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중 연대와 한국의 진로

미국의 반중 연대와 한국의 진로

2020-10-12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글/ 신범철(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미중 신냉전의 도래


미중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이미 미중 경쟁은 2000년대 접어들며 점점 더 가시화되었고, 2012년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공세적 외교와 지난 4년간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 속에서 격화되고 있다. 미국에 도전하려는 중국의 행보도 그렇고, 11월 3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기에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중 간 치열한 경쟁의 여파가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의 이웃 국가인 한국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인다.

미중 신냉전이라고 하지만 아직 중국의 국력이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오늘날 국제정세를 정확히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중국의 군사력 역시 핵과 미사일 전력을 강화하고 항공모함 전단을 출범시키는 등 위상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간 구축해 놓은 미국의 첨단 군사력과 비교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 거의 모든 전력 면에서 중국은 미국에 열세를 보인다. 아마도 현 단계에서는 중국이 내해(內海)라고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대등한 전력을 구축하는 수준일 뿐이다.

그런데도 미중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중국의 경제력 때문이다. 2019년 기준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4조 달러가 넘어 세계 2위이고, 구매력 조정 GDP는 27조 달러 규모로 세계 1위다. 수출 역시 2조 4천억 달러 규모로 세계 1위다. 물론 부실대출, 부동산 거품 등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적지 않지만, 6%대 성장을 하고 있기에 여전히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경제력은 군사력과 외교력의 원천이다. 중국이 계속해서 국방비 지출을 증가시키고 제3세계 국가들을 경제지원으로 포섭하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대응


중국의 경제적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와서, 특히 미국이 경제위기를 겪었던 2007년 이후, 중국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해 도전했다. 남중국해의 인공섬을 무장하면서 군사적 도전을 본격화했고,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를 본격 추진하며 글로벌 차원에서도 미국의 질서에 공개적으로 도전했다. 일대일로는 궁극적으로 중국 중심의 지역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임과 동시에 해양세력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 결과 해양력을 기반으로 패권을 유지해왔던 미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뒤늦은 미국의 대응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중국의 국력은 어느새 미국에 도전할 만큼 성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기존의 첨단군사역량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Treaty)’을 탈퇴하여 중국을 공략할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곧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공정무역을 강조하며 중국의 부당한 행동을 이유로 관세를 대폭 인상했다. 매년 수천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중국의 비교우위를 관세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견제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미국 백악관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U.S. Strategic Approach to PRC)’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동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기존의 외교나 군사 분야 외에도 정당, 경제정책, 정보, 인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이기에 이러한 정책이 실효를 거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여야를 떠나 마찬가지이다.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대중 강경노선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중 패권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의 반중국 연대 시도


