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친일프레임의 사상적 기반
2021-10-15
월드뷰 OCTO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2 |
글/ 정교진(북한학 박사, 고려대학교 북한통일연구센터)
주체사상에 대한 인식 오류의 원인
몇 달 전, 과거 경기동부연합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기동부연합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았던 주사파의 한 부류이다. 우리 사회에서 주사파(주체사상파)에 대한 인식오류는 상당히 크다. 그 이유는 주체사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주체사상을 인간 중심적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오늘날의 김정은 정권을 추종하는 이들을 ‘종북주사파’라고 애써 표현한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의 주사파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또한,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주된 이유이다. 그 원인 제공자를 황장엽이라고 본다. 황장엽은 주체사상이 자신에 의해 체계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인간 제일 중시 철학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김정일이 변질(변형)시키기 전에는 매우 이상적인 철학사상이었다고 강변했다. 그의 주장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동조했고, 내부적으로 주체사상은 그의 주장대로 그렇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주사파 활동했던 이들이 면죄부를 받는 기이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앞서 기술했던 경기동부연합 소속이었던 이들이 김정은을 추종하며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은 과거 주사파의 핵심가치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북한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주체사상을 잘못 이해하면 잘못된 시각으로 북한을 볼 수밖에 없다.
‘주체’의 어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론은 주체사상의 시작, 주체의 어원을 1950년대 중·소 갈등에서 찾는다. 중·소 갈등 국면에서 즉, 북한이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상황에서 외교적 독자노선(등거리 외교)을 추구하기 위해 주체사상이 대두되었다고 이해한다. 이것은 경제적, 외교적 측면에서는 맞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적 측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먼저 왜 중·소 갈등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는 정치적 요소가 강하다. 왜냐하면, 중·소 갈등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북·소 갈등 양상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련의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정권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이 일어났다. 1956년 2월 말, 소련공산당 대회(제20차)에서 스탈린의 일인 지배체제(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 집단적 지도체제방식을 추구한 것이다. 이 결정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북한의 김일성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 마오쩌둥과 김일성은 스탈린의 정치방식을 선호하며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공산당 대회에 북한 대표단 대표로 참여한 최용건의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소련의 정치 격변에 대해 매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북한의 정치 지형은 김일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연안파(중국계)와 소련파의 견제 구도하에 있었다. 북한의 소련파들은 김일성이 소련의 정치체제방식을 따를 것으로 기대하며 박창옥을 내세워 지도방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1956년 3월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 현상을 일절 부정했다. 한 달 후에 열린 당 대회(4월 23일) 보고에서 처음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내세우며 소련식 정치방식전환을 북한의 실정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김일성이 ‘주체’라는 말을 꺼낸 것은 소련공산당의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을 교조적으로 북한에 적용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여기서 ‘주체’ 용어가 대두된 것이 외교적, 경제적 측면보다 정치적 측면이 훨씬 크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소련의 집단지도체제를 북한에 도입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주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8월 종파 사건, 김일성 독재로 가는 출발점
소련파는 1956년 6월 1일부터 시작된 김일성의 장기외유(소련 및 동구라파 방문)를 틈타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그를 경질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는데, 여기에 연안파(중국계)도 합세했다. 김일성은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1955년부터 북한에서 김일성 개인숭배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김일성의 대형초상화가 군중대회에 전면 등장하였고 김일성 동상(보천보 전적지)도 세워졌다. 물론, 이미 1946년부터 소련 군정의 전략에 의해 월북작가인 한설야의 <영웅 김일성 장군>과 소련군 장교 출신 시인인 조기천의 <백두산>을 통해 김일성이 민족의 영웅, 민족의 유일 지도자로 선전되었다.
