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안의 문제점

언론중재법안의 문제점

2021-10-04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글/ 김학성(강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


정부 여당이 가짜뉴스를 없애고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 언론중재법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려다 잠시 멈칫하고 있다. 국내외 모든 언론이 반대하고 유엔까지 나서 우려를 표시했다. 여야 8인 위원회를 구성해서 합의로 중재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합리적 결과도출을 기대하지 않는다. 170석 입법독재의 2년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합리적 의심이다. 언론중재법의 문제점 비판은 그동안 노출된 것 중 일반적이고 중요한 문제점에 한정하기로 한다.


민주주의는 언론이 작동할 때 완성된다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이 국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는 완성된다.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는 주로 언론이 담당하기에 언론은 민주주의의 초석이요 왕관이다. 권력은 민주를 완성하는 언론에 대해 언제나 재갈을 물렸다. 중국을 비판한 홍콩 빈과일보(蘋果日報)의 폐간은 최근의 예일 뿐이다.

어떤 정치체제의 ‘민주 여부’는 표현의 자유 ‘보장 여부와 정도’로 알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을 발현시켜주는 가장 유효하고도 적절한 수단이며, ‘자유민주체제’를 성립시키고 유지 시켜주는 불가결의 기본권이다. 의사(意思)의 자유로운 표명을 가능하게 하는 ‘열린 공간’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민주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헌법의 언론 자유의 ‘보장 방법과 정도’는 미국의 그것과 다르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기본권으로 강하게 보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 헌법 제37조 제1항은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를 금지하고 있다. 또 헌법 제 21조 제2항에서 명시적으로 언론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어 언론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미국이 발전시킨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를 수용하면서 표현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다. ‘명백현존위험의 법리’란 ‘위험한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을 처벌해서는 안 되고 해악의 ‘명백 · 현존’을 요구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보호하는 법리를 말한다.


‘NY Times v. Sullivan’ 사건


언론은 ‘시간과 싸우기’ 때문에 일정한 오보는 불가피하다. 물론 언론의 보도라도 개인의 인격이나 명예를 침해한 때에는 언론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시간과 싸운다고 개인의 인격이나 명예 침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언론의 ‘작은 실수’나 ‘우발적 실수’가 있더라도 언론에 ‘숨 쉴 공간’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언론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 언론은 위축되며, 국민의 알 권리는 더불어 죽게 된다.

‘NY Times v. Sullivan’은 언론의 숨 쉴 공간을 인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몽고메리시 경찰국장 설리번(L. B. Sullivan)이 1960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진압 방법’을 행사했다고 보도한 신문사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다투었다. 신문은 “대학을 포위”하고… 킹 목사를 “7번이나 체포”했다고 했다. 하지만 병력은 ‘배치했으나 포위’하지 않았고, 킹 목사는 ‘4회만 체포’되었다. 연방대법원은 보도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르지만, ‘사실의 오류’만으로 언론의 공직자 관련 기사에 대한 헌법보호가 박탈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통적인 명예훼손 이론을 헌법적 차원에서 재정립한 것으로 ‘언론의 자유 보장’ 역사의 기념비적 결정이다.