최근 들어 미국은 독자적인 노력만으로는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느꼈는지, 부쩍 다자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주로 양자외교 관계에서 미국의 힘을 과시하며 상대 국가를 압박하거나 설득해 왔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다자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반중국 연대와 관련해서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다자주의적 접근을 전개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이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 압박 방식은 이제 미국 혼자만의 힘이 아닌, 동맹국들과 우호국들의 협력에 기반을 두려는 모습이다. 이들 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경제적으로 그리고 안보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협력망을 구축하며, 군사적 차원에서 미국, 일본, 호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쿼드(Quad)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먼저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의 첨단기술을 불법적으로 훔쳤다고 주장하며, 일부 중국 기업들을 글로벌 공급시장에서 배척하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가보안에 위협이 된다고 자국의 통신 기간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동시에 화웨이에 반도체를 수출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미 영국, 인도 등은 5G 네트워크 구축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는 등 미국과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는 반도체 수출국인 대만과 한국이 직결된 문제인데, 우리의 경우 지속적인 반도체 수출을 하고 있지만, 대만의 경우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기지국이나 서버를 포함한 통신장비에 필수적인 반도체 구입이 어렵게 되면 화웨이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 이미 미국은 화웨이의 21개국 38개 계열사까지 거래제한 명단에 올려놓음으로써 중국의 대표적 첨단기업인 화웨이 무력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틱톡(TikTok)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같이 중국 첨단기업을 국제사회에서 퇴출함으로써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은 자국 중심의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구축했다. EPN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 진영의 새로운 경제 협력망 구축 시도다. 그간 중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저가 공산품 부분에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의료품 및 기타 제품 등으로 생산 영역을 확대해왔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고 공장 가동 중단 등 그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 영역에서 중국에 높은 의존도를 갖게 될 경우 중국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것이 EPN이다. EPN을 통해 미국은 법치, 재산권, 주권, 인권 존중 등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간의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협력의 대상국으로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일본 등을 꼽고 있는데, 그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미국의 강도 높은 참여 요구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반중 군사 블록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쿼드(Quad) 협력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미중 간 군사 분야 대립의 중심에는 남중국해가 있다. 미국은 일본, 호주, 인도 등과의 쿼드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은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규정하는 중국의 입장을 반박하며 “남중국해 중국 도서의 12해리 이외에 대해 중국의 어떠한 해양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이 지역에서의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참여를 설득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대해 중국이 그나마 군사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남중국해에서도 양자적 차원은 물론이고 다자적 차원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이미 호주와 일본은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고, 인도도 지난 6월 중국과의 국경 지역 충돌 이후 반중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아직 그 밖의 국가들은 의사결정을 미루며 상황 변화를 관망하고 있는데 향후 얼마나 많은 국가가 미국에 동조할 것인가가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경쟁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반중 연대 구상과 한반도 정세


미중 신냉전과 반중 연대 구축 시도는 북한 문제와 한미동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미중 경쟁은 북한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미국과 점차 대등한 경쟁을 벌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할수록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중국의 호응이었는데 그들 역시 미국과 대치 중인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에 북중 관계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비핵화 협상이 본격 시작된 2018년 이후의 북한 행보를 보면 중국을 잘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북한과 동맹조약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도 북한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 이행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비핵화 행보에 나서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비핵화 행보를 거절하며 버티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북한은 북중 관계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과정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그리고 다섯 차례나 개최함으로써 후원자를 확보했다. 미중 신냉전이 북핵 문제에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반면 미중 대결 구도는 한미동맹과 한중전략협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자 하는 한국에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미 미국의 반중 경제 네트워크 동참 요구와 중국의 보복 압박에서 오는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보다는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의 제1 무역국인 한국에 대해 미국의 요구에 동참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선택을 하든 미국과 중국을 모두 만족하게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에 한국이 놓인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진로


미중 신냉전은 격화되겠지만 그 향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며, 그 선택의 기준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어느 일방의 승리가 확실하다면 이에 편승할 필요가 있지만 당분간 그 향방이 불투명하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 존중의 세상은 아직 중국의 행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은 한미동맹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올 수 있는 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한 행보를 병행해야 한다.

미래 미중 패권경쟁의 결과를 알 수 없다 해도 현재 보이는 미국과 중국의 국력 격차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더라도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당분간 세계 1위를 유지할 것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국가로서 정치적 영향력도 최소화할 수 있기에 최적의 동맹 파트너다. 따라서 외교와 군사의 영역에서는 한미동맹 편에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다만 경제의 영역에서는 실리 추구 측면에서 반중국 노선의 선두에 한국이 위치할 필요는 없다. 중국에 대한 실질적 압박은 미국 동맹국들의 선택을 보아가며 천천히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미국과 더욱 가까운 동맹국들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이나 호주의 선택을 보아가며 따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미중 신냉전의 시대에 우리가 취해야 할 선택은 가치에 기반을 둔 실용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이다.

<bcshin70@gmail.com>


글 | 신범철

현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기획관과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실무 경험을 쌓았고, 국립외교원 교수 및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 및 연구 분야에 공헌해 왔다. 2007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국제관계에서의 무력사용을 주제로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