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급수

사랑의 급수

2020-07-21 0 By worldview

월드뷰 07 JULY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4


글/ 나은혜(목사, 소설가)


몇 주 전에 큰딸이 17년 된 차가 섰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 차를 계속 타다가는 다음엔 나를 영안실에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딸이 위기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가슴 섬뜩한 말을 하는 딸이 야속했다. 그래서 “원,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영안실에서 만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그래…”

물론 나는 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래된 중고자동차의 위험성에 대해서 나보다 더 몸으로 경험해본 사람이 또 있을까? 2007년 선교지에서 들어온 후, 나는 지쳤고 몸도 쇠약해져 있었다. 특히 무릎이 많이 안 좋았기 때문에 자동차가 정말 필요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응답을 받았다. 목회자 기도 모임에서 기도 제목을 내놓았더니, 목사님 한 분이 성도님의 차량을 얻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었다. 하얀색 97년식 세피아 II였다. 무척 낡았지만 감지덕지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서 6년 반 동안 탔다. 그런데 얼마나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서서 큰일 날 뻔했던 일도 있었고, 바퀴가 터진 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가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경적을 울려주어 위험을 모면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딸네는 고장이 잦은 차에 어린아이 둘을 태우고 다니기에 영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이었다. 결국 지인의 소개를 받아 2년 된, 3만 킬로미터 정도를 탄 뉴 쏘렌토를 새 차에 비해 천만 원 이상 싼 가격으로 샀다. 중고차이지만, 웬만한 소형차 값을 주고 산 SUV에 딸과 사위는 아주 만족해했다. 어린아이 둘을 카시트에 안전하게 태우고 다닐 수 있고, 트렁크가 넓어서 유모차나 자전거 등을 마음껏 싣고 다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서 시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자동차가 필수가 아니었고, 내 집 마련이 꿈이었다.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자동차가 필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딸과 사위가 자동차 구입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모에게 하나님이 주신 자식 사랑, 그 깊은 배려의 마음에 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사위와 딸은 둘 다 MK(선교사 자녀) 출신이다. 부모가 후원에 의지해서 생활하는 선교사의 자녀는 사회에 나가면 그때부터 부모 도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 딸과 사위에게는 건강한 마음과 몸뿐이었다. 그래도 길은 열렸다. 사위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공군 통역 장교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신혼집 마련을 위해서 군인 사택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대구로 근무 신청을 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15평의 5층짜리 군인 아파트 맨 위층이었지만 아주 좋아했다. 안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면 천장에서 쥐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단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애틋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넓고 좋은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지만, 딸은 신혼 시절 그 작은 5층 아파트에서 살 때가 행복했었다고 말하곤 한다. 집이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이었겠지.

사위는 빤한 월급에 아파트 사느라고 많은 대출을 받아서 원금과 이자를 갚고 두 아이 키우느라 여유가 없다. 두 사람은 신앙생활에도 철저해서 십일조, 감사헌금 내면서 양가 부모님 용돈까지 보내면서 생활한다. 그렇게 빠듯하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이러던 중 17년 된 자동차를 폐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참에 자동차를 처분해볼까도 고민했었지만 아이들 데리고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필요했다. 나는 내심으로 부담이 덜 되는 중고차를 구입했으면 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딸과 사위는 어린 자녀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어 비싼 차를 샀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속 깊은 마음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12살까지 카시트에 타야 하는 사랑하는 로아와 로이의 안전을 위해서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서 자신들의 형편보다 넘치는 비싼 차를 산 것이다. 맨손으로 일어섰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해서는 무척 아낀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 자동차의 급수를 확~ 올린 것이다. 손녀들이 안전한 차를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 또한 기쁘기 그지없다. 부모가 자녀의 안전을 고려하는 마음은 현실을 벗어난 선택을 하게 한다. 바로 사랑의 급수가 자동차의 급수를 확실하게 올려준 것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시 127:3-4).”

<luomingshu@hanmail.net>


글 | 나은혜

남경사범대학 한어언문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및 선교학 석사(MA), 미국 그레이스 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D.miss.)를 하였다. 1997~2007년에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고, 현재 한국에서 지구촌 선교 문학 선교회(GMLS)를 설립하여 대표로 문서 선교와 선교사 멤버 케어 사역을 하고 있다. 2017년 창조문학 소설부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떠오르는 부인 선교사 리더십 개발하기(2005, 선교타임즈)>와 <세 개의 보석(2007, 선교타임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