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올바른 선거권 행사를 위한 책갈피

크리스천의 올바른 선거권 행사를 위한 책갈피

2020-03-11 0 By worldview

월드뷰 03 MARCH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글/ 책읽는사자(유튜버, 사자그라운드 대표)


설득을 위한 마지막 기회


중요한 선거 전, 이 글의 목적이 한 명이라도 더 ‘크리스천의 올바른 선거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한다면 이미 <월드뷰> 매거진을 구독 중인 지성 크리스천들을 위한 글보다는 그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책 소개 안내서’ 역할의 글을 쓰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다. 일종의 설득을 위한 글이다. 하여 이 글의 타깃층을 아직 이 나라에 대한 아무런 위기감이 없는 또는 아주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는 크리스천들로 잡았다. 앞으로 소개할 세 권의 선정 도서 역시 되도록 쉽고, 얇고, 빠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책들로 골랐다. 현재 우리가 가장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의 실용성’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순서도 정했다. 상대를 설득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말의 순서이기 때문이다. 자칫 상대의 지적 수준, 영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이 아는 것, 본인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만 이야기하다 보면 설득은커녕 상대로 하여금 화자에 대한 반감만 키울 수 있다. 대화도 주입식으로 하려는 게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매우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더욱 겸손해야 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설득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여 더욱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최대한 부드러운 접근과 설득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하나님의 사랑은 디테일에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학식이 깊은 사람이 아니다. 인문 교양이 뛰어나거나 정치나 철학을 깊게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책 찾고, 책 읽는 ‘평범한 독서가이자 애서가’ 정도이다. 서평은 수년 동안 꾸준히 썼다. 지금은 영상 제작하느라 바빠 예전처럼 서평을 못 쓰고 있지만 그래도 수년 동안 다수의 출판사 신간 도서 서평을 썼다. 또 내가 쓴 서평을 읽고 국내 1, 2위를 다투는 굴지의 대기업 출판사 직원이 나에게 비공개 면접 제의를 하기도 했다. 책 소개 콘텐츠 제작에 대한 나름의 ‘귀여운 검증 에피소드’이다. 어쩌면 이 모든 훈련이 주께서 원하시는 책 소개를 위함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부족한 이 글을 통해 <월드뷰> 매거진 독자들께서 ‘크리스천의 올바른 선거권 행사를 위한’ 보다 나은 복음의 설득력이 겸비되길 바랄 뿐이다.


1. 왜 위기인가를 ‘역사 이야기(History-Story)’로 설득한다


엘리자베스 라움 저,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르라> (좋은씨앗, 2004)


이 책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유익 중 하나는 히틀러와 나치당이 실제 ‘어떻게 등장했는가?’, ‘어떻게 집권했는가?’, ‘어떻게 잠식했는가?’ 그리고 히틀러의 위험성을 처음부터 간파한 한 남자의 우려 섞인 예측과 반응을 매우 담백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가 고수다. 예술적 거리감을 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과한 자극성보다 절제된 일상성으로 사건을 그려냈다는 말이다. 그래서 히틀러의 끔찍한 만행은 더욱 사실적으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딱딱한 역사서의 차가운 기술이 아닌, 한 인물의 일생에 녹아든 ‘진짜 역사 이야기’는 안일했던 우리 영혼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흔들어 깨운다. ‘실화’가 주는 힘이기도 하다.

“최근의 선거에서 나치는 100석 이상을 획득했고,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고조되고 있었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대인 학생들은 ‘유대인들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치의 깃발이 교회 안에서 나부끼기 시작했다. 디트리히의 형 클라우스는 1930년 3월 11일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파시즘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이런 급진적인 물결이 교육받은 계층을 삼켜버린다면 시인들과 사상가들의 나라인 독일은 끝장나고 말 거야.’”(p. 78)

“1933년 5월 초에 독일 학생 연합은 ‘비독일적’이거나 외국의 것으로 간주되는 책들, 특히 유대인 저자들과 학자들이 쓴 책들을 도서관과 서점에서 끌어모았다. 그리고는 분서(焚書)를 위한 특별 집회를 갖고 나치의 이상을 찬미하는 연설들을 한 뒤에 모은 책들을 태우는 것으로 집회를 마쳤다. (중략) 100년 전에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렇게 경고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 그들은 결국 사람도 태울 것이다.’”(pp. 145-146) [하인리히 하이네가 반(反)전통적·혁명적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은 이 글에서는 차치한다.] 우리는 안다. 머지않아 저들이 실제 어떤 끔찍한 일을 자행했는지 말이다.

