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2021-01-22
월드뷰 JAN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5 |
글/ 책읽는사자(작가, 사자그라운드 대표)
책이라는 미디어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아이폰을 내놓았다면 1445년 무렵 독일의 금세공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세상에 활판 인쇄기를 내놓았다. 비록 그 인쇄기로 영업망을 구축하고 다양한 책을 출판해 유럽에서 큰 재미를 본 사람은 상인 ‘요한 푸스트(Johann Fust)’였지만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발명품은 인류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이제는 책이 사회 특권층만 접하고 누릴 수 있는 비싸고 귀한 물건이 아니라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 미디어’가 됐다. “한 집계에 따르면 구텐베르크의 발명 후 50년 동안 생산된 책의 양은 그 이전 1,000년 동안 필경사들이 만든 책과 맞먹는 수준이었다(120).” 정보 습득 방식의 대전환, 민주화. 그 중심에는 종이책이 있었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다.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자신의 대표 저서이자 미디어계의 기념비와도 같은 책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대개 사람들은 콘텐츠가 곧 메시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는 미디어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속성과 영향은 간과하거나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클루언은 이런 맥락에서 “결국 미디어 콘텐츠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가해지는 영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미디어 그 자체보다 덜 중요해질 것(14)”이라고 말한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 차라지 못한다면 미디어의 영향력은 “우리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놓는다는 것이다(15). 쉽게 말해 하루 종일 유튜브 영상만 보고 있는 사람은 유튜브 속 영상들이 아닌 유튜브 그 자체에 종속된다는 말이다.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튜브, 구글, 인터넷,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접하는 각종 미디어가 각각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그 메시지 ‘내용’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이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TV, 라디오,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각종 전자 미디어를 생각해 보자. 전자 미디어 예찬론자들은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인류가 또 한 번 진일보(하기만) 했다며 ‘변화는 곧 옳음’이라는 식의 섣부른 주장을 펼친다. 인쇄 혁명과 스마트폰 혁신을 본질상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신중론자들은 변화와 변질을 예리하게 구분하려 노력한다. 무조건적인 추앙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진영의 대척이 갖는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종이책 대 인터넷이다. 한쪽은 종이책을 철 지난 발명품으로 이미 그 영향력을 빠르게 잃고 있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종이책은 콘센트가 필요하지 않다며 이것이야말로 최첨단 발명품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그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논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여태껏 자신의 신념이나 취향에 기반을 둔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독자에게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or Brain 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각종 뇌 과학 데이터를 제시해 ‘종이책 독서’의 장점과 ‘인터넷 이용’의 단점을 팩트(fact) 위주로 설파한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의 생명력이 줄기는커녕 점점 더 비싼 가치를 발현하고 있는 이유는 이 책이 그 어떤 본질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짜다. 특히 평생에 걸쳐 종이 성경책 독서를 해나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숙독(熟讀) 해야 하는 이유다.
뇌는 변한다
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최근 들어 뇌 과학계에서는 학습과 운동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수백 년 동안 생물학과 신경학은 ‘성인의 뇌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정설처럼 받아들였다. 이게 뭘 의미할까. 인간은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카를 마르크스도 이 기계적인 결정론을 지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사고, 인식, 행동방식은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66).”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뇌가 변한다. 우리의 미래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유의미한 복음적 자기계발과 그에 따른 위대한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한소원 책 《변화하는 뇌》에서는 “사람 뇌의 신경세포가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새로 생긴다는 주장은 지금도 논쟁 중이다. 새로 생기는 뇌세포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 만들어지는 신경세포는 수적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뇌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학습은 결국 뇌의 연결망을 바꾸는 작업이다(227)”라고 변화의 범위와 균형을 적절히 정리했다.)
