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주는 의미
2019-09-29BTS가 주는 의미
월드뷰 09 SEPT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 |
글/ 이상원(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의 20대 청년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6·25 동란, 그리고 이로 인한 장기적인 절대빈곤의 중압감을 벗어날 수 없었던 1960년대 이전 세대는 나라에 대한 열등감, 일의 성취에 대한 자신감 결여 등으로, 어느 정도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분단 상태이긴 하지만 장기간 정치적 평화가 유지되고, 경제개발계획의 추진 등으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또한, 부모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을 받고, 전통적인 유교적 허례와 불교적인 세상 도피의식에서 벗어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현세의 삶과 미래의 소망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부흥에 힘입어 1970년 이후의 세대는 국가적인 열등의식이나 주저함이 없이 자신들이 가진 재능들과 우리 민족이 고유하게 지녀온 “끼”를 막힘없이 표출하고 있다. 피겨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단숨에 세계피겨의 중심으로 바꾸어 버린 김연아, 세계 여자배구계의 가장 걸출한 스타로 발돋움한 김연경,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여자골프선수들, 탁월한 스토리와 예술성으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대장금과 겨울연가와 같은 한류 드라마들, 그리고 세계 대중음악에 큰 획을 긋고 있는 K-Pop 등 한국 젊은이들의 도약이 눈부시다.
한국 젊은이들의 눈부신 도약들 가운데, 최근에 들어와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현상은 BTS(방탄소년단)의 음악 활동이다. BTS는 2013년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작은 연예기획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하여 데뷔한 남성 7인조 그룹이다. BTS라는 명칭은 상식적인 어법을 깨는 말놀이(word-play)를 담고 있는 다의적인 의미를 지닌 이니셜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글명의 영어 음역인 BangTanSonyundan의 이니셜이기도 하고, 이 이름의 영어 의미역인 Bulletproof Boys Scouts(젊은이들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방어하는 소년들이라는 뜻)의 이니셜이기도 하고, Beyond the Scene(매 순간 청춘의 장면을 넘어서서)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가능한 말놀이는 1960년대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보이그룹인 비틀스(The Beatles)의 이니셜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BTS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노래한 그룹이며, 주로 백인들 사이에서 영향을 끼쳤던 비틀즈와는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 인종, 종교, 빈부를 가리지 않고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틀즈를 닮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틀즈를 이미 뛰어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서 북미와 유럽,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수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에서부터 거의 10만 명 규모의 대형 스타디움까지 순식간에 티켓을 매진시키면서 수십 차례 이상의 세계 공연 투어를 성공리에 치러 냈다.
BTS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으며, 이 비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BTS의 노래들이 대중음악의 차원이긴 하지만 아주 높은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BTS 멤버들의 보컬과 랩은 세계 최상급이며, 노래에 수반되는 춤의 완성도는 극히 높고 매우 아름답다. 아마 댄스와 함께 노래하는 젊은 대중음악 가수 중에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가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TS는 춤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투브 조회수 8억 회를 넘기고 있는 노래 ‘DNA’는 DNA라는 첨단과학 주제를 운명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장치로 이용한 것인데, 춤 동작 가운데 7인 멤버를 이용하여 DNA의 염기 사슬 구조를 운율을 담아 표현한 것은 매우 창의적이었고 기발한 것이었다. 만날 수 없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움은 세월호로 잃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을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봄날’(Spring Day)의 안무에서 흰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고 눈꽃이 떨어져서 멀어져 가는 장면을 표현한 안무는 아름다웠다. 겉으로 표현되는 사랑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내면의 고민과 아픔을 표현한 뷔(V)의 솔로곡 ‘싱귤래리티’(Sigularity)에서 뷔의 일인이역과 가면 춤은 압권이었다. 사랑의 황홀함을 노래한 지민의 솔로곡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서 360도로 몸을 회전하는 최상위 난이도의 춤이라든가, 사랑의 대상 혹은 연인을 “푸른곰팡이,” “삼색 고양이” 등과 같은 창의적인 표현과 이 표현을 예쁜 안무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탁월한 예술적 기교는 인간을 포함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내재한 일반계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 자체로 계시의 빛을 담고 있는 것이며, 그 기교를 통하여 기교가 담고 있는 주제–그 주제가 어떤 것이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여 받아들이게 하는 힘을 지닌다. 예술적 기교가 탁월하고 아름다우면 주제가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예술적 기교가 어설프면 주제도 어설프게 전달된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전달하고자 하는 기독교 문화인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문화의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문화라는 도구, 예술적 기교를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 필자가 원문으로 읽은 두 권의 영문소설이 좋은 예가 된다.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장편소설 테스(Tess)는 기독교 성직자의 위선과 고민을 담은 허무주의(nihilism)를 전달하고자 하는 소설인데,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시적 운율을 타고 서술되어 있어서 예술성이 매우 뛰어나,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많은 독자를 허무주의로 끌고 갔다. 한편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Jane Eyre)는 탁월한 기독교 소설로서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문장을 전하는 데 일조했다.
