의 역사서, 특히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는 이스라엘 왕조시대 역사인데, 여기에 여러 왕들의 영욕의 자취가 기록되어 있고 오욕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을 보여주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삶을 위한 교과서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교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또 동양문화권에서 역사를 거울(鑑, 거울 감)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에는 자치통감(資治通鑑), 우리나라에는 동국통감(東國通鑑)이 있는데, 통감이란 말은 통치에 도움이 되는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이 역시 역사를 거울이라고 본 것입니다. 거울이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역사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곧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역사는 교훈과 훈계를 주는 동시에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중요하고, 따라서 바른 역사 인식과 바른 역사 교육이 중요합니다.

김승욱 어거스틴은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라고 믿는 기독교인은 히스토리(history)를 하나님의 이야기(His+story)라고 해석합니다. 또 기원의 기준을 예수님의 탄생으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구속사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인식하는데, 기독교 젊은이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역사 인식을 분명히 가진 젊은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교회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강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상규 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만 알면 되지 역사가 왜 필요한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만 아는 사람은 성경도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 언어, 문화 등에 대한 지식과 소양도 필요하지요. 특히 역사를 아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심문받으실 때,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고 석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요한복음 19:12)”라는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사의 충신’은 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바르게 번역하면 ‘가이사의 친구(φίλος τοῦ Καίσαρος)’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친구’를 ‘충신’으로 의역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한글성경 번역자들이 역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문대로 ‘친구’라고 번역하지 않고 ‘충신’이라는 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친구라는 단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당시의 직위 혹은 자격을 말하는 고유명사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지극히 신임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칭호를 수여했는데 이 칭호를 받은 자는 사전 내락 없이 황궁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닙니다. 빌라도는 당시 황제였던 티베리우스(재임기간 14-37년)로부터 ‘친구’라는 칭호를 수여 받았고, 이것은 커다란 영예이자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군중으로부터 “당신이 예수를 석방하면 그 친구라는 칭호를 잃게 된다”는 말을 듣고 무죄한 예수님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성경 번역자들이 로마제국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에 성경을 의역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아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성경은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평지에서,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remember), 그 의미를 숙고하고(consider), 이전 시대의 역사를 물어(ask) 다음 세대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계승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신명기 32:7).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넜을 때 강 속에 있던 돌 12개를 취하여 기념석을 세우게 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후에 다음 세대 사람들이 ‘이 돌들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 강을 건너게 하셨던 그 역사를 회상하고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취한 돌들은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실물 교제였던 것입니다. 핵심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른 역사 교육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떻게 일해 오셨는가를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김승욱 특히 설교를 할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상규 2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역사에는 특히 지난 2천여 년간의 교회사에는 본받거나 경계해야 할 많은 사례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 삶에 유용한 가르침을 줍니다. 이보다 더 좋은 사례집이 있을까요? 저는 이를 ‘역사의 예화적 기능’이라고 말합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설교자들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두 번째는, 역사(교회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증해줍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타락했고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정말 인간은 타락했고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합니다. 역사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자료가 되지만 특히 설교자들에게는 성경의 가르침을 확인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휘튼 대학교의 교회사 교수를 역임한 마크 놀의 <터닝 포인트>를 보면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분리된 이후 니케아 공의회,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의 분열, 그리고 종교개혁 등을 역사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의를 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규 ‘개혁’ 혹은 ‘종교개혁’이라는 용어에는 16세기 당시 교회에 개혁되어야 할 점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일반적으로 4세기를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는데, 첫 3세기까지는 비교적 순수한 본래적 기독교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313년 기독교의 공인과 380(392)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교회의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고, 점차 본래의 기독교로부터 이탈합니다. 590년 그레고리우스가 처음으로 교황으로 불리기 시작하는데 이후 교회의 교리적 변질이 심화됩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미신의 아버지’(pater superstitonum)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때 성경적 근거 없는 여러 교리가 만들어집니다. 9세기에는 성직매매가, 11세기에는 면죄부가 대두되었고, 13세기 이후 교회의 윤리적 그리고 교리적 타락은 심화됩니다. 교회가 타락했다는 말은 교회 지도자들이 타락했다는 뜻이고, 이를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이 타락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유명한 경구가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 laice)’라는 말입니다. 15세기 이후 교리적 변질은 기독교를 인간중심의 기독교로 변질시킨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개혁자들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 쇄신하는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만 사실은 ‘종교개혁’이 아니라 ‘교회개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따지고 보면, 종교개혁은 본래의 기독교, 혹은 성경의 기독교를 회복하자는 운동이었고, 인간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salvation by faith through grace)을 회복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이 가르치는 본래의 기독교 신앙을 회복한 것입니다.

