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포스의 노예 폐지 운동을 통해 바라본 한국 교회의 사명

윌버포스의 노예 폐지 운동을 통해 바라본 한국 교회의 사명

2019-11-19 0 By worldview

윌버포스의 노예 폐지 운동을 통해 바라본 한국 교회의 사명

월드뷰 11 NOVEMBER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글/ 이태희(미국 변호사, 목사)

이원화된 기독교 진리

네덜란드의 수상을 지낸 18세기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은 ‘구원론’(즉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우주론’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 우주의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기독교의 진리란 개인의 구원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모든 피조물 세계의 영적, 물리적 질서와 도덕적 질서를 다스리고 있는 ‘총체적인 삶의 체계’ 또는 ‘우주 보편적인 진리’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기독교와 이 세상이 당면한 위기의 본질은 우주 보편적인 기독교의 진리가 ‘파편화’ 또는 ‘이원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교회 안에서 따르는 기준이 따로 있고, 세상에서 따르는 기준이 따로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종교적인 진리에 국한 시킨 채, 세상 속에서는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일종의 ‘영적인 분열증’을 앓고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가정 안에서의 진리요, 사업장에서의 진리이며, 실험실 안에서의 진리요, 의사당에서의 진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창조되었고, 아들을 위해 창조되었고, 아들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적 세계관의 회복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창 1:1)”는 선포로 그 문을 열고 있다. 이 선포가 성경적 세계관의 뿌리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라는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연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창조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한 도덕법을 함께 창조하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고,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치 사회적 원칙들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이 창조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분의 명령에 따라 존재하게 된 것이며, 따라서 모두 그분에게 속한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만 그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탐구하는 모든 학문 예컨대 법학, 의학, 경제학, 정치학, 물리학, 성악, 미술 등의 모든 주제에 있어 참된 진리, 또한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예컨대 가정, 학교,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을 다스리는 법칙과 질서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진정한 지식’이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가 구성된 ‘법칙’과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고, ‘진정한 지혜’란 그 질서와 법칙을 우리 삶의 기초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디자인되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창조주가 정하신 창조세계의 질서와 법칙들이 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샬롬’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신적 질서와 법칙의 본질을 확신하고, 그 질서와 법칙을 우리의 삶과 사회의 기초로 사용해야 한다. 그와 같은 질서와 법칙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회사를 경영하고, 정치하고, 문화 예술을 만들어 갈 때 이 세상 나라는 그리스도가 영원히 왕 노릇 하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적 세계관’의 회복이 절실한 것이다.

칼빈대학교의 코넬리우스 플랜팅어(Cornelius Plantinga)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롭다는 것은 현실을 알고, 자기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과 질서를 부인하는 것은 ‘현실’에 대해 우리의 눈을 스스로 가리는 것 같은 어리석은 행위다. 그와 같은 어리석은 행위는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공중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이 아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현실과 충돌하게 된다. 현실에 눈을 감는다고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과 질서를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 가운데 계시 되어진 하나님의 질서와 법칙을 무시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아주 고통스러운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삶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 나라 가운데 진정한 번영과 샬롬을 이뤄갈 수 있는 길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가운데 회복하는 일, 즉 ‘성경적 세계관’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윌버포스와 노예 폐지 운동

이와 같은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바로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정치인들이 주도한 노예무역 폐지 운동이다. 17세기부터 시작된 과학 혁명, 이신론과 계몽주의 등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가던 기독교는 18세기 말부터 국가 도덕 개혁을 위한 사회 참여 운동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노예무역 폐지 운동이었다. 이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영국의 하원 의원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다.

윌버포스. 출처: https://fee.org/articles/you-can-never-again-say-you-did-not-know/

윌버포스는 1759년 영국 북동부의 항구 도시 헐(Hull)에서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768년 부친의 죽음 후 잠시 백부의 집에 보내지게 된 윌버포스는 그곳에서 감리교도였던 백부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적 신앙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교도들은 감리교를 하류 계층의 종교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손자가 ‘천박한 감리교도’가 되는 것을 염려한 할아버지는 그를 다시 집에 돌아오게 했다. 1776년 케임브리지의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한 윌버포스는 그곳에서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1759-1806), 토머스 기스번(Thomas Gisborne, 1758-1846) 같은 장차 노예무역 폐지 운동을 함께 할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1780년에 자신의 고향에서 당선되어 하원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1784년에는 24세의 나이로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구라고 할 수 있는 요크셔의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때 가장 절친한 친구 윌리엄 피트가 영국의 수상으로 지명됨으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는 더없이 탄탄해지게 되었다.