BTS가 보여 주는 또 한 가지 특징은 현대문화의 중요한 특징인 SNS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청중들과 중단 없는 소통에 힘쓰되, 주로 청년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을 가사에 담아 노래해 온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는 다르게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고민을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을 다독이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시도들을 꾸준히 해 왔다. BTS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무거운 현실 비판적인 문제들을 예술성 높은 음악과 춤에 담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BTS가 다룬 주제들은 매우 다양하다. 입시지옥에 억눌린 청소년들, 빈부의 격차에 찌든 사회의 부조리, 왕따, 젊은이들에게 특유하게 나타나는 연애에서 버림받았을 때의 분함, 성공적인 길에 들어섰을 때 나타나는 마음과 행동의 괴리 등과 같은 젊은이들의 실제적인 고민과 갈등을 젊은이들의 언어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BTS는 이런 소재들을 전달하고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이들을 위로하고 이런 고민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의미와 행복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메시지를 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모든 메시지 안에는 “너 자신을 찾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호소가 들어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사회의 의식적 무의식적 강요에 밀려서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진로를 가는 청소년들의 고민이 담긴 노래로는 ‘No more dream’과 ‘N.O’를 들 수 있다. ‘No more dream’에서 방탄은 “어른들과 부모님은/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 희망 넘버원 공무원…. 왜 자꾸 딴 길을 가래”라며 청소년들의 강요된 현실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은 “임마 네 꿈은 뭐니/니 꿈은 겨우 그거니”라고 핀잔을 주는 현실을 소개한다. 이런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향하여 ‘No more dream’은 “너의 길을 가라(고)…. 단 하루를 살아도”라고 응원한다. ‘N.O’에서는 더 도발적으로 비판한다. “좋은 집…. 좋은 차/그런 게 행복일 수 있을까…. 일등을 강요받는 학생은/꿈과 현실 사이의 이중간첩/우릴 공부하는 기계로 만든 건 누구/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짓게 만든 건 틀에 가둔 건/어른이란 걸…. 힘든 건 지금뿐이라고/조금 더 참으라고 나중에 하라고.” 동시에 ‘N.O’는 이 틀에서 벗어나라고 응원한다. “더는 나중이라는 말로 안 돼/아직 아무것도 해본 게 없잖아…. Everybody say NO.”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한 노래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뱁새”와 “불타오르네”를 들 수 있다. “뱁새”는 가르치는 기성세대를 보폭이 큰 금수저인 황새에 비유하고 수학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른바 열등한 학생들을 보폭이 작은 “뱁새”에 비유하면서 황새의 기준에 따라오지 못하는 뱁새를 “싹수가 노랗다”라고 타박하는 교육 현실을 비판한다. “불타오르네”에서는 빈부와 능력의 격차를 가지고, 사람들을 재단하는 금수저들의 왜곡된 시선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힘차게 새 출발 할 것을 강렬하게 요구한다. “그 말하는 넌 뭔 수저길래/수저 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 싹 다 불태워라…. 니 멋대로 살어 어차피 니 꺼야.”
