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와 한일 관계
2020-08-15
월드뷰 AUGUST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2 |
글/ 장기호(목사, 전 캐나다 주재 대사)
I. 코로나19 이후 국제정치의 흐름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 증대
1. 국제정세의 변화
1990년대 초 국제정치의 큰 흐름은 세계화였다. 구소련의 몰락 후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무역 원칙에 따라 전 세계 질서를 이끌어왔으며 경제번영을 추구했다.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질서하에 중국은 최대 수혜국으로 등장해 G2 국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을 자유민주 진영으로 유도하려 했던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시진핑(習近平)의 중국공산당은 공세적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미국 등 서방 주도하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여, 자유 민주국가 세력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에 직면하자 세계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등장을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중심의 일방적인 행동과 동맹에 대한 저평가 발언 등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은 세계화의 상징인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국가 간 협력의 단절 등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했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는 세계화가 더는 이 시대의 시대적 흐름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는 국가 간의 협력과 소통이 약화, 단절되고 경제적으로는 생산시설 국내 이전 등 자국 중심의 생존전략 마련에 치중하는 등 반세계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세계 질서가 미국 주도하의 안정된 질서였다면, 이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게임과 같은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최근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은 <정글이 되돌아오고 있다(The jungle grows back)>라는 저서에서 국제정치를 정글에 비유하면서, 지난 수십 년간 세계는 미국 주도 하의 안정된 정원이었다면, 이제 이 세계는 규칙도 심판도 없는 정글과 같으며 허약하고 우유부단한 자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실수에 대한 심판은 죽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의 변화는 우리에게 과거 구한말의 뼈아픈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는 튼튼한 경제력과 국방력의 향상과 함께 국가 간의 연대를 통한 물샐틈없는 강력한 안보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2. 한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와 시급한 한일 관계 개선
트럼프 대통령은 2011년 그의 저서에서 중국을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이루어놓은 미국의 경제발전을 중국발 코로나가 순식간에 망쳐 놓은 것이라며, 중국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고, 전 세계 자유 민주진영 국가들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을 구축하고, 이에 대한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가치가 자유세계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 일본 등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중국과 손을 끊겠다고 벼른다. 이와 같은 미중 간의 신냉전 상황의 대두와 함께 최근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간섭 등의 공세적 정책과 하노이 미북 회담 실패 이후 김정은의 도발적 모험주의로의 회귀(최근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하는 군사 행동위협)는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 안보의 균형추 구실을 해온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유민주 세력 간의 결속을 위해 한미동맹의 강화는 물론 한일관계를 개선하여 한미일 삼국의 안보 협력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 바로 한일 간 관계 개선이 시급한 이유가 있다.
II.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와 수그러들지 않는 반일 정서
2018년 10월 일제하 강제 징용피해자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해, 이를 문재인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경제적인 보복 조처를 하였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그간 한국에 대해 운영해오던 수출관리정책을 수정, 반도체와 TV 및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하고, 동년 8월에는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였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응하여 일본을 수출 간소화 우대국인 지원대상자명단에서 제외하고 2019년 9월에는 기한이 종료되어 다시 연장해야 하는 양국 간의 안보 협력사업인 한일 간의 지소미아협정(GSOMIA)을 파기 결정하였다. 그러나 추후 미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 효력의 종료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취소와 연계하여 결정하기로 조정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에 대해 배상하라고만 할 것인가? 반일 정서는 당연하나,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같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국가 간의 발전을 막는다면 그것은 망국의 길이 된다. 김일성은 한일국교 정상화를 극렬히 반대하고 반일 감정을 크게 고취해 한국을 친일과 반일로 분열시키려고 조선총련을 통한 대남 책략을 전개해왔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정상화 타결은 이를 무력화시켰다. 반일은 적을 이롭게 할 뿐이다. 우리는 반일이 아니고 극일해야 한다.
후세를 위해 징비하라고 주문한 유성룡이 지금 우리에게 말한다면 “부국강병의 극일을 하라”라고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전남도청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전남주민들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420년 전의 이순신 장군을 불러내어 국민을 반일 감정으로 자극하려 한 것이다. 또한, 당시의 조국 전 민정수석은 동학 농민을 소재로 한 노래, 죽창가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우주개발 경쟁이 일어나는 시대에 국민의 수준을 우롱한 발언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과거의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외국의 사례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 나쁜 나라는 영원히 나쁜 나라로 보려는 감정적 시각으로 국제관계를 보고 있다.
최근 미일 관계를 보면 2차대전 당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의 관계였던 미일 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관계가 좋은 나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진주만을 급습한 일본,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한 미국, 전쟁 당시 미국 내 일본계 주민 12만 명을 강제 수용소에 보내 3년 넘게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사유재산을 몰수한 미국의 비인도적 처사가 있었음에도, 양쪽 나라의 지도자들이 미래를 보고 국민을 잘 선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어느 기록에서 보니 소련의 시민과 군인들을 2,000만 명에 이르게 사살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군이 베를린에 진주했을 때 베를린에서만 200만 건의 강간 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후 그들의 관계는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보지 않고 있다.
