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를 소개합니다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를 소개합니다

2021-05-02 0 By 월드뷰

월드뷰 MA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OVER STORY


최근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한동안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일명 ‘정인이법’이 통과되었고 양모에게는 사형이 구형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에 반해서 두 딸을 키운 뒤, 두 아들을 입양해서 훌륭하게 키운 최재형 감사원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입양문제가 사회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1970년에 14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우주 공학자가 되고, 한국입양홍보회(MPAK)를 설립한 스티브 모리슨 장로를 인터뷰해 그의 삶과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편집자 주)


김승욱: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어린 시절 어떻게 부모님을 잃고 미국에 입양되셨는지, 출생부터 고아원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티브 모리슨: 감사합니다. <월드뷰> 가족들과 제 삶의 여정을 나누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저는 강원도 묵호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최대천)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학대와 상처를 입은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얼마 후에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에 저희 형제는 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다리 밑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거리를 헤매면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묵호역 굴다리 밑에서 삶은 게를 파는 어느 아주머니가 제 동생을 키우겠다고 데리고 갔습니다. 그 후로 저는 혼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부모님과 동생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어느 신사 한 분이 저를 남강 애육원이라는 고아원으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약 6개월 정도 살다가 홀트 고아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제 한쪽 다리가 불구라서 홀트에 가면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제가 6살이었습니다. 홀트 고아원에서 해리 홀트(Harry Holt) 할아버지를 만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2019년에 소천하신 말리 홀트(molly Holt) 여사님은 고아들에게 서툰 한국어로 성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고아원에서 8년을 지내다가 14살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김승욱: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16년 동안 미국 국제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1955년에 해리 홀트 할아버지 부부는 월드비전 설립자이신 밥 피얼스(Bob Pierce) 목사님을 만나 6·25 전쟁으로 고통받는 고아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서 보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많은 재산을 팔아 한국에서 고아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슬하에 1남 5녀의 자녀가 있었고, 농업과 제재소 사업으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고아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8명의 혼혈(GI Babies) 아동을 입양하려고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미국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수많은 사람의 반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홀트 부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여덟 명의 고아를 입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고아를 돕고, 가정을 찾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홀트 고아원에는 많을 때는 약 700명의 고아가 있었고 많은 아이가 입양을 통해 가정을 얻었지만, 장애아동은 입양이 되지 않아 성인이 될 때까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일산에 약 300명이 사는 장애인 복지센터가 되었습니다.


김승욱: 장애아동은 입양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더 안타깝군요. 고아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장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장로님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입양이 되었군요. 보통 입양은 어릴 때 많이 되는데, 장로님은 14살이라는 나이에 미국에 입양되셨습니다. 늦은 나이에 입양되어 언어문제도 있고, 학업을 따라가기 매우 어려웠을 텐데 양부모님 밑에서 잘 성장해서 퍼듀 대학교(Purdue University)와 남가주대학교(USC) 대학원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고, 전 세계 GPS 시스템에 없어서는 안 될 인공위성 개발자가 되어서 미 우주항공연구소(Aerospace Corporation)의 수석 연구원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전공 분야도 소개해주시고, 자라면서 인종차별은 없었는지 등 미국에서 입양아로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스티브 모리슨: 당시 나이 14살에 미국으로 입양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저에 대한 목적이 있으셔서 불가능한 입양을 가능하게 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광성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국에서의 공부 수준은 중간 정도였습니다. 특히 제일 싫어했고 못 하는 과목이 수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상하게 수학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학과 물리를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주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아서 우주공학으로 명성이 높은 퍼듀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서 4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 3개월 전에 여러 기업체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는데 마침 대학원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있는 Hughes(휴즈, 지금의 Boeing)에서 인공위성 연구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가 남가주에 있는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한국어를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심한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차별을 그렇게 크게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김승욱: 양부모님께서 매우 훌륭하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입양을 결심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티브 장로님을 키우셨는지 양부모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저의 부모님은 슬하에 1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하기 2년 전에 같은 고아원에서 살던 제임스를 입양해서 네 번째 자녀가 되었고, 제가 그 후로 다섯 번째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으며, 믿음과 행동이 같은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부모님의 입양 의도는 처음에는 단순히 연민(Compassion)의 마음이었습니다. 자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오직 제게 부모가 필요했고 가정이 필요했기에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으로 입양을 했다고 합니다(제 아버지의 고백). 그러나 하루는 아버지께서 오히려 저를 통해 그들이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가운데 아버지께서 제게 평생 잊지 못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신은 평생 살면서 몇 가지 잘한 결정이 있는데 제일 잘한 결정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고, 두 번째로 잘한 결정은 어머니와 결혼한 것이었고, 세 번째로 잘한 결정은 저를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고 하셨을 때 제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날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했습니다. 술에 취한 모습으로 저를 학대하던 낳아준 아버지가 있었다면, 모리슨 아버지는 정반대로 아들의 자격이 없는 저를 입양을 통해 아들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제 모든 아픔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오래전에 저를 낳아 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승욱: 정말 감동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장로님께서도 이러한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서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두 명의 한국 아이를 더 입양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저의 부모님이 슬하에 세 자녀를 낳고 두 자녀를 입양했다고 해서 저도 그것을 본받아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살다 보니 딸 셋을 낳았고 입양 홍보를 하면서 두 아들을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과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였고, 더 나아가서 제가 입양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으로 입양을 했습니다. 조셉은 3살 때 입양을 했고, 가벼운 자폐 기능과 ADHD가 있는 아이여서 키우기 조금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24살의 청년으로 사랑과 정이 매우 많은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벤자민은 14살에 입양을 했습니다. 이것도 우연이었는지 입양 수속을 시작할 때 11살 정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13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에 올 때쯤 14세가 되었고 이제는 24살의 늠름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두 아들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도가 많이 필요한 아이들입니다.