또한 이 책은 독재자가 ‘종교의 자유’를 어떻게 말살하는지,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목사들에 대한 게슈타포의 감시는 점점 강화되었다. 게슈타포는 교회 모임들을 방해했고, 목사들이 연설하는 것을 금하거나 실제로 그들을 체포했다.(한꺼번에 100명이나 되는 목사들이 투옥되기도 했다.) 목사들은 하루나 이틀 만에 풀려났다. 게슈타포가 목사들을 체포하는 주요 목적은 그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겁을 주어 국가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p. 194)

“1938년 4월에 베를린에서 국가 교회의 총회장이며 독일 크리스천인 베르너(Werner) 박사가 히틀러의 생일 선물로 목사들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일을 계획했다. 목사로 안수 받기를 원하거나 안수 받은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중략) 디트리히와 그의 목사 후보생들은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고백 교회 목사들이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디트리히는 자기 자신과 고백 교회 사이에 넓은 간격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과 동료 목사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생의 길을 걸으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독일 크리스천 집단은 안정된 사례와 목사관과 은혜로운 회중을 확보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불법 목사들’을 설득했다. 그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아리안 조항에 서명을 해야 했다.”(pp. 207-208) 이 책에서 마주하는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저 당시 ‘불법 목사’의 낙인이 지금은 ‘극우 목사’로 바뀌었다. 권력의 부패와 위선을 향한 사실 보도는 ‘가짜 뉴스’로 폄하되며 기독교 혐오 및 왜곡 보도는 거의 모든 뉴스 매체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독자는 역사의 신호등 빨간불을 마주한다.

이 책은 본회퍼 목사의 일생을 다룬 전기이지만 더 나아가 현재 우리나라 시민들이 ‘뜨거운 냄비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역사 이야기(History-story)’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인사이트는 거대한 대중 심리 기류가 때로는 긴 시간에 걸쳐 매우 천천히 바뀐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국민의 좌경화’는 히틀러보다 더욱 끔찍한 인권 유린을 ‘아직도’ 자행하고 있는 북한 김일성 일가에 대한 비판 의식도 무뎌지게 만들어버렸다. 정치 지도자의 거짓말과 가짜 평화 쇼에 ‘종교적으로’ 안심한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크리스천의 영적 상태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울과도 같은 책이다. 복음의 양심이 살아있는 크리스천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이상 ‘도대체 이 나라가 왜 위기인지’ 묻지 않을 것이다. 한 남자의 거룩한 순교로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2. 위기 자각 뒤, 진실을 마주하다

홍지수 저,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북앤피플, 2017)


하나님의 은혜로 이 나라를 향한 위기의식 불씨가 피어났다면 이제 그동안 우릴 속여 왔던 거짓의 실체를 마주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기독교 말살, 자유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적나라한 사례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제야 우리의 관점을 뉴스 앵글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된다. 정치인, 유명인, 주류 언론 할 것 없이 왜 그렇게 ‘젠더’, ‘젠더’ 거리는 지, 그들이 말하는 인권과 평화가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지 그들의 조작된 진정성 너머의 사악한 정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게다.

이 책은 네오마르크시즘의 철학 기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북미, 서유럽 마지막은 북유럽까지 돌며 오늘날 자행되고 있는 ‘글로벌 PC 세력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특히, 약 50페이지에 걸쳐 기록된 오늘날 미국 대학교를 잠식한 PC 세력의 만행들을 읽고 있노라면 자녀 교육에 열심 있는 부모 세대는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 할당된 지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온 딱 세 가지 사례만 소개하겠다.

