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헌법적 가치체계
2020-08-13
월드뷰 08 AUGUST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송인호(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헌법적 가치이념의 중요성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체계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사회적 생명을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체계를 기준으로 해방 후 남북한의 변화를 살펴보면 당시 남북한에 유입된 핵심 사상이 각 체제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권력집중’의 원칙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체제는 일당독재와 1인 우상화를 넘어 1인 가문에 대한 세습체제로 나아갔으나, 반대로 인간 본성의 연약함과 죄성에 대한 경계를 전제로 한 ‘권력분립’의 원칙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권력의 독선을 견제하고 비판하며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는 나라로의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그만큼 헌법적 가치이념은 중요하다.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북 전단 살포
최근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싼 논란도 이러한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와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현상 유지 평화를 넘어, 인류 보편적 문명사와 인권사의 흐름에 기초하여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자유’와 ‘인권’, ‘모든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전파이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하에 헌법 제4조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여 ‘평화’ 통일이라는 통일의 ‘방법적 한계’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통일의 ‘가치적, 목적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70여 년간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와 ‘인권’은 북한 주민은 물론 ‘종교적 왕조국가’로 평가되는 북한 현 정권 내부의 간부들 역시 내심으로는 바라는 바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헌법적 가치의 전파’가 아니라, 반대로 북한의 압력에 따라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와 자유가 축소된다면 이는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의 발전에 역행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외국이 자국 최고 권력자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비방 행위를 금지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우리 정부에서 그 발언이 있자마자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고 가정하면 현 상황의 문제점을 판단하기 더 쉬울 것이다.
물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 등을 고려하여 대북 전단을 보내는 단체에게 정부 차원에서 자제를 권고할 수는 있을 것이며 북한당국을 직접 상대하는 통일부의 고충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측의 항의가 반복된다고 하여 대북 전단 살포를 법적으로 규제하고 이와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그렇게 쉽게 만들겠다고 언급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의 남북관계의 일시적 단절 위협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북한 측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대통령도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임을 명백히 밝히고 이점에서는 양보할 수 없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우리 국민의 북한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져 향후 남북교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대응하여 북한 현 정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통일, 북한 관련 정책은 단지 북한의 현 정권만을 바라보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 ‘우리 국민’, ‘외교’, 이렇게 3각 축을 고려하여 균형 있게 추구해야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정책이 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을 바라볼 때에도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 나아가 이미 1960년대부터 계층화된 북한 주민의 체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주권자이자 통일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인 ‘국민’들의 합의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비록 느려 보이더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대북정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대응처럼 북한 측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인다면, 국민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결국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 상호 간의 갈등과 신뢰저하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우리의 자발적인 토론과 논의를 거친 조치가 아니라 북한의 압력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형식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양보하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현 북한 정권은 이 방식이 통했다고 생각하고 내부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또 다른 트집을 잡아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궁극적으로 남한 내 정부와 민간 일체의 북한에 대한 비판금지를 원할 것이다. 원칙 있는 유연함과 균형이 필요하다. ‘헌법 가치’의 측면에서 양보할 수 없는 선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통일 정책의 필요성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매우 큰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결국 사랑과 공의의 모순적 합일이 이루어진 십자가 정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에스겔서 3장 18절에서 우리에게 악인의 악행을 깨우쳐줄 책임을 부여하시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심판자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시며 에스겔서 18장 23절에서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신 그 뜻을 기억해야 한다. 즉,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 유도 정책과 함께, 자유·인권·법치 등 우리 헌법 가치에 대한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 이 두 가지의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과거 서독이 통일 전 두 차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유지한 정책적 균형이기도 하다. 균형을 잃으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가치체계만 혼란해지고 미래세대에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기록될 수 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현 북한 정권과의 성과만을 바라보지 말고 긴 안목에서 전체 북한 주민, 특히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북한의 인권침해 피해자 계층과 이 한반도에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도록 해야 한다’는 통일의 궁극적인 목표를 염두에 둔 신중한 통일 정책이 추진되길 간절히 바란다.
<ihsong@handong.edu>
글 | 송인호
변호사 시절 대한변협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통일법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통일법제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현재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이며, 한동대 통일과 평화연구소장이다. 통일부 통일법제추진 위원, 법무부 남북법령연구특별분과 위원 등 여러 정부 부처 자문위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