또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보아도 오랜 전쟁으로 쌓인 원수 관계를 다 씻고, 이제는 전략적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고, 한국과 베트남 관계도 크게 발전하고 있다. 베트남도 과거의 부정적 역사에 함몰되지 않고 건전한 관계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긍정적이며, 왜곡된 이념에 끌리지 않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우리도 이런 열린 마음의 지도자들을 원한다.
III. 한일 간의 신뢰를 파괴한 대법원판결과 한일 청구권협정의 법적 성격
1. 대법원 판결내용
한일 관계의 파국을 가져온 대법원 판결사건의 내용과 청구권협정의 배경 등 그 실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5년 일본 제철(지금의 신일철주금)에서 1941~43년 강제노역에 동원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인 전 일본 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하였다. 이에 대해 2013년 신일철주금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이를 기각하고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에 책임이 없다고 한 일본 법원의 판결을 우리나라에서는 기속력이 없으며, 신일철주금이 구 일본 제철의 손해배상 채무를 승계한다고 판결했다. 왜냐하면, 한일 간에 맺어진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태평양전쟁의 전후 처리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 4조에 따라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고, 한일 양국 국민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와 고통에 대한 청구권 문제를 다루지 않아, 이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은 징용 피해자들의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기에, 일본기업이 그 징용 노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2. 한일 청구권협정의 법적 성격
태평양전쟁을 종식한 1951년 미일 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제2조, 4조, 14조)은, 한국을 전승국도, 일본의 식민지 피해국도 아닌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국제법적 지위를 규정했다. 미국은 한국이 반공산주의 투쟁에 앞서 싸우고 있기에 전승국의 지위를 부여하려 하였으나, 당시 모택동(毛澤東) 정부를 승인한 영국의 강한 반대에 봉착하여 결국 중국과 한국은 전승국 지위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식민지배 배상에 대한 국제법적 선례가 없어서 식민지에 대한 배상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는 우리가 6·25전쟁 중이어서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은 이처럼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으로 규정되어 한일 간에는 협상 출발부터 강제징용자 피해 보상 등 전후 또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한일 양국은 민사상 재산의 반환, 채권의 상환을 처리하는 관계였으며 이에 따라 양측은 다 민사상의 청구권을 갖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는 양국 국민 간에 재산 및 청구권을 특별조정(Special arrangement)하여 정리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도 청구권을 주장하였으나 미국의 조정과 중재로 22억 달러에 상당하는 한국 내 패전국 일본 재산은 미군정에 몰수되어 청구권이 없다고 선언되었고, 이 몰수된 일본 재산은 한국 정부가 물려받았다. 그래서 미국 측은 이 몰수된 일본 재산은 평화조약 4조 a 항과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한국의 대일 청구권은 어느 정도(to some degree) 충족되었으니, 어느 정도 충족되었는지는 한일 간에 논의, 특별 조정하라고 규정한 것이다.
3. 한일 청구권협정의 타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해, 대일본 8개 요구사항을 정리 대비하였으며, 1960년 장면 정부 때 청구권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5개 항까지만 설명되었으며, 박정희 정부 때에 와서 8개 항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7억 달러를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의 주장은 7천만 달러로서 타협의 여지가 없었고, 이런 수준으로 문제해결이 어려우니 일본 측도 청구권 금액을 경제원조 명분으로 지원하기로 합의하고, 1962년 김종필·오히라 회담에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에 타결하게 된다. 한일 간의 청구권협정은 민사상 재산권과 채권을 상호 조정하는 교섭이었다. 우리 측이 제시한 8개 항 요구금액은 실제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 내 일본 재산 몰수금액은 22억 달러에 더하여 전부터 내려온 요구사항에 따라 교섭하여 이루어 낸 것으로, 한국 경제발전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강제징용 노무자의 정신적 피해 보상 문제도 실제로 한일 간에 논의되었으나, 일본 측의 거부와 우리의 특수한 국제법적 지위로 인해 실질적 논의가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타결 후에 이 문제는 우리 국내문제에 속하게 된다.
4. 지난 55년간 동 협정을 준수해온 과거 우리 정부의 입장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3항에는 향후 한일 양국과 그 국민은 어떤 청구권도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였음을 여러 차례 밝혀왔으며, 이 협정은 국회에서 비준 동의하였고,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준수하여왔다. 그런데 왜 이런 대법원의 황당무계한 판결이 나왔는지 의아할 뿐이다. 외교 사항과 관련한 재판 때에는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이 있다. 이를 지키지 않고 정부가 수수방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2007년 특별입법으로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보아 사망자 유족 2,000만 원, 부상자 1,000만 원씩 지급, 모두 6,800억을 지급한 것을 보아도 이 문제를 국내문제로 취급, 협정을 준수해왔다.
