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아토피 극복기 1

딸의 아토피 극복기 1

2020-04-27 0 By worldview

월드뷰 04 APRIL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글/ 조혜경(소설가)


시작은 작은 반점에서 : 2월 중순 이사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이사한 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돌아와 거주하게 된 다섯 번째 집이었다. 처음 할머니 댁의 안방 한 칸에서 시작하여 18평 아파트, 27평, 25평 그리고 이제 31평으로 하는 이사이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조금 넓어진 그 평수만큼 마음이 커져 있었고 마냥 기분이 좋았다. 터무니없이 오른 전셋값 때문에 도배 장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사하겠다고 하자, 당시 도배를 배운 시누이가 자신이 이사 선물로 도배를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우리도 흔쾌히 승낙, 도배만 해도 새집 같았다.

이사는 잘 끝났고 점심은 이삿날 빼놓을 수 없는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저녁은 묵은김치에 소시지를 넣은 부대찌개로 먹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 차례로 잘 나오는 온수로 샤워하고 잤다. (훗날 우리는 이날 딸이 무엇을 먹었나, 무엇을 만졌나, 무엇을 했나 수없이 복기해야 했다.)

다음날 방학이라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을 때 식탁에서 딸이 말했다.

“엄마 이게 뭐지?”

딸은 옷을 걷어 올린 팔을 내밀었다. 열꽃 같은 작은 반점이 몇 개 솟아 있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가려워?”

“조금.”

“병원에 가볼까?”

“에이, 뭐. 이 정도로…”

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고 2가 된 딸은 이삿짐 정리가 덜 끝난 어수선한 집을 피하여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갔다.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다시 팔을 내밀며 말했다.

“좀 신경 쓰이게 가렵더라고.”

반점의 수가 배는 더 늘어 있었다.

“안 되겠다. 내일은 병원에 가보자.”

“내일은 일요일이야. 월요일에 가지, 뭐.”

주일 아침 반점은 팔뚝을 넘어 목과 얼굴에도 퍼져 있었다.

월요일 시내 피부과에 갔다.

“아토피네요. 아기 때 태열이 있었나요?”

의사는 딱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약을 처방해 주고 주사도 한 대 맞으라고 했다. 보험 적용은 안 되지만 아무래도 도움 될 테니 병원에서 비누와 연고를 구매해 쓰라고 권했고, 의사의 권유대로 따르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딸은 약봉지와 비누, 연고를 가방에 넣고 학교로 갔다. 딸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딸의 아기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태열이 있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혹 있었다 해도 심하지 않았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삼 일 분의 약을 먹는 동안 붉은 점들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퍼져갔다. 얼굴까지 반점이 올라와서 홍역을 하는 아이처럼, 어릴 때 장미진이 퍼졌을 때처럼 보였다. 다시 병원에 가자 의사는 딸을 보더니 조금 놀라면서 말했다.

“아! 왜 이렇게 심해졌지? 약은 다 잘 먹었어?”

딸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별다른 말 없이 처방전을 입력하느라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렸다.

“왜 이럴까요?”

내가 답답해서 물었지만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의사는 말했다.

“약을 좀 더 세게 썼으니 일단 삼 일 먹어보고 주사는 날마다 와서 맞도록 하지요.”

병원 문을 나서며 딸도 나도 말이 없었다. 유난히 피부가 하얀 딸아이의 얼굴은 이미 누가 보아도 너무 심한 피부병에 걸려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를 향하여 가는 딸의 뒷모습을 나는 멍청하게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온 얼굴로 퍼져버린 : 3월 개학


병원에 다녀온 후 나는 인터넷으로 ‘아토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이 원인인지 찾아보려 애를 썼다. 선물로 도배를 해준 시누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도배에 관해 물었다. 벽지뿐 아니라 풀도 친환경 풀을 썼다는 답변. 그렇다면 새로 들인 소파? 물? 음식? 정확한 원인을 찾기 어려웠기에 일단 의심이 가는 것들에 대해 나는 조처를 하기 시작했다. 이사한 집이 지은 지 20년이 족히 넘은 아파트였지만 새집증후군 제거 업체를 불렀고, 피톤치드를 분사했다. 그래도 미심쩍어 FDA 승인을 받은 새집증후군 제거제를 박스로 사서 수시로 온 집에 뿌렸다. 딸의 발병 소식을 들은 동생이 숯을 한 박스 보내주었다. 아이 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숯을 곳곳에 배치했다. 식수는 보리차를 끓이고, 샤워기도 교체했다.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3월 2일 개학 날 아침, 딸의 얼굴은 발병 이래 최악이 되었다. 얼굴 전체가 붉은 반죽을 한 겹 붙여놓은 것 같았다. 누구라도 그 얼굴을 보면 자동으로 뒷걸음칠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런 얼굴로 2학년 새 친구들과 대면해야 한다.

