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기독교세계관 연재를 시작하며

어린이를 위한 기독교세계관 연재를 시작하며

2021-05-21 0 By 월드뷰

어린이를 위한 기독교세계관 (1)


월드뷰 MA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5


공교육의 교육적 기초가 기독교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은 공교육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서는 신앙에 근거해 세상을 배우지만, 공교육 현장에서는 인본주의적이며 과학적인 세상을 배웁니다. 새로 시작되는 이 연재는 부모와 교사들을 위해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기독교적인 세계관 교재를 제시하여 그들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공부하고, 살 수 있도록 도우려는 의도로 시작합니다. 미국 도르트 대학(Dordt University) 신학과 심재승 교수가 쓴 <기독교 교육 선언: 어린이들로 내게 오게 하라>와 이대부속초등학교 교사들이 실제 활용한 내용을 포함한 <교사 가이드북(2012, 교육과학사)> 에서 발췌해, 심재승 교수가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글/ 심재승(Dordt University 신학과 교수)


필자의 <기독교 교육 선언>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창조, 타락, 구속의 순서로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했다. 어린이들의 실제 삶의 환경인 학교, 공부, 일, 놀이, 친구, 가족 등의 주제에 관련해 설명한다. 전체의 내용은 도르트 대학교에서 신앙과 학문을 통합해 교육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교육 체제(Educational Framework)를 응용했는데, 그것은 ‘기독교적 영성의 배양 →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세계의 구조 → 창조세계의 관리와 발전 → 봉사하는 삶의 양식’이라는 순서로 구성된다.

<교사 가이드북>은 <기독교 교육 선언>에 대한 필자의 해설과 이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들이 그것을 실제 학교와 교회에서 활용한 활동을 포함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어린이용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 교육 선언>의 46항에 대한 해설, 2) 각 항을 가지고 교사나 부모가 어린이들과 할 수 있는 활동과 질문들, 그리고 3) 이를 근거로 할 수 있는 나눔과 연극형식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의 도표에 전체 구성을 요약했다.

필자는 <교사 가이드북> 서문에서 어린이를 위한 기독교 세계관을 저술하는 바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뉴스를 통해서 알려지는 것보다 더 많은 아픈 이야기들, 공부에 의한 스트레스, 소외됨, 외로움, 좌절과 열등감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겪는 어떠한 문제보다 더 가슴 아프고 긴급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아이에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도록 가르쳐 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각각 아이들을 만드시고,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 하심으로 구원하시고, 지금도 그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중략… 공부하는 이유가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기보다는, 자신들이 이미 소중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공부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이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외롭고 고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이라는 큰 이야기 안에 속해 있다는 평안과 확신을 전해 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큰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각자가 하고 싶은 일과 소망, 꿈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교사 가이드북, 3)”

이번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는 어린이에게 제시할 기독교세계관을 연재하기에 앞서 필자가 제시하는 ‘기독교 교육에 대한 성경적 기초’와 ‘좋은 부모와 교사의 모습’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 싣는다.


기독교 교육의 성경적 기초


기독교적인 교육을 추구하면서 그리스도인 교사와 부모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 교육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한국사회의 환경이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점뿐 만이 아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그리스도인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사회뿐 아니라 기독교 커뮤니티도 무한경쟁과 물질적인 성공으로 정의되는 교육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공적인 영역도 기독교 신앙에 기초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어떠한 이유로든지 신앙과 삶이 분리된다면, 신앙은 개인적이고 영적인 영역으로 제한되고, 교육은 세상의 영역으로 거기에서 통용되는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근본적으로 삶과 교육에 관련된다고 생각한다면, 아니 성경과 기독교 신앙 자체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기독교적인 교육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독교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해야 하는가’ 하는 확신에 근거한다. 현대 공교육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다음에 성경이 요구하는 기독교 신앙과 교육을 살펴보자.