그러므로 청구권협정에 미진했던 부분이 있더라도 국내적 해결이 온당한 방법이다. 이미 청구권협정은 타결되었고, 지난 55년간 양국 정부가 준수하여왔으니, 지금 이를 뒤집을 수 없다.
IV. 한일 간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방안 모색 필요
1. 한일 간의 접촉
양측 외교부 국장급 실무선은 물론 고위급 협의와 이낙연 전 총리의 방일 등 다양한 접촉이 있었으나, 일본의 입장은 1965년 기본조약의 근본을 흔드는 국제법 위반임을 지적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중재위 설치를 요구하였으나, 우리 측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 개최 G20 다자회의 시, 한일 양국정상은 8초 동안 악수로 끝난 데 반해, 2019년 12월 24일 중국 청도 개최 3국 정상회담 시, 개최된 한일 간 정상회담은 일단 1년 3개월간 대화조차 하기 힘들었던 대화교착국면을 해소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변화이다.
2. 새로운 모색 : 한일 기본조약의 틀 밖에서의 해결방안 모색 필요
1) 한일 양측의 변화된 상황에 관한 판단
이제는 코로나 사태 이후 변화된 환경에서 양국관계를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1) 일본 내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강제징용자 문제는 한국 정부의 문제이며, 일본기업이 조금이라도 돈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며, 그러한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2) 그러나 일본의 대한국 수출은 우리의 대일본 수출보다 두 배 더 감소하였고, 한국인의 일본 관광도 크게 줄어, 일본 내의 대한국 보복 조치에 대한 자성의 비판이 커져 왔다. 그래서 더는 한일 관계가 악화하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 아래, 관계개선의 분위기를 모색하는 기미도 보인다. (3) 특히 아베(安倍晋三) 총리도 작년 12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발의하여, 우리 국회에 제안한 양국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강제징용자에 대한 위로금을 지급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 설립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며, 또한 아베와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의 친한 인사인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도 문희상 법안이나 그보다 더 진전된 안이 나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4) 우리도 지금까지 지켜왔던 한일 간의 기본조약을 대법원 판결 하나로 뒤집을 수 없으며, 과거 협정이 당시의 특수한 국제적 상황하에 발생한 불가피한 해결 방법이었고, 또 과거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국내적으로 해결하여왔던 점에 비추어, 이번에도 이 문제를 한일 청구권협정의 틀 밖에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2) 문제해결의 기본방향으로 양국 민간차원에서 모금을 통한 재단설립 추진
위와 같은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1) 한일 양국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일제 강제징용자들에 위로금을 지급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2)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 밖에서 우리 국내문제로서 민간차원에서 재단설립 추진 방침을 설명하고 일본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환영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어야 한다. (3)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의 방침을 환영하며 일본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요청하는 내용의 발표가 필요하다. (4) 이 방안은 우리로서는 국내문제로 후퇴한 감은 있지만 일본 정부의 관심표명이라는 협력을 받는 이점이 있고 일본은 그 기본입장을 지킨 점과 인도적 자의적 협력사업이라는 명분 제공이 가능하다.
3) 우선 한국법원의 압류 일본기업 자산의 매각 현금화 조치를 피해 나간다.
한국법원이 지난 6월 금년 8월 4일을 시한으로 일본 제철이 소유한 주식(19만 4,794주)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공시송달을 했다. 만약 법원이 8월 4일 이후 일본기업자산의 매각과 현금화 명령을 내리면 일본의 또 다른 제2의 보복 조치(반도체 등 산업 분야, 금융 분야, 인적교류 중지, 증시투자금의 철수 등)를 유발하여 한일 관계는 심각한 파국이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법원의 매각 현금화 조치는 피해야 한다.
4) 문 정부는 위의 기본방향에 따라 법원의 현금화 조치를 피하고 일본 측과 실무적 협의를 추진, 한일 정상 간의 타결을 준비해나간다.
V. 한일 정상 간 타결, 전향적 협력관계로 전환
코로나19 사태 관리에서 보인 우리의 리더십을 대외적으로 발휘, G7 회의 참석 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상기 방안을 양국정상회담에서 최종 타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와 함께 곧바로 지소미아의 회복조치 그리고 한미일 간의 긴밀한 안보 협력으로 굳건한 안보태세를 갖추어 나가며 안보 분야만이 아닌 전 분야에서 한일 협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khchang73@gmail.com>
글 | 장기호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외교관으로 있는 동안 캐나다 주재 대사, 이라크 주재 대사, 아일랜드 주재 대사, 주 제네바 대표부, WTO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36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현재 강남 엘림교회 담임목사 및 강남 엘림문화원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