그럼 종이책이라는 미디어는 우리 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아니 오히려 인터넷 미디어 사용이 우리 뇌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나열하는 것이 종이책 독서가 갖는 담백한 위대함과 조용한 저력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심리학자, 신경생물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웹 디자이너들이 시행한 연구들은 같은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온라인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는 겉핥기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한 생각 그리고 피상적인 학습을 종용하는 환경 속으로 입장하는 셈이다(193).” 사람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와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이 일어난다. “책을 읽을 경우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결정과 관련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202).” 반대로 인터넷 검색을 할 때는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를 나타냈다(202).” 쉽게 말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웹 서핑을 할 때는 우리 뇌가 수많은 자극을 인지, 판단, 선택,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깊은 이해력이나 기억력이 저해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카카오톡을 메시지 보내기, 랭킹 뉴스 기사 제목과 댓글 추이를 살피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뉴스피드 살피고 ‘좋아요’, ‘공유하기’ 누르기, 유튜브 추천 동영상 보는 동시에 댓글 읽기, 동시에 영상 링크 복사해서 타 어플에 공유하기 등을 책상에 차분히 앉아 로마서 넉 장 읽는 것보다 어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및 각종 전자 기기의 등장은 E-book 시장을 활성화하고 우리 삶에 극적인 편의성과 효율성을 선물해 주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얻기만 한 게 아니라 잃은 것도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집중과 몰입, 진지한 사색 능력과 생각과 감정의 깊이를 잃고 있다. 독서와 관련된 신경 회로가 연결되고 그 연결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과 스마트폰 사이에 족쇄가 연결되고 그 쇠사슬의 두께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 하물며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민감하기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좋아요’와 ‘댓글’, ‘DM(direct message)’ 알림 소리와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도 스마트폰은 우리 사고에 일상적인 지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매우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릴 경우, 전화를 확인하든 아니든 간에 집중력이 약해지고 일을 엉성하게 수행함이 밝혀(363)”졌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피험자와 스마트폰 간의 위치에 따라(작업 중 스마트폰 화면을 아래로 뒤집어 놓거나, 호주머니나 가방 안에 넣어두거나, 스마트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두거나) 작업 기억용량(working memory capacity)과 유동적 지능(fluid intelligence) 측정 지수가 각기 다르게 나왔다는 점이다. 그러니 심중의 평안 속에서 이뤄지는 깊은 기도 생활이나 말씀 묵상 깊이는 어련하겠는가.
정보 다음 통찰, 통찰 다음 ‘은혜’
뇌는 정말 변한다. 조지메이슨 대학교 크래스노 고등연구소(Krasnow Institute for Advanced Study)를 이끄는 신경과학과 교수 제임스 올즈(James Olds)의 관찰에 따르면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59)”라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배우는 내용은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포 간 연결 부위에 담겨 있다. 연결된 뉴런의 끈은 우리 사고에 있어 진정 살아 있는 통로를 형성한다.(60)” 즉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64).” 하루 내내 전자 기기 속 인터넷에 파묻혀 사는 인간의 뇌와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인간의 뇌는 같을 수가 없다. 그게 거짓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용자가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느냐는 곧 영성의 차이로 볼 수도 있을 테다.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독서에 관한 매우 뛰어난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만 제대로 읽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왜 독서를 해야 하느냐’라고 따져 묻지 못한다. 그렇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뇌의 상태’를 알려주는 꼴이니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은 단단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 더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올바른 정보를 안다고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 은혜를 받아야 바뀌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사고의 종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며 올바른 실천의 시발(始發)은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봤자 예수님을 거부하는 무지와 교만만 깊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아니겠는가.
하여 우리는 정보 다음 통찰, 통찰 다음 은혜가 필요하다. 시대가 악할수록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여파로 2021년 새해 시작이 밝지 못한 것이 사실이나 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내 작은 습관부터 바꿔나가자. 그 시작이 독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이다. 구하면 주신다. 올해에는 우리 모두 더욱 ‘성령 충만한 뇌’로 변모하여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올려드리자. 그 방법 오직 은혜뿐이다.
<thelion333@naver.com>
글 | 책읽는사자
작가이자 콘텐츠 제작가.성경적 관점으로 다양한 사회 주제를 다루고 있다. 책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실제적이면서도 바른길을 제시하려고 노력 중이며, ‘사자그라운드’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