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의 선악과
2019-10-06인간과 로봇의 선악과
– 영화 <아이, 로봇>(I, Robot. 미국. 2004.) 비평
월드뷰 10 OCTO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4 |
글/ 황선우(세종대 트루스포럼 대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개’로 비유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일컫는 말이다. 즉,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 ‘선악과’라는 경계선을 세웠다. 인간이 선과 악을 아는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 아니고 싶어 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2004년에 개봉된 영화 <아이, 로봇>은 2035년의 일상을 그린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간다.
로봇은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힘과 완벽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인간과 로봇이 떼싸움을 벌이면 인간이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감정’과 ‘생각’이라는 경계선이 있기에, 로봇은 인간을 돕는 존재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영화에서 로봇 공학자 래닝은 이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감정과 생각을 갖춘 로봇은 자신이 인간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 인간과 로봇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 로봇에게 감정과 생각을 준 원천을 봉쇄하고 나서야 끝난다.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 세상은 황폐화되었다. 처음에는 경계선 아래에 있는 존재, 로봇이 이기는 듯했다. 하지만 경계선을 다시 세우는 버튼 하나에 로봇은 인간에게 바로 엎드렸다.
경계선은 지켜질 때 아름답다. 경계선은 이 선의 아래에 있는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를 지어진 그대로 살게 해줄 뿐이다. 로봇은 로봇답게 살 때 가장 귀중하다. 로봇이 인간의 영역에 침략하려 해봐야, 버튼 하나로 패배할 전쟁을 할 뿐이다. 인간 역시 인간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 스스로 로봇의 자리로, 혹은 하나님의 자리로 가는 것은 황폐화를 이끌 뿐이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엄청난 지혜이자 사랑이었다. 인간이 로봇을 진정 아낀다면 로봇에 감정과 생각을 넣어선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진정 아낀다면 인간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맞춤 아기(designer baby)를 만드는, ‘인간의 로봇화’가 아기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인간을 인조인간으로 불리게 하는 성형 중독이 인간을 예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sunu8177@naver.com>
글 | 황선우
세종대학교 수학과에 재학 중이며, 세종대 트루스포럼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