1784년, 요크셔의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윌버포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회심’ 사건이다.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윌버포스는 누이의 건강이 악화되자 요양을 겸하여 프랑스 해안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이런 여행에 나설 때는 여행 가이드가 필수였다고 한다. 특별히 가이드는 대부분 학식이 풍부한 학자들이 맡곤 하였다. 애덤 스미스 같은 대학자도 교수 월급보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해 주었던 가이드 일을 통해 수입을 올리곤 했다. 윌버포스는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목이었던 아이작 밀너 (Isaac Milner, 1750-1820)를 여행의 가이드로 초청하여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여행 기간 내내 밀너의 ‘복음주의적 세계관’과 윌버포스의 ‘세속주의적 세계관’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행 내내 다투었고, 밀너의 설명은 윌버포스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윌버포스는 우연히 일행 중 한 명이 들고 일던 필립 도드리지 (Philip Dodridge, 1702-1751)의 <인간 영혼 속의 종교의 부흥과 발전> (The Rise and Progress of Religion in the Soul)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윌버포스가 이 책에 관심을 보이자 밀너는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때 국내의 급한 현안 때문에 윌버포스가 귀국하게 되었는데 밀너도 동행하여 그 책에 대한 독서 토론을 이어갔고, 나중에 윌버포스는 밀너와 이 책을 읽었던 것을 그의 회심의 중요한 계기로 여기게 된다.

1785년 11월, 윌버포스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살려면 세상을 버려야 하며 중간 지대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윌버포스는 정계를 떠나 성직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고민과 결심 끝에 윌버포스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사자이자 복음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존 뉴턴 (John Newton, 1725-1807)을 찾아갔다. 이 만남에서 존 뉴턴은 윌버포스에게 정치계를 떠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1787년 10월 28일, 윌버포스는 일기장에 그의 구체적인 인생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커다란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과 이 나라의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노예무역의 폐지와 도덕 개혁은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표였다. 윌버포스는 이 과업을 비슷한 생각과 의무감을 가진 공동체를 통해 진행하였다. 1797년 윌버포스가 런던 근교의 클래팜에 위치한 헨리 손턴(Henry Thornton, 1760-1815)의 집으로 이사한 후, 그를 따라 그의 정치적, 종교적 동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영국 정치사에서 ‘클래팜 파’라고 불리는 복음주의 정치가 무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노예무역을 폐지 시킨다는 것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 노예무역이 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에 노예무역 폐지는 곧 국가적 자살행위로 간주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노예 제도가 불의한 제도라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다. 그렇다면, 윌버포스를 비롯한 클래팜 파들은 도대체 왜 수 많은 사람들의 공격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노예 폐지를 위해 헌신했던 것일까? 그 주된 동기는 다름 아닌 복음주의 교리에 내재된 성경의 반 노예적 가르침 때문이었다. <대서양 노예무역과 영국 노예무역 폐지 운동>(1975)의 저자 로저 안스티(Roger Anstey)에 따르면, 18세기 프로테스탄트 부흥 운동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을 얻게 되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노예들의 물리적 구속 상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노예 제도를 이전처럼 무 비판적으로 수용될 수 없게 되었고 그중 일부가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주장과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윌버포스가 주도했던 노예무역 폐지 운동은 18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기계적 우주관과 이신론의 영향으로 일반인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력을 상실해 가던 유럽의 기독교가 18세기 초중반에 일어났던 제1차 대각성 부흥 운동으로 수세에서 벗어났다면, 18세기 말 영국의 복음주의 정치가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보편적 윤리로 내세워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가려 노력함으로써 복음주의적 교리와 성경의 가르침을 공적, 사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8세기 복음주의자들이 주도했던 노예무역 폐지 운동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노예 노동’에 의존하던 산업을 ‘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구조로 바꾸었으며, 무엇보다 영국인들의 도덕적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온 점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혁명과 같은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혁명이 대한민국 안에서도 일어나야 한다.

