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시대 사회복지 정책 방향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사회복지 정책 방향

2021-12-16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4


글/ 손신(아신대학교(ACTS)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실망


사회복지는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복지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다룬다. 그런 까닭에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가’ 아니면 ‘사회에 있는가’의 이슈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하는데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논쟁의 중심이 되어왔다.

개인의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수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1970년대까지 복지정책의 주류 모델이었던 복지국가 모델을 통렬히 비판한다.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실망 근저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하다는 암묵적 가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시장사회를 보트를 띄우는 바다의 조류로 묘사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조류는 모든 배를 띄울 수 있다. 조류를 이용해 앞으로 나가는 배들은 빠르게 치고 나가지만, 나머지는 뒤처진다. 빠르게 나가는 배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삶에 유익한 것들, 다른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것을 생산함으로써 더 빠르게 나아가고,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기여하게 된다.

이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세상은 생산을 통해 진보한다는 것이다. 생산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조류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세상은 진보하며 인간은 자신의 삶에 책임 있는 존재가 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렇게 진보된 세상의 부는 ‘공공-수요 경제학’의 오래된 신조와 ‘낙수효과(trickle down)’이론에 따라 사회의 아래 계층에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복지국가는 사람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했다고 하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의 의존심을 키우고 도덕성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한다.


복지가 구성원 공동의 책임이라는 주장


그러나 사회의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복지의 책임논쟁에서 ‘의존성’의 개념을 부정적인 개념만이 아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라 주장한다. 복지수급자의 성격적 결함이나 도덕적 타락을 논하기보다, 믿을 수 없고 의존할 수 없는 사회의 불공정과 부조리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하기에 문제해결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책임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집합적 책임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고, 우리는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우리 사회의 부(富)가 아래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고, 때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았다면 이들을 단순히 자신과 가족의 복지에 대한 책임성을 저버린 사람들로 치부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이들을 무책임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복지를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것이며,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회피하고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


세계 2차 대전 이후 복지의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대략(大略)하면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복지국가의 시기라고 볼 때, 1970년대 중반 이후 복지국가 시대를 실패로 주장하며 영미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진영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시기를 신자유주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복지정책 역시 역사를 통해 타당한 주장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단적으로 복지가 수혜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외부화하도록 조장한다고 주장하며 복지를 대폭 축소했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 복지정책은 가난한 자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고, 양극화로 인한 사회의 갈등은 더욱 고조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 양극화와 분열의 모습은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지난 2년간의 코로나 위기와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지금까지의 이념 논쟁을 넘어선 새로운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등 삶의 전 영역에서 ‘문명대전환’의 시대가 도래될 것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러한 변화 중 ‘큰 정부의 귀환’, ‘노동집약적 제조업 중심경제의 해체를 통한 정규직의 감소 및 탈산업화 현상 가속화’, ‘이로 인한 경제 양극화 현상의 심화’, ‘비대면 사회관계의 가속화’, ‘융합사회의 전면적 도래(복지와 의료의 융합, 과학과 복지의 융합-과학기반 복지국가)’ 등은 당장 우리 사회가 직면할 큰 변화가 될 것이다. 큰 정부의 귀환으로 정부예산과 조직이 팽창해 재정적자가 심화되는 가운데, 보편적 복지의 확대 요구와 경제 양극화, 고령화, 저출산 사회의 심화 등으로 전통적 소외계층인 저소득·독거 노인, 노숙인, 빈곤층 아동 등의 삶의 질이 더욱 위협받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되며, 사회변화에 따른 이들의 삶의 어려움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잘 헤아려 적합한 도움이 적절한 방법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우리의 생활 방식과 관계 맺음의 방식까지도 변화시킬 것이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비약적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새로운 사회문제로 기존의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하고 이로 인한 빈부격차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사회보험제도와 공공부조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기존의 사회안전망만으로는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 또한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을 창출해 내기 위한 노력의 하나이다. 기존 직업의 인공지능 대체로 인한 노동시장 일자리 양극화, 소득 양극화, 비정형 일자리 및 1인 기업의 증가, 의료혁명에 따른 평균수명의 획기적 증가로 인한 초고령 사회의 가속화,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가상현실사회의 윤리적 문제, 소유경제에서 공유경제로의 전환 등 우리 사회가 대처해야 할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더욱 다양화되고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사회복지


보수주의자들이 가진 복지에 대한 선입견은 복지가 수혜자들 자신의 책임을 외부화하도록 조장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복지는 더 이상 수혜자들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책임의 외부화를 조장하는 복지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선진사회에는 복지의 논의 안에 ‘인간의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계획된 행동으로서의 사회복지’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지국가 모델의 한계를 넘어 신자유주의적 기조에 대한 반성 속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새로운 구도를 고민했다. 그러한 노력의 배경 속에서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적 개념으로서의 사회복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역량 강화(empowerment)를 추구하는 사회복지’, 그리고 ‘돌봄의 책임을 공유하고 이를 위해 다원화된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과 사회적 포섭(social inclusion)의 개념으로서의 사회복지’가 대두되고 실천되고 있다. 의존심을 줄이기 위해 복지를 줄이는 방향이 아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적자원에 투자하는 복지를 늘려야 함이다.

이것은 책임논쟁의 프레임을 ‘개인 책임 대 사회 책임’에서 ‘내부화된 책임 대 외부화된 책임’으로 바꾸는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한 예로 저자가 근무하는 대학교 인근에 있는 시멘트 공장의 환경오염 문제를 들 수 있다. 그 공장은 오랫동안 주변 하천에 산업폐기물을 버려 아랫동네 주민들이 관청에 민원을 내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시멘트 공장의 폐기물 하천 방류는 책임의 외부화라 할 수 있다. 만약 공장이 산업폐기물에 대한 책임을 진다면 책임은 내부화된다. 하지만 이 논쟁의 핵심은 시멘트 공장의 오물을 공장이 책임져야 한다거나, 아랫동네 주민들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의 내부화’의 핵심은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공장이 자발적 사전 조치를 취할 때,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자신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조치를 취할 때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때, 그들의 복지에 대한 책임, 미래에 대한 책임,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부화되며, 그 결과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위드코로나’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물질적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지겠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삶은 더욱 척박해지고, 빈부격차는 심화될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책임을 함께 공유하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shinsonny@gmail.com>


글 | 손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에서 노인복지 및 지역사회복지 분야의 행정가로 20여 년간 사역했으며 양평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 경기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분과위원등 민관 사회복지 분야와 주안복지재단 이사, 천사재단 이사 등 기독교 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아신대학교(ACTS)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