김승욱 역사의 어떤 사건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혹은 ‘하나님의 섭리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상규 그것은 인간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저절로 되거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役事)라는 믿음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이신론(deism)은 하나님의 창조는 인정하되 창조된 이후에는 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한 세계에 오셔서 간섭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고 가르치는데, 이를 섭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특정한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1588년 7월 스페인의 무적함대라고 불리던 아르마다 함대(Armada)가 영국을 침공했습니다. 교황청과 관계를 단절한 영국을 다시 천주교로 복귀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아르마다 함대는 130척의 배와 8,000명의 해군, 19,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대군이었는데, 도버해협에 도착한 날은 7월 27일이었습니다. 영국은 속수무책이었는데, 오직 한 가지 희미한 가능성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신실한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걸고 기도했을 때 청명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고, 바다에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예기치 못한 기상 이변에 당황한 아르마다함대는 결국 패전하고 오직 30여 척만이 도버해협을 넘어 도망갑니다. 이 사건을 역사가들은 ‘개신교의 바람(the wind of Protestantism)’이라고 부릅니다. 무적함대라고 불리던 아르마다 함대가 패배한 것은 커다란 이변이었고, 이 사건 이후 영국이 해상권을 장악하고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래서 아르마다 함대를 물리친 것은 하나님이 섭리하신 특별한 사건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신념 체계, 곧 성경에 근거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김승욱 역사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기독교의 관점은 마르크스주의나 실증주의와는 크게 다른데 가장 기본적인 차이점을 설명해 주십시오.
이상규 그렇습니다. 마르크시스트들은 신(神)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 간섭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은 역사 내적인 원인과 결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역사 외적인 개입이나 간섭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증주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실증주의는 역사의 동인(cause)이나 과정을 현상세계 안에서, 곧 역사 내적인 인과론에서 찾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섭이나 통치 혹은 섭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은 역사가의 영역 밖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랑케(Leopold von Ranke)와 같은 실증주의 전통을 따르는 이른바 ‘과학적 역사가들(scientific historians)’은 기독교 신앙과 역사는 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 간섭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적인 역사인식과 크게 다르지요.

