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사회를 향한 한국 교회의 사회봉사

21세기 한국 사회를 향한 한국 교회의 사회봉사

2021-12-14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2


글/ 이만식(장로회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기독교 사회복지와 교회 사회봉사


먼저 용어를 통일하고자 한다. 현재 기독교 사회봉사, 기독교 사회복지, 교회 사회봉사, 교회 사회복지 등의 용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으나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보다 분명한 용어의 사용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social work을 번역하면서 본래 ‘사회사업’이라는 용어로 주로 사용했고, 교회에서는 이를 ‘사회봉사’라는 말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독일 교회와 교류를 통해 ‘디아코니아’를 사회봉사의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 흐름과 함께 한편에서는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을 중심으로 social welfare라는 용어가 들어오면서 사회복지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 사회복지학계에서는 social work, diakonia, social welfare 등이 기독교와 교회의 중요한 개념과 함께 사용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 사회사업, 기독교 사회복지, 교회 사회봉사 등의 용어들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본 글에서는 기독교라는 사상적 철학적 개념은 사회복지(social welfare)와 함께 사용하고, 교회라는 사회의 조직과 기관은 사회봉사(social work 또는 diakonia)와 함께 사용할 것이다. 또한, 필자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는 있지만, 신학자는 아니기에 주로 교회의 사회봉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사업의 발전과 교회의 공헌, 그리고 한계


사실 용어를 정리해서 사용할 만큼 20세기 중반부터 사회복지의 발전은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는 물론 기독교가 있었다. 특별히 한국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사업이 활발히 펼쳐졌다. 사회복지관, 탁아소, 보육원, 장애인 시설, 노인 시설 등 거의 모든 한국의 사회사업은 교회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발전했다. 한국만이 아니다. 사회사업은 교회가 아니었다면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사업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The Contribution of Religion to Social Work, 1932)>에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교회는 사회사업을 낳고 키운 어미니”라고 했다. 그만큼 교회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니버는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교회 사회사업은 세속화되었다.” 니버가 이 말을 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한국의 사회복지현장을 돌아보게 한다.

교회는 사회사업을 태동케 했지만, 현대의 발달하고 분화된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책임을 포기한 부분 때문에 교회를 떠나 철저히 세속화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사회사업은 사회복지라는 이름의 전문적인 실천과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교회에 남게 된 사회봉사 프로그램은 대부분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의 프로그램보다는 일시적이고 구호적인 성격의 것만 남게 되었으며, 순수한 사회봉사보다는 전도의 효과와 수익성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1세기 교회의 사회봉사를 위한 영역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의 것은 부정당하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이때 20세기의 세속화된 사회사업과 교회에 함몰된 사회봉사가 아닌 새로운 실천의 장은 어디가 될 것인가?

일본의 기독교 사회복지학자인 아키이에 니노미야(Akiie H. Ninomiya)에 따르면, 인간은 세 가지 단계에서의 죄를 지고 있다. 개인의 내면(Intra-Personal) 단계, 인간 관계적(Inter-Personal) 단계, 대사회적(Meta-Personal) 단계가 그것이다(<사회복지 신학>). 개인의 내면 단계는 본능, 초자아, 자아로 구성되어있는 개인의 죄이고, 인간 관계적 단계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야기되는 죄이다. 마지막으로 대사회적 단계는 사회, 국가, 세계의 구조에 존재하는 사회적 죄이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이 세 가지 단계에서 모두 실천되어야 한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서 부족했던 단계는 대사회적 단계이다.

교회에 있어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험하는 장소이다. 우리는 경쟁과 증오 그리고 전쟁을 만들어내는 모든 질서를 폐지하고, 평화의 ‘새로운 질서’를 선취할 때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회봉사는 단지 인간에게 존재하는 고통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미래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없는 사회봉사는 단순히 세상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보상하는 차원에 그친다. 반면 사회봉사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 소망은 그저 요구만 하고 호소만 하는 실천 없는 유토피아적 환상일 뿐이다.

기독교는 산속에 파묻혀 도(道)를 닦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세상 한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기능을 감당해야 하는 종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지 교회의 빛, 교회의 소금이라 하지 않으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봉사를 통해 얻어지는 유익들


교회의 사회봉사는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명령에 반응하는 것이지만, 사회봉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가 얻는 가시적 유익이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교회의 사회봉사는 교회를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로 만든다. 교회의 출발과 함께 시작된 자선과 박애 사업은 종교적인 동기가 없다면 시작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교회는 사회의 약자를 품고, 지역사회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나간다. 20세기 한국 사회는 아버지의 전성시대였다. 강력한 리더십, 카리스마, 경제 성장 등 이러한 사회적인 구호가 교회 내에도 그대로 침투했다. 교회의 리더십은 어떤 조직보다 제왕적인 카리스마를 요구했으며, 교회는 남성성이 가득한 조직이 되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오늘날에는 지역사회를 따뜻한 마음으로 품는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모성의 따뜻한 마음, 지역을 품는 가슴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교회의 모성 발현이며, 교회를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 체온이 1도만 떨어져도 우리 몸은 위험하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이 흐르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면 교회의 건강은 어느새 찾아올 것이다.1)

둘째, 교회의 사회봉사를 통해 사회와 복음의 접촉점이 만들어진다. 오늘날에는 20세기와 같이 논증과 변증을 통해 종교가 객관적으로 타당하다든지, 합리적이라든지 하는 사실보다는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중요하게 인식한다. 사회로 확장해보면 교회의 가치는 교회가 주장하는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에 근거한 삶을 통해 얼마나 지역주민과 삶의 자리에서 만나 그들을 행복하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교회는 지역사회가 필요로 할 경우, 또 지역사회와 함께할 때만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교회의 사회봉사는 지역사회와 그리스도의 접촉점으로서 자리하게 될 것이다.2)

셋째, 교회의 사회봉사는 지역사회 안에서 교회의 공신력을 높인다. 지역사회란 사람들이 생활하는 지역적 공동체이자 인간적 공동체이고, 사회적 공동체이자 문화적 공동체이며 신앙공동체이기도 하다. 모든 이웃 관계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진정한 성장 수준은 교회와 교회를 둘러싼 지역사회와의 관계에 있다. 플로리다주 리스버그에 소재한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인 로젤(Roesel)은 말한다.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주일 날 예배에 얼마나 많은 성도가 교회 문으로 들어오는가에 따라서 교회를 평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얼마나 많은 성도가 일주일 동안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또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지에 따라서 교회가 평가되어야 한다. 섬김을 통해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3)

넷째, 교회의 사회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신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통해 지역사회를 섬기도록 도우며, 거기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도록 돕는다. 비록 그 일이 불편하고 더럽더라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는 자신이 하는 실천에 대해 틈나는 대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러브레터를 쓰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작은 연필입니다.” 연필을 만든 분명한 목적이 있듯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칭할 수 있다.

<mannlee@hanmail.net>


1) 사회봉사를 활발하게 전개하는 교회에는 교회 내의 분쟁이 거의 없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 본교의 선교학 교수는 더 이상 직접전도(선교)의 시대가 아니고 간접전도(선교)의 시대가 왔음을 주장하고 있다.
3) 안타깝게도 기독교의 공신력은 매년 낮아지고 있다.


글 | 이만식

연세대학교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사회복지행정 및 기획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 사회대학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인천 소재 주안교회 석좌교수이며, 한국 심장재단과 장로교 복지재단의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