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병역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2019-06-26 0 By worldview

한국에서의 병역 거부, 어떻게 볼 것인가

 

월드뷰 06 JUNE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음선필/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한국에서 병역 거부는 종교적 문제이다

 

한국에서 병역 의무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2018년은 특이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의 최고 사법 기관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통상 병역 거부의 문제는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그 정당성이 주장되기 때문에, 일견(一見) 양심 실현 자유의 문제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병역 거부는 역사적으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종교적 신념 표현에 해당한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일제 강점기부터 병역 거부를 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현재까지 병역 거부죄로 처벌된 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3년부터 2018년 5월 말까지 병역을 거부한 사람 2,756명 중 99.4%인 2,739명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2000년 이후 병역 거부를 개인의 양심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병역 거부 문제를 ‘국가 대(對) 개인’의 관계로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경우 병역 거부는 거의 대부분 종교적 교리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병역 거부의 문제를 ‘국가 대 종교’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더 실제에 부합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 거부를 국제적인 용어례에 따른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부르는 것이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헌법 규범을 생각할 때 과연 적절한가를 따질 필요가 있다. 생각건대, 병역 거부의 여러 동기 즉 양심상의 신념, 종교상의 신념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논리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로 문제 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 즉 ‘종교적 병역 거부’인 것이다.

종교적 교리로 병역 거부를 하는 경우, 신도에 따라서는 자신의 개인적 양심(판단)과 다르지만 교리에 대한 순종의 차원에서 병역 거부를 할 수도 있다. 또는 병역 의무에 응하여 군사 훈련을 받는 것으로 종교 단체에서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예 병역 거부하는 경우를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양심적 신념의 병역 거부와 종교적 신념의 병역 거부가 확연히 구별된다. 2019년 1월 4일 국방부가 대변인 기자회견을 통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 용어 대신에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 거부’로 표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이하에서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와 대법원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헌법재판소, 병역법의 병역 종류 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판단하다

 

2018년 6월 28일 헌재는 병역의 종류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를 규정하지 아니한 병역법 제5조 제1항(이하, “병역 종류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며, 201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선고하였다.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 근거가 된 병역법 제88조 제1항 본문 제1호 및 제2호(이하, “처벌 조항”)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선고하였다.

일찍이 헌재는 2004년과 2011년에 선고한 결정에서 처벌 조항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그런데 헌재는 이번에 처벌 조항뿐 아니라 병역 종류 조항도 심판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일부 청구인들이 병역 종류 조항의 위헌 확인을 함께 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첫째, 병역 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 역을 규정하지 않은 병역 종류 조항은 심판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병역 종류 조항을 심판 청구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 3인의 재판관은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각하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를 적법하다고 판단한 6인의 재판관은 동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헌재는 청구인들이 요구하는 대체 복무를 ‘비군사적 성격의 민간 복무’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 복무는 넓은 의미로 국방 의무의 내용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병력 형성 의무를 뜻하는 병역 의무의 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민간 복무를 의미하는 대체 복무제가 병역 종류 조항에서 규정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 헌재는 대체 복무제를 도입할 경우 현재의 병역 종류 조항과 동등하게 그 입법 목적(국방력 유지, 병역 의무의 실효성 확보)을 달성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보아 이를 검토하였으나, 이러한 검토는 헌재 아닌 국회가 담당하여야 한다. 대체 복무제 도입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체 복무제가 국방력에 미치는 영향, 병역 의무의 형평성 문제,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 양심에 대한 심사의 곤란성, 대체 복무의 등가성 등을 검토하여야 한다.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한 법정 의견(6인 재판관)은, 대체 복무제의 도입이 우리나라의 국방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거나 병역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지 않거나 그 도입을 미루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항은 법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고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에 대한 판단은 헌재 아닌 국회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헌재는 병역 종류 조항에 대하여 헌법 불합치라는 실체적 판단을 하지 않고 그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국회에 넘겼어야 했다.

