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하는 교회를 기대하며
2019-09-30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하는 교회를 기대하며
월드뷰 09 SEPT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2 |
글/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 출생한 사람들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라 부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1% 이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인구의 약 4분의 1인 18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0년 이후부터는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21세기를 주도하는 세대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베이비붐을 몰고 온 그들의 부모 세대와도 다르고 세대론 논쟁을 몰고 온 X세대와도 차이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하거나 그들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려는 사람이나 조직이라면 밀레니얼 세대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뉴욕타임스가 퍼스널 브랜딩 최고 권위자라고 극찬한 댄 쇼벨(Dan Schawbel, 1983~)은 그의 저서 <ME 2.0: 나만의 브랜드를 창조하라>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7가지로 나열했다. ① 에너지가 넘친다. ② 개인 시간이 소중하고 의미있다. ③ 현상 유지는 싫어한다. ④ 직업 선택권이 많다 : 열망 적합적 직업을 선택한다. ⑤ 신기술에 익숙하다. ⑥ 멀티태스킹에 능하다. ⑦ 겉모습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댄 쇼벨이 제시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한국 문화에 적용하자면 회식을 업무의 연장처럼 생각하는 집단주의를 거부하고 개인의 선택과 개성을 중시하는 한편 빠른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보여주듯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이며 이에 따른 문화 변화에 능동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대 연구는 서구처럼 활발하지는 못하다. 기존에 나와 있는 연구의 공통점들은 SNS 미디어를 잘 다루고, 개인주의가 강하며 가정과 여가를 중시한다는 결과를 도출시키는 정도에 머물렀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는 2009년 12월 ‘인적자원개발연구’에 실린 예지은·진현 저자의 <신세대 직장인의 특성에 관한 연구>가 있다.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하여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하는 Y세대의 특징을 6가지로 분류하였다. ①자기중심적 ②쉽게 상처받음 ③뛰어난 적응력 ④넓은 네트워크 ⑤권위주의 거부 ⑥불안감
댄 쇼벨과 같은 서구사회의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과와 다른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가운데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점과 ‘불안감’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SNS 인프라와 인터넷쇼핑 그리고 배달 문화가 발달한 한국의 상황에서 타인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한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현실은 상호 존중 가운데 친밀감 높은 대인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높은 청년 실업률을 경험하면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 불안감을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절망탑’을 세우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
2015년 9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난데없이 청년들의 텐트촌이 세워졌다. 얼핏 보면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야외 취침을 흉내내는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여가활동처럼 보이지만 텐트 앞에 세워진 ‘절망탑’과 ‘헬게이트’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는 대신 텐트촌에서 생활한 청년들은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 젊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들이 세운 ‘절망탑’은 비닐로 둘러싸인 약 2미터 높이의 사각기둥 모양으로, 이 안에는 신문지 뭉치가 복사된 백만 원 권 수표에 감싸져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학교 다닐 때 빌렸던 학자금을 갚기 위해 허우적거려야 하는 현실을 반영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2018년 8월 현재 정부의 학자금 대출 현황은 15조 2,655억 원으로 지난 몇 년 동안 15조 원을 계속 웃돌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학자금 대출을 연체한 인원은 4만 5,980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대학생이 학비만 냈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고 먹고 생활하는데 돈이 또 들어간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학자금 목적 제외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7년 말 기준 1조 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이 생활비로 대출한 금액이 1조 원을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질 수밖에 없는 데다, 졸업 후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 바람에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서 공부에 전념하지 못한 채 적지 않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했던 대학생들이 졸업 이후에도 바늘구멍같이 좁은 취업의 관문을 뚫지 못한 상황에서 학자금을 갚기 위해 또다시 아르바이트로 생활해야 하는 현실은 밝은 미래를 향해 뛰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으리라.
