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폴 2년의 실험을 마치며

2019-10-20 0 By worldview

세인트폴 2년의 실험을 마치며

 

월드뷰 10 OCTOBER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글/ 정소영(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 교장)

 

2017년 9월에 시작했던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가 기획했던 4학기 과정을 모두 마치고 총 1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기에 약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였는데 어렵고 힘들다는 고전 독서에 도전하여 끝까지 과정을 완주한 사람이 1/3이나 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고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아마도 시대가 어지럽고, 복잡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했던 생각들로부터,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이 어려움을 타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좋은 인문학 강의들이 열풍이다 싶을 만큼 많이 생겨났고, 서점에는 고전 인문학에 대한 책이 넘쳐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아쉬운 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고전이란 누구나 제목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그 말처럼, 사람들이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강의를 듣고, 지식과 정보를 얻기는 하지만 정작 스스로 책을 열고 그 고전의 바다에 빠져들어 가서, 자기의 몸을 적시고, 거기서 나와서는 자신의 삶에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었다. 늘 고전은 우리에게 ‘누가 ∼ 카더라’ 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서는 그냥 잊히고 마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는 이제 ‘그런 고전 공부는 그만’이라고 선언한 학교이다. 더 이상 남들이 말해주는 이야기, 소위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주입하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듣고, 머릿속 가득히 지식만 채우는 그런 독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비록 철학이나, 역사나, 문학이나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책을 읽고, 그 책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묻고, 답을 찾아가고, 그 과정 가운데 생각과 판단이 변화하게 되고 그것이 행동으로까지 연결되는 살아있는 독서를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그런 독서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서로 머리를 맞대고 격려하며 해 나가는 곳이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에 지원하는 분들은 적어도 인생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가진 분들이다.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고 싶고, 한 걸음 한걸음 묵직한 발걸음으로 내딛고 싶은 분들이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과 경험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진지한 자세로 함께 책을 읽고 자신이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질문을 내놓고 토론하다 보면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는 즐거운 경험을 누리게 된다.

나에게 중요하게 와닿은 부분이 다른 사람에겐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기도 하고, 내용과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글의 형식과 스타일에 감명을 받는 분들도 있다.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책에 대한 통찰력이 확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의 다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독서를 통한 지적인 만족감에 덤으로 주어지는 기쁨이다.

처음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의 커리큘럼을 기획했을 때 현대 사회의 지성인이라면 이 정도 수준의 책은 맛보아야 하고, 앞으로 이 커리큘럼을 통해 서양의 전통적인 명문 Liberal Art College나 대학원 수준의 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을 배출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에서 다루고 있는 책의 수준은 만만치 않다.

서양 철학의 기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중세의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근세의 칸트와 니체, 그리고 마키아벨리와 홉스, 밀과 같은 정치 철학과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 하이에크의 경제 사상에 이르기까지 매 학기마다 현대 사회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기여를 한 책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런 책들은 한 권을 제대로 읽기에도 버겁고, 평생을 연구해도 모자랄만한 그야말로 인류 지혜의 보고인 고전들이다. 그러니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에서 함께 읽었다고 감히 그 책들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전을 읽음으로써 최소한 그 책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어떤 어려운 책도 읽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게 된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는 그런 자신감 있고 자각된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주는 그런 성숙한 사회를 꿈꾼다.

꿈이 너무 큰 것일까. 그러나 지난 2년을 통해 이 꿈이 그저 백일몽으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의 특징 중 하나가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먼저 참여해 보고, 자녀들을 보내기도 하고, 남편과 아내가 함께 오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의미 있었고, 행복했었다는 뜻일 것이다.

처음 이 학교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최소한 앞으로 문을 닫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도 고전 독서를 통해 새로운 교육의 장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땅의 청소년이라 함은 남과 북의 청소년 모두를 의미한다. 이들이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통일의 그날을 기대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지난 2년간의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 성인반의 실험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었다고 자부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참 다행인 것은 이 발걸음에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지난 2년을 통해 많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외롭지 않은 길, 짐을 나누어지고 갈 수 있는 그 길이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 본다.

<saintpaulkorea@gmail.com>

 

글 | 정소영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언론홍보대학원 및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한동 로스쿨)을 졸업하였다.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의 초대 대외협력실장을 거쳐 법무법인 강호 등에서 미국 변호사로 일하였다. 현재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 교장이며, 유튜브 채널 [VON 뉴스]에서 강의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미국은 어떻게 동성결혼을 받아들였나? -미국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12대 판결>이 있으며, <글로벌 성혁명>(가브리엘 쿠비 저)을 번역하였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는 고전 독서 훈련을 통하여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적 소양을 갖춘 교양인 및 교육자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다. 학문의 토대가 되는 고전 인문학 소양을 정독과 글쓰기, 및 토론 훈련을 통해 함양함으로써 상대주의가 판치는 이 시대에 보편적 진리와 가치에 기반하여 인간과 사회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고자 한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의 차별성은 가만히 앉아서 듣고 이해하는 기존의 강의 스타일의 수업 방식에서 탈피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읽고, 쓰고, 발표하고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고전 독서 정독법과 저술가가 될 수 있는 글쓰기 방법, 효율적으로 설득하는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데 있다.

 

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에 대한 문의는

홈페이지: www.saintpaulacademy.net
이메일: saintpaulkorea@gmail.com 또는 info@saintpaulacademy.net
문의전화: 02 733 2939

 

수업일정: 매주 화요일 (중·근세 고전 중심반), 목요일(그리스 고전 중심반) 저녁 7시
수업장소: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55, 대신빌딩 2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