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미중 관계 전망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미중 관계 전망

2020-10-13 0 By 월드뷰

월드뷰 OCTOBER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글/ 서정건(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의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2차 대전 이후 자유 진영의 리더 국가, 세계의 소비자이자 경제 최강국, 한국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줬고 지금도 상호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혈맹, 트럼프(Donald Trump)라는 희한한 대통령을 뽑기도 하는 나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 논쟁을 벌이는 곳 등 미국에 대한 설명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 글이 분석하는 미국은 ‘선거의 나라’다. 1789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래 대통령 선출과 의회 선거를 중단한 적이 없다. 남북전쟁 당시 선거를 취소하자는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고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은 1864년 대선을 치러냈다. 올해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도 대선 연기를 진지하게 논의하지는 않는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린다.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미국은 그동안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통해 다른 나라에 모범이 되어왔다고 자부해왔다. 올해 11월 3일 미국 대선은 어떨까?


2016년 미국 대선과 트럼프 시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2016년 대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2016년 11월 8일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막말과 허세, 성 추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아웃사이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영부인,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백악관에 입성하였다. 충격 그 자체였던 지난 대선을 둘러싸고 전문가와 언론은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저소득-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전폭 지지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중국과의 무역으로 동네 공장이 문을 닫아야 했고 늘어나는 소수 인종 탓에 미국의 주인 자리를 위협받던 보수 백인들이 분노하였다. 따라서 기득권의 화신 힐러리 대신 자신들의 심경을 거침없이 대변하던 트럼프를 찍었다는 것이 선거 이후 정설이 되었다. 한 가지 유의점이 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인 경합주의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Barack Obama)를 뽑았던 이전 두 번의 대선에 비해 상당수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그것이다. 트럼프가 이긴 것이라기보다 힐러리가 진 것이라는 유권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2017년 1월 이래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보여 준 행보 또한 파격 그 자체다. 눈여겨볼 점은 트럼프가 선거 당시 내세운 공약들을 철저히 이행하는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기간 공약(公約)은 선거 이후에 공약(空約)이 되기 쉽다. 그런데 민주주의와는 도통 거리가 멀어 보이는 대통령 트럼프는 달랐다. 캠페인 기간 약속한 대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에서 탈퇴했고, 이란 핵 협정을 파기했으며 파리 기후 협약을 폐기했다.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과 한미 자유 무역 협정(KORUS FTA) 재협상을 끌어냈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집요하게 성사시켰다. 만인의 웃음거리였던 국경선 장벽 건설 또한 2019년 민주당과의 담판 실패 이후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결국 그 시작을 알렸다. 더구나 유례없는 경제 활성화를 통해 경제 분야 하나만큼은 50% 넘는 지지율을 줄곧 유지해 왔다.


2020년 미국 대선 현황: “트럼프 vs. 반(反) 트럼프”


그런데 2020년 대통령 선거 해에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와 사회, 경제 전 영역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미국 선거 역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올해 2020년 대선 경우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로 최근 24년간 지속된 경향이 재연될 것인지 혹은 중단될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이전과 달리 코로나 비상사태로 인해 민주당 후보 경선 스케줄이 단축되어 버렸고 어느새 바이든(Joe Biden)이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다. 현직 대통령이 떠오르는 상대 정당 도전자를 일찌감치 눌러 앉히는 데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잠행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한 선거 운동을 벌이는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경쟁자 바이든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굴레 씌우는 데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결국 2020년 미국 대선은 지난 3번의 현직 대통령 재선 과정과 달리 두 후보를 비교하는 ‘선택 선거(choice election)’가 아닌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referendum election)’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크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이 좋아서(30%)”라기 보다 “트럼프를 낙선시키기 위해(70%)” 이번 선거에 임할 태세여서 올해 미국 대선은 “트럼프 vs. 반(反) 트럼프” 싸움으로 진행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관계 악화


