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거대 모순

유발 하라리의 거대 모순

2021-10-16 0 By 월드뷰

사피엔스의 망상(Sapiens’ Delusion) (2)


월드뷰 OCTO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3


글/ 손원준(UC Irvine 의과대학교 뇌공학자)



사피엔스 길라잡이


원제 <사피엔스: 간추린 인류의 역사(Sapiens: the brief history of humankind)>에서 짐작하듯이 <사피엔스>는 보편 인류 역사를 한 붓으로 그려 간추리는 스타일의 책으로, 제라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의 <총, 균, 쇠(1997)>,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와 유사한 형태이다. 7만 년이 넘는 긴 역사를 훑어 내려가려는 포부는 존중받아야 함과 동시에 넓은 범위의 역사에 대한 전문 식견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큰 책임이 뒤따르는 과업이기도 하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이러한 과감한 글쓰기 특징은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뛰어난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서의 그의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덕분에 두꺼운 책이 주는 지루함을 중간마다 완화해주는 역사 에피소드들이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나 <사피엔스>에서 빈번히 접하는 비범한 주장(extraordinary claims)들은 성의 있는 근거와 권위 있는 관련 자료 인용을 최소한으로 요구하는데, 하라리는 이러한 학문적 책임에 마치 면책특권이 있는 것처럼 그 부분에 대해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저자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출판할 자유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동료 심사(peer review)의 다소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논문과 달리, 이 책은 과학서적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음에도 각주와 인용이 미비하여 주장에 대한 변호와 검토가 요구되지 않는 산문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피엔스>가 미치는 영향의 무게, 그 세계관이 주는 함의를 고려해보면 비범한 주장에 대한 정밀 검증이 없어 다소 무책임하다고 생각된다. 실제 하라리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윤리, 도덕, 종교, 가치체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 망상 그리고 신화일 뿐이라는 주장을 거듭한다. 혹시 조금 전 문장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의 과격한 중심주장을 검증과 시험 없이 그냥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과 철학은 예외 없이 그에 따른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세상을 내 안에 담는 세계관과 사상이 사회와 구성원에 미치는 파급은 존재론적 질문, 윤리 도덕, 사회 규범과 법체계 등 닿지 않는 구석이 없다. 일례로 저자의 주장이 실린 다음의 문장을 보자. 과연 누구도 해치지 않는 무해한 중립적 주장인지 판단해 보자.

오늘날 결혼 생활을 특정 짓는 잦은 불륜, 높은 이혼율, 나아가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겪는 갖가지 심리적 콤플렉스들은 어디에 연원을 두고 있을까. ‘고대 공동체’ 이론의 지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생물학적 소프트웨어와 맞지 않는 핵가족과 일부일처제로 살도록 강제한 탓이라고 주장한다(72~73).

하라리의 이런 단정적 어조와 달리 많은 학자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한 이런 진화심리학적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길 거부하며, 일부일처제와 핵가족의 형성은 인간 행태의 핵심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 ‘과학이론’이라는 흔한 오해만큼이나 저런 서술은 과학이론의 반열에 올라갈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예와 같이 이 책에는 조금이라도 공정한 반론을 소개하는 경우가 드물거나 없으며(아주 유명한 반론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 책을 진지하게 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인류 진화에 대한 사변적 복원 그리고 리뷰의 목적


동류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라리 또한 감칠맛 나는 비유를 동반한 역사 해석에 힘을 쏟지만, 이 책은 역사가처럼 실제 역사를 다루기보다는 기록된 역사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작가 본인의 환원주의적 관점(reductionist’s view)을 곁들인 “인류 진화에 대한 사변적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2018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대중적 흥행을 이뤄냈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면에서 논리적 약점과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다. 그간 적절한 비평으로 ‘부당한 면역’이 있었으나, <사피엔스>의 몇 가지 주요한 약점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 독자들을 지적으로 매료시킨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현시대와 세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피엔스>의 사소한 논평은 생략하고, 중요한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주장들이 ‘과연 그러한가?’ 살펴본다.

핵심 논지와 거대 모순: 모든 것은 상상 속의 질서, 즉 허구다. 그러나 내 책 <사피엔스>만은 허구가 아니므로 귀 기울여야 한다.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보편적 기준은 한마디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질서”, 즉 허구다. 이것이 책의 핵심 논지이며, 이것 이외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많은 재료는 사실상 진화심리학에서 전형적으로 재생되는 레퍼토리의 답습에 가까워 독창적인 요소는 의외로 적다. 그 한 예로 인류사에서 농업혁명, 과학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설명하는데, 호모사피엔스는 특별하지 않고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것이 불편한 사실이자 비밀이라고 한다. 또 다른 부분에서 우리는 곧 뇌이며 우리의 자유 의지 또한 호르몬, 유전자, 시냅스에 의해 결정되기에 ‘행복’은 곧 쾌감이며 호르몬과 몸의 전기 신호로 구성될 뿐이라는 놀랍도록 일차원적 단정을 서슴지 않는다(이는 소위 극단적 환원주의적 관점[Reductionism]이다). 그의 논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으며 우리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모든 것은 다 허황된 망상이며 상상의 질서이고 신화라는 대단히 자유분방한 주장을 펼친다. 다양한 문화권의 제도와 종교, 돈, 가치, 문화, 도덕과 윤리, 법과 규범, 자유, 평등과 인권 등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 모든 것들이 실재하지 않으나 인간이 실제인 것처럼 믿고 있는 상상 속의 질서이자 허구라는 식이다. 이런 것들이 <사피엔스>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놀라운 주장의 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합당한 근거를 제공하는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진화심리학의 표준 내러티브(narrative)를 답습하며 윤리를 존재하지 않는 허구로 격하시키면서까지 생물학에 따르면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한편으로 지속해서 동물 학대, 인종 차별, 학대의 역사 등에 대해 비판하는 모순적인 입장을 번갈아 취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은 인간이 만든 허구이며, 존재하지 않고 이에 따라 윤리적이며 비윤리적인 기준도 허구적이라 말하면서(더 나아가 인권도 평등도, 인간의 존엄성도 모두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 동물의 권리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동물 학대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관성이 결여된 주장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례로 도덕적으로 ‘계몽된’ 하라리가 어느 역사와 문화의 과오를 비판할 때 그가 사용하는 도덕적 비판이 흠뻑 묻은 단어인 “야만적 독재”, “악랄한 살해”, “무자비한 억압” 등을 보면 도덕이 인간이 만든 허구일 뿐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뒤엎고 만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의 평등주의 이상이 어떻게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통제하려는 야만적인 독재를 생산해냈는지를 알 것이다(237).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277).