“로마 가톨릭계 대학인 조지타운 대학은 오바마에게 연설을 요청했는데 오바마가 연설 장소인 학교 대강당에 있는 예수상이 안 보이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자 학교 측은 이를 수락했고 오바마가 연설할 때 예수상을 천으로 덮었다. (중략) 페스타 교수는 필라델피아의 한 작은 대학에서 가르칠 때는 대학이 표방하는 정치적 철학과 맞지 않는다며 해고당해서 2년간 소송한 끝에 이긴 경험도 있다며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소명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입시킨 가치를 말끔히 제거하고 새로운 가치로 채워 넣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고 했다.”(pp. 126-127)

“인디언 리버 커뮤니티 칼리지(Indian River Community College)의 그리스도교 동아리는 <예수 수난(Passion of Christ)> 영화 시사회를 열기로 했지만 학교 행정 당국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R-Rate)인 이 영화를 혹시라도 연령 미달인 어린 학생들이 보게 되면 충격을 받기 때문에 안 된다며 허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내 극장에서 <예수를 위한 씹질(Fucking for Jesus)>라는 제목의 연극 상연은 허락했다. 예수의 그림을 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p. 132)

“로라 프리버그(Laura Freberg)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남편은 소규모 사업을 한다. 그녀의 남편은 지역 공화당 지구당 일에도 관여하고 있는데 성이 같은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아낸 대학 교직원들이 프리버그 교수에게 ‘공화당 지지자인 줄 알았다면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중략)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자택에 누군가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누군가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카 낙서를 했으며 세 딸이 협박을 당했다.”(p. 133) 크리스천 부모의 후원으로 유학을 다녀온 수많은 자녀들이 왜 그렇게 기독교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했는지, 왜 그렇게 부모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세속적인’ 자녀가 되었는지 이 책 한 권이 정말 잘 설명해 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주류 언론’에서 말해주지 않는 진실들‘만’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왜 이러한 진실들이 TV에 나오지 않는지 반박 불가할 정도의 예리한 논거와 증거를 바탕으로 본인의 논지를 전개한다. 나는 이 책을 소개할 때 “우선 지구 한 바퀴 돌고 오라.”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눈이 열린다. 한국이 매우 ‘적확히’ 보인다. 좌경화 선동을 일삼는 주류 언론 어젠다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거대한 기류를 볼 수 있게 된다. 누가 뭐래도 ‘틀린 것(the wrong thing)’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이런 유의 갈등에 빠진다. ‘아… 그래도 저 당은 진짜 아닌데….’라고 말이다. 예전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심각한 거짓에 직면하고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어정쩡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지에 따른 교만이자 하나님을 향한 ‘은밀한 불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은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을뿐더러 우리는 말씀이신 그 빛을 믿음으로 선택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 진리의 법칙은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의 (어설픈) 정치적 이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0순위로 올려놓아야 한다. 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책을 읽어보자. 우리의 무지를 밝혀 줄 ‘옳은 것(the right thing)’을 만나보자.


3.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정체성


러셀 커크 저,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지식노마드, 2019)


