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헌장 선언을 외치다

새로운 대헌장 선언을 외치다

2020-08-14 0 By 월드뷰

– ‘The Great Charter of Freedom’에서 배우다


월드뷰 AUGUST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2


글/ 오광일(월드뷰 미디어팀장)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 세계적인 사건 이후에 세상의 모습은 급격하게 변화해왔다. 유럽의 페스트가 창궐한 이후에 인본주의를 표방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초현실주의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이러한 변화들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고찰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공적 마스크 5부제’, ‘온라인 개학’,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확대’, ‘확진자들의 사생활 동선 공개’, ‘재난지원금’ 이것들은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새로운 이슈들이다. 특별히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언컨택트 사회(the uncontact society) 강제 진입’이다. 물리적인 접촉은 줄이고 인터넷 공간 속 접속은 늘리는 ‘언컨택트’는 가장 효율적인 인간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관계에 있어서 수평성과 투명성이 높아져 질 좋은 컨텐츠와 진짜 실력자가 부각되는 장(field)으로 우리 모두 초대받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이러한 변화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우리의 영적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인지 그렇지 않은 방향인지,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변화된 세상이 영혼의 자유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사회가 될지 그렇지 않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일상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불안감을 살펴보고, 권력자들이 수면 위에서는 방역문제만 이야기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더 많은 권력과 통제력을 갖기 위한 새로운 차별과 억압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대안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New Normal life and Anxiety (새로운 정상과 불안)


최근에 NBC는 “코로나19 통제한 한국에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과 함께 자라는 불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변화된 일상들을 조명했다. 이 기사를 읽고, 최근에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개인의 일상도 언제든지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공개될 수 있는 사회로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모든 일상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내가 원치 않더라도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사회에 이미 살고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좀 의아한 점은 교회에서 발생한 확진자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만, 이태원 게이클럽에서 발생한 확진자들에 대해선 애써 감추려 하는 언론의 분위기였다. 그리스도인으로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방역 관리의 목적이겠지…’라고 받아들였지만, 현재 권력에 우호적인 부류와 비우호적인 부류를 나누어 교묘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의 차별과 통제, 억압을 – 특히 권력의 비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 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입기록을 의무화하고 언제든 공권력이 필요하다면 모든 금융거래, 휴대폰 위치 추적 등을 통해 일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가려는 사회 분위기는 새로운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이제 개인의 일상, 개인의 자유는 무늬만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사태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언론과 방송을 이용하여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국민의 권리와 평등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시민을 소유한 권력자는 코로나19 이후로 시민의 경제적 삶이 곤경에 처하자 정부의 역할이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재난지원금’이라는 달콤한 마약을 전 국민 90% 이상에게 먹이면서 필요한 재정을 다양한 방법과 교묘한 협박을 통해 만들려 하는 권력자들. 하지만 그 거대한 권력의 산 앞에 대적하여 그 뒤에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권력자들의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통제로 인한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통찰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가서는 안 된다. 우리 자녀 세대들에게 어른 세대가 거대한 부채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라고 용기 있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시대가 어두울 때마다 더욱 진리의 빛을 발했던 교회마저 바이러스 위기, 방역의 위기, 경제 위기 속에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처음으로 겪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기에 명료한 대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권력자의 야욕이 도를 넘어섰을 때 그것을 저지하고 사회 질서회복과 함께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흐름을 바꿨던 역사의 일들 가운데 교훈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잉글랜드 대헌장이다.

Magna Carta. Cotton MS. Augustus II. 106, one of only four surviving exemplifications of the 1215 text


