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향후 한국교육의 방향
2020-04-17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4 |
글/ 이성호(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 준비되어 있는가?
현재 우리는 문자 그대로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로 인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이 단 10년 앞도 안 되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예측들이 모든 영역에서 표출되고 있다.
스탠퍼드(Stanford) 대학 근교의 도시에서는 ‘자가운전차량(self-operated vehicle)’이 주행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향후 5~10년 이내에 이러한 차량이 급증할 것이며, 이에 따라 운전(driving)을 주 임무로 하는 직업 역시 소멸할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자동차보험업계에 일대 변혁이 일 것으로 예측한다.
영국의 한 경제전문 주간지에서는 선진국의 금융권에서 공인회계사와 변호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발상이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고려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공인회계사나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가까운 장래에는 심각하게 경감될 수 있다고 예측한다.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컴퓨터 공학과 기술의 혁신적 발달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에 가까운 급격하고도 엄청난 변화를 가까운 미래에 가져올 것이다.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이 종종 컴퓨토피아(computopia)라는 괴이한 용어로 인류의 앞날을 미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이는 매우 편협한 단견이다.
산업혁명은 기계를 사용해 인간이 직접 하는 노동의 수고를 덜고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발생한 현상이다. 대량실업은 어찌 보면 산업혁명의 필연적인 부작용이었으며 심지어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라고 알려진 기계파괴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도기는 3~40년 정도 이어졌으며 이후 3차 산업이라고 불리는 서비스(service) 산업이 탄생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면서 대량실업 사태가 진정되고 고용이 오히려 증대되었다.
그런데 컴퓨터 공학의 발달로 인한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두뇌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산업혁명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인간의 기능을 대신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직업이 인간에게 할애될까? 어떤 미래학자는 가까운 미래에 6~70%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탁월한 두뇌와 천재적인 역량이 가장 핵심적인 관건인 컴퓨터 관련 산업의 특성(예; Google, Microsoft, Amazon, Uber 등)이 이러한 예측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선진국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대책들이 공학 및 기술, 경제, 사회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많은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컴퓨터 테그놀로지의 발전이나 로봇의 등장과 활용 등 다분히 ‘공상과학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듯하다. 일부 언론에서 지극히 부분적으로 ‘미래사회의 직업’ 운운하며 4차 산업혁명의 파급효과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 역시 우리의 인식(awareness)의 변환보다는 가벼운 호기심의 충족에 치중하는 것 같다.
특히 국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정치인들의 의식 수준은 그야말로 무지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하나 가까운 미래에 닥칠 급변에 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심지어 그것이 대재앙이 된다고 해도 자신의 소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정치인들의 무지와 안일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는 교육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한국교육의 방향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하는 한국교육이 선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탈정치화(de-politicalization)이다. 앞서 선진국의 예를 인용했지만, 선진국이라 해서 교육이 정치이념의 영향에서 언제나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몇 해 전 현재의 뉴욕(New York) 시장인 빌 드 블라시오(Bill de Blasio)가 부임 즉시 시내 차터 스쿨(Charter School: 우리나라의 자사고와 유사한 형태지만 자사고에 비해 엄청난 자율권을 가진 학교)을 축소하는 교육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차별화된 교육제도를 타파하겠다는 정치이념을 정책에 반영한 셈인데, 이로 인한 피해는 주로 이 학교에 다니던 저소득 계층의 자녀들에게 돌아가는 촌극 아닌 촌극이 벌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 한국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외국인 의사가 필자에게 “한국의 교육정책은 지나치게 정치화된 것 같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교육정책을 효과적인 득표 전략으로 이용하는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시화되는데, 이때 교육의 본질과 가치는 도외시되고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탈정치화를 위한 급선무는 교육의 본연에 대한 각성이다. 