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징 독수리 국장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
2020-01-20
월드뷰 01 JAN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3 |
글/ 조평세(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성조기를 제외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을 꼽으라면 그것은 독수리다. 실제로 흰머리독수리가 새겨진 미국의 국장(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은 성조기와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일하게 국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 미국의 독수리 문양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미국의 국부들은 독수리가 단지 독립심과 용맹심을 대표하는 동물이라는 이유로 독수리를 나라의 상징으로 선택하게 된 것일까? 혹은 로마제국의 문장을 따라 한 것일까? 혹시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사실 1782년 미국의 대륙회의에서 승인된 이 미국의 독수리 문양에는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성경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는 국장 뒷면의 배경은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독립선언문 선포 직후 제시된 국장 초안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13개 주의 독립선언문이 선포된 바로 그날 오후, 미국의 대륙회의는 곧 건국될 미합중국을 상징하는 국장을 고안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벤저민 프랭클린과 존 아담스, 그리고 토머스 제퍼슨으로 구성된 ‘국장위원회’를 조직했다. 이 세 명의 국부들은 약 한 달간 머리를 맞대고 신생 공화국 미국을 대내외적으로 가장 잘 나타낼 문양을 구상하고 토론했다. 그리고 그해 8월 20일 이들이 대륙회의에 제출한 미국 국장의 디자인 초안은 놀랍게도 출애굽기 14장에 묘사된, 갈라진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는 히브리민족의 모습이었다.
다음은 이들이 당시 대륙회의에 제출한 국장 디자인의 묘사다(당시 스케치는 제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인들을 추격하는 바로 왕이 왕관을 쓰고 검을 들고 전차에 앉아 갈라진 홍해를 건넌다. 하나님의 임재와 명령을 표현하는 구름 속 불기둥에서 나오는 빛이 홍해 건너편 기슭에 서 있는 모세를 비춘다. 모세는 홍해를 향해 손을 뻗어 바닷물이 바로 왕을 집어삼키게 한다.” 그리고 문양에 들어갈 문구도 이렇게 제안되었다. “Rebellion to Tyrants is Obedience to God (폭군에 대한 반란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다).”
미국의 국부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이야기에서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을 찾은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는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13개 주,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하였던 성경 이야기였다. 미국 종교사를 연구한 제임스 버드(Byrd) 교수는 1674년부터 1800년까지의 교회 설교자료 543개에서 17,148건의 성경 인용을 분석했는데 이 중 두 번째로 많이 인용된 성경 본문이 바로 출애굽기 14장과 15장으로 밝혀졌다. (첫 번째로 많이 인용된 본문은 로마서 13장의 ‘위에 있는 권세에 대한 복종’이었고 세 번째로 많이 인용된 본문은 갈라디아서 5장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였다. 이것은 당시 미국인들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면서 얼마나 성경에서 그 명분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며, 또 성직자들이 이러한 미국인들의 의문에 부담을 느끼고 설교했는지 잘 드러낸다.)
그렇다면 프랭클린과 아담스와 제퍼슨 중 누가 이런 ‘성경적인’ 디자인을 제안했을까? 셋 중 비교적 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존 아담스였을까? 아니다. 국부들 사이에서 가장 이신론적(deistic)이었다고 오해받는 프랭클린과 제퍼슨이 제안한 것이다. 프랭클린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제시했고 제퍼슨은 광야에서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제안했다. 아담스는 오히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쿨레스가 미덕과 쾌락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을 제안했다. 이 사례만 봐도 미국의 국부들이 기독교인이 아니라 대부분 이신론자였다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얼마나 기독교를 미국 역사에서 애써 지우려는 세속주의적 왜곡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제네바 성경(1560)의 표지 삽화와 일치하는 국장 초안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제안한 그림이 1560년 제네바에서 출판된 제네바 성경의 표지에 그려진 삽화와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제네바 성경은 ‘피의 여왕(Bloody Mary)’으로 알려진 메리 1세 여왕의 핍박을 피해 칼뱅의 제네바로 피신한 윌리엄 휘팅햄과 존 녹스, 마일스 커버데일 등의 영국 신교도들이 영어로 새로 완역해 출간한 성경이다. 영국 국교회에는 윌리엄 틴들의 번역을 기초로 마일스 커버데일이 완성한 “대성경(Great Bible)”이 있었지만, 강대상에 사슬로 묶여있어서 “Chained Bible”이라고 불리는 등 일반인이 직접 읽거나 가까이할 수 없는 성경이었다. 하지만 제네바 성경은 최초로 장절 구분이 도입된 성경일 뿐 아니라 교회 비치용이 아닌 대중 보급용으로 출판된 최초의 영어 성경이었기 때문에 출간 즉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셰익스피어, 존 번연, 존 밀턴 등이 인용한 성경도 제네바 성경이다.
바로 이 제네바 성경의 표지에 1776년 프랭클린과 제퍼슨이 제안한 미국 국장의 문양과 같은 맥락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 삽화에도 구름 기둥과 홍해 앞에서 손을 든 모세와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이집트 군대가 그려져 있다. 이 표지 그림의 상단에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라는 말씀이 적혀있고 좌우에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라는 말씀이, 그리고 하단에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가 적혀있다.
