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의 정의, 성도들은 어떻게 이루어가야 하는가
2021-07-26
월드뷰 JUL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4 |
글/ 문지호(의사 /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정의(正義)란 이성적인 인간 집단에서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로서 모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범법 행위에 대해 합당한 처벌과 보상으로 교정이 되어야 하고(교정적 정의), 일의 모든 절차는 공정하게 지켜져야 하며(절차적 정의), 복지나 의료 영역에서 본인의 몫을 공정하게 분배받을 수 있어야 한다(분배적 정의). 복지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논의는 주로 분배의 정의에 대한 것이다. 고대 플라톤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러 사상가가 정의에 대해 고민했지만 제한된 재화를 불평 없이 공정하게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 현장에서 정의는 의료윤리의 문제다. 의사에게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키는 원칙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윤리 4원칙(자율권 존중의 원칙, 악행 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 있는데 그중 네 번째 원칙이 정의에 관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게 의료의 혜택을 분배받을 수 있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윤리적인 의료라는 것이다.
정의를 위한 이론들
실제적으로 편중됨이 없이 공정한 분배를 시행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의 원칙은 없다. 의료에 적용되는 몇 가지 정의론이 있다.
첫째는 벤담(Bentham)과 밀(Mill)이 주장한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제1의 원칙으로 삼는다. 행위의 옳고 그름보다는 결과의 유용성이나 사회 전체 행복의 크기를 통해 판정한다.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회복이 어려운 소수를 포기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문제는 결과에만 치중해 정의가 요구하는 도덕적 의무가 무시되는 것이다. 소수의 권리와 자유가 제한되면서 가장 병들고 취약한 계층이 소외될 위험이 커진다. 그럼에도 공리주의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대유행할 때 주요한 기준으로 사용된다.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는 원리라면 내 생명이 위중할 때 내게도 더 많은 확률로 살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직(Nozick)이 주장한 자유주의다. 자유시장의 이상을 받아들인 것으로 법과 질서에 따라 개인 재산과 자유를 존중한다. 기본 의료서비스가 취약 계층에게 제공되고 누구에게나 의료 접근성이 차별 없이 동등하다면, 의료에도 자유시장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환자는 돈이 얼마든 지불하기만 하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의사는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하며 능력껏 진료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돈은 단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일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만 자유롭게 의료를 이용한다면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있다. 가난한 자와 비교하여 부자에게만 의료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전문직(교수, 성직자, 법조인)과 달리 의사에게만 이윤추구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도 보편성에 어긋난다고 본다. 그래도 자유주의는 더 좋은 치료를 원하는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고, 시장 원리에 따라 신기술이 도입되어 의료 발전을 이루는 동력이 된다.
셋째는 마르크스(Marx)가 주장하는 엄격한 평등주의다.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이는 환자와 의사의 자유를 모두 제한한다. 국민은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고, 의사는 영리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나은 의료를 제공할 필요를 못 느낀다. 결국, 하향 평준화로 가게 된다. 상향 평준화를 지향한다 해도 의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빠른 속도로 자원을 고갈시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뿐이다.
넷째는 롤즈(Rawls)가 주장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가 융합된 자유-평등주의다. 국민이 자유롭게 의료를 누릴 권리를 갖는 동시에,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이 의료 혜택을 더 받을 수 있게 차등을 둠으로써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능력 있고 노력을 더 한 자가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에 제한을 두고,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본인의 책임이 아닌 장애나 질병 때문에 사회에서 자신의 공정한 몫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그들이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주는 것이 정의롭다는 것이다. 롤즈는 강자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의 자산(common asset)으로 여겨 약자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진 개인의 능력을 마치 복권 당첨금처럼 평등하게 나누자는 것은 역차별을 일으킨다. 상위 계층에게 과도하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취약층의 무상 복지를 권리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렇듯 정의의 이론들은 각기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다.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면 다른 것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각 문화와 시대에 맞추어 가장 균형 있는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어떤 의료 정책이 정의로운 것인가?