교육의 본연은 인간을 인간답게 육성하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근원은 우선 도덕성이다. 이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가장 원초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것 역시 인간다움의 중요한 조건이다.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교육의 본연은 결국 덕성과 지성의 연마, 혹은 인격과 능력의 겸비 정도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인간의 도덕성은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일자리의 축소로 경쟁이 과열되고 부의 편중이 심화될수록 인간의 윤리적 측면은 더욱 강조될 수 있다. 도덕과 윤리가 상실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 역시 소멸될 것이다. 향후 인류사회가 어떤 형태로 변모된다 할지라도, 도덕과 윤리는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남아야 한다. 이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의 첫 번째 명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이나 다문화적 소통과 이해 등도 모두 도덕과 윤리에 포괄될 수 있는 자질이나 태도다. 이런 연유에서 고대 그리스(Greece)의 철학자들 특히 소크라테스(Socrates)는 지식과 도덕을 등식화했고, 도덕적 지식의 실천을 강조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성공적인 생존 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과학과 실용적 지식이 교육과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처럼, 현행 과학 및 기술(technology) 교육의 강화는 물론 컴퓨터 관련 역량을 제고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학교육이 더욱 중시되어야 하고, 특히 알고리즘(algorithm) 교육이 중등교육 과정에서 정립되어야 한다.
직업교육체제의 보강 및 확대 역시 미래를 대비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은 과잉공급 상태이며 심각한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그 기능이나 교육목적상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200여 개나 되는 4년제 대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상당한 정도 대체하게 되는 미래와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체계화되고 심화된 직업교육이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유럽형 체제의 도입과 확산을 고려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4년제 대졸 실업 현상’을 방치할 수는 없다.
이와 아울러 우리나라 대학의 환골탈태가 시급하고 절박하다. 세계에서 대학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미국이다. 그러나 4000개가 넘는 대학들의 기능과 특징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 반수에 가까운 대학들이 우리로 치면 2년제 대학(취업 중심)이고 나머지 대학들도 학생들의 수준, 필요, 능력 그리고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 중점 사업, 목표 집단, 재정 등에 따라 매우 광범위하게 차별화되어 있다. 우리에게 소위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 박사양성에 중점을 두는 교육)’으로 알려진 대학들은 매우 후하게 추정한다 하더라도 미국 전역에 걸쳐 200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어떤가? 상술한 바와 같이 200여개의 4년제 대학 중 상당수가(필자의 의견으로는 최소한 1/3 이상) 상위 5~6개 연구대학의 행태를 모방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학들도 이제 연구, 학부생의 교육, 성인 교육, 직업 교육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차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상이한 기능에 따라 교육과정과 교육 프로그램이 새로이 조직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대학들이 미래에 대비하는 방책이자 생존할 수 있는 전략임을 유념해야 한다.
끝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교육을 위해서 동서양의 고전과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컴퓨터 관련 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변화에 대비하는 또 하나의 교육 전략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지식을 연마하는 일이다. 이는 곧 동서양의 고전적 문학, 철학, 역사 그리고 예술을 학교 교육을 통해 폭넓게 가르치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로 지칭되는 시대의 산물인 계몽사상은 인간의 비합리적 측면(종교와 예술)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계몽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낭만주의(the Romanticism)가 18세기와 19세기 유럽 사회 전체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역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컴퓨터 시대에 상실되기 쉬운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이런 고전교육이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맺으며
결론적으로, 우리가 지혜를 모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연구한다면, 그 미래는 우리에게 제2의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역경을 딛고 교육을 통해 국가의 입지를 공고히 한 경험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해 다시 한번 교육의 힘을 발휘할 것을 희망하며 글을 맺는다.
<seongho@cau.ac.kr>
글 | 이성호
서울대 교육학과 학사 및 석사, 미국 스탠퍼드(Stanford) 대학에서 박사(교육철학)학위를 받았다. 석사 취득 후 육군 정훈장교로 3년 6개월 복무하였고, 한국행동과학 연구소와 교육개발원에서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