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말살 3법 폐기하여 미래를 구하자

유아교육 말살 3법 폐기하여 미래를 구하자

2020-04-16 0 By worldview

월드뷰 04 APRIL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3


글/ 천세영(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유아교육이 중요하다


1899년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발간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현대인의 질병으로 규정하였다.1) <꿈의 해석>에서 아버지에게 엄마를 빼앗긴 아들이 성인이 되어 아버지에게 복수한다는, 끔찍한 현대인의 잠재된 폭력성은, 분명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서양인들만이 가진 비정한 자녀교육의 비극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영화 <공공의 적>에서, 처음 존속살인이 소재화된 이후 얼마 안 되어, 이젠 심심찮은 실화가 되어버렸고, 학교폭력에 이어 급기야는, 어린이집 폭력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제 서양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아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보다 훨씬 중요하다. 투자적 관점에서도 그렇고 복지적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런데 왜 제일 늦게 시작했냐고 물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무지해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신께서 이미 공기와 물과 흙처럼, (경제학적 용어를 빌리면) 자유재로서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창조의 질서에 감사하지도 않고, 아이들이 저절로 크는 것으로 잘못 알아 왔다. 엄마의 사랑과 온 가족의 지원과 온 마을의 관심으로 자라온 우리 기성세대들은, 오늘날 우리의 어린 손녀, 손자들이 얼마나 악전고투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른다. 우리도 서양인들이 겪어 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현대인들의 고독과 폭력을 겪게 될 것이다. 사실은 이미 겪고 있다. 교육학적 상상력에 따르면, 1살 아이는 1개를 가르쳐주면 100개를 배우고 10살 아이는 10개를 배우지만 60세 어른은 100개를 배워야 겨우 1개를 기억할 뿐이다. 왜 어린아이를 잘 가르쳐야 하는지는 자명한 원리이다.


사립유치원 탄압 사건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혹시 훗날 대한민국이 정말로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처럼 쇠망해버리고 나면, 그 시작점은 분명 문재인 정권의 사립유치원 탄압 사건이 될 것이다.2) 역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2018년 10월 취임 초부터, 무자격 논쟁에 휘말렸던 유은혜 교육부총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콤비가 되어, 이른바 ‘코흘리개 아이들의 돈을 뜯어내 명품가방 잔치를 벌인 사립유치원장들’이라는 마녀사냥식 비판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정기국회에서 ‘유아교육 관련 3법’을 통과시켜 대한민국 교육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내려 하고 있다.

의외로 사태는 단순명료하다. 6세에서 17세까지 초·중·고등학생 570만 명을 위해서는 국민의 세금 55조 원, 1인당 거의 1천만 원이 평균 투입되지만, 3세에서 5세까지 유치원생 120만 명을 위해서는 고작 6조 원, 1인당 5백만 원이 투입될 뿐이다. 이는 이 땅 어른들의 범죄에 가까운 무책임이다. 천하가 아는 일은,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어른의 손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살배기 아이 하나를 돌보려면, 엄마·아빠는 물론 할아버지·할머니, 삼촌·이모 등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와 교사당 학생 수가 20이라면 유치원은 10이어야 한다. 아이들일수록 손이 그만큼 가고 돈도 더 든다는 말이다. 물론 아이들일수록 더 많이 배운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어린이당 5백만 원 교육비는 초중고생 천만 원의 두 배인 2천만 원이 든다는 말이고, 이는 현재의 4배, 곧 6조가 아닌 24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3)

문재인 정권의 유은혜-박용진 콤비는 이를 모르고, 한 사립유치원의 명품가방 이야기를 부풀렸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그것은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특히 그로 인해 경쟁력 있는 유치원이 되어, 학생 유치에 대성공한 데 대한 원장님의 특별 보너스였다고 한다. 한때 5000여 곳에 육박하던 사립유치원은 2018년 현재 계속 줄어들어 4000여 곳으로 줄었으며, 사립유치원 사정은 50명 이하 규모의 영세 유치원에서, 500명 가까운 대형 유치원까지 사정이 매우 복잡한데도, 어느 한 유치원의 명품가방을 온 유치원의 모습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말라 죽어 가는 사립유치원