범죄나 화재, 환경오염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나쁘다는 것도 일종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 구성원을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두 가지 영역에서 정의를 지켜야 한다. 첫째는 의료에 배분된 예산을 정의롭게 사용해야 한다. 의사 양성과 의학연구에 재정을 지원해야 하고, 보건의료체계에 적정 보상을 해야 한다. 동시에 상해나 장애를 입은 국민이 자신의 역량으로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일에 지출해야 한다. 둘째는 의료제도를 정의롭게 운용해야 한다. 보장성 강화라는 이름으로 보험적용 범위를 마구 넓히는 것은 위험하다. 불필요한 재정 소모만 늘어날 뿐이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나 공중보건 및 예방에 대해서는 평등주의에 따라 진료를 제공하고, 그 이상의 건강 증진을 위한 진료, 예를 들면 미용 치료나 쾌적한 병실을 이용하는 것 등은 자유주의 이론에 따라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장점이 있다. 정찰제인 건강보험을 통해 가난한 자나 부자나 상관없이 평등하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고 경제적 취약층에게는 거의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심장·뇌혈관 질환이나 암 같은 중증 질환에 대한 치료비는 전체 금액의 0~10%만 내면 된다. 단점은 더 치료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이 있고 환자가 돈을 더 낸다고 해도 건강보험 기준을 벗어난 진료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등한 배분이라는 틀에 갇혀 환자와 의사의 자율권을 제한해 버렸다. 또한, 의사 양성이나 개인 소유의 병원 설립에 일절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의사와 병원을 국가 소유물처럼 여기는 면이 있다. 의사들에게 희생만 강요하는 의료 정책은 정의롭지 못하다. 의료인 개인의 노력과 소유권을 정당하게 지켜주어야 국민도 정당하게 자신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게 된다.
크리스천은 어떻게 정의롭게 살 것인가?
이 땅에서의 정의 원칙은 ‘공정한 분배 방식’에 있다. 그러나 성도들이 따라야 할 정의 원칙은 ‘사랑의 대강령’과 ‘황금률’이다. 첫 번째, 사랑의 대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마 22:37~40)에서 기인하다. 호감 받을만한 조건이 전혀 없는 자를 호감 있는 자처럼 대우하고, 자기를 희생해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태도가 사랑이다.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목숨을 내어주는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보답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황금률은 남에게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다(마 7:12).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황금률은 친히 인간의 입장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정의를 행하는 사랑은 우리의 일상에서 배려와 양보로 나타난다. 특별히 성도들이 배려하고 양보를 해줘야 할 대상은 연약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약자의 아버지라고 하시며 4대 취약 계층인 과부와 고아, 나그네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고 명령하셨다(슥 7:10). 이 명령에는 사랑의 수고가 필요하다. 취약 계층이 떨어질 만한 구멍을 온몸으로 막고 걸려 넘어질 돌부리를 제거하는 몇 가지 일에 성도들이 나서야 한다.
첫째, 의사들은 취약한 환자들에게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어렵게 병원을 찾은 외국인이나 장애인, 가난한 환자들이 자신이 마땅히 받을 의료의 권리로부터 소외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의료 수가가 낮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병원은 적은 돈을 내는 환자를 빨리 보내고 고가의 검사를 받는 환자에게 시간을 더 쏟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취약 계층에 있다. 99마리를 남겨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의사의 전문직 윤리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둘째, 사회 합의를 통해 약자를 위한 법률 개정을 도모해야 한다. 몇몇 개인이 정의롭게 행동한다고 해도 불의한 정책이 존재하는 한 사회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잘못된 의료 정책은 재원을 낭비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정의로운 의료 정책을 제안하고 여론을 형성해 사회 제도를 바꾸는 작업에 성도들이 나서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정의의 분배는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일이다. 성도들은 회생 가능성 없는 말기 암이나 임종기의 죽음 앞에 있는 환자를 존엄한 죽음, 즉 천국으로 안내하는 일을 해야 한다. 무의미한 치료로 환자를 고통받게 하거나, 의료 자원을 소진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통해 환자의 통증을 조절해 주고 그를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이키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마지막 시간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데에 써야 한다.
맺는말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의료의 정의는 약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땅에서 공정하게 사람들을 대함으로 공정하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성도들이 먼저 받은 은혜를 나누는 방법은 배려와 양보를 통해 희생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미국의 초대형 건축 설계회사인 팀하스(Timhaahs)의 하형록 회장은 심장병으로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에게 이식되어야 할 심장을 옆 병실의 환자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옆 병실 환자는 심장을 당장 이식받지 않으면 자신보다 먼저 죽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생명의 기회를 기꺼이 양보한 것이다. 천국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자기 몫을 야무지게 챙겨야 정의롭다는 이 시대에 사랑의 희생은 참으로 위대한 윤리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행한 모든 희생을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정의를 행함으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 살기를 소원한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bestmoon1103@hanmail.net>
글 | 문지호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7년부터 명이비인후과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의료윤리연구회 6대 회장, 대한성과학연구협회 출판팀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총무를 맡고 있으며 온누리교회 병원전도 사역팀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