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자들
2021-01-13
월드뷰 JAN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1 |
글/ 이상원(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실재하신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세계 안에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실재하심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들을 두셨다. 인간을 기준으로 할 때 이 증거들은 인간의 외부인 자연 세계(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롬 1:20)와 인간의 내부(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롬 1:19)에 동시에 주어졌다. 인간 내부에 주어진 증거는 신(神) 인식 능력을 뜻한다. 첫째로, 모든 인간은 무한이 무엇인지, 편재(遍在)가 무엇인지, 전능이 무엇인지, 전지(全知)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런데 무한, 편재, 전능, 전지 등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속성들이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보잉 747기와 같은 정교한 장치는 기계 밖에 있는 인격적인 제작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그런데 자연 세계 안에는 보잉 747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정교한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파리의 비행술은 보잉 747기의 비행술을 월등히 능가하는데, 파리가 몇 마리인가? 파리와 같은 비행술을 가진 곤충의 종류는 몇 가지이며,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파리와 비슷한 비행술을 구사하는 새들의 종류는 몇 가지이며,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인간이 내부에 있는 신(神)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자연 세계를 관찰하면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주와 세계를 세속 철학에 담으려는 인간의 무모함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은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렸다(롬 1:23). 이 과정에서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은 몇 단계를 거쳐서 그 질과 규모가 현저히 떨어졌다. 첫째 단계는 우주를 초월하시는 인격적인 창조주가 피조물 가운데 극히 작은 하나의 개체인 동물로 쪼그라든 것이다. 쪼그라듦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둘째 단계는 ‘모양’에 반영되어 있다. 모양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이코노스’는 그림자라는 뜻이다. 작은 개체인 동물로 쪼그라든 하나님은 그나마도 동물 그 자체가 아닌 동물의 그림자로 위축되었다. 쪼그라듦은 한 번 더 일어났는데, 세 번째 단계의 쪼그라듦은 “우상”이라는 명칭에 나타나 있다. 우상은 헬라어로 ‘호모이오마티’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우주를 초월하는 인격적인 창조주 -> 극히 작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인 동물의 수준으로 쪼그라듦 -> 동물의 그림자로 쪼그라듦 -> 그림자의 희미한 복사본으로 쪼그라듦!’ 이것이 우상이다.
이 우상은 아주 작은 상자와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세속 철학의 역사는 이 초라하고 작은 상자 안에다 우주와 세계를 모두 담아 그 의미를 설명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 온 역사였다. 우주와 세계는 이 작고 초라한 상자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 상자를 과감하게 버리고 우주와 세계를 다 담을 수 있는 더 큰 상자를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세속 철학은 이 작고 초라한 상자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에 미련이 남아 이 상자 안에다가 우주와 세계를 꾸역꾸역 쑤셔 담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계속해 왔고 또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무모하게 가능하게 하려고 하면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다. 마음이 거칠어지고 잔인해질 수밖에 없다. 일종의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세속 철학의 짜증, 신경질, 강박증은 상자 안에 담기지 않는 우주와 세계의 현실을 잔인하게 잘라내든지, 아니면 처절하게 망가뜨려서 상자 안에 억지로 구겨 넣든지 두 길 중에 하나를 택하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경험론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경험적으로 증명된 사실 곧, 감각을 통하여 보고, 느끼고, 알아보고, 측정하는 것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 우주와 세계를 모두 담으려고 했다. 흄에 있어서는 감각적 경험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감각적 경험으로 증명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진리들과 도덕적 진리들이 엄연하게 존재했다. 흄은 이것들을 보자 짜증과 신경질이 났다. 마침내 흄은 경험 과학을 벗어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 이론을 다룬 책들은 궤변과 환상으로 가득 찬 것들이므로 모두 불태워 버리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관념론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우주와 세계의 모든 법칙을 인간의 순수 이성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 담고자 했다. 칸트에 따르면 우주와 세계 그 자체 안에는 어떤 법칙이나 질서와 같은 것은 없었는데, 인간의 순수 이성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를 이용하여 법칙과 질서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처럼 우주와 세계에 법칙과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의 자아를 초월적 자아로 승격시켰다. 칸트에게 있어서는 초월적 자아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주와 세계에 법칙과 질서를 두셨다는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외면할 수가 없었다. 칸트는 궁여지책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법칙과 질서의 세계 안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다락방 하나를 만들어 창조주 하나님을 그곳에 가두어 놓고, 경비병을 세워 지키게 하면서 필요할 때만 경비병의 감시 하에 잠깐잠깐 나와서 무대에 오르도록 허용했다. 마치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놓았던 것처럼!