유아교육 현장은 한 마디로 엉망진창 그 자체이다. 해방 직후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에서 단 30년 만에, 초중등교육 완전 보편화라는 세계적 기적을 이룬 덕에, 대한민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이 되었다. 그러나 기쁨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사이에, 유아교육은 태생적 질병을 안고 태어났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엄마의 취업으로 이어졌고, 아이들은 유아원과 유치원에 맡겨지기 시작했다. 돈이 있는 집에서는 원래부터 그랬듯이 비싼 사립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제비뽑기 당첨에 기대며, 새마을유아원에 보내거나, 동네 상가 학원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했다. 198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교육부 산하에는 유치원이, 복지부 산하에는 어린이집이 생겨났고,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과 젊은 엄마들의 가슴앓이가 쌓여 갔다. 다행히 1998년 5.31 교육개혁의 하나로, 드디어 유아교육이 공교육으로 편입되고, 유치원도 학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진창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만 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 공립과 사립 간 차이와 갈등은 더욱 커졌고, 유보육 통합이며 공사립 형평이며 하는 높으신 분들의 미사여구만 난무했다. 천만다행으로 2004년 유아교육법이 제정되고 희망의 싹이 심어졌다. 즉 모든 유아교육 기관의 비용을 학생당 바우처로 제공하고, 학부모에게 교육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헛된 꿈이었다. 어른들은 눈을 감고,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몰두했으며, 골은 더욱 깊어지고 아이들의 병은 깊어만 갔다.

코흘리개들의 아우성은 끝날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통학 차량에서 죽어나고, 교실 내 학대가 뉴스를 타면서, 어른들의 최소한 양심이 작동되어, 드디어 2012년 누리과정이 탄생하였다. 그렇지만 이 역시 소위 몇몇 진보교육감들의 극악한 정쟁에 휘말려 사경을 헤매야 했다. 박근혜 정부 말기 유아교육특별회계를 겨우 제정함으로써, 또 한 오라기의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정말로 거기까지였다. 문재인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숨통을 조였고 명품가방을 핑계로, 사립유치원의 명줄을 끊어 버리려 시도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고 일단 2022년까지 기한을 연장해 목숨만은 살려두었다. 백 가지 말로 변명을 해대고 있지만, 명백한 사실은 3~5세 유치원 아이들 교육에는, 돈을 못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돈은 누가 내겠는가? 결국, 30대 40대 젊은 엄마들이다. 지금도 유아교육재정 총 6조 원 중 상당 부분을 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지출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교육의 질은 미덥지 못하지만, 새벽부터 줄을 서가며 국공립유치원 제비뽑기를 기다린다. 도대체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 당장 전국 4000여 개에 달하는 사립유치원을 모두 공립화할 수도 없으면서, 사립유치원을 탄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냥 말려 죽이기일 뿐이다. 문제는 말라 죽어 가는 사립유치원이 아니라, 병들어가는 이 땅의 어린이들이며 이 나라의 미래인 것이다.


‘유아교육 관련 3법’은 유아교육 말살법이다


‘유아교육 관련 3법’은 첫째, 공립학교 회계시스템 적용, 둘째, 이사장의 원장 겸직 금지, 셋째, 급식기준 강화를 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세우고 있다. 세 가지 법은 모두 대표적인 악법이다. 악법이란 지킬 수 없는 법으로, 대상자 모두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부르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사실상 대부분 사립유치원장, 특히나 소규모 영세 유치원은, 모두 법을 어기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사립유치원들로서 택할 수 있는 길은, 폐원을 하는 것이나, 이 역시 국가와 교육청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원 중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분명히 헌법상 사유재산인 유치원의 폐원을 규제한다. 위헌도 이런 위헌이 없으며,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 그런데 사립유치원의 재정 기반은, 학생 수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일정 규모가 안 되면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공립의 경우는 그에 따른 재정 결손을 국가가 보전하고 있지만, 사립의 경우는 속수무책이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재원 중인 어린이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립유치원들은 하나씩 둘씩 시들어 말라 죽게 되며, 그러는 동안 코흘리개 어린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로, 유치원 선생님과 원장님을 원망하며 다른 유치원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이 법들을 폐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한민국의 유아교육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후의 초등교육과 미래 세대의 건전한 성장은 보장될 수 없다.

<sychun56@gmail.com>


1) 이 부분은 ‘유아교육의 보장성 확립을 위한 국가교육재정의 효율적 집행방안’ 정책토론회(2015.3.16.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한 졸자의 원고에서 부분 인용함.
2) 이 부분부터는 졸고 “사립유치원을 희생양 삼은 유아교육 파탄,”에서 전재함.
3) 이 부분에 제시된 숫자들과 통계들은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라 순전히 필자의 어림산이다. 불행히도 공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의 교육비 정보는 표준화된 자료로 비교해 볼 수 있는 통계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서 이와 같은 전문가적 추산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지표로서 더 타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한된 공식 통계를 쓰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글 | 천세영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서 재직 중이다.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및 한국학술정보원장, 유아교육발전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