김승욱 데이빗 베빙턴(David Bebbington)의 <역사관의 유형들>에 보면 역사관을 직선사관, 순환사관, 상대주의 사관 이렇게 세 가지로 크게 구분합니다. 기독교는 계몽주의 진보사상 등과 함께 직선사관으로 분류되고, 불교의 윤회사관은 대표적인 순환사관이지요. <역사의 연구>를 쓴 토인비(Arnold Toynbee)도 문명의 흥망성쇠를 설명했기 때문에 순환사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등장한 상대주의 사관도 역시 오늘날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의 직선사관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규 네, 김 교수님의 말씀처럼 그리스인들은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역사의 순환을 믿었고, 심지어는 신들도 이 순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운명론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의 근저에는 운명론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토인비도 현대적 의미의 순환론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역사의 기본 단위가 되는 21개의 문명은 생성, 성장, 쇠퇴, 사멸의 과정을 반복했다고 하여 순환론을 따랐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순환사관을 극복한 것이 히브리인들의 직선사관입니다. 유목민이었던 히브리인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면서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이른바 직선사관을 견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역사관을 계승한 것이 기독교 역사관인데, 역사는 분명한 시작 곧 창조로부터 시작되고 분명한 목표 곧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과정이며, 따라서 역사과정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는 과정으로 본 것입니다. 즉 창조, 타락, 구원이라는 구도로 역사를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 역사관을 구속사관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곳저곳에 제가 쓴 글이 있으므로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승욱 흔히 ‘역사는 반복한다’라고 말하는데, 직선사관의 관점에서 이 말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요? 역사는 진짜 반복하는 것일까요?
이상규 우리가 주변에서 늘 듣는 말이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명상록’을 썼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기 위해서는 오직 40년만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역사는 40년을 주기로 반복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에밀리아누스(Scipio Aemilianus)는 힙겹게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나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은 로마가 정복했지만, 언젠가 로마가 동일한 방법으로 정복당하게 될 것을 예견하고 통곡한 것입니다. 역사의 반복을 믿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는 반복할까요? 만일 반복이 없다면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연구는 결국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인데 과거의 일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지난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겠지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영국의 존 버리(John B. Bury) 같은 역사가는 역사는 반복한다고 믿었기에 역사에서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역사는 과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History is a science, no less and no more)’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법칙이란 반복된 사실에서 얻는 정리(定理)입니다. 그는 역사도 자연과학처럼 동일한 사건이 반복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역사는 반복될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는 어느 정도 반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일한 사건의 재현은 없습니다. 예컨대 칸트와 견해가 똑같은 철학자가 후대에 나올 수 있어도 그 동일한 칸트가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역사는 반복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개별성과 특수성을 지닙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동일한 사건이 수없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따름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 의해서는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도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했고, 권력을 잃은 자는 그 권력을 되찾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권력에의 욕망은 고대에도 있었고, 16세기에도 있었고 우리 시대에도 동일합니다. 고대 로마만이 아니라 아시아나 유럽 사회에서도 동일한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의 동일한 본성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역사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비록 동일한 사건의 재현은 아니지만 유사한 사건이 거듭 반복되기 때문에 역사는 교훈을 주고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고, 그래서 사회과학적 예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김승욱 교수님은 그동안 월드뷰를 통해서도 한국 교회사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하셨습니다. 한국 선교의 역사, 순교의 역사, 기독교 교육의 역사 등에 대해서 글을 많이 써주셔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 기독 청년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짧게나마 설명해 주시지요.
이상규 지금 한국사회는 이념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입니다. 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간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가 대두되는가 하면,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친북, 종북 사상이 유행하고, 반공주의를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가정과 결혼, 성, 건실한 윤리가 파괴되고, 소수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건실한 도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 왜곡, 불의를 분별하는 안목과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성경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다(고후13:8)”라고 했던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절실한 것 같습니다.


김승욱 이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요. 한국은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왕이 주인인 조선과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서 멸망하고, 새로 탄생한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해방 직후부터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서 서로 피를 흘렸고 결국 6·25 전쟁까지 겪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반공이 국시가 되고 북한에서는 공산체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이 확립된 듯 했는데,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나라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최근에는 주사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정체성 혼란에 빠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사파는 좌파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발언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민족과 통일을 앞세우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하는 세력이 상당히 존재합니다. ‘한민족끼리’를 내세우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북한 세력까지 끌어안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정체성 위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 세대를 책임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에서 이러한 국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 교과서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상규 그동안도 한국현대사 서술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기술했습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까? 역사 교육은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교육이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좌 편향 된 교육을 강제하여 공정성을 잃었습니다. 집필자의 허락 없이 집필자도 모르게 집필자의 도장을 훔쳐서 기술한 내용을 고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범죄인데 그런 일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행태는 문재인 정권이 의도했던 불순한 이념교육의 실상을 보여준 것으로써, 한마디로 말해서 도덕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의도가 불순하다 보니 부정을 저지른 것입니다. 모든 교육이 다 중요하겠지만 역사 교육은 더욱 그러하고, 앞으로 우리가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는 역사를 기술하고 가르치는 일은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봅니다.

김승욱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