입증책임 전환과 징벌적 손해배상은 표현에 대해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민주당은 큰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언론중재법을 강행할 태세다. 언론사에 징벌을 가하면서 입증책임까지 지워 3~5배의 징벌적 손해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피해액 산정을 언론사의 매출액과 연동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에 전례가 없다. 만일 비판적 보도에 대해 권력기관이 합세해서 줄줄이 징벌적 손해를 제기하면 언론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언론을 통제해서 국민의 입과 귀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입증책임은 원고와 피고에게 분배하는 것이 민사소송의 대원칙이다. 입증책임의 전환은 특수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법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이 경우 입증책임을 전환해주면,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한다. 피해자는 손해만 주장하면 되고 가해자가 위법행위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므로,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나눠 가지게 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지만, 약자를 두텁게 보호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 해, 정책적으로 입증책임의 전환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에 대해 회사의 불법을 입증하기 어렵고, 주민들이 구역질과 피부질환을 앓고 있다면 주민은 피해만 입증하고 회사가 불법에 대한 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게 하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만 허용된다.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입증책임을 전환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통상 하도급 거래나 제조물 책임과 같이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불공정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20개 미만의 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고 있는데, 주로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에 적용하고 있다. 경제영역에 적용되는 법리를 정신적 자유인 ‘표현’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려 정부에 불리한 뉴스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달리 보이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일종의 형벌요소가 가미된 민사책임인데, 민·형사가 섞여 있는 미국 법제라면 몰라도 민사와 형사가 엄격하게 분리된 우리나라에서는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중 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주로 가해자에 주목한 것으로 피해자에 대해서도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워야 할 반도덕적 기업에 대해 가중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에는 일응(一應) 수긍되지만, 피해자는 일정 금액으로 족한 배상액인데 이유 없이 3~5배의 배상금액을 받게 된다면 폭리를 취하는 결과가 되어 정의와 공평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게 된다. 가해자는 필요 이상의 배상을 하는 것이 되고, 피해자 역시 필요 이상의 배상을 받는 것이 되어 문제로 지적된다.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 책임의 부과는 ‘민주에 대한 사망선고’다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나, 입증책임의 전환까지 하면서 언론사를 압박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 없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검찰을 충견으로 만드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하더니,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언론개혁이라고 국민을 우롱한다.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며 징벌 대상으로 삼았던 유튜버와 1인 미디어는 손도 대지 않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 정부가 독재정권보다 더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언론을 탄압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문 정권을 연성(軟性) 파시즘 정부라고 하는데 ‘연성’을 빼고 싶다. 언론을 통제하고, 경호원을 늘리면 자신의 안위가 지켜질까. 언론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모든 독재는 언제나 언론을 탄압했고, 그리고는 마지막을 맞이했다.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 책임의 부과는 ‘민주에 대한 사망 선고’다.


왜곡금지법이 난무한다


지금 이 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바닥을 치고 있다. 우리는 외국 보도를 보고 국내 정세를 접한다. 얼마 전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도, 탄도미사일 발사도 미국 언론 보도로 알았다. 또 북한에 의해 사살된 해수부 공무원의 자녀가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하는 나라가 됐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보유국의 모습이다. 대북 전단 발송을 금지하고 있는데, 전단 발송 자체를 불법으로 보고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본질에 대한 침해다. ‘5·18 왜곡금지법’, ‘4·3 왜곡금지법’ 역시 국가가 ‘왜곡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일종의 검열이다. 국민의 입까지 틀어막으려고 한다.

여당은 가짜뉴스를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하지만 국가가 ‘가짜’여부를 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세계적으로도 가짜뉴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골칫거리다. 그러나 이럴수록 절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도 가짜뉴스가 난무하지만, 인내하는 이유는 ‘거짓’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이 억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Barack Obama) 정부는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기자 덕분에 책임감을 더 느꼈고, 더 잘하자고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결국, 언론이 오바마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기자회견만이 국민과의 소통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문 대통령과 결이 다르다. ‘수시로, 직접, 국민 앞에서’ 보고하고 알리겠다는 약속은 선거용 멘트에 불과했다. 믿은 내가 바보였다.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행하려 한다. ‘입법독재’를 경험하다 보니, 한다면 하는 국면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온 나라가 ‘민주당 나라’로 전락했다. 야당도 정부도 법원도 감사원도 검찰도 모두 없다. 대통령이 5년 차에 들어서니 대통령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입법독재’ 뿐이다. 여차하면 법을 만들고, 고치고 자기 입맛대로 한다.


민주당은 법률만능주의에 빠져있다


민주당은 법률만능주의에 빠져있다. 170석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헌법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 다수결로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다수결이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또 다수결이라도 헌법의 기본 정신인 민주와 법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없다. 문 정권은 자신이 미워하는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함으로써 언론에 재갈을 물린 후, 마지막 장애물인 교회를 폐쇄하면 문 정권이 소망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디 한 번 마음껏 해봐라.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양심과 신앙을 탄압하면서 무사한 권력은 역사에 없다.

국민은 지금 거여(巨與)가 질식시킨 정치에 누군가가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지만 정의는 늘 지각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온다. 깨어 있는 국민만이 정의의 지각을 막을 수 있다.

<gimhs@kangwon.ac.kr>


글 | 김학성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Köln과 Kiel 대학교, 미국 William & Mary 대학교, 일본 북해도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강원대학교 법과대학장과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