당시 학교에서 중식, 석식이 제공되었지만 나는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두 개를 싸놓았다.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도시락통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12층 복도에 서서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 나의 온몸 세포 하나하나의 무엇인가가 일제히 꺾여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피부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피부과는 더는 믿을 수 없었다. 검색과 지인들의 추천으로 찾은 병원은 아토피며 각종 피부질환 치료로 유명한 교수님이 원장으로 계시는 곳이었다. 예약은 바로 다음 날로 가능했다.

“아이고! 왜 이 지경이 됐어?”

딸의 얼굴을 본 의사는 깜짝 놀라며 커다란 돋보기를 딸의 얼굴에 들이댔다.

“접촉성 피부염이네!”

“네? 아토피가 아니고요?”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이 다른 피부염도 쉽게 와요. 외국에 갔다 왔어요? 무슨 독초에 접촉됐나?”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젓자,

“간혹 태국 같은 곳에서 골프 치다가 독초에 접촉되면 이렇게 심한 경우가 있거든요. 뭐에 접촉됐는지 원인 물질을 찾아야 해요. 일단 주사와 약을 좀 세게 써 봅시다. 이틀 뒤 다시 오세요.”

나는 용기를 내 물었다.

“좋아질 수 있는 거지요?”

“좋아져야지요!”

약국에 내려와 약을 타면서 약사에게 물었다.

“○○피부과 잘 고쳐요?”

“그럼요, 우리나라에서 거의 탑이실 거예요. 여기저기 분원도 있어요. 믿고 다녀보세요.”

마음은 한없이 불안하고 가슴은 쇳덩이처럼 무거워 누구에게라도 신뢰의 말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피부과 치료의 희망과 절망


강남 유명한 피부과의 주사와 약은 정말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그날 주사를 맞고 학교로 돌아가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돌아온 딸의 얼굴은 달라져 있었다. 약국에서 바로 한 번 약을 먹었고, 저녁 식사 후 먹었으니 두 번의 약을 먹은 후였다. 딸도 얼굴에서 느껴지던 홧홧한 열기가 좀 가라앉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구나! 명의는 정말 다르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예전의 그 뽀얀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저만치 앞서갔다. 딸도 기분이 좀 나아 보여 그제야 비로소 물었다.

“애들이 좀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어?”

“그건 모르지. 친구들은 다 걱정해주고….”

“도시락은 교실에서 혼자 먹어?”

“아, 근데 이미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애가 한 명 있더라고. 걔랑 같이 먹어.”

“걔는 왜 도시락 먹어?”

“안 물었어. 뭔가 이유가 있겠지.”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얼굴은 최악을 10으로 한다면 7 정도까지 좋아져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나을 것 같다. 그치?”

도시락 두 개를 건네며 나는 비로소 희망을 내비쳤다. 아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은 얼굴이 10 중 5 정도까지 좋아졌다. 병원 진료실 문을 들어서자 의사도 첫눈에 보고 말했다.

“많이 좋아졌네! 오늘 한 번 더 주사를 맞고 계속 이 템포로 좋아지면 약만 먹어보자. 삼 일 분 약 먹고 다시 와. 악화되면 모레 와서 주사 맞고….”

삼 일 분의 약을 먹는 동안 아이의 얼굴은 정말이지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삼 일 후, 세 번째 병원을 찾을 때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돋보기로 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의사가 말했다.

“됐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의사에게 허리 숙인 폴더 인사를 반복하고 병원을 나섰다. 딸도 나도 정말 날아갈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렇게 쉬운 건데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한 거야?”

“그러니까….”

“급식 신청한 거 아직 환불 안 받았어. 친구들이랑 급식 먹어도 되지 않을까? 아토피가 아니고 접촉성 피부염이었다잖아.”

“아니, 엄마 그냥 도시락 먹을래. ○○이랑 이제 친해졌어.”

“그래, 그러자. 사실 너 혼자 교실에 남아 도시락 먹는다 생각할 때 엄마 맘이 무지 힘들었거든. 그런데 한 명이 있다고 하니까 걔가 누군지 정말 고맙더라. 엄마가 과일이랑 맛있는 거 더 싸줄게.”

“아이고! 지금도 충분하거든요!!”

이런 소소한 일상의 대화가 얼마나 감사한지 학교에 데려다주는 내내 딸과 나는 팝콘처럼 터지는 웃음과 대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마냥 재잘거렸다.

살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만난 복병은 힘겨웠지만 어쨌든 해치웠고, 어둠의 터널은 끝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확히 열흘 후, 딸의 얼굴에 발진이 다시 시작되었다. (계속)

<hkcho7739@naver.com>


글 | 조혜경

2004년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2004), 기독신춘문예대상(2006)을 수상하였고, 문예진흥기금을 수혜(2006)하였다. 저서로 <꿈꾸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