셋째, 비록 헌재가 대체 복무제의 도입을 강력히 권고하는 차원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더라도, 대체 복무제의 개념을 민간 복무로 좁게 파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헌법상 국방 의무의 구체화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몫이므로, 대체 복무의 성격을 ‘병역 의무의 갈음’(비군사적 민간 복무)으로 할지 아니면 ‘병역 의무의 이행’(비집총 복무)으로 할지는 국회의 입법 재량에 맡겼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병역 거부를 무죄로 판단하다

 

출처: 뉴스1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병역 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다고 보아, 그에게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 하였다. 일찍이 2004년 대법원은 이러한 병역 거부가 위 조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을 통하여 종전의 판결을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다수 의견(9인의 대법관)은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 실현의 자유(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제한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 거부의 현황,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국방력, 국민의 높은 안보 의식 등에 비추어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고 하여도 국가 안전 보장과 국토방위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 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그 불이행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울러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판결을 찬찬히 살펴보면 법리적으로나 평균인의 상식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첫째,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병역 거부를 양심의 자유 관점에서 다루려 하였으나 결국은 종교 실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그치고만 대법원의 일관성 없는 논증 절차가 어설프게 보인다. 다수 의견은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고 하여도 국가 안전 보장과 국토방위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은 실증적 자료에 따라 객관적으로 이뤄져야지, 단순히 희망 섞인 기대이어서는 아니 된다.

둘째, 다수 의견은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그 불이행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그 논증은 생략하였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헌재가 하였던 것처럼, 과잉 금지 원칙에 따른 비례성 심사를 하였어야 했다.

셋째, 다수 의견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강조하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만약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하는 자가 소수 아닌 수준이 되어도 동일한 판단을 할 것인지 대단히 의문스럽다. 소수이면 보호하고, 다수이면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인지 의문스럽다.

요컨대, 대체 복무제 도입을 위한 입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정법의 체계적 해석을 담당하고 있는 대법원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종교적 병역 거부가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은 성급하였다고 본다. 이번 판결은 법적 논증으로서 엄밀성이 미흡한 반면에 입법 정책론으로서 의욕을 내세우고 말았다.

 

이제는 입법이다

 

이제 문제는 입법이다. 국회는 국방 의무와 양심의 자유 등의 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하면서, 병역 의무의 공평한 부담을 실현할 수 있는 ‘형평성 있는’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새로이 제정할 법률명을 무엇으로 할지, 대체 복무의 분야·기간·형태·신청 자격, 진정한 양심 여부의 심사 기준·절차·기구 등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중 가장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것은 대체 복무의 분야이다. 대체 복무를 비군사적인 순수한 ‘민간 복무’(civil service)로만 할지 아니면 ‘비전투 분야 복무’(non-combatant service, 비집총 복무)도 포함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병역 거부의 역사적 전개와 외국 입법례를 고려할 때, 대체 복무의 유형으로 비전투 분야 복무(비집총 복무)와 민간 복무를 상정할 수 있다. 병역 자체의 거부와 집총 병역의 거부를 구별하여, 평화를 중시하는 양심상 결정과 종교적 신념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집총 거부를 허용할 수 있다. 즉 ‘대체 복무=민간 복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역병 입영 대상자의 병역 거부이다. 현행법상 현역병 입영 대상자 중 신념적 병역 거부자를 비집총 복무로 유도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집총 거부자로 하여금 일단 입영하도록 하되, 그 이후 통상의 군사 훈련과는 다른 별도의 기본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고 비전투 분야에서 복무하도록 배치하는 것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비전투 분야로는 지뢰 제거나 전사자 유해 발굴, 군 병원 내 간병, 군 교도소 행정 지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할 경우 복무의 기간, 형태, 내용 측면에서 현역 복무와의 형평성 문제가 별로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현행법상 보충역에 해당하는 자는 집총 등 군사 훈련과 무관한 교육 훈련을 거친 후 민간 복무를 수행하면 될 것이다. 이 경우 민간 복무는 현행법상 사회 복무 요원 복무와 동일하게 하면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여야 한다. 평화주의를 주장하며 그릇된 교리를 내세우는 종교 집단의 활동에 대해서, 병역 의무 이행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안보 의식 및 국방력의 약화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기도하며 지혜로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군 문제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올바른 진리 위에 견고히 세우는 것과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국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잘 담당할 수 있는 ‘새벽이슬’같은 존재로 키우는 것이다. 아울러 여호와 증인에 대한 이해 부족과 종교적 병역 거부에 대한 반감으로, 자칫 기독교 전체를 거부하는 반기독교적 정서가 생겨나지 않도록 이단적 주장이나 교리의 허구성을 명백히 밝히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eumsp@hanmail.net>

 

글 | 음선필

서울대학교에서 젊은 시절의 많은 시간을 법학 공부와 성경 공부에 들였다. 헌법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법과대학 학장으로 섬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