김승욱: 지난 1999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입양홍보회(www.ampak.com)를 창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단체를 설립한 목적이 무엇인지 이 단체에 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는 한국의 부정적인 입양문화를 불식시키고 모든 아동이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국내입양 홍보 활동을 중심으로 세워진 단체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때만 해도 입양을 홍보하는 기관이 없었습니다. 특히 공개입양을 주장하며 입양의 아름다움과 행복함을 비밀입양을 통해 숨기지 말고 공개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더 많은 아이에게 가정의 기회를 만들어 주자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입양홍보회는 지난 22년 동안 한국의 부정적 입양문화를 긍정적으로 이끌며 수천 명의 아이에게 가정을 주는 사역을 이루어왔으며, 세월이 흐르며 공개입양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또한, 입양 가족들에게 필요한 자녀 양육·교육 및 세미나, 입양 캠프와 자조 모임 등 여러 행사를 통해 더 건강한 입양 가족을 만드는 데 힘써왔습니다. 또 ‘입양의 날’을 제정하고,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대한민국의 여러 학교에 입양 강사를 배치해서 ‘반(反)편견 입양교육’을 통해 미래의 입양문화를 바로 잡아 더 많은 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미국 한인사회에는 입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있는 비영리단체나 종교 기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런지요? 유럽에는 브뤠셀, 네덜란드, 스웨덴 그리고 미국 뉴욕 등에 한국 입양인 네트워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며, 어느 정도 활발하게 일을 하는지요?

스티브 모리슨: 미국 한인사회에서 입양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단체는 미주 한국입양홍보회 (MPAK-USA)입니다. 한국입양홍보회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한국에도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종교단체는 아니지만 MPAK-USA는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단체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이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신 것처럼 한국입양홍보회는 모든 프로그램과 교육과 정책에 있어서 아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한인 성인 입양인 네트워크는 전 세계 약 20곳에 퍼져 있습니다. 저는 성인 입양인 단체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성인 입양인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작은 생명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성인 입양인들과 함께 ‘입양인 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 of 2021)’ 캠페인에 참여한 적은 있습니다. 1983년 전에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이 양부모의 무관심으로 시민권 취득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어도 문화도 낯선 한국 땅으로 추방되는 것은 미국 이민국의 정책에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 해 동안 법을 바꾸려고 해도 결과가 없던 일이 올해에는 꼭 통과되기를 기도합니다.


김승욱: 지금까지 스티브 장로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제 주제를 옮겨서 입양문제에 대한 장로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입양특례법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국내외 입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1976년에 입양특례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2011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정부가 입양절차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입양을 아동학대라고 하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된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에서는 골수이식을 위해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한 후 파양하는 내용이 있어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스티브 모리슨: 2011년도 입양특례법은 악법입니다. 입양특례법은 2012년도 8월에 시행되었는데 그 이후로 한국의 국내입양이 절반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예를 들면 2011년도 국내입양 수는 1,548명이었는데 2012년도에는 1,125명으로 하락했고, 2013년도에는 686명밖에 되지 않아 약 800명 이상의 아이들이 가정으로 가지 못하고 시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국외입양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심하게 급감해서 900명이 넘은 국외입양 수가 2013~2015년도에는 평균 372명밖에 되지 않아 약 500명의 아이가 가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입양이 약 800명 줄었고, 국외입양이 약 500명이 줄었으니 입양특례법 전이였다면 가정에 입양될 수 있었던 1,300명의 아이가 결국 시설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이런 통계를 보면 입양특례법을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어서 수많은 미혼모가 아이를 거리에다 혹은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입양특례법 전에는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가 월평균 3명이었는데 특례법 이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사례가 월평균 2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아기를 유기하도록 만든 법이 입양특례법입니다. 저는 그때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특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한 해에 1,300명의 아이가 가정에 가지 못하고 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제 곧 10년이 되어가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잘못된 법으로 인해 피해를 주고 있는지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일은 절대로 미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양부모는 있을 수도 없고, 해외입양 부모들을 악마로 만드는 드라마 작가에게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국내에는 해외로 자녀를 입양 보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제 잘살게 되었는데, 아직도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한국은 아직도 해외로 입양을 보낸다고 생각하십니까?

