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2021-03-24
월드뷰 MARCH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4 |
글/ 전은성(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연구교수)
시대적 흐름이라는 교만함
“청원에 동의는 하지만, 이건 시대적 흐름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2014년 즈음에, 아내가 필자에게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사이트를 문자로 보내주며 청원에 동의하라고 권유했을 때,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시대적 흐름을 알고 판단할 만큼의 지식과 혜안은 없었지만, 마치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인 것처럼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어떤 의미인지, 내 신앙의 수준이 어떤 정도인지를 알아챘던 아내는 그때부터 필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냥 청원만 하고 조용히 넘어가도 될 만한 상황인데, 그렇게까지 말을 한 것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아내 앞에서 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 제대로 실행해왔다고 잘난 척하고 싶었던 교만함 때문이었다. 외과 전문의 면허를 따고 이학박사 과정을 밟으며 서울아산병원 간담도췌 외과라는 큰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서의 일을 하기 시작하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도를 지나쳐 교만함에 이르렀다. 이제 뭔가 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았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별화된 길임을 스스로 뿌듯해하며, 앞으로도 더욱 잘 될 것이라는 교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아내의 사정을 들어주는 대인배 남편이면서 ‘내 생각은 다르다’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싶었다.
두 번째는, ‘나는 기존의 속 좁은 보수기독교인들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기독교인 국회의원, 기독교인 사업가, 기독교 단체의 각종 비리와 문제점 그리고 대형 교회와 특정 목회자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정이나 성 관련 문제에 관한 뉴스를 들으며 더욱 날 선 비판과 비난을 가하고 있었다. 나처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바로 기독교를 더욱 기독교답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자신을 정당화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일도 이런 일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았다. 과연 이 일을 반대하기 위해 문자를 돌리고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이 법을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차별을 막아내자는 큰 틀에 동의하는데, 과연 한두 가지의 문제점으로 인해, 이 좋은 법을 막자고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기독교인들에게 다른 차별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나?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나? 나는 ‘속 좁고 편협한 기독교인들과는 결이 다른, 좀 더 수준 높고 합리적인 기독교인이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인간적 교만과 세상적 시각의 고착화
매일 아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며, 기존의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이슈를 접하고, 김어준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판단했다. 저녁 퇴근길에는 JTBC ‘뉴스룸’의 팩트 체크를 통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손 아나운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공감하고, 그 존재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사회적 존경의 대상인 특정 기독교인들의 재정과 성적 추함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뉴스엔 조이’의 사명감에 경의를 표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면서는 예배 때의 말씀을 스스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설교가 얼마나 내 기준과 판단에 흡족한 것이었는지, 이 부분에서의 해석과 적용은 합리적이었는지, 오늘 적용한 부분은 지나친 과대해석은 아닌지, 이 내용이 과연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인지, 목사님이라서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닌지….’
이내 주일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며 감동하는 일련의 행위가 반복되었다.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파묻히고 매몰되어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기에, 기존의 기성 교인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의 무비판적이면서도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기존의 기독교인들보다 진일보한, 합리적이고도 균형 잡힌 젊은 기독 사회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정당화했다.
이사와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한 멈춤과 방향 전환
이런 저런 이유와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감안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사했다. 이와 함께 다니던 교회도 자연스럽게 집 근처로 옮기게 되었다. 이즈음, 중국에서 코로나 감염병이 시작되었고 점차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덮쳐, 나와 가족의 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자주 있던 직장의 모임이 취소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가정에서 학습하게 되었고, 새로운 교회에는 아는 분도 없고 맡은 직책도 없었기에 교회의 모임에도 가지 않게 되었다. 주변 지인들이나 친인척과 만남도 멈추었기에 집, 직장, 교회 오로지 이 세 곳만 다니며 온전히 나와 가족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여러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는데, 우선은 멈춤으로 인한 예배에 대한 집중과 감사였다. 이사를 하며 출근 시간이 짧아져서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사라졌고, 우리 부부와 자녀들의 단합과 건강을 위해 저녁 산책을 시작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퇴근 시간이 당겨지며 저녁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 다른 모든 교제가 중단되면서, 매주 예배에 집중하게 되었고, 목사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다. 여러 환경과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게 하셨다.
두 번째는,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바라보게 하셨다.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고, 현재의 복음과 자유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찾아보게 하셨다. 교회 목사님을 통해 이 시대의 영적 전쟁 흐름을 깨우쳐 주셨고,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 편에서 말씀과 기도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함을 분명히 알게 하셨다. 염안섭 원장님의 “레인보우 리턴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적 전쟁의 현장을 바라보게 하셨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동역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 이정훈 교수님의 <교회 해체와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통해 작금에 벌어진 여러 현상이 대한민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싸움이라는 것과 악한 영적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하셨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막기 위한 길원평 교수님의 목숨 건 헌신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게 하시사, 몇 년 전 “시대적 흐름”이라고 비아냥거렸던 나의 무지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드셨다. 또한, 김지연 약사님의 <덮으려는 자, 펼치려는 자>를 읽고, 교회를 지키기 위한 강의와 동영상을 보며 앞서 계신 분들의 눈물과 헌신에 감사했고, 나의 가정과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허락하셨다.
지금은 하나님의 시간
이제, 대한민국에서 복음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땀으로 이 나라를 지켜주신 신앙 선배들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그 길을 따라 걷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현재 필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을 따라, 우리와 다음 세대 그리고 이 나라에서 복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가고 있다. 먼저, 주님의 뜻에 따라 앞서 싸우며 헌신하는 주의 자녀들을 기억하며 중보 기도하고, 그러한 단체들의 활동을 위해 소액이나마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법이 보이면 반대의견을 표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한 법이면 찬성의견을 표시하며 이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고 있다. 가끔은 앞서 싸우시는 분들과 함께 1인 시위에 동참해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하기도 하고, AIDS와 성 감염 관련 공청회나 AIDS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발표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의학적 사실에 대해 여러 자료를 찾고 분석하며 정리하는 직업을 허락하셨기에, 의학적 지식과 40대 남성의 체력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월드뷰>에 무언가 글을 쓰며 활동을 알릴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다. 최근에 하나님께서 깨워주셨기에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 있는 평범한 40대 남성중의 한사람일 뿐이지만 다만, 같은 기독교인 중에서 여전히 잠들어 계신 분들이 꽤 많이 계실 것으로 생각하기에 짧은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름의 마취제에 취해 지금이 어느 정도의 위기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많은 기성세대가 다음 마취제를 맞기 전에 얼른 깨어나,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해 힘써 기도하며 영적 전쟁을 이어나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장 18절)”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교만하고도 어리석은 자를 기다려주심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사,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이심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나에게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복을 주셨으며, 앞으로도 더 큰 은혜와 평안을 허락하실 것을 믿는다.
지금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 앞으로 걸어갈 그 좁은 길을 많은 주의 자녀들이 함께 동역하며 걸어가되, 기쁨으로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go1040@hanmail.net>
글 | 전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