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생명을 외면하는 잔인한 국가

연약한 생명을 외면하는 잔인한 국가

2021-09-17 0 By 월드뷰

월드뷰 SEPT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4


글/ 이상원(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전 총신대 교수)


지난 5월 10일 관변연구기관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포럼”이 진행되었다. 이 포럼의 자료를 훑어보면서 필자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이 자료집에 실린 국회의원, 정부 기관장, 연구기관장 등의 축사 그리고 발제문과 토론문은 한결같이 교양 있고 온건하고 차분한 어조로 “임신 중지”를 말하고 있었다. 잔인한 태아살해행위인 임신 중지를 어떻게 저토록 차분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양의 탈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수를 볼 수 있었다. 단 한 명도 태아의 생명권에 대하여 거론하는 자가 없었다.


자명하지 않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


이 세미나는 태아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더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고,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난 절대적인 권리라고 전제하고 그 기반 위에서 모든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이 권리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태아는 임산부의 신체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태아 DNA의 절반은 배우자에게서 온 것이며, 유전자 배열도 임산부의 유전자 배열과는 전혀 다르다. 임산부는 태아에게 영양분과 수분 등을 제공하는데, 이 정도를 가지고 태아를 자기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없다. DNA의 절반이 배우자에게서 온 것이라면 배우자도 태아에 대한 권리가 있다. 게다가 태아는 임산부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영혼 곧,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넣어 주신 독립된 실재로서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창 2:7; 슥 12:1). 태아는 생물학적으로 임산부의 신체 일부가 아니며, 영혼에 있어서 완전히 독립된 실재다.


자연유산 유도제와 응급피임약은 낙태약


이 세미나는 자연유산 유도제와 응급피임약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를 말한다. 그런데 자연유산 유도제는 당연히 낙태약이며, 응급피임약도 낙태약이 될 수 있다. 응급피임약은 성관계한 직후에 복용함으로써 낙태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복용하지만, 성관계 후에 사출된 정자와 난자가 만난 후에 약효를 발휘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응급피임약은 바로 낙태약이 된다.


임신 중지 거부하는 의사를 처벌하는 것은 법 만능주의


이 세미나는 임신 중지에 대하여 의료적인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임신 중지 수술을 거부하는 의료진에 대하여 법이나 규정을 통해 강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같은 발상은 매우 위험하고 독재적이며, 법 만능주의적 발상이다. 임신 중지를 의료적으로 지원한다는 말은 살아 있는 태아를 죽이는 목적으로 의료자원을 사용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의료윤리의 제1강령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이 세미나는 임신 중지를 거부하는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을 집요하게 문제기관과 문제 인물로 부각시킨다. 임신 중지 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임신 중지가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각인된 인류 보편의 도덕률이자 성경의 십계명의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라는 윤리적 원칙을 범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에게서는 이와 같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윤리적인 원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헤아리는 어구를 단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다. 더욱이 실정법을 가지고 도덕과 양심의 문제를 강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인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태도다. 국가는 상위의 가치인 양심과 도덕의 문제를 하위의 영역인 법을 가지고 통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깊고 넓고 탄력적인 마음의 세계를 경직되고 좁은 법을 가지고 재단하는 것은, 작은 침대 안에 침대보다 훨씬 큰 프로메테우스를 구겨 넣는 것과 같은 무리한 행동이다.


임산부를 배우자와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잔인한 국가주의


이 세미나는 임신부가 낙태 여부를 결정할 때 배우자와 부모의 동의를 비합리적이라고 보고,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에 근거하여 배우자와 부모의 동의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은 연대성(solidarity) 안에 있다. 성경은 원죄론과 교회론을 통하여 인류의 강력한 연대성을 말한다.

1) 원죄론(롬 5:12~21): 원죄론은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가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어(transfered)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이 같은 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은 스스로 범한 죄 때문에 죄인이 되기 이전에 원죄 때문에 이미 죄인이며,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논증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모든 후손을 하나의 가족적 연대 안에 있는 것으로 보시고 연대책임을 물으신 것이다.

