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개혁의 방향-정부 역할 줄여야

우리 경제 개혁의 방향-정부 역할 줄여야

2020-02-03 0 By worldview

월드뷰 02 FEBRUARY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글/ 조성봉(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경제성장과 정부의 역할


올바른 경제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걸어온 길,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이 같은 조망을 하기에 가장 좋은 관점은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경제의 운용 방향에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신생 독립국으로 건국 초기 정부의 역할이 경제 운용의 방향을 결정하였으며 지금도 그 역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정부의 역할로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건국과 정부 수립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는 국민경제의 설계자 역할을 했다. 또한 6·25 전후(戰後) 복구와 국민경제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일을 맡았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일련의 정부계획으로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남북 대치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여야 했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다. 건국 초기에는 민간의 역량이 제한적이어서 정부 주도로 경제를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철도, 전력, 통신 등 사회간접 인프라를 운영할 만한 민간기업이 없었기에 철도청, 체신부와 같은 정부 부처 또는 한전 등과 같은 공기업을 통하여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사업을 담당해야만 했다. 여기에 국내산 에너지원으로써 무연탄을 생산하기 위한 석탄 공사, 1950-60년대의 주된 외화벌이로 텅스텐을 생산하였던 대한중석도 모두 공기업이었다. 나중에는 민영화되었으나 국내 유일의 항공회사였던 대한항공공사도 공기업이었고 1960년대의 핵심 산업시설인 정유 산업과 제철 산업의 주력이었던 유공 및 포항제철도 모두 공기업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것도 정부 주도형 경제계획과 운용이었다. 이 시기에 뛰어난 공무원들이 앞선 정보와 판단력으로 우리 경제를 주도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고 수출과 중화학공업에 집중하여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정부 실패


그러나 이와 같은 정부 주도 경제 운용과 공무원 주도의 계획과 규제는 이제 우리 경제에 큰 후유증과 부담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제주체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많이 약화되었고 가격 규제와 진입 규제로 말미암아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경쟁력이 약화되어 있다. 또한 정치권이 정부 주도적 경제 운용에 편승하고 이를 악용함으로써 경제정책에 정치적 포퓰리즘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 입법부가 각종 이익단체 등에 포획되어 있어서 그럴싸한 명분과 핑계를 통해 기존 이익단체의 이해를 보호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경쟁력 있고 뛰어난 새로운 경제주체가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경제는 다소 힘들더라도 창조적 파괴를 통한 구조조정을 거쳐 성장하기보다는 기존의 문제점과 비효율성이 계속 누적되고 악화되어 결국 국민경제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우리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가장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공공부문인데 여기에서 비효율과 시장개입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 공공부문은 시장규율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무풍지대이다. 즉, 공공부문은 대부분 독점사업이어서 경쟁이 없으므로 상품시장에서 소비자 선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부문은 정부가 암묵적으로 빚보증을 하므로 채권자의 감시가 무의미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기업은 비상장기업이고, 설사 상장된 경우라 하더라도 일반 주주의 이해와 의견은 무시하여 자본시장의 감시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공기업은 경영의 자율성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1조(목적)에서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기 위함이라고 입법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 법의 목적은 공공기관의 정관, 이사회, 임원, 예산회계, 경영목표, 경영실적 평가, 경영지침 등을 상세히 규정함으로써 우리 공기업의 경영을 세부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 공기업은 이뿐 아니라 경영평가, 사장평가, 고객만족도 평가, 청렴도 평가, 혁신 평가, e 정부 평가 등 다양한 평가에 시달리고 있으며 주무 부처 감사와 감사원 감사 및 국회의 국정감사로 일 년 내내 경영감시를 당하고 있다. 게다가 공기업 사장의 임기도 3년이며 연임도 1년 단위로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여 사실상 경영의 연속성과 조직의 안정성도 훼손되고 있다.