자신이 옹호하고 ‘슬쩍’ 훔쳐 온 세계관의 함의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 세계관의 함의대로 살 수 없는 내면의 충돌의 좋은 예이며, 그 세계관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테스트인 ‘일관성 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라리는 이런 고양된 도덕적 잣대를 어느 픽션과 신화에서 슬쩍해왔길래 어떤 권한으로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를 답할 수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핑커의 <도덕 본능(Moral Instinct)>

우려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관점은 우리의 주관적 경험의 일부가 생물학적 구성의 결과물이며 이 세상에 그것에 상응하는 객관성이란 없다고 가르쳐왔다. 빨간색과 초록색의 차이, 과일의 진미와 썩어가는 고기의 역겨움, 고소 공포와 꽃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공통된 신경계의 설계 특징이며 우리가 다른 생태계 환경에서 진화했다면, 혹은 우리에게 유전자 몇 개가 누락되었다면 우리의 반응은 정반대였을지도 모른다. 자, 만일 옳고 그름에 대한 차이가 우리의 뇌의 연결망의 결과물이라면 빨강과 초록이 차이가 있다는 것보다 더 이를 신뢰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이것이 집단적인 환각에 불과하다면 대량학살과 노예제와 같은 악이 그저 우리의 구미에 당기지 않을 뿐이지 모든 이에게 ‘악’이라고 말할 근거가 있는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도덕 본능(The Moral Instinct, 2008)>

<도덕 본능(Moral Instinct)>에서 발췌한 위의 핑커의 말에 의하면 환원주의적 세계관 (reductionist world view)은 인류가 공유하는 도덕적 토대를 제공할 수 없으며, ‘필연이 아닌 우연에 의해 진화 발전한’ 주관적 기준일 뿐이라는 암시로 귀결한다. 물론 이것을 환원주의/자연주의적 무신론자가 도덕적으로 살 수 없다는 의미와 혼동해선 안 된다. 도덕의 토대(foundation)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과 각 사람 개체가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핑커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이나 노예제와 같이 오늘날 기준으로 분명히 경멸스러운 악조차도 개개인의 “주관적인 구미에 당기지 않다”라고는 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 악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고 그의 세계관의 함의를 솔직하게 설명한 것이다. 참고로 위 발췌문은 핑커가 좀 더 최근에 쓴 장밋빛 미래를 그린 책들과 분위기가 조금은 다른데, 그 이유는 위의 글이 그가 한참 과거인 2008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하라리의 이중 잣대에 비하면 적어도 일관성이 있고 정직하다. 그런데 지금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핑커의 입장은 수년에 걸쳐 변경되었지만, 하라리는 한 권의 책 안에서 입장이 오락가락한다. 전자는 입장의 선회라고 볼 여지가 있지만, 후자는 자신이 주창하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의 함의에 대한 혼동 혹은 인지적 부조화의 모습으로 비친다.

이 모든 것이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환원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환원주의적 유물론자 (reductionistic materialism)는 우리의 정신 현상이 물질 현상일 뿐이기에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환상(illusion)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물질이어야만 진실이며 나머지는 환상이다. 이 주장 자체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만약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 또한 물질에 기반을 둔다면 무슨 이유로 의미가 환상일 뿐이라고 하는가? 하라리는 인류의 세 가지 혁명(인지, 농업, 과학 혁명)에 나타난 위대한 업적은 아이러니하게도 환원주의가 말하는 물질의 합이 아니라, 무형(immaterial)의 개념(idea)에서 발생했고 말한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라는 주장은 하라리 스스로 인간이 이룩한 혁명들이 물질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개념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자신의 통찰을 전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신화와 허구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한편에서는 행복을 뉴런과 호르몬의 함수일 뿐이라는 장난 같은 말로 진지하게 진술하기도 하는 환원주의자의 교리를 준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존재하지 않는 개념, 신화와 허구가 위대한 혁명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촌극을 벌이는 모습은 이 책에 만연한 해학적 요소이다.

“인간이 공유하는 모든 개념(idea)은 예외 없이 허구와 신화에 불과하다”라는 하라리의 주장을 되새겨보자. 그런데 하라리는 아무도 믿을 필요 없는 허구를 팔아 경제적 실리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말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허구에 불과한데 도대체 귀 기울여 줘야 할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다른 이들의 주장은 다 허구이지만 하라리 자신의 주장만은 예외적으로 참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책의 숨겨진 전제이며 이것은 <사피엔스>의 가장 중심된 핵심 주장이면서 동시에 떨쳐낼 수 없는 가장 큰 모순이다.

<wonjsohn@gmail.com>


글 | 손원준

UC Berkeley 전자전산공학과(B.S.)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전자공학 석사(M.S.), 의료생명공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현재 UC Irvine에서 운동장애가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재활공학과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