2) 유기적인 몸으로서의 교회(고전 12): 교회는 유기적인 몸과 같다. 몸의 각 지체는 아주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어서 하나의 지체에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는 몸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 같은 인체의 유기적 전체성이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지체와의 깊은 연관성과 상호의존성과 협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한 지체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3) 체인 커넥션(chain-connection): 작고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존 롤즈(John Rawls)가 말한 체인 커넥션은 겨울 타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체인의 줄 하나하나가 모두 연결되어 있듯이 시민은 다른 시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시민 하나가 다른 시민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독립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한 인간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부모 의지의 결과로서 태어나며 어머니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출생한 후에도 부모의 돌봄을 받아야 성장할 수 있으며,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생님들에 의해 양육 받아야 한 사회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사회인이 된 후에도 복잡하게 얽힌 사회 구조망 안에서 수많은 사람의 지원을 받고 협력해야 생존할 수 있다. 완전히 독립적인 “자기 결정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남편과의 협력하에 이루어지는 일이고, 출산 과정에 남편과 부모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아이를 키우는 일에 남편과 부모의 도움이 크게 필요한데도 임산부의 “허구적인 자기 결정권”을 빙자하여 출산문제를 배우자로부터 철저하게 분리해 결혼 관계를 해체하고,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분리해 가족관계를 해체하는 것은 잔인한 처사다. 부모와 배우자의 보호로부터 분리되어 고립무원이 된 임산부는 결국 비인간적인 국가기관에 종속되는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


인간 생명은 수정 순간부터


헌법재판소의 의사낙태죄 위헌결정 이후, “선택권 우선”(Pro-Choice) 진영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구체화하고 더 강화시켜 낙태죄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낙태를 윤리적이고 의료적인 차원에서 정당화하기 위한 후속법률 제정을 요구하고 있고, “생명 우선”(Pro-Life) 진영에서는 가능한 한 낙태허용 기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후속법률을 제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로마서 12:2 말씀을 유념하면서, 이 시대의 대세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지, 수정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영혼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의 생애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사도신경적인 전제로서 확고하게 확립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모아서 사회의 교육, 문화, 법률 등을 이 전제 위에 확고하게 세우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해야 한다. 수정 순간이 새로운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관점은 수정 순간부터 생물학적인 면에서 생명의 특징인 자기복제와 단백질 생성이 시작된다는 기초적인 과학적 사실에 의해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생식세포분열이 DNA의 구성과 배열에 있어서 엄청난 규모의 유전자변환과 자리바꿈의 과정을 겪다가 수정 순간에 이르러서 구성과 배열이 결정되면 그 이후에는 영구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유전학적인 정보도 수정란이 생명의 시작점임을 한층 더 강화해 준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루터(Martin Luther)와 칼빈(John Calvin)과 같은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그 이후의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은 임신 이후의 모든 단계에서 태아를 인간으로 본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지극히 기초적인 생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인간의 생명은 임신 순간 혹은 수정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을 일관성 있게 견지해 왔고, 이 입장은 앞으로도 견지되어야 한다.

초기 태아는 인간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작지 않으냐 하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크다거나 작다는 관점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이다. 초기 배아의 입장에서 본 성인은 우주와 같은 존재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몇백 미터 만 올라가도 성인은 눈에조차 보이지 않는 먼지와 같은 크기로 줄어들며, 초기 배아도 원자의 수준에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우주로 인식된다. 배아는 크기에 상관없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이다.


강간으로 잉태된 것이 태아의 책임인가?


임산부 자신이 강간 등과 같이 원하지 않는 이유로 임신을 한 경우, 임신을 하게 한 주체는 남자인데 임신하게 된 억울함을 태아에게 푸는 것은 엉뚱한 대상을 향해 분풀이하는 것이다. 임산부와 같이 태아에게는 책임이 없으며, 원치 않게 잉태된 피해자다. 같은 피해자들이 서로를 보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국가는 이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은 곧 임산부의 행복추구권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행복추구권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되어 하나의 아름다운 삶을 이룬다. 임산부의 행복추구를 위하여 태아를 희생시키는 행위는 임산부의 행복을 잠시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태아를 희생시켰다는 양심적인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다양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후유증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 생명을 끝까지 지켜냈다는 사실은 임산부에게 도덕적인 정당성과 향후 어려운 인생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자신감 있게 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첫째, 태아에 대한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은 자명한 권리가 아니다. 둘째, 자연유산 유도제와 응급피임약은 낙태약이다. 셋째, 의사들로부터 임신중절수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넷째, 출산의 문제로부터 배우자와 부모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모든 생명윤리 논의는 인간 생명은 수정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도신경적인 터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여섯째, 강간 등으로 잉태된 것은 태아의 책임이 아니다. 일곱째, 태아의 생명권이 곧 임산부의 행복추구권이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한동협 현대성윤리문화교육원 원장, 월드뷰 편집위원, 차바아 운영위원,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카도쉬 아카데미 고문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