정부규제


우리 정부의 경제 운용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이 정부규제이다. 최근 ‘타다’ 규제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에 비하여 기존 이해집단의 입김이 강해서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기 매우 어렵다. 우버 택시나 에어비앤비 같은 사업형태도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원격의료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약국 바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품도 크게 제한되어 있어서 약국영업이 종료된 시간에는 소비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다. 대형유통업체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로비에 의하여 입점하기가 쉽지 않다. 이해당사자들이 곳곳에 진 치고 있어서 새로운 사업자와 조직에 의한 경쟁력 제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도 있는 영리병원을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의료 민영화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있어서 우수한 의술과 병원 서비스를 내·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가격 규제로 우리 경제의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고 있다. 전력, 가스, 통신, 고속도로, 철도, 버스, 택시, 상하수도 등 각종 공익산업과 교통요금뿐 아니라 자동차보험, 나아가서 라면 값까지도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규제 이면에는 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을 올리려 하지 않는 정치권과 이에 따르면서 무분별한 가격 규제를 수행하고 있는 관료계층의 타성과 규제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한전의 경우에도 탈 원전과 석탄발전 감축으로 연료비가 증가하여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허락하지 않아 재무상태가 악화되고 있으며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상장회사인 한전의 주가가 심각하게 저평가되어 외국인 투자자를 대신하여 미국의 SEC가 한전 사장에게 경고편지를 보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의료 수가도 규제하여 산부인과와 외과는 의사가 크게 모자라며 응급실 서비스는 열악하다. 유명 종합병원의 외래는 몇 달씩 기다려야 차례가 오기 십상이며 입원실도 부족하여 실질적인 의료 서비스의 품질은 열악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금융시장 규제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의 취약점은 금융시장이다. 금융 산업은 신용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과 개인에게 자금을 공여함으로써 경제주체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스크리닝(screening)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우리 금융부문은 정부의 관치금융에 의하여 자율적인 스크리닝 기능이 크게 떨어져 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때에도 정부의 관치금융에 의존하던 은행들이 주로 문을 닫았고 정부의 개입이 현저하게 적었던 신한, 하나 등 민간은행들의 경쟁력이 훨씬 뛰어나서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을 합병하는 거대 은행으로 등장하였던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금융부문에 대한 장악이 지나치게 커서 우리나라의 관치금융은 여전히 우리 은행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호리에, 김정태, 황영기 등 경쟁력 있는 은행장들을 우리 금융당국이 모두 견제하고 바꿔버린 것도 관치금융의 어두운 그늘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수한 기업을 발굴하고 성장시켜야 할 은행 부문이 제대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어 금융뿐 아니라 실물부문에서의 경쟁력도 크게 저하되고 있다.


맺음말


이제 우리 정부는 경제에서 더 이상 선수와 코치의 역할을 그만두고 심판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공무원 집단은 불필요한 개입을 통하여 이해당사자가 시장에서 경쟁하여야 할 부분에 정치권과 야합하여 조정자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공정하게 경쟁함으로써 우수한 기업이 더욱 성장하고 소비자와 기업이 좋아져야 함에도 우리 정부는 게임 룰을 왜곡하고 우수한 선수의 등장을 막으며 시장에서 정해져야 하는 가격 결정에도 개입하는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은 정부를 개혁하고, 공공부문을 뜯어고치며, 규제를 혁파하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빅데이터, AI, 공유경제, 스마트 시티 등을 모토로 자율성과 창의력으로 톡톡 튀는 기업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경쟁력 있게 등장할 수 있는 싹들을 모조리 자르고, 통제하고, 막고 있다. 과거에 정부가 우리 경제의 활력이었다면 이제는 걸림돌이다. 정부 개혁이 우리 경제 개혁의 일 순위이다.

<sbcho@ssu.ac.kr>


글 | 조성봉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에너지산업, 공정거래 및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2012년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였고 그 이후 한국자원경제학회회장(2018), 한국기독교경제학회회장(2019)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