왕따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노래로는 “2! 3!”를 들 수 있다. 이 노래에서 BTS는 랩을 통하여 자신들이 별로 환영받지 못했던 힙합 그룹으로 출발했을 때 왕따 당했던 경험을 이렇게 노래한다. “너넨 아이돌이니까 안 들어도 구리겠네! 너네 가사 맘에 안 들어 안 봐도 비디오네/너넨 힘없으니 구린 짓 분명히 했을 텐데 너네 하는 짓들 보니 조금 있으면 망하겠네.” 그러나 BTS는 아름다운 선율에 담아 왕따 당하는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한다. “괜찮아 자 하나둘 셋 하면 잊어 슬픈 기억 모두 지워 내 손을 잡고 웃어…. 그래도 좋은 날이 앞으로 많기를….” 세계의 10대~20대 청중들은 BTS 노래에 담긴 현실 인식에 공감하는 동시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에 감동하고, 우는 이들이 공연장마다 많이 등장하고, youtube reaction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올라온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청중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메시지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잘 어우러진 노래는 “Magic Shop”이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Magic Shop.”
10~20대 때 겪는 사랑과 이별에 뒤따르는 아픔과 이 아픔을 달래는 노래로는 “Danger,” “I need you,” “Save me,” “Run” 등이 있는데 이 노래들이 BTS의 서정적인 가사와 노래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Danger”는 사랑을 싹틔워 주고 떠나 버린 여자친구에게 “너란 여잔 사기꾼 내 맘을 흔든 범인”이라고 말하면서 “헷갈리게 하지 마”라고 쏘아붙인다. “I need you”에서는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여자친구를 향한 애증을 노래하고 있으며, “Save me”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 줄 것을 호소한다. “왜 이리 깜깜한 건지 니가 없는 이곳은/위험하잖아. 망가진 내 모습/구해 줘 날 나도 날 잡을 수 없어.”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 최정상의 톱 댄스송 그룹으로 성공한 후 BTS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세계적인 아이돌’이라는 엄청난 부담과 그 부담 속에서 한 평범한 청년들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노래에 담아냈는데, 그 대표적인 노래들이 “Fake Love”와 최근에 발매된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s with Luv)”다. “Fake Love”에서 BTS는 세계적인 성공의 가도에서 기뻐하고 웃고 팬들과 자신 있게 소통하는 모습이 작은 꿈을 잃지 않으려는 평범하고 소박한 청년들이기를 꿈꾸는 자신들의 솔직한 실제 모습은 아닐 수 있음을 청중들에게 끊임없이 알려 주며, 이 두 자아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부단하게 알리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Fake Love”에서 BTS는 슬퍼도 기쁜 척해야 하고 아파도 강한 척해야 하는 (아마도) 무대 위의 자신의 모습이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I am so sick of this Fake Love”라고 부르짖는다. “Boys with Luv”에서 BTS는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 좋으면서도 조금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나는 내가 개인지 돼진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와서 진주목걸이를 거네.”라고 자신들의 당황한 모습을 묘사한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 그리고 잃고 싶지 않은 모습은 “난 그냥 들어주는 누가 있단 게 막 좋았던 거야”라고 표현한다.
BTS의 가사들 안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삶의 짊과 고민이 솔직하게 담겨 있으며, 이 고민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대화의 접촉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복음 전도자들은 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서 이 고민을 발판으로 한 단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삶–복음에 뿌리를 둔 삶–을 아름답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와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사랑의 아픔을 안고 고민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참된 사랑의 의미를, 사회 부조리를 보고 분노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정의의 의미를,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붙들고 고민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소개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BTS는 성적 자유 분망함, 관능, 마약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중음악의 세계 안에서도 도덕적인 건전함을 견지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의 길일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그룹이다. 물론 BTS 랩 몬스터의 유엔총회 연설의 내용 가운데 LGBT에 관하여 말한 내용은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서구의 팝스타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성적이고 관능적인 노골적인 표현을 담은 노래는 없으며, 적어도 아직은 BTS 멤버들에게서 스캔들이 하나도 보도되지 않고 있다. BTS 멤버들은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팬들과의 신뢰와 약속을 중시하면서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얽혀 들어가지 않기 위하여 극히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에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와 네덜란드 캄펜신학대학교(Th.D.)를 졸업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조직신학 교수로 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와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