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분배와 정의

소득 분배와 정의

2021-10-17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2


글/ 곽태원(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경제활동을 흔히 생산과 소비로 나눈다. 생산과정에서 소득이 발생하고 그 소득이 가계로 분배되면, 가계는 그 소득으로 물품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이같이 소득의 분배는 경제가 돌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이것은 모든 사람의 이해가 걸린 문제이므로 심각한 정치 문제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윤리적·철학적 문제로 부각되기도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가르는 이념 대립의 중심에 소득 분배의 문제가 있다. 이번 호에서는 소득 분배에 정의와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정리한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소득 분배도 시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가계가 가지고 있는 노동이나 자본을 생산요소시장에 팔아 얻는 수입이 바로 가계의 소득이다. 취업을 하거나, 가지고 있는 건물이나 장비를 임대해 주는 것 또는 현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는 것이 모두 생산요소시장에서 생산요소를 파는 행위이다. 물론 자영업을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자영업자는 스스로 생산요소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되는 경우이다. 여기까지 보면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문제 될 것이 없는 것 같다. 능력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 더 많은 소득을 얻고,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한 사람이 더 큰 돈을 버는 것은 정당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소득 분배의 세 가지 문제점


첫째, 생산요소시장 자체에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용이나 인사에 정실이나 부정이 있다든지 편견이나 차별 혹은 기업이나 노조의 독점력에 의한 왜곡이 있을 수 있다. 1970년대에 필자가 만났던 재미 교포들은 대부분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민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는 미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확실하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둘째, 생산요소의 취득과정이 공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유·무형의 재산이나 신분상의 특권 등의 형성과정에 부조리가 있을 수 있고, 당대에 형성된 자본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된 것일 수 있다.

셋째, 꼭 부당하거나 불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어떤 사람의 타고난 재능이나 특별한 행운 등이 큰 소득을 가져다주는 경우, 그것을 모두 사유화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기가 높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경우 자신의 노력과 함께 타고난 재능이나 외모, 유행 그리고 기술이나 제도의 변화 등에도 적지 않은 신세를 지고 있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그 분야에 대한 급속한 투자의 확대, 생산성의 향상에 의한 여가의 증가와 세계화 등이 아니었다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러 분야의 스타들이 오늘날과 같은 인기를 누리고 큰 소득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소득 분배를 정의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기준


소득 분배를 정의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기준은 그 과정이 정당한 것인가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의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전자는 자유주의자들이 더 관심을 갖는 기준이다. 과정이 정당하다면 그 결과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결과에 더 관심을 갖는 쪽은 평등주의자들이다. 아무리 과정이 정당하다고 해도 나타난 결과에서 개인이나 가구 간의 격차가 있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주장이다.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도 중요하고 또 평등이라는 가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지에 커다란 편차가 있다. 극단적 평등주의자들은 개인의 사유재산권까지 폐지하고, 완전히 균등하게 혹은 순전히 필요에 따라서만 소득이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은 생산요소나 소득의 사유권을 신성시하고, 분배에 대한 모든 공적인 개입에 반대한다. 현실 정치와 정책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고, 한 국가 내에서도 정당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두 입장의 절충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득재분배 정책이 있는 시장경제체제가 그것이다.


재분배와 성장 간의 충돌


재분배 정책을 논의하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입장의 대립과 절충이라는 문제 외에 재분배 정책이 사회 전체 편익의 크기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가 추가된다. 재분배와 성장 간의 충돌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정의의 문제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생각되지만, 공동체의 편익 혹은 행복의 크기와 관련이 되어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의 정책선택에서 정의의 문제보다도 더 비중이 크게 다루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편익의 기준은 정의의 기준보다 더 가시적인 경우가 많다.

앞에서 시장에 의한 분배와 관련하여 제기했던 세 가지 문제에서 첫 번째 문제인 독과점 등의 문제는 시장제도와 질서의 끊임없는 개선 노력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고,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공정과 관련된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 과거의 불의를 모두 찾아내고 그것에 의한 영향을 추정해서 원상을 복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부자들에게 더 큰 사회적 부담을 지우고 있지만, 모든 부자가 다 불의한 부자라고 할 수 없고 불의하다고 해도 그 불의한 정도가 같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정한 해결책은 못 된다. 공평과 관련된 세 번째 문제도 정책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특히 편익의 관점에서 정부의 개입이 가져올 수 있는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참고 넘겨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전히 소득 격차를 줄이는 재분배 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빈곤 문제의 해결, 과도한 격차의 해소 등은 정의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격차의 축소는 사회의 통합이라는 매우 중요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다만 무분별한 복지의 확대나 정부의 과도한 분배개입은 경제의 위축, 즉 편익의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


참된 정의가 가능한가?


정의의 기준이나 원칙을 정할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진지하게 토의해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다면 갈등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너무 확실하다. 사람들에게 참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를 규정하시고 그 기준을 정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의로우신 하나님 한 분뿐이다. 성경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행한 대로의 보응은 인간에게 주신 자유와 책임의 기본원칙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공의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완전평등사회를 이룰 수 없지만, 자발적인 나눔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득 분배를 가지고 정의를 논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소득 분배는 보통 당해 연도 소득분포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평생 소득을 가지고 분배격차를 따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소득뿐 아니라 다른 행복의 요소들, 즉 여가나 가정의 화목, 건강 등도 함께 합해서 따지는 것이 옳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시간과 당신의 자녀로서 누리는 말할 수 없는 행복까지 계산에 넣어보라고 말씀하신다.

<twkwack1@naver.com>


글 | 곽태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위원을 거쳐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에서 2년 그리고 서강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조세연구원 이사, 조세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친 조세 관련 전문가로 부동산 등에 대한 자본소득 과세의 연구에 몰두했으며, 2006년에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