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대통령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
2019-06-26트루먼 대통령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
월드뷰 06 JUNE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글/ 이춘근 정치학 박사
1. 하나님의 편에 서는 싸움이 선한 싸움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을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셨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국제 정치학, 그중에서도 특히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하나님과 전쟁의 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연구한 적이 있었다. 성경, 특히 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전쟁의 이야기가 나온다. 평화의 종교라고 알려진 기독교 성경에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비판 거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르지만, 그 같은 비판은 성경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지면도 부족하지만 짧은 일화 하나를 소개하도록 한다.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던 시대 선교사들은 인디언들에게도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성경을 읽은 인디언이 선교사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평화적인 성경을 가지고 있는 백인들이 그렇게 폭력적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한마디는 성경에 전쟁 이야기가 많다며 기독교를 비난하는 근거로 삶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논박하기에 충분하다.
전쟁과 기독교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또 다른 번민 거리는 기독교를 믿는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빈번히 한다는 사실이며, 전쟁을 할 때마다 각국은 하나님께 열렬히 ‘자기 나라가 승리하게 해 달라’며 기도한다는 점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같은 종교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기독교를 공유하는 나라들도 상호 간 전쟁을 빈번히 치른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에 있었던 독일,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은 모두 기독교 국가로 분류될 수 있는 나라들이며 오늘날의 미국은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이지만 동시에 가장 전쟁을 많이 치르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군대 내에 종교 부서를 따로 두고 있으며 군종 장교들이 병사들의 종교 활동을 지원하고 독려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들은 모두 자기 나라 병사들이 승리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한다. 인간의 역사상 그 규모와 인명 피해 및 파괴 정도에서 최악이었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의 군종 장교들은 모두 자기 병사들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독일군이 착용하던 혁대의 버클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글자도 쓰여 있었다. 하나님은 과연 어느 나라를 이기게 해 주실까? 이 어려운 질문 역시 미국 역사에 나타났던 한 에피소드가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해 주고 있다.
미국이 남북 전쟁을 치르던 동안 노예 해방을 주장하던, 링컨 대통령이 지휘하던 북군은 1861년 4월 12일 시작된 전쟁에서 1년 이상 남군과의 전투로 계속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62년 9월 17일, 앤티텀 전투(Battle of Antietam)에서 북군은 힘겨운 승리를 하게 되며 전세를 역전시킨다. 앤티텀 전투는 남북 양군 총 전사자가 3,675명에 이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싸움이었다.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공격과 2001년 9월 11일 테러도 앤티텀 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주지 않았다. 앤티텀에서 승리한 북군 장군이 링컨 대통령에게 달려가서 ‘이제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도와줘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 링컨 대통령이 정색하며 말했다. ‘장군 그런 말 하지 말게. 나는 매일 내가 싸우는 이 싸움이 하나님 편에 서서 싸우는 싸움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네.’ 그렇다! 하나님은 전쟁을 하는 나라들의 이기도록 해달라는 기도에 대해 분명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전쟁을 다 하면 안 되는 전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8)’라고 하셨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기도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우는 나라가 승리하도록 해 주신다. 하나님의 편에 선 전쟁이 선한 싸움이며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인 것이다.
2. 6.25 한국 전쟁의 발발과 트루먼 대통령
한국 전쟁은 기독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배치되는 세계관을 가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침략 전쟁이며 불의의 전쟁이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국제 공산주의의 희생 제물이 되지 않도록 역사에 개입하셨다. 당시 신생 대한민국은 소련과 중국의 물적, 인적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을 막아낼 힘이 전혀 없었다. 미국과 유엔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당연히 적화 통일을 당했을 것이며, 오늘날 지구 정치는 현저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 패권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한국 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지 못하고 적화 통일을 당했다면 지금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계 질서는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히려 이 땅에 공산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 미국은 6월 24일 저녁이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주말이면 자신의 고향 집에 가서 휴식도 취하고 고향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트루먼 대통령(Harry S. Truman, 1884-1972) 역시 그날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고향 집에서 쉬고 있던 중이었다. 밤 9시 무렵 애치슨 국무 장관이 다급하게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의 북위 38도 선 전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켜 밀고 내려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트루먼 대통령은 ‘워싱턴으로 즉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애치슨 장관은 ‘아직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특히 비까지 오는 밤에 대통령께서 갑자기 워싱턴으로 비행하면 국민들이 놀랄 것’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지금 되돌아오실 수 없다’는 등 대통령을 설득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시간에 관계없이 특이한 상황이 있으면 아무 때나 전화를 걸라’고 지시했다. 한국과 시간대가 다르니, 대통령이 잠자는 중이라고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라는 이야기였다. 애치슨 장관은 전화를 걸지 않았고 트루먼 대통령은 일요일 오후 워싱턴에 복귀하자마자 시급히 국무회의를 개최했다.