제네바 성경은 또한 여러 지도와 삽화와 주석이 들어간 최초의 ‘주석성경’이기도 했다. 신앙의 자유를 갈망했던 피난민들이 출판한 성경인 만큼, 약 3만 단어에 달하는 이 주석의 주된 주제는 ‘자유’였고 칼뱅의 개혁주의에 충실했다. 그래서 1658년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올리버 크롬웰이 병사들에게 휴대하도록 나눠준 최초의 ‘포켓 바이블’이 바로 제네바 성경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필그림들의 손에 들려 신대륙 미국에 건너온 성경도 역시 칼뱅주의 정신이 그대로 담긴 제네바 성경이었다. ‘근대 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오폴드 폰 랑케가 “미국을 건국한 것은 사실상 칼뱅이다.”라고 한 것이 이런 맥락이다. 미국 역사학자 조지 밴크로프트도 “칼뱅의 영향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 자유의 원천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제네바 성경은 1560년 출간 이후 약 80년 동안 무려 144회의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1611년 제임스 1세 왕에 의해 킹제임스성경이 출판된 이후 영국에서는 제네바 성경의 인쇄와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제네바 성경의 주석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에게는 불복종하는 것이 옳다는 내용 등, 왕실의 입장에서는 “선동적인”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대륙의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수입되었던 제네바 성경에 익숙했고, 영국 왕의 폭정이 심해지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도모하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당연히 제네바 성경의 인기가 더욱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건국 이후에도 링컨 대통령이 킹제임스성경보다 제네바 성경을 주로 인용하기도 했던 것을 볼 때, 이 성경이 19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톨레레게 출판사가 2006년부터 제네바 성경의 1599년 개정판을 주석과 함께 다시 출간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프랭클린과 제퍼슨을 포함한 미국의 국부들이 영국의 폭정으로부터 독립해 미국을 건국할 때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이고 그 맥락이 최초의 대중 영어 성경인 제네바 성경의 탄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국부들은, 가나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언약 국가’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선조들의 신대륙 정착과 자신들의 독립 및 건국과정을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출애굽 이야기에서 독수리 문양으로
그렇다면 1776년 8월 프랭클린과 제퍼슨이 제안했던 출애굽 문양의 국장은 왜 결국 독수리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을까? 이들의 제안은 폐기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독수리의 모습에 출애굽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성경을 잘 아는 독자들은 아마 눈치를 챘을 것이지만 이것도 결국 성경에 답이 있다. “내가 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 또한, 모세가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모든 율법을 기록한 후에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총회에서 읽은 노래에도 독수리가 묘사된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신 32:11).”
1776년 대륙회의에 제출된 프랭클린의 국장 초안은, 독립을 선포한 미국인들에게 닥친 후폭풍 등 다른 여러 시급한 사안들에 밀려 표결이 무기한 연기되고, 이후 6년 동안 두 번의 다른 ‘국장위원회’가 설치되기도 하지만 대륙회의는 결정을 계속 미루게 된다. 그러다가 영국과의 협정이 체결될 분위기가 조성되자 미국은 영국과의 동등한 위치에서 조약을 맺기 위해 국가의 상징인 국장의 필요성이 시급해진다. 이때 대륙회의의 서기를 맡았던 찰스 톰슨(Charles Thomson)은 급히 그동안 세 차례의 위원회를 통해 수렴된 국장에 대한 의견들을 종합해 독수리 문양을 국장의 최종안으로 상정하고 표결해 1782년 미국의 국장으로 승인하였다.
사실 톰슨이 위 성경 말씀을 근거로 미국 국장의 최종안을 독수리로 선택했다는 기록은 없다. (톰슨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대륙회의 기록을 당시 독립혁명가들의 “명성과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파기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단지 당시 국부들이 대부분 성경의 맥락,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 광야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미국 국장의 독수리가 이스라엘 민족을 업어 인도하신 하나님의 비유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찰스 톰슨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면 이 막연할 수 있는 추정이 더욱 결정적인 힘을 얻는다.
톰슨이 만약 이신론자였다거나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그의 독수리 문양 결정은 그냥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톰슨은 성경을 완전히 통달한 사람이었다. 1789년 대륙회의 서기직을 마친 톰슨은 18년 동안 70인 역 헬라어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해 1808년 미국 최초의 성경 역본인 4권짜리 ‘톰슨 성경’을 출판한다. 1815년에는 사복음서를 연대별로 정리해 분석한 <A Synopsis of the Four Evangelists>를 써내기도 한다. 이렇게 성경을 완역할 정도로 성경을 통달한 인물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사가 성경에서 독수리의 비유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오히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홍해를 건너 광야 생활을 견뎠던 이스라엘을 국장에 표현하고자 했던 프랭클린과 제퍼슨의 최초 구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독수리 문양을 최종안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미국의 독립과 건국은 독립선언문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인 국장에까지 그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깊숙이 배어있다.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제도는 그렇게 18세기 독립과 건국부터 성경을 근거로 세워졌고 유지됐다. 그리고 18세기에는 남북전쟁도 불사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통해 성경에 반하는 노예제를 폐지하며 ‘제2의 건국’을 치러내 그 ‘1776년의 독립정신’을 완성한다. 대한민국은 우남 이승만을 통해 아시아에서, 혹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독립정신과 국가 제도를 본받은 자유 공화국이다. 그리고 현재 70년 전의 한국전쟁 이후 아마도 가장 심각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미국이 남북전쟁과 노예제 폐지를 통해 치러낸 것처럼 우리도 ‘제2의 건국’을 이루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오늘, 이 순간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미국의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이 절대 적지 않은 이유다.
<pyungse.cho@gmail.com>
참고자료
James P. Byrd (2013) Sacred Scripture, Sacred War: The Bible and the American Revolution, Oxford University Press.
Daniel L. Dreisback (2017) Reading the Bible with the Founding Fathers, Oxford University Press.David W. Hall (2003) The Genevan Reformation and the American Founding, Lexington Books.
글 | 조평세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과 전쟁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현재 워싱턴DC에서 트루스포럼 연구위원으로 보수주의 책들을 번역,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