우주와 세계를 작은 상자에 담으려고 시도하다가 갖게 된 짜증, 신경질, 강박증이 집단으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표출된 현대사회의 영역들로는 나치즘, 마르크스주의, 신마르크스주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유전적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을 들 수 있다.
나치즘은 아리안 우월주의라는 종족의 우상을 절대 가치로 삼고 이 절대 가치 안에 세계를 모두 담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인류는 아리안 우월주의에 갇힐 수가 없었다. 아리안족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주장은 거짓된 신화에 불과했다. 나치즘은 인류가 아리안 우월주의에 들어오지 않자 그 집단적인 짜증과 신경질을 2,500만 명이나 되는 타 인종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것으로 풀어 버렸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이익이라는 우상에 모든 인류를 구겨 넣으려고 하다가 뜻대로 안되자 경제적으로 평등한 유토피아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러시아,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등의 지역에서 적어도 1억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을 잔인하게 학살했고, 이 사회들을 도덕규범과 인간의 자유가 말살된 폐허로 바꾸어 놓았다. 마르크스주의가 한번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는 도덕이 붕괴되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다. 예컨대, 러시아에서는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도덕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비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공산주의가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후유증이다.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라는 모토를 성적으로 해방된 사회라는 모토로 바꾸고 마르크스주의의 실천 전략을 그대로 채용한 신마르크스주의는 모든 사회의 문제를 성 해방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한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성 해방은 절대적인 가치이자 신이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성 해방이라는 상자 안에 인류 사회를 구겨 넣으려고 하지만 이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없는 너무나 많은 다른 욕구들이 실재한다.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짜증과 신경질을 반영한 장치가 차별 금지법이다. 차별 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이거나 도덕적인 훈계 한마디를 혐오로 몰아서 아무리 작게 잡아도 몇 천만 원, 여차하면 몇 억 원 단위의 무거운 벌금형을 부과하는데, 이런 형량은 건전한 법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성애자의 케이크 제작 요구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빵집 주인에게 수십만 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짓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고 있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은 개인의 정체성을 그가 속한 집단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요구는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로 간주하며,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 요구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가치로 간주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 이외에는 어떤 절대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은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어떤 다른 도덕적 가치나 법적인 공정성도 잔인하게 짓밟아 버리고 막무가내로 나아간다.
유전적 결정론은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 매료된 나머지 DNA를 불사신으로 숭배하면서 우주와 세계의 모든 문제를 유전 정보를 가지고 풀어내려고 한다. 유전적 결정론은 법, 도덕, 종교 등까지 모두 유전 정보를 가지고 해명하고자 한다. 유전적 결정론은 유전 정보라는 작은 상자에 담기지 않는 것들은 환영으로 처리해 버리려고 시도하며 환영으로 처리가 안되면 신경질적으로 잘라내 버리거나 무모한 비판의 폭탄을 퍼붓는다. 그 대표적인 책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펴내어 이른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다. 번역본으로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기독교의 방대한 문헌을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인용하지도 않고 기독교에 대해서 쓴 무책임한 책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이 깊이 배어 있는 책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해답
세속 철학이 우주와 세계를 담으려고 하는 너무나 초라하고 작은 상자라면, 성경이 제시하는 상자는 우주와 세계를 담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고 큰 상자다. 성경이 말하는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 안에 내재하시기 때문에 우주와 세계를 속속들이 아시면서도 또한 우주와 세계를 초월하시기 때문에 우주와 세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실 수 있다. 따라서 이 하나님은 우주와 세계를 넉넉하게 담을 수 있으며, 우주와 세계 안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진정한 해답을 줄 수 있다.
2021년에도 변함없이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상해 낸 초라한 작은 상자 안에 우주와 세계를 담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작은 상자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비판하는 작업을 하는 동시에 성경이 제공하는 넉넉한 상자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주와 세계의 의미를 제시하는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