최소한의 중요한 인사들이 초청된 국무회의였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회의를 주재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은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생각을 밀어붙였고 각료들은 적극 동의했다. 사실 미국은 반 년 전인 1949년 11월, 한국이 미국의 국가 이익에 그다지 중요한 나라가 아니라는 합리적인 상황 판단에 의거해서 주한 미군을 전면 철군했던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한지 불과 6일 밖에 지나지 않은 7월 1일에 미군은 한반도에 도착했으며, 미국은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전투’하는 UN군을 조직하는데 성공했다. 호주 공군은 7월 2일 첫 번째 작전을 전개했을 정도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신속한 지원을 받았다.
트루먼 대통령은 부통령으로 재직하며 모셨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병사한 후 대통령직을 물려받았을 때, 사실 별 볼 일 없는 대통령으로 치부되었던 인물이지만 미국 역사에 대단히 훌륭한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필자는 트루먼 대통령이 2차 대전 말엽 일본을 굴복시킨 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즉각 승인한 일,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한국을 구하려 군사력을 동원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격퇴하겠다고 결정한 일 등, 이 세 가지를 가장 큰 업적으로 본다. 기독교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되던 트루먼은 확실히 하나님이 들어 쓰신 인물이다. 이스라엘은 퇴임한 트루먼 대통령을 초청해서 이스라엘 건국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 트루먼 대통령은 “내가 고레스 입니다(I am Cyrus)”라고 말했다. 이사야서 45장은 고레스라는 비기독교도인 페르시아 왕이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이롭게 했다. 트루먼은 고레스처럼 이스라엘과 한국을 이롭게 하는 일을 했던 대통령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의 은인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렇게 결정하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한국이 살아 있기나 하겠는가?
3.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과 한국 전쟁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가 지난 후, 트루먼 대통령은 “어떻게 중요하지 않아서 철군했던 나라에 전쟁이 나자마자 즉각 군대를 다시 파견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말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 적이 있었다. 필자는 이 에피소드를 트루먼 대통령이 ‘그것은 하늘의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애치슨 장관의 전화를 받는 순간 책을 읽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 책은 역사상의 모든 큰 전쟁들은 개전 초기의 아직 작은 전쟁일 때 잘 대처하지 못해서 결국 큰 전쟁으로 비화했다는 역사의 교훈에 관한 내용의 책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 전쟁이 났다는 보고를 받은 트루먼은 소련의 스탈린이 자신을 실험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잘 대처하지 못할 경우 스탈린은 독일을 공격할지 모르며 그 경우 3차 대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트루먼의 생각이었다. 필자는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중 빌리 그레이엄 목사(Billy Graham, 1918-2018)의 회고록에 기록되어 있는 한국 전쟁 관련 글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쳤다. “수백만 미국의 기독교도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지금 대통령께 지혜를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지금 이 순간 맞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보다 기독교도 신자의 비율이 높은 나라입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쓰러지도록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Millions of Christians praying God give you wisdom in this crisis. Strongly urge showdown with Communism now. More Christians in Southern Korea per capita than any part of world. We cannot let them down.”)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보는 전보문답게 간략하게 불필요한 단어를 모두 줄여서 쓴 글이지만 정말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 담고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친밀한 교분을 쌓아온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운 결정에 처할 때마다 대통령에게 하나님의 길을 자문해 주었던 목사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시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한국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였고 한국 사람을 만나본 미국 사람도 거의 없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요구는 간단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배치되는 주의(主義) 주장이며 한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인구 비례상 세계 어느 곳보다도 더 많은데 한국의 기독교도들이 공산주의 앞에 무릎을 꿇도록 방치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들이 무릎 꿇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We cannot let them down)!라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강력한 전보문은 트루먼 대통령으로 하여금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겠다는 마음을 강건하게 해 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섭리가 한국 전쟁이 발발할 바로 그 순간 작동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로인 이승만 박사가 건국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중에는 기독교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이 정도 어려움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choonkunlee@hanmail.net>
글 | 이춘근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및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화여대 겸임교수 및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이춘근 국제정치 아카데미의 대표이다. 저서로는 <격동하는 동북아와 한국의 책략, 2014>,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