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인권보도준칙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인권보도준칙

2020-08-11 0 By worldview

월드뷰 08 AUGUST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글/ 이상현(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


1. 언론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인권보도준칙


대중사회에서 언론은 사실을 공정하게 알리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언론의 자유는 헌법 제21조 1항에서 보장된 기본권으로 민주 사회의 핵심적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명예훼손, 허위보도, 불공정보도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여론 몰이를 가능케 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규정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제21조 4항)는 제한(기본권의 내재적 제약)이 부과되어 있다.

이 같은 제한은 언론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선한 의도(?)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한국기자협회에 요청하여 2011년 마침내 전문, 총강과 9개 장으로 이루어진 ‘인권보도준칙’(준칙)의 제정이라는 성과를 도출해 내었다. 이에 따르면, 인격권, 장애인 인권, 성평등, 외국인 인권, 노인 인권, 어린이 및 청소년의 인권,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이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제2장 인격권에서 ‘1. 개인의 인격권’ 부분에 ‘라. 사망자와 유가족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2. 범죄 사건의 경우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나. 피의자, 피고인, 피해자, 제보자, 고소·고발인의 신상정보는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라고 규정한다. 경쟁적 환경에서 쏟아지는 언론 기사들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예방하려는 선한 의도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기자협회와 이 같은 인권보도준칙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2. 인권보도준칙의 동성애 옹호 편향성


그런데, 최근 준칙 ‘제8장 성소수자의 인권’ 부분의 다음 규정들과 이러한 규정들이 실제 적용되는 상황을 보며 이러한 신뢰는 밑바탕에서부터 흔들렸다.


1. 언론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호기심이나 배척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가. 성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나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 성적 취향 등 잘못된 개념의 용어 사용에 주의한다.
나. 성적 소수자가 잘못되고 타락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지 않는다. (중간 생략)

2. 언론은 성적 소수자를 특정 질환이나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 (중간 생략)

나. 에이즈 등 특정 질환이나 성매매, 마약 등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짓지 않는다.


먼저 성소수자 자체가 대한민국의 법률에 규정된 용어가 아닌 동성애 옹호 단체에서 사용되던 용어이다. 현행법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차별 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 바, 인권위나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지속적인 정서적, 낭만적, 성적, 감정적 끌림’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성적 지향의 내심 영역만을 화려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따르면 ① 성적 끌림을 중시하는 내면의 성적 선호(sexual preference)와 ② 그 선호하는 상대와의 성적 행위(sexual relationship)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설명- 21대 국회 정의당 발의 차별금지법안에서도 마찬가지 -되며, 자신과 같은 성별(sex)을 향하면 동성애, 동성·이성 모두를 향하면 양성애가 된다. 여기서 ① 영역이 정신의학적 연구 주제로 일부의 치료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했다는 점, 이러한 성향이 인간 유전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의학과 과학 분야에서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동성이든 이성이든 내심상 성적 선호를 일컫는 ‘sexual preference’를 ‘성적 취향’으로 번역하는 것을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이나 ‘잘못된 개념’으로 규정한 점은 준칙(제8장 1. 가)의 중립성을 의심케 한다. 이렇게 동성애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sexual preference’의 번역에 해당하는 ‘성적 취향‘을 잘못된 용어로 규정하면서, 언론에서 동성애를 성적 취향으로 언급하는 기사와 보도는 준칙 위반으로 점차 사라져 갔다.

더 큰 논란은, ‘1. 나. 성적 소수자가 잘못되고 타락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지 않는다’는 규정이다. 통상 언론은 내심의 성적선호(sexual preference) 영역보다 ② 동성 간 성적 행위(위 성적 지향의 개념)의 실태와 성도덕·사회윤리적 관점의 평가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특히 사회 내의 성윤리 또는 공중도덕에 반하는 행위는 언론의 비판적 평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러한 비판을 통해 건전한 사회윤리와 공중도덕 유지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헌재)는 군형법상 추행의 예로 남성 동성애를 들며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행위’로 판시(헌재 2016.7.28. 2012헌바258 결정, 대법원 2008.5.29.선고 2008도2222 판결 등)해 오고 있다. 그런데, 위 준칙은 동성애자·성전환자의 성적 행위에 대한 부정적 뉘앙스를 차단하여 동성애 옹호 진영의 편향적 시각만을 제공케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인권위의 인권보도준칙 준수 실태 조사(2013), 혐오표현 실태조사 연구보고서(2016), 혐오표현 예방 대응 가이드라인 마련 실태조사(2018)를 통해 준칙 미준수의 언론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예로 ‘동성애 조장, 만연’, ‘동성애를 즐겨’ 등의 문구들은 기사와 보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 복장을 착용하고 여성 이용시설을 이용하는 행위나 동성 간 성적 행위(키스, 포옹, 성관계)에 대해 언론은 공정한 사실 보도를 통해 사회적 여론 형성을 위한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앞의 대한민국 최고법원의 판시에서 보듯 이러한 행위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상 수용되기 어렵다. 논쟁적 쟁점에 차별 시정을 담당하는 중립적 공공기관인 인권위가 민간의 퀴어행사에 후원기관으로 참석하여 위원장이 동조 연설까지 하는 편향적 관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인권보도준칙의 편파적 적용은 예견될 수 있다.


