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개정과 관련한 형법상의 문제

낙태죄 개정과 관련한 형법상의 문제

2020-12-04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2


글/ 이흥락(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일반적으로 처벌하는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안에 법 개정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0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11월경 국회에 제출하도록 일정이 잡혔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규정하는 성범죄, 근친상간, 모체 건강의 위험 등과 같은 낙태 허용 사유를 형법에 옮겨 규정하면서, 그 외 ‘임신이 사회적 경제적인 이유로 여성을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낙태를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형법 개정안에 신설하였다. 즉, 임신 14주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24주까지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허용되는데 이 경우 모자보건법 소정의 상담을 받고 1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의사가 시술하는 경우 낙태죄로 처벌받지 않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낙태죄 자체를 아예 폐지할 것을 주장하며 개정안이 미흡하다는 일부 여성계의 주장과 생명의 존귀함을 무시하고 너무 쉽게 낙태를 허용한 부당한 입법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이냐? 생명권이 우선이냐?


낙태를 전면 허용하자는 이들은, 태아의 장래에 대해 전인격적이고 삶의 총체적인 고민 끝에 내리는 임신한 여성의 낙태 결정에 대하여 이를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임신과 태아 양육의 책임을 모두 여성에게 돌리는 것으로 국가의 억압적인 간섭이며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임신 순간부터 모성애가 작동하여 태아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신한 여성이며, 온전한 사랑 가운데 양육되지 못하고 방치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출산을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으로,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점을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권 보장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태아의 생명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전제로 낙태를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주장도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과 공공 기관의 통계에 차이가 있지만,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연간 수십만 건 내지 그 이상의 낙태가 행해지는 현실에서 생명권을 좀 더 중시하자는 것은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또, 통계에 의하면 낙태의 95.3%가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는데, 개정안이 임신 14주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낙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현재 이루어지는 낙태를 모두 허용하는 것이며, 더구나 ‘사회 경제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임신 24주까지 낙태할 수 있다는 것은 낙태를 사실상 전면 허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현행법하에서도 낙태죄 처벌은 미미한데(연간 10여 건에 불과), 낙태 허용의 요건을 더 완화할 경우 낙태죄 규정은 사문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일리가 있다.

나아가, 일부 여성계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모든 여성이 낙태 허용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바른인권여성연합(대표 이봉화)이 지난 10월 19세 이상 여성 1,21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여성의 33.8%가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 위험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낙태에 반대하며, 20.3%가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시점인 임신 6주 이전까지만, 18.7%는 임신 초반부인 10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자고 응답하였다. 즉, 여성의 90% 이상이 임신 10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므로 일부 여성계의 낙태 전면허용 주장에만 이끌려 입법을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개정안은 낙태를 과도하게 허용


태아는 임신 5~6주가 되면 심장 박동이 시작되며,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생명으로 인식된다. 미국의 경우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바 있으나, 최근 많은 주(州)들이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고 심장박동법, 즉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불허하는 입법을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료계의 공식 입장은 모체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임신 10주 이내에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10주가 지나면 태아의 골격이 형성되는 등 낙태 시술의 방법도 달라지며, 무엇보다도 낙태 시술이 모체에 미치는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도 낙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이론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임신 20주 내외가 되면 태아의 독자 생존이 가능해지며, 이 시기 이후의 태아는 분만의 대상이지 낙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이 시기 이후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태아가 모체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 전자는 낙태로서 허용되고 후자는 영아살해의 범죄가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안은 낙태를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현행법과 달리, 여성의 사회 경제적 사유를 근거로 하여 낙태를 일반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적 경제적 사유’는 너무나 광범위하여 삶의 곤란한 정황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결정 이유에서 밝힌 사회 경제적 사유만도 10가지가 되며, 이에는 아이를 더 낳아 키울 여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학업이나 직장 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 상대 남성이 육아 책임을 거부하거나 소득이 충분하지 못하여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경우 등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면 처벌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벌 규정은 법률 명확성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러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을 처벌 조각 사유로 삼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 더구나 사회 경제적 사유로 ‘심각’한 곤경에 처할 우려가 법률상 요건인데 이러한 ‘심각’이나 ‘곤경’ 등은 모두 불확정 개념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모자보건법에 따른 일정한 상담 절차를 거치면 사회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이다. 상담을 받으면 사회 경제적 사유가 인정된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회 경제적 사유의 존부는 재판에서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할 대상인데, 상담받은 경우 이를 인정하라는 것은 법관의 재판권을 부당히 제약하는 것일 수 있다.

나아가, 임신 14주 또는 24주까지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것은 민법 규정과도 모순된다. 민법은 상속이나 친자인지, 손해 배상 등의 경우 태아를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낙태를 법률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이러한 민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개정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인데,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도 더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결정 이유에서 조건 없는 낙태는 임신 12주 이내, 사회 경제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 22주 이내에서 어느 정도로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를 입법으로 정하라는 취지인데, 개정안이 전자를 임신 14주까지, 후자를 임신 24주까지로 확대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낙태가 아닌 출산 지원으로 풀어야 할 문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스스로 자기 삶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인격의 발현으로서 중요한 권리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라고 보기 어렵다. 설령 아기의 불행한 미래를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부모이든 누구든 천부의 생명을 처분할 수 없고, 아이의 불행을 염려하여 낙태한다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인간이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옳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임신한 아이의 양육과 장래를 여성 혼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더구나, 태아 단계에서 불치의 기형아임이 판정된 경우나, 나이 어린 여성이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거나 이혼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경우 아버지 또는 남편이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살 것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참으로 갈등과 고민에 놓이는 것이 진지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일 것이며, 그래도 낙태는 안 된다고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

결국, 낙태의 문제에서 여성만 홀로 책임지라는 식은 온전한 해법이 아니다. 외국의 사례처럼 생물학적 부(父)인 남성에게도 일정한 기간 아이 양육의 책임을 물리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을 보존하고 확대하는 것은 개개 구성원인 여성이나 상대 남성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나서야 할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이를 보장하고 책임져야 한다. 원치 아니하는 임신을 피할 사전의 조치(교육 등)를 충분히 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책임이고, 생명이 탄생한 경우 이를 없애지 아니하고 살리는 것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져야 할 몫이다. 아이를 지움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낙태의 문제에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여성이 안심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가 충분히 양육될 수 있다는 인식과 환경의 조성 및 사회적 지원 체제를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니 낙태는 안 되고 생명은 살려야 옳다고 하는 주장이 ‘임신갈등 상황’에 놓인 여성에게 허공의 말로 들리지 아니할 것이다.

<hllee@lawlogos.com>


글 | 이흥락

서울대에서 헌법(석사)과 형사법(박사)를 전공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을 거쳐 25년간 검사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한국형사소송법학회 및 비교형사법학회 상임이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