앞서 깨어 있는 크리스천들의 올곧은 외침으로 인해 이제 제법 많은 크리스천들이 ‘잘못된 정교분리’가 아닌 ‘올바른 국교분리’를 장착해 교회 수호 운동에 갖가지 모양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파’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정치체제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우파’가 무엇인지 모른다.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 탓에 그토록 굴곡 많았던 우리의 역사 탓에 급하게 ‘자유 민주주의’를 수입하다 보니 ‘자유 민주주의’가 하나님의 말씀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체득하여 알 기회가 결여됐었기 때문이다. 하여 우파·좌파라는 기준을 그저 현실 정당의 유치한 정쟁에 국한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우파’라고 칭하면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손사래 치며 극구 부인하기 바쁘다. 반사적으로 “나 우파 아니오!”라고 하며 그저 ‘좀 더 세련되어 보이는’, ‘좀 더 욕먹지 않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영역에 자신의 종교적·사회적 정체성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무지다. 우파와 좌파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다. 조평세 박사는 본인의 칼럼을 통해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차이는 버크와 페인의 논쟁 등을 통해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라는 정치 철학적 구분을 낳았다.”라고 말한다. 전자의 자유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유이며, 후자의 자유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방임이다. 이게 우파와 좌파의 제대로 된 구별이며 분간이다. 이 필터가 제대로 장착이 되어 있을 때 모든 것이 명확하게 설명되기 시작한다. 미국은 우파, 즉 ‘(기독교) 보수주의’ 나라이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통해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건국된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현 정부가 헌법과 교과서에서 그토록 지우려 했던 ‘자유’라는 단어는 “창조 질서(Created Order)와 천부인권(God given Natural Rights)을 인정하였던 ‘보수주의적 자유’를 의미”했던 바로 그 미국의 자유였던 것이다.

러셀 커크는 이 책 1장에서 “미국의 보수적 사상을 특징 지어온 주요 원칙들” 중 첫 번째 원칙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과 국가는 도덕률(moral laws)로 지배된다. 그 도덕률의 기원은 인간을 넘어선 지혜, 즉 신의 정의(justice)다.”(p. 11) 내가 만나는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놀란다. 근대 정치 철학을 다루는, 그것도 ‘보수주의’라는 아주 케케묵은 것을 다루는 책에서 첫판부터(?) ‘하나님’이 등장한다는 것과 더 나아가 아예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보수주의 원칙의 대전제라고 말하는 것에 말이다. 나는 그들의 이 순간이 그동안 본인들이 잃었던 ‘한국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되찾은 순간이라 본다. 거룩한 당황이자 거룩한 재채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작가는 이 책 1장에서 ‘보수주의의 정수’를 말하고 곧바로 2장에서는 ‘종교적 신앙’ 즉 보수주의와 기독교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한다. “종교적 기초가 없는 보수주의는 존재하지 못한다. (중략) 보수주의자는 인간 사회를 신과 인간, 더 나아가 죽은 세대와 현재 살아있는 세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계약이라고 본다. (중략)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 자비롭게 또 공정하게 행동하는 유일한 이유는 신의 의지가 우리에게 그리하도록, 서로 사랑하도록 명령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는 인간에겐 사회에 지는 의무가 있으며, 공정한 정부는 도덕률로 통치된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우리만의 소박한 방법으로 신의 본성과 신의 사랑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신을 두려워할 때 시작된다고 보수주의자는 믿는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보존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신이 자신의 이미지대로 창조하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자 한다.”(pp. 21-23) 이게 보수주의 ‘우파’의 정신이다.

작가는 하나님을 향한 질서를 먼저 확립한 후, ‘양심’, ‘개인의 독립성’, ‘가족’, ‘공동체’와 같은 주제의 순서로 책을 구성한다. 보수주의자는 하나님의 집 안에 거하며 복음의 논리와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한국 크리스천들이 이제야 교회 밖 세상 속에서의 자신의 거처를, 자신의 시민 정체성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투표까지 거룩해지는 것이다.


마무리


한 해 국민 평균 독서량이 166위인 국가에서 자신의 올바른 선거권 행사를 위해 책을 세 권‘이나’ 읽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 수가 매우 적다하더라도 그런 ‘괴짜 같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게 핵심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 수가 매우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의인들의 믿음, 그 마음의 중심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나의 책 소개가 <월드뷰> 매거진을 읽는 지성 크리스천들의 지인 또는 가족들을 보다 올바른 길로 설득하는 복음의 ‘책 소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sazaground@naver.com>


글 | 책읽는사자

기독교 유튜버로서, 성경적 관점으로 다양한 사회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실제적이면서도 바른길을 제시하려고 노력 중이며, ‘사자그라운드’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