3. 동성애자 관련 준칙 위반 시 거세지는 비난의 압력: 사실상 구속력


2020년 5월 초 모처럼의 연휴기간 잦아드는 듯 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수도권에 확산시킨 사건으로 수백 명이 방문했던 동성애자 클럽발 확진 발생 사태를 들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방역당국은 투명하게 사실을 알려 왔다고 하였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 동성애자 클럽을 ‘게이 클럽’이라고 보도한 언론에 대해 준칙(2. 나) 위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미 신천지 신도들의 조직적 포교 방식, 근접 거주 등의 특수성이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이 되었음이 상세히 보도되었던 터였다. 게이 클럽과 찜방(게이의 성행위 장소) 보도를 한 언론사들에 대해 내외의 압력이 거세졌다. 일부 언론사는 ‘동성애’, ‘게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기사 수정이 행해졌다. 그곳을 방문한 남성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조속히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지 않을 우려는 이해되지만, 신천지발 바이러스 확산 보도 때와 대조적으로 인권보도준칙을 위반하는 혐오기사라는 언론사 내외의 압력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기자들은 사내 토론을 제안하면서 수정 요구에 불응하였고, 다른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 보건권 보장을 위해 진실 보도를 허용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제기하였다. 질병관리본부도 신천지발 확산 때 익명의 검진을 인정하면서도 신천지 신도들의 종교회합이 코로나19 확산의 주된 경로임을 확인했던 것처럼, 게이 클럽발 확산 때도 익명의 검진을 인정하면서 동성애자들의 클럽(찜방) 회합이 재확산의 주된 경로였음을 확인하는 것이 문제일까?


4.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언론중재위원회


필자는 2019년 11월 지난 20대 국회의원 40여 명이 발의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논란이 되는 ‘성적 지향’ 삭제-에 찬성 발언을 하였다. 동성애자를 차별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고용상 차별은 노동법적 구제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며, 위 성적 지향은 기독교 교육기관에 동성애 관련 활동(동성애, 낙태, 자발적 성매매 특강 등)을 허용하라는 편향된 결정의 근거로 작용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발언했다. 덧붙여 현재 인권위의 법 적용 실무는 성도덕·윤리적 수용의 한도를 넘었고, ‘인권보도준칙은 동성애와 에이즈의 연계 보도도 금지시킨다’고 발언했다. 당시 한 몰몬교 신도인 남성 연예인의 마약 흡입 혐의 긴급체포 보도에서 마약 흡입 전후 동성연인과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기사들이 준칙 위반이라는 이유로 언론사 자체 요청에 의해 삭제·수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언론사의 팩트 체크 코너는 필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하였다. 동성애와 HIV 감염에 대한 영향을 보도하는 언론기사는 많으며 필자가 ‘금지시켰다’라고 표현한 것은 허위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다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었지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났다. 불성립의 이유는 ‘인권보도준칙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과 ‘필자의 반론 보도 요청을 상대 언론사가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권보도준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위법한 언론보도로 인한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산정 근거로 인용(서울중앙지방법원 2014. 3. 19 선고 2013가합52016 판결)되기도 하고, 기사 작성·보도 편집 시 언론사 내부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의 자율적 보도 기준-기준 자체가 일부 편향성이 있음-이지만, 동성애에 관한 보도에서 그 위반이 나타나면 거센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5. 개선 방향


언론인들이 자율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는 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준수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현재 편향된 인권관을 집행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제정된 인권보도준칙은 그 자체로 편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동성애/젠더퀴어 관련 인권은 익명 보도 원칙 준수 등 최소한의 보장으로 그쳐야 한다. 편향적 관점에서 많은 부분을 포함·적용할수록 준칙은 그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어 언론의 재갈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도입된다면, 준칙이 아닌 법적 제재(이행 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 등)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slee10@ssu.ac.kr>


글 | 이상현

서울대 법대, 고려대 법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뉴욕대학교(NYU) 로스쿨에서 LL.M(미 법학석사)을, 골든 게이트 대학 로스쿨에서 S.J.D(미 법학박사)를 받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