미래가 불안한 두 세대의 갈등
기성세대, 특히 노인 세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것 또한 밀레니얼 세대였다. 밀레니얼 세대는 불황의 장기화와 취업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연애·결혼·출산을 비롯해서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로 불리며 벌써 몇 년째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기성세대와 노인 세대는 한국 경제발전의 기틀을 제공했지만 안보에 대한 불안과 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가족관,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사회 복지 혜택 등의 현실에서 여전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백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시기를 곧 맞이할 예정이다. 즉 노인들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하지만 국민연금 고갈 등에 따라서 정작 자신은 혜택을 누리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불만에 휩싸이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고 사는 독신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정작 결혼한 부부조차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향은 결국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갈등 해결의 시작은 소통과 연대로부터
밀레니얼 세대의 삶은 인터넷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이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기술 결정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밀레니얼 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터넷 환경의 구조는 그것으로 숨 쉬고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인터넷 초기 환경은 누구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웹 1.0 시대를 거쳐,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구별을 없앤 웹 2.0, 그리고 현재 웹 사용자의 기호에 맞춰 정보를 제공하는 웹 3.0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밀레니얼 세대의 의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기성세대에게 이들을 이해하도록 촉구시킨 것은 웹 2.0이 지닌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웹 2.0은 무엇보다도 권위적인 일방향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일상화시킨 주역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웹 2.0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구별도 없애서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기술을 구현했다. 웹 2.0이 구현한 가치가 바로 참여(participation)와 공유(sharing) 그리고 개방(openness)이다. 웹 2.0 사회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의식은 참여와 공유 그리고 개방의 정신을 따라 흐른다.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투명하고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과 집행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최근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 규제에 맞서 ‘노 아베’ 배너를 걸어 공유한 것도 밀레니얼 세대다. 기성세대 같았으면 아베 화형식을 하고 일본 대사관에 오물을 투척했겠지만 IT 기술에 능숙한 밀레니얼 세대는 SNS에 ‘NO JAPAN’을 넘어서 ‘NO ABE’ 배너를 걸어 합리적인 사고를 들어내기도 했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한 것도 밀레니얼 세대였다.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자 없이 텔레그램 앱 등 첨단 SNS 기술을 사용하여 5년 전 우산 혁명 때보다도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보다 조직력 있는 시위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세대 간의 소통의 활성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의 문제다. 시대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자신의 문화에 복종시키려 하기보다는 표현하고자 하는 각각의 언어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하나 된 마음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일에 대해서 하나의 통일된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들었었다(행 2:11).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기술과 전략의 유무가 아닌 의지와 사랑의 유무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박막례 할머니로부터 배우다
‘코리아 그랜드마(Korea Grandma)’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73세의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의 경우는 세대 간의 문제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콘텐츠 개발에 이른 예로써 한국 교회와 사회가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1년에 딱 한 번 명절 빼고는 쉬지 않고 밥장사만 해 왔다는 올해 나이 일흔셋의 박막례 할머니는 2년 전부터 20대 손녀 김유라와 함께 인기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박막례 할머니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8월 현재 백만 명이 넘는다. 처음에 치과에 가는 할머니의 메이크업하는 모습을 찍어 올린 것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지금은 할머니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해프닝들을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평생 식당에서 일만 해온 할머니 유튜버의 성공 일화는 디지털 영상 기술에 익숙한 신세대와 가난한 세월을 견뎌온 노년 세대의 연합이라는 전혀 다른 문화의 이질성이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탄생한 세대 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영상 편집과 기획에 재능 있는 손녀 김유라의 기술력이 크게 한몫했고, 여기에 박막례 할머니의 솔직하고 용감한 노년의 거침없는 모습이 생생하게 입혀지면서 사건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회는 세대 간 연합과 유대를 통해 세상의 마음을 얻은 박막례 할머니로부터 배워야 한다. 즉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갈등의 원인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신앙의 자산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밀레니얼 세대와 기성세대의 사고와 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 의식(롬 12:4-5)을 통해 새로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ygcho@ins-lab.co.kr>
글 |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이자 영화 평론가이다. 대중 강연과 각종 미디어를 통한 문화사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 <감성세대의 영화읽기>(공저), <죽음과 종교>(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