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목적으로 설정했다는 제7관

군사적 목적으로 설정했다는 제7관

2021-10-20 0 By 월드뷰

한일 관계사 왜곡의 시작: 조일수호조규 – 강화도 조약 (3)


월드뷰 OCTO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글/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이건 굉장히 노골적이다. 이거는 우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의 몸을 여러분의 동의 없이 누군가가 더듬는다. 말도 안 된다. 명백한 주권 침해다. 침략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 정부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능 연계 강의로 인기를 끌고 있는 EBSi의 어느 한국사 강의 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노골적, 허가도 안 받고, 추행, 주권 침해, 침략 의도 등 선정적 비유와 온갖 부정적 용어를 동원하여 전달하고자 한 내용은 다름 아닌 조일수호조규의 ‘해안 측량’ 조항이다. 허락 없이 타인의 몸을 더듬는 것이 인권 침해이듯, 허락 없이 우리의 해안을 측량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는 논리다. 강사는 정색하면서 일본 정부의 노골적 침략 의도와 함께 조선 정부의 무지를 동시에 비판한다. 이 정도면 시청 학생들의 십중팔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일본의 침략 야욕에 분개하고, 조선 정부의 무지와 무능에 분노하게 된다. 해안 측량 조항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설명은 EBSi의 여타 한국사 강의도 별 차이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신편 한국사>의 서술이 이론적 바탕이 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하여 일본군은 측량을 핑계로 조선 연안의 어떤 지점에라도 일시 상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수집된 측량자료는 군부의 주관으로 지도를 작성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경우의 지도란 향후 조선 연근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투에 기여하는 해도 작성이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신편 한국사>

위와 같은 <신편 한국사>의 서술은 모든 한국사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수호조규의 해안 측량 조항은 우리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독소 조항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특히 대부분 교과서에 언급된 ‘해안 측량권 허용’이나 ‘해안 측량권 인정’에서 보듯이 ‘허용’이나 ‘인정’이라는 단어는 부여해서는 안 될 권리를 주었다는 피해 의식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교과서에서는 ‘침략’이라는 단어를 거듭 사용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부각하고 있다.총 12관으로 구성된 수호 조규는 8개 조항이 무역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통상(通商) 조약이다. 4관과 5관은 개항(開港)에 관한 내용, 6관은 선박 사고 시 대처에 관한 내용, 7관은 해안 측량에 관한 내용, 8관은 일본국 인민 관리관(管理官) 설치에 관한 내용, 9관은 상인들의 자유로운 상행위 보장에 관한 내용, 10관은 개항장 내의 범죄자 처리에 관한 내용, 11관은 별도의 통상 장정(章程) 마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 흔히 ‘해안 측량권 허용’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제7관은 다음과 같다.

제7관. 조선국 연해의 도서와 암초는 종전에 조사를 거치지 않아 극히 위험하다. 일본국 항해자가 수시(隨時)로 해안을 측량하여 그 위치와 깊이를 조사한 후 도지(圖志)를 제작하도록 허락하여 양국의 선객이 위험한 곳을 피하고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한다(第七款, 朝鮮國沿海島嶼巖礁, 從前無經審檢, 極爲危險. 準聽日本國航海者, 隨時測量海岸, 審其位置深淺, 編製圖志, 俾兩國船客, 以得避危就安).

선박을 이용한 무역이 전부였던 19세기 말 통상의 핵심은 항구이며 통상은 곧 개항을 뜻한다. 수호조규에는 별도의 조사 없이도 이용할 수 있었던 부산항을 조규 체결과 동시에 개방하고 그 외 두 군데의 항구를 추가로 개방하기로 하였다. 추가되는 항구에 대해서는 5관에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함경 5도(道) 가운데 연해의 통상하기 편리한 항구 두 곳을 선택하며 개항 시기는 1876년 2월부터 계산하여 모두 20개월로 한다.’라고 하여 선택 예상 지역과 그 시기를 정해 두고 있다.

선박의 출입 경험과 연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지역에 항구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가 필수다. 이러한 이유에서 새로 두 군데의 항구를 선택하기 위한 사전 조사 즉, 해안을 측량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 바로 제7관이다. 그런데, 7관에 있는 ‘수시(隨時)’를 ‘자유로이’ 또는 ‘마음대로’라고 해석하여 마치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측량할 수 있는 것처럼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는 원전을 제대로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수시’라는 단어는 시간적 조건을 제시한 것이지 공간적 조건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호 조규에는 3개의 조관에 ‘수시’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자유로이’ 또는 ‘마음대로’라고 풀이하면 해석이 불분명해진다. 때문에 한자의 뜻을 따라서 ‘때에 맞춰’로 풀이하여 2관의 ‘일본국 정부는 지금부터 15개월 뒤 자유로이隨時] 사신을 파견하여’의 뒷부분은 ‘때에 맞춰 사신을 파견하여’로, 8관의 ‘이후 일본국 정부는 조선국에서 지정한 각 항구에 일본국 상민을 관리하는 관원을 자유로이[隨時] 설치하고’의 뒷부분은 ‘때에 맞춰 설치하고’라 해석했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7관은 ‘일본국 항해자가 때에 맞춰서 측량하여’라고 풀이해야 한다. 여기서 ‘때에 맞춘다’는 것은 5관의 ‘1876년 2월부터 계산하여 모두 20개월로 한다.’와 연결되어 20개월 뒤에 있을 개항 시기에 맞춘다는 뜻이 된다. 즉, 7관은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나머지 두 항구의 개항 시기에 맞춰서 해안을 측량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전체 문맥이 자연스럽다.