김일성이 귀국하자 부수상이었던 최창익(연안파)은 7월 20일에 김일성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김일성 측근에 대한 친일파 논란도 거론했다. 김일성 정권의 핵심 세력 중에서 친일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음 달 8월 21에 열린 당 상무위원회에서 최창익은 다시 김일성 측근(친일파)의 경질을 강력히 요구했고, 연안파 수장이었던 김두봉도 이에 동의했다. 8월 30일에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인 최창익과 윤공흠은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 성토하며, 소련의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했다. 수세에 몰린 김일성은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 세력의 중심으로 최창익과 박창옥(소련파)을 지목하며 당적 처분을 제안했고, 이들은 ‘종파적 음모’, ‘반당적 음모’를 기획했다고 비판받은 후 당에서 제명되었다. 이것이 ‘8월 종파 사건’이다. 이들에게 붙은 또 하나의 죄목이 ‘사대주의자’였고, 사대주의자들을 척결하는 데 활용되었던 것이 바로 ‘주체’라는 용어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일성은 개인 독재 권력을 구축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처럼, ‘주체’라는 용어가 김일성 중심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후, 1967년에 빨치산의 한 부류였던 갑산파가 제거되면서, 김일성 일인 지배체제가 본격화되었다. 이때 주체사상이 구체화 되었고 또 주체사상(당의 유일사상)을 확립(계승)하기 위한 10대 원칙이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이 영웅화를 넘어 김일성을 절대화하며 신격화시키는 출발점이었다. 10대 원칙은 당규약에 명시해 북한 전체 인민이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강령으로 김일성에 대한 절대복종을 끌어냈다. 이후, 김일성에 대한 복종이 김정일, 김정은으로 확대되었다.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12월 12일)도 6개월 전에 수정된 10대 원칙 6조 4항에 추가된 ‘특정 간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 금지’에 따라서 집행된 것이다. 2020년 12월 제정된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도 10대 원칙에서 경계대상으로 ‘부르주아 사상’을 추가한 4조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사상 통제법이다.
2021년 개정 당 규약, 항일에 기초한 주체사상임을 천명
주체사상은 본질적으로 김일성의 혁명 정신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김일성 혁명 정신은 곧 빨치산 정신으로, 주체사상의 요지는 김일성을 민족의 해방자, 구원자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주체’의 어원을 김일성이 중국의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1929)하고, 활동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만주 카륜(화전)에서 김일성이 연설한 ‘조선 혁명의 진로’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이 연설에서 주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이 처음으로 ‘주체’의 의미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은 김일성의 항일혁명 정신을 부각하는 것으로 주체사상의 핵심은 김일성의 혁명 정신, 혁명 사상을 본받고 계승하여 조국 통일을 쟁취하자는 것이다.
2021년 들어, 북한의 가장 큰 변화는 주체사상의 출발점을 이전과 달리 명확하게 제시한 점이다.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 대회를 열어 당 규약을 개정했다. 김정은이 당 총비서로 추대된 것, 김정은의 대리직인 ‘당 제1비서’가 신설된 것을 비롯해 상당히 괄목할 만한 내용도 있지만, 주체사상에 관련된 것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다음은 주체사상의 시작점을 분명히 밝힌 2021년 개정된 당 규약 내용이다. “조선로동당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되고 발전풍화된 주체의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끊임없이 계승발전시킨다”이다. 분명히 주체라는 말이 항일혁명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전의 관련 당 규약인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 이룩하신 주체의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며 당 건설과 당 활동의 초석으로 삼는다(2016 당 규약)”라는 내용을 전면수정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체의 혁명전통(주체사상)을 김일성과 김정일이 이룩한 것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었다. 그런데, 2021년에는 주체사상이 항일혁명 시기부터 출발했다고 못을 박고 있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토대가 항일, 반일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친일프레임의 사상적 기반, ‘주체사상’
왜, 북한은 2021년에 주체사상을 항일혁명투쟁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북한 헌법보다 더 권위 있는 당 규약에 공식적으로 천명했을까? 내부적, 외부적 요인이 작동했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의 항일혁명 정신 계승은 김정은 정권에 있어서는 항미(반미)로 연결된다. 외세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결의로 읽힌다. 외부적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 내부에서 대두되고 있는 친일프레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8월 15일, 광복회 회장은 과거 보수 정부를 모두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프레임은 그 누구도 못 빠져나가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사사건건 사회 전반적으로 친일프레임이 작동되는 저변에는 과연 어떤 사상적 조류가 깔려있을까? 필자는 주체사상이라고 본다. 친일프레임이 극심하다는 것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의 활동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것이다. 김정은의 직접 지시를 받고 활동하는 자들이 이 대한민국 땅에 있다는 것이 끔찍하고 절통한 일이다.
<ezekiel9191@gmail.com>
글 | 정교진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B.A.)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북한 선교(탈북자 사역)를 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 북한선교부장을 역임했으며,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북한학과(Th.M. 및 Ph.D.)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통일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이며, 사랑깊은교회(침례교)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역사 위에 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