시각을 국제 이슈로 돌려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트럼프 통치 관련 또 다른 특이점 중 하나는 임기 중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대대적 무역 전쟁을 선포하고 밀어붙였다는 사실이다.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점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주로 선거 기간 중에 중국을 비판하다가 당선이 되면 세계의 공장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과 협력해 왔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줄곧 중국 시진핑(習近平)과의 개인적 유대감을 과시하면서도 이와는 별개로 엄청난 관세 폭탄을 수단으로 중국과의 무역 적자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연일 대통령이 미디어를 통해 비판하는 나라 중국에 대해 미국 국민의 비호감도는 급기야 60%를 넘어서게 되었다. 특히 보수 언론과 트럼프 대통령이 팬데믹 위기의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하면서 전체주의 나라 중국과 자유주의 나라 미국 간 때아닌 체제 경쟁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중이다. 얼마 전 휴스턴(Houston)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미국 정부가 간첩 활동 혐의로 폐쇄한 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온 것이므로 미국 국민의 피해를 중국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도 의회에 제출되었다. 홍콩 자유화 운동 지지를 목적으로 트럼프는 홍콩의 특별 지위를 박탈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사태 발발 전 트럼프가 시진핑과 무역 분야 1단계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잊혀졌다.


21세기 미중 관계 전망: 친구인가 아니면 적인가?


그렇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은 ‘신(新)냉전’ 관계로 치달을 것인가? 1962년 케네디(John F. Kennedy) 행정부의 쿠바 미사일 위기 대응을 분석하여 명성을 얻은 하버드 대학 앨리슨(Graham Allison) 교수의 분석대로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 빠져 결국 미국과 중국은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인가? 사실 미중 관계의 현재와 미래는 보는 각도와 분석 초점에 따라 그 결론이 다를 수 있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 정책 자문관을 역임한 프린스턴 대학 프리드버그(Aaron Friedberg)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보자. “중국은 주요 교역 국가(trading partner)이지만 민주주의 국가(democracy)가 아니고, 신뢰할 만한 친구 나라(trusted friend)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타도해야 할 원수 나라(sworn enemy)도 아니다.” 20세기 중반 국제 질서 리더십 국가로 처음 등장한 미국이 다루어 온 국제 관계는 크게 동맹 관계 아니면 적대 관계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중국은 그 둘 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국가인 셈이다.

특히 세력 균형이나 다변화 외교에 대해 둔감한 미국에게 중국은 국내 정치 영향이라는 잠복 요인이 상대적으로 큰 나라일 수밖에 없다. 1979년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당시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엄청난 양의 경제 협력과 사회 교류가 이어져 왔다. 중국 음식을 시켜 먹고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미국인들에게 현재의 중국은 이전의 소련이 되기 쉽지 않다.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은 사회-경제적 교류를 전혀 하지 않았다. 미국 정치와 사회 내부의 반공주의는 미국 자유주의의 핵심 이념이었다.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 1983년 소련에 대해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 칭했을 때 미국 국민은 대부분 동의했다. 그런데 냉전은 1991년 종식된 이래 30년이 되어 가는 중이고 그사이 미국은 이라크 전쟁 실패와 금융위기 혼란을 겪었다. 이제 더는 국제 사회 리더십 국가로 이념 경쟁을 끌고 가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미국이 아니다. 더구나 중국을 타도 대상 공산주의 국가로 이제 와서 새로 인식하기에는 중국에 수출해야 할 농산물과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제조업 부품 및 생활필수품이 너무 많다. 자신의 지지층만 우선시하는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적자 해소에 집중하는 현재 기존의 미중 관계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현재의 미중 관계를 신(新)냉전 양상이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아직은 너무나 비(非)냉전 요소가 많다.


G-2 시대 우리의 원칙은 무엇인가?


흔히들 G-2 시대 우리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질문한다. 이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점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간에 아직 최종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이 결정을 미루고 있는데 우리가 스스로 결정을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우리의 선택은 백지에서 새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한미 동맹을 폐기할 것도 아니고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범위가 이미 정해져 있고 선택 그 자체도 상황과 이슈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우리의 국익과 가치이어야 한다. 자유, 인권, 평화, 민주주의, 법치주의, 다자주의 등 인류 보편의 원칙과 우리의 민주화 경험에 근거하여 당당하게 스스로 선택할 때 그 선택에 대한 대가 역시 합심하여 치러낼 수 있다. 전략과 계산을 쫓다가 우리의 가치와 신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외교의 가치와 목표를 민주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정부 혼자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국민이 모두 토론하고 합의하고 지켜내야 할 일이다.

<seojk@khu.ac.kr>


글 | 서정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미국 의회와 외교 정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윌밍턴) 교수와 우드로우 윌슨 센터 풀브라이트 펠로우를 지냈고 현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2019)>와 공저로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 정책(2017)> 등이 있고 모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