다음은 해안 측량에 관한 일본 측 자료다. 1876년에 작성된 일본 외무성 자료인 <측량심득(測量心得)>에는 조선의 해안을 측량할 때의 절차가 제시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측량을 시행하는 해군성(海軍省)에서는 측량 2개월 전에 측량할 해안의 지점과 목적, 측량 시작과 종료 시점, 측량 선박의 명칭 · 종류 · 함장의 이름 등을 외무성에 보고하고, 외무성에서는 이를 부산 주재 외무성 관원에게 통보한다. 측량 계획을 통보받은 외무성 관원은 조선 정부에 이를 보고하고, 조선 정부에서는 측량을 시행하는 해당 지방의 관리에게 이를 통보한다. 이후 미리 보고한 바에 따라 조선에 파견된 측량 선박은 지정된 해안에 도착한 후 해당 지역 관리에게 공증(公證)을 제시하고, 계획된 측량을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측량을 하고 싶다고, 또는 측량을 빌미로 시기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마음대로 우리 땅에 상륙하거나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大朝鮮國主上之寶

한편, <측량심득(測量心得)>에는 외무성 외무경(外務卿)이 태정대신에게 올린 의견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조선국 연해에 우리나라에서 측량선을 보내서 측량하는 것은 조선국과의 수호조규 제7관에 제시된 것이므로 조선 정부에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개화(開化)하지 못한 국풍(國風)으로 인해 일단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그 취지를 지방 관민에게 제대로 통보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착오가 없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측량심득(測量心得), 일본 외무성>

여기에서 ‘조선 정부에서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한 것은 수호 조규의 법적 구속력을 말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7관에는 추가 개항을 위한 해안 측량을 ‘허락[準聽]’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각 조관에서 특정 행위에 대해 허락한 경우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수호 조규는 그 안에 있는 12관 전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국가 간의 약속이자 국제법에 따른 합법적 문서다. 전권대관 신헌(申櫶)이 조선국을 대표하고, 전권 변리 대신(大臣) 구로다 기요타카가 일본국을 대표하여 맺은 수호 조규에는 고종의 비준서(批准書)가 첨부되어 있다. ‘大朝鮮國主上之寶’라는 국새(國璽)가 찍힌 비준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항마다 타당하므로 내가 비준하니 오래도록 시행하여 친목을 더욱 두터이 할 것이며, 이 조약 안에 있는 행해야 할 각각의 일은 그대들 모든 관리와 백성이 이 뜻을 받들고 일체를 조약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라(逐款允當, 已予批準, 行諸久遠, 益敦親睦. 其條約內, 應行各事, 凡爾官民, 悉奉此意, 一體按照辨理).

이처럼 조선 국왕이 정당성을 인정하고 성실한 이행을 약속한 수호조규 안에 제7관이 포함되어 있다. 즉, 일본 항해자에게 부여한 해양 측량권은 조선 국왕이 보장한 약속이며, 일본의 해안 측량은 국제법에 의해 체결된 조약에 근거를 둔 합법적 행위이다. 이를 두고 영토 주권을 침해한 행위라 한다면 결국 수호조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자 합법적 행위를 위법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다. 전후 상황이 이러함에도 해안 측량과 관련한 서술을 보면 모두 ‘마음대로’, ‘허용’, ‘인정’ 등의 표현을 동원하여 마치 해안 측량을 허락하지 않았거나, 부당하게 허용 또는 인정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더욱이 일본이 군함을 동원하여 우리의 해안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측량한 지도는 차후 조선 침략을 위한 자료로 이용될 것이라는 해석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가의 건물주 또는 세입자가 되어 건물 임대차 계약을 하거나 유사한 부동산 계약을 경험하는 예가 있다. 만약 건물주(갑)와 세입자(을)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세입자의 요청에 따라 ‘갑은 을이 입주 전에 실내 장식 등의 시설 공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라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했다고 가정해보자. 세입자는 계약서대로 입주 날짜에 맞춰 해당 공간을 실측하고, 자재를 준비하여 시설 공사를 할 것이다. 그런데, 한참 작업을 하는 중에 갑자기 건물주가 나타나서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이건 엄연한 재산권 침해다.’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출입문을 교체하고, 잠금장치를 새로 하는 것을 보고 ‘이건 나중에 몰래 와서 도둑질하려는 것이 아니냐?’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상식선에서나 법률적인 면에서나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양국의 대표가 만나 서로 통상하기로 약속하고 국왕의 비준까지 거친 조약에 따라 실시하는 측량 행위에 대해 ‘허락도 안 받고’, ‘영토 주권 침해’, ‘침략 의도’라고 하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와 EBSi의 강의가 과연 상기 건물주의 행동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국가 간의 조약이든 개인 간의 계약이든 문자로 표시된 조문(條文) 그대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조약 체결 후에 벌어진 상황 변화나 사건 등을 무리하게 끌어다가 과거의 조문을 해석할 경우 자칫 역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과거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부정하거나, 옹호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일제로부터 당한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더욱 치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을 무시한 해석 또한 경계하고 피해야 할 일이다. 과거를 정확하게 성찰할 때만이 우리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수호조규 제7관의 해안 측량과 관련된 한국사 교과서 서술이나 EBSi의 강의 내용은 조약의 내용을 심각히 왜곡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다음 호에 계속)

<cleanmt2010@naver.com>


글 | 김병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 대학교와 경원대학 강사를 거쳐 독립기념관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는 <국역 사재집(思齋集)>, <국역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역주 이아주소(爾雅注疏) 전6권>, <화사 이관구의 언행록>, <國史, 이대로 가르칠 것인가!>, <30년간의 위안부 왜곡, 빨간 수요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