현대 공교육은 종교와 사물을 분리하거나 인간의 종교성을 부인해서,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이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에 근거해 있다. 그런 근거 위에 일반학문과 함께 사랑과 봉사, 질서와 윤리를 다루는 인성 과목을 가르친다. 온 국민이 공통으로 배우고 살아야 하는 삶을 가르치기 위해 공교육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전술한 사상적인 배경과 함께 전통적인 가치에 뿌리를 둔 초등학교의 공교육에 많이 의존한다. 이런 근거에는 현대 과학적인 무신론과 진화론이 포함된다. 세상은 스스로 있는 것이고, 과학적인 관찰에 벗어나는 존재는 없으며,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고 전제한다. 사람 간에 통용되는 진리와 질서는 인간의 보존과 행복을 위해 사회적으로 약속된 것으로,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고 인정한다. 유일하거나 정해져 있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옳다고 여기는 것이 진리와 지식으로 인정된다. 이런 사상적인 근거 위에 이기주의가 더해진 환경에서, 진리와 질서는 사회의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 인성과 예절, 공공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 사이의 조화도 소중하지만, 실제로 개인의 성공과 행복의 추구라는 절대 목표 앞에서 무력해져 실제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교육은 그런 사상의 패턴을 따라 형성된다. 성공과 행복은 물질적인 부유함으로 정의되며, 교육은 그것을 실현하는 방편이다. 인성과 예절은 개인적인 행복에 부차적인 가치로 치부된다. 그런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사람이 무엇인지,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삶의 매우 중요한 좌표들을 어떻게 형성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공교육이 추구하는 교육의 근거와 내용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가를 봐야 한다. 그것들을 보지 않고 공교육에 자녀를 맡긴다면, 자녀는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사회에서는 인본주의적인 가치를 따르는 세상 사람으로 이원론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똑똑하고 성공하면서 교회에 출석할 사람, 사회에서 성공하고 교회에서도 성공하는 만능 인간, 신앙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는 편안하게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공교육과 기독교 교육을 대비하면서 말하려고 하는 바는, 공교육은 세상 교육이라 죄 된 것이고, 기독교 교육은 신앙교육이라 옳다는 말이 아니다. 진리와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데, 요점은 무엇을 근거로 교육을 형성할 것인가이다. 추구하는 근거에 따라 교육은 전혀 다른 내용과 방향과 목표를 드러낸다. 기독교 커뮤니티 안에서도 신앙에 대한 다른 이해로 말미암아 여러 종류의 기독교 교육이 있었다. 세상은 죄로 가득하기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 탈세상적인 태도, 삶을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으로 나누는 이원론적인 태도, 또는 지식과 학문을 죄악시하는 반지성주의가 있었다. 세상이 험하고 살기 어려울수록 예수님의 피를 통해 고통을 피하고 천국에 가는 것을 영적이며 성경적인 구원이라고 여기는 사상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현실 삶에서 물질적인 복을 누리려는 욕망을 신앙에 포함한다. 그래서 탈세상적이면서 현세 기복적인 이중적인 신앙이 생긴다. 한국의 신앙에 이중적인 영성이 작용했다. 이런 신앙 구조에서 기독교 교육은 교리교육과 경건 훈련에 집중하면서, 자녀들이 공교육에서 세상적인 지식을 배워도 기독교 신앙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교육의 양식은 삶의 영역을 포기해 결국 이중적인 신앙이나 세속화되는 신앙을 가중했다.

성경은 개인적인 구원을 창조와 구속이라는 우주적인 시각 안에서 계시한다. 성경은 한 개인의 위치와 삶의 의미를 선한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완성하시는 새 창조 안에서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궁극적으로 만물의 회복인데, 그 안에 개인 그리스도인의 구속이 있다. 그 안에서 새로워진 자신의 모습과 위치, 풍성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개인의 구원은 죄의 용서와 함께 원래 세상을 다스리라고 인간에게 주신 명령을 새롭게 받는다. 개인 구원을 우주적인 구원 안에서 찾는다는 말은 개인 구원의 의미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적인 의미로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우주와 관련해서 인간의 모습을 주셨던 창조의 원리를 따라서 우주와 관련해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이렇게 형성된 신앙이 세상과 인간 삶을 조망하는 시각을 말하는데, 그것은 다만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복음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된다. 구속된 백성으로 살만하도록 새 사람으로 형성되었으니, 그럴만하게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졌으니, 새 시각과 새 생각으로 새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이며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의미이다 (에베소서 5:15~20). 구속된 삶이 삶 전체에 살아져야 하기때문에 복음은 세상에서 공공성을 가지며,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공공적인 책임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것이 기독교 교육), 그 아는 대로 살아야 하는 (그것이 기독교적인 삶) 정당성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도 그리스도의 가치를 따라 해야 할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면 자녀의 교육과 진학, 직업과 삶은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이겠는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성경은 신앙을 따라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일이며 헛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린도전서 15:58).”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자신의 세상에 세우는 것이다. 우선은 사람의 형성이요, 둘째는 진리와 지식을 갖추어 하나님의 세상에서 올바로 살게 하는 것이다. 원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나 죄로 인해 망가졌다가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된 사람, 거듭나서 새로워진 인간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에 근거해 한 어린이의 소중함, 인간다운 올바른 인성, 인품, 개성, 그리고 소망과 꿈에 관해 어린이를 교육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해 배우는 진리와 지식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세상을 살게 하는 방편이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섬기고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아는 것, 교육과 공부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일이요, 지식은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직업이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현장이기에 직업을 소명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이해되는 교육은 경건 교육이나 교리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교육을 기독교적으로 실행하는 교육을 말한다. 기독교 교육은 현실의 나를 억제하고 제한하고 희생해서 더 나은 가치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속하신 풍성한 나를 현실에 누리게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런 기독교 교육도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삶의 목표와 과정을 다르게 두고서 말이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장래에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와 “너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너의 현재 모습과 능력과 성별에 상관없이 이미 소중한 존재다. 너는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라”라는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또는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는 것과 “무얼 하면서 살고 싶니?”라고 묻는 것도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좋은 부모와 교사의 모습


기독교 교육은 부모와 교사와 교회가 신앙으로 일관되게 협력할 때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 진리와 지식은 창조와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드러난다. 하나님이 지식과 진리의 원천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지식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드러난다. 관계성을 가진 지식은 공동체 안에서 부모와 교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함을 일깨워준다. 부모와 교사가 하나님을 만나 경험하고 말씀과 기도로 경건할 뿐 아니라 신앙을 삶에 일관되게 살아야 한다. 가르침은 언어적이고 개념적인 전달로 시작하지만, 실제 삶과 태도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어린이가 한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진리와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이 현실에 이루어지는 확신과 기쁨을 보게 한다.

개인적인 신앙의 실천과 함께 부모와 교사는 교육이라는 소명 앞에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부단히 노력하지만, 우리의 교육 프로그램과 가르침 자체가 어린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래도 하나님의 어린 백성을 가르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에게 소명으로 맡기시고, 그 소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jay.shim@dordt.edu>


글 | 심재승

칼빈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하고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도르트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기독교 교육, 기독교 대학 교수 훈련과 공공신학에 관련해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