New Magna Carta: 마그나 카르타에서 배우다


독선적이며 고집불통, 매사를 자기 마음대로 하며 자기 신념대로 행했던 존(John Lackland) 왕의 모습은 오늘날 권력자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비록 봉건시대였지만 오랫동안 지켜온 서로 간의 권리와 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권력의 힘으로 누르고 더 퇴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던 모습은 최근에 우리 사회에 생긴 거대 권력층이 과거사 문제에만 집착하며 정말 시급하고 근본적인 경제 문제에는 손 놓고 있는듯한 모습과 대비가 되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과거로 회귀하려 권력의 독배를 계속 마시는 그를 저지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대헌장은 지금 우리 시대에 새롭게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별히 개인의 자유를 축소하고 현재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은 더욱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권력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글이 생각의 전환이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잉글랜드 대헌장(The Great Charter of Freedom, 라틴어: Magna Carta)은 1215년 6월 15일에 영국의 존 왕이 서명한 문서로 절대 권력을 가진 ‘왕’보다 ‘법’의 우위를 확인하고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헌법·법치의 토대, 국민의 자유 보장 그리고 서구 최초의 성문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체가 63조로 이뤄졌는데, 그중에 제39조가 이 문서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자유인은 동료들(동등한 사람들, equals)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침해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제1조에서는 ‘잉글랜드 교회의 자유와 그가 이미 지니고 있는 권리의 완전한 보유와 그리고 그가 향유하는 자유의 불가침을 먼저 신 앞에 밝히며…’ 교회가 국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명문화했다. 40조는 권리와 정의는 양도, 거부 또는 지연될 수 없다고 선언을 하여서 오늘날의 인권 개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마지막으로 61조는 25인의 영주 대표를 뽑아 국왕이 약속한 대헌장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고 만약 어긴다면 국왕의 부동산과 동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이 헌장이 영주, 기사, 자유민 등 전체 인구의 10%에게만 적용되고 나머지 90%의 농노들에게는 벌금형 제한, 자의적 재산몰수 금지, 강제노역 금지와 같은 극히 일부 권리만 인정이 되었지만 1689년 명예혁명,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 대헌장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진다.

오늘날 이 대헌장의 정신을 반영하여 방역활동이라는 이름하에 기독교를 억압하려는 권력들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새롭게 대헌장을 구성해 본다면 어떤 내용이 담기면 좋을까? ‘새로운 대헌장 1조에는 국가가 국교를 지정하여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으며 정부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되면 비폭력 거부권을 행사한다. 인간의 자유를 특정 이념에 경도된 법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대헌장 39조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한민국 국민은 이념에 경도된 법조계 출신이 아닌 법치주의에 기본 원리와 헌법정신에 입각한 중립적이고 공정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대헌장 61조에는 정책 변경 및 새로운 정책 수립 시 각 분야의 전문가집단이 심의·권고하고, 이를 어기고 권력자 마음대로 행한다면 적절한 징계조치를 내린다.’ 이런 종류의 내용을 포함하면 좋겠다.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의 자유억제와 기독교 신앙을 갖은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것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며 신앙의 양심을 삶으로 입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우리 사회가 많은 시련을 겪으며 이뤄낸 자유민주주의의 정신과 가치를 외면하고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불리는 현 권력자들이 진영논리와 발달된 IT기술력을 이용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전체주의 시스템 속으로 국민들을 들어가게 만들고 있는데도 오히려 그런 방식이 성숙된 민주주의 모습이라고 거짓 선전하는 그들의 말에 다수의 국민들이 눈과 귀가 마비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염려가 드는 시기이다. 봉건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과거로 퇴보하려는 것을 막았던 잉글랜드 대헌장처럼 대한민국은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버전의 대헌장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가 더 많아지는 대헌장,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정도를 지키는 사법 대헌장,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을 더욱 견고하게 보장하여 경제가 활기차게 선순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제 대헌장, 이념에 경도된 정책 주장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통찰력이 반영된 정책들을 내세우는 입법과 행정대헌장, 특별히 성경에 입각하여 유물론의 파생 철학들을 배격하고 성경적 원리와 삶의 일치를 독려하는 기독교 대헌장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무너지고 한쪽으로 경도된 것들을 바로잡는 대헌장들을 깨어있는 크리스천 민주 시민들이 용기 있게 써 내려가면 좋겠다.

<josephoh1611@gmail.com>


글 | 오광일

성균관대학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교육, 출판업으로 경력을 쌓았다. 현재 <월드뷰>에서 미디어팀장을 맡고 있으며 인천사랑침례교회에서 중·고등부 설교 사역을 통해 청소년들의 믿음을 세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