영적 각성 운동과 사회 개혁

현재 대한민국은 확실히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 정치 사회적인 혼란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극에 달하고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게다가 성장의 가도를 달리던 한국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양적, 질적으로 침체기를 맞기 시작했다. 무서운 세속화의 물결, 이데올로기의 대립,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극성, 이슬람 세력의 위협 등으로 대한민국과 교회는 극심한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의 해결책은 위로부터 임하시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 영적인 대각성 운동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철저한 영적 각성만이 개인과 교회와 나라를 다시 살릴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대로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법칙’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놀라운 ‘영적 각성’과 ‘사회 개혁’은 언제나 깊은 흑암과 절망의 때에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중세 시대의 영적 암흑 가운데서 종교개혁을 일으키셨다. 계몽주의가 서구를 가로질러 합리주의와 세속주의를 확산시키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연속적으로 놀라운 영적 각성 운동을 보내주셨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세기 말부터 진행된 민족적 위기 속에서 이 민족과 교회를 살린 원동력은 영적 대각성 운동이었다. 1903년 원산 부흥 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령 운동 등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불어닥친 놀라운 영적 각성 운동은 개인의 회심은 물론 놀라운 사회 개혁을 일으키며 한국 근대화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마치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이 미국 독립운동의 정신적 틀을 제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근대화는 바로 이와 같은 영적 각성의 결실이었다.

영적 대각성 운동이 임하면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시대가 안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도덕적 문제가 함께 해결된다. 예를 들어, 노예 문제, 마약 문제, 성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문제들이 치유된다. 윌버포스의 사례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영국에서는 웨슬리 부흥 운동을 통해 노예 문제, 감옥 문제, 교육 문제가 해결되었다. 미국에서는 2차 대각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고, 미성년자들의 노동이 금지되었다. 영국 복음주의 부흥 운동을 통해 실제로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을 목도한 존 웨슬리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순히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단순한 거룩함이 아니라 사회적인 거룩함이다.” 정치 사회적인 변혁과 갱신은 공동체의 영적 각성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 기간 남군 가운데 일어난 영적 각성 운동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시켜 준 것처럼 이 땅의 부흥만이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를 하나 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선진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의 길을 준비하는 윌버포스 아카데미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필자는 2015년에 12명의 청년들과 함께 윌리엄 윌버포스의 이름을 따서 ‘윌버포스 아카데미’를 창립했다. 2016년에는 <그안에진리교회>를 창립하여 이 땅에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윌버포스 아카데미는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시켜 이 세상의 7가지 영역, 즉 정치, 경제, 문화, 가정, 미디어, 교회, 교육 속으로 들어가 ‘선진한국’, ‘통일한국’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단체다. 특별히 윌버포스 아카데미는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세계관들, 즉 세속적 인본주의 세계관, 마르크스 세계관, 포스트모던 세계관, 뉴에이지 세계관, 이슬람 세계관과 성경적 세계관의 차이를 공부하며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문화적인 현상들을 ‘성경적 관점’으로 분별하고, 더 나아가 성경적 관점에 입각한 대안들을 제시하며 세워가는 것을 그 사명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윌버포스 주니어 아카데미를 시작하여 초등학생 때부터 말씀 훈련, 기도 훈련, 세계관 훈련을 통하여 이 땅의 무너진 성벽들을 재건하는 이 시대의 느헤미야, 이 시대의 윌버포스로 양육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앞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윌버포스 유스 아카데미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그안에진리교회>에서 윌버포스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윌버포스 아카데미를 통하여 이 땅에 성경적 세계관의 회복이 일어나고, 그리하여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진정한 부흥의 날을 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taehee2476@gmail.com>

[참고 도서]

윤영휘 (2018), <혁명의 시대와 그리스도교>, 홍성사
박용규 (2014), <세계부흥운동사>,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찰스 콜슨 (2002),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요단

글 | 이태희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과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국제법을 공부했다. 온누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으며, 워싱턴 D.C에 위치한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IJM)의 펠로우 등으로 활동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로펌의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지난 2016년 서초동에 <그안에진리교회>를 창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