스티브 모리슨: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입양이 더 활성화되어 버려지는 모든 아기가 가정에서 자라야 하는데 그들을 입양할 만한 가정이 한국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해외로 보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입양은 언젠가 중단되어야 합니다. 언제 중단해야 하나요? 더이상 보낼 아이들이 없을 때 중단해야 합니다. 입양특례법 같은 악법은 국내입양마저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의식은 아직도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욱: 사실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의 입장에서는 해외입양을 반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장로님은 저희 <월드뷰>에 “입양은 기회다.”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입양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위탁보호제도는 실패했다고 주장하셨는데, 미국의 사례를 좀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외입양이 왜 위탁시설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어린 나이에 해외로 입양된 입양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인을 자신의 의지 없이 뿌리 뽑아 다른 나라에 팔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인종차별까지 받게 되면 결국 회의감을 느껴 해외입양을 반대합니다. 그들의 처지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남을 기회를 해외입양을 통해 잃어버렸다고 하는 데 얼핏 들어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생모와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입양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쪽만 보는 것입니다. 만약 입양이 안 되었다면 분명히 시설에 들어가 살았을 것이고, 지적으로 심리적으로 큰 손해를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대학은 커녕 18살이 되면 대부분의 고아들이 독립하면서 겪는 고통과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못 할 것입니다. 해외입양은 이런 어려운 일을 면하기 위해, 또한 어린 생명에게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고아원에서 8년을 살았고, 퇴소하기 4년 전에 입양이 되어 새로운 기회와 가정을 갖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 함께 고아원에서 살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입양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고아원을 퇴소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힘든 고생의 길을 걸어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입양을 가서 풍요롭게 잘 자라며 좋은 교육도 받고, 과학자가 되었지만 제 친구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이 거지 수준의 삶을 살았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미국의 위탁보호제는 실패입니다. 예를 들면, 교도소의 약 70%의 죄수들이 위탁보호제를 받으며 자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태어나서부터 18세까지 약 7~8번의 가정을 옮겨 다니며 망가집니다. 위탁제도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장기적인 위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 가정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사랑을 받아야 아이가 삶의 지침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방법은 입양입니다. 입양을 더 활성화해야 합니다. 입양은 한 아동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김승욱: 입양기관들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 입양을 부추긴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이런 악덕 기관이 자주 등장합니다. 입양 때문에 생모와 아이들이 분리되고 있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장로님의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해외입양은 사업적 수입을 늘려 한국 경제에 이득이 되기 위한 정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주장은 입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며, 그들이 해외입양의 문을 닫으려면 본인들 스스로가 먼저 앞장서서 입양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서 비판의 목소리만 내는 것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양 때문에 생모와 아이들이 분리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입양은 이미 분리된 아동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입양을 막는다고 해서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다시 데려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아기를 포기하려는 미혼모에게는 어느 정도의 상담과 경제적인 도움으로 자신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상담도 원치 않고, 경제적인 도움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아기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된 여성에게, 혹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여성에게 강제로 키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일과 입양 홍보는 함께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느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열린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합니다.


김승욱: 생모의 권리가 중요하냐, 아동의 권리가 중요하냐의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입양의 문제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권리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키울 수 없고,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권리의 문제가 아니고 개인이나 사회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사회 구성원들이 따뜻하게 이들을 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 장로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스티브 모리슨: 제 개인적으로는 생모의 권리보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동의 권리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의 주장처럼, ‘나의 몸 나의 선택’ 보다 아동의 생명권이 더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어떤 권리도 생명을 가진 아기가 살아야 할 권리보다 우선이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양에 있어서는 생모의 권리를 앗아간 적이 없습니다. 입양아의 생모는 이미 아이를 포기하면서 혹은 유기하면서 스스로 그 권리를 버렸습니다. 반(反)입양운동가들이 입양은 원 가정을 해체하고 있다는 거짓 주장을 내세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입양을 나쁘게 색칠하기 위해서이며 자신들의 어젠다(연구 주제)를 내세우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김승욱: 마지막으로 <월드뷰> 독자와 한국 교회에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스티브 모리슨: 2004년도 온누리교회 양재동 캠퍼스에서 한국입양홍보회가 전국입양가족 대회를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하용조 목사님께 입양가족들에게 격려 말씀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시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 무대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하용조 목사님의 첫마디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 말씀을 오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입양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양부모들에게 큰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입양하셨듯이 우리도 그 사랑을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양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입양은 한 생명에게 삶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김승욱: 오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