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태풍이 몰려올 때

인생의 태풍이 몰려올 때

2019-03-10 0 By worldview

<선교문학: 인생>

인생의 태풍이 몰려올 때

월드뷰 03 MARCH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VIEW 2

나은혜/ 목사

몇 해 전에 중국에 갔을 때였다. 태풍으로 온 도시가 정지되었다. 그래서 모든 공무 기관, 학교, 상점, 은행, 공공 버스 등 모든 곳이 휴무로 들어갔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일일 휴무를 J 시가 선포한 것이다.

바다가 있는 이곳 J 시에는 태풍이 한번 오면 무섭게 온다. 수년 전에도 태풍이 와서 내가 살고 있는 만 호 가까이 되는 큰 아파트 단지의 정원에 있는 나무 만 육천 그루 이상이 뽑혀 쓰러졌었다. 키가 큰 소철, 야자수 같은 나무들이 거세게 몰아치는 태풍에 못 견뎌서 뿌리째 뽑혀 쓰러진 것이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그것을 복구하고 다시 심느라고 애를 먹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태풍이 오면 모든 것이 어지러워진다.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는 것도 제한된다. 아무리 하루를 48시간처럼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라도 별수 없이 집안에서 보내야 한다. 태풍은 그래서 우리 인간의 통제 저 너머에 있다. 그런데 태풍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온다. 폭풍과 비바람을 몰고 와서 가로수와 정원의 나무들을 마구 뽑아 젖혀도 우리는 전혀 어쩔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겸허하게 단지 태풍이 멈춰 주기만을 조바심 내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태풍은 자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에도 몰아닥친다.

외동딸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직장에 다니던 20대 초반의 딸이 대장염에 걸리더니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음식이 흡수가 안 돼 설사를 하더니 급기야 몸무게가 40킬로그램 밖에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직장에도 못 나가게 되었고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서 노랗게 떠 있고 쓰러질 듯 휘청 거리며 간신히 걷는 딸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절망이 찾아왔다. 여러 아들 가운데 단 하나 있는 귀한 외동딸인데 ‘다 키워서 이제 잃게 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파리한 딸의 몰골은 도저히 더 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딸은 너무 연약해져 있었고 안쓰럽게도 병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 딸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평소 딸이 좋아하던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 놓고 딸을 불렀다. 딸은 의아해했다. 분명히 자신이 못 먹을 것을 알면서도 엄마가 이렇게 음식을 잔뜩 차려 놓으시다니…

딸은 그때는 그런 엄마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천만 다행으로 딸은 그 병에서 놓여났다. 병이 나은 후 엄마가 지어준 녹용을 먹고 입맛도 되찾았다. 딸은 다시 건강해져서 직장에 복귀했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딸 자신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딸은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친정 엄마의 그때 심정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자신의 어머니가 자기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딸을 낳은 어미로서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차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는 바로 나의 어머니이다.

장편 소설 ‘빙점’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 20대에 결핵으로 쓰러져 거의 40대 초반까지 기브스 베드에 누워 지내며 슬픈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남자친구 마에가와 다다시의 전도로 병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마에가와 다다시는 아무리 전도해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아야꼬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더욱이 다다시 자신은 이제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마에가와 다다시는 아야꼬를 병원 근처 동산으로 산책을 가자고 하며 불러냈다. 동산 잔디에 앉은 마에가와 다다시 옆에 아야꼬도 앉았다. 마에가와 다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끝이 뾰죽한 돌을 들더니 갑자기 자신의 발등을 내려찍기 시작하였다. 한번, 두 번, 세 번… 아야꼬가 놀라서 미처 말릴 겨를도 없었다. 마에가와 다다시의 발등에서 곧 새빨간 피가 솟아 올라왔다. 발등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무슨 일인가 놀라서 정신이 없는 아야꼬에게 마에가와 다다시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야꼬, 예수님이 이렇게 피를 흘려 당신을 위해 죽으시고 당신을 구원해 주셨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요.”

이 사건은 아야꼬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시길래 마에가와 다다시가 이렇게까지 그분을 증거하려고 하는 것일까? 결국 아야꼬는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마에가와 다다시는 얼마후 더 살지 못하고 죽었다. 아야꼬는 계속 투병을 해 나갔지만 그녀의 삶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스도인들과 교제가 시작되었고 시조와 같은 글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미우라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완치되어 퇴원을 했으나 경제력이 없었던 두 사람의 삶은 어려웠다. 생각다 못해 작은 구멍가게를 내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질병이라는 인생의 태풍을 맞아 지쳐있는 가녀린 그녀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왔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면서 틈틈이 썼던 ‘빙점’이라는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삼천만엔이라는 거액의 포상을 받으며 신춘문예 작가로 등단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랜 질병에 찌들어진 연약한 한 여성의 미래가 ‘일본 여류 문학가’라는 새롭고 멋진 인생으로 활짝 열리게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후에 미우라는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그녀는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일본 호카이도에 미우라 아야꼬의 문학 기념관이 있다. 그녀의 남편 미우라 씨가 문학관을 지키며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 당신의 인생이 원치 않는 태풍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어려운 질병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자꾸만 움츠러들고, 우울해지고, 자신도 없어지고, 미래가 불투명하게 보이기만 할 때 당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해답은 사실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일을 만나도 태풍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만 붙들면 재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우라 아야꼬가 병상에서 하나님을 만났기에 소설가로서 재기가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선교지에서 돌아와 삶이 너무 힘들어서 새벽마다 울면서 보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가난한 마음으로 ‘인생 공부’라는 ‘시’를 썼다. 목동의 한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근처 약국 앞에 서 있는 작은 복사꽃 나무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인생공부>

새벽 기도 마치고

아직도 옷깃 여며지는

쌀쌀함에 코끝이 시린데

약국 앞 한그루 복사꽃

부끄러운 듯 얼굴 붉어지네

새벽의 차운 기운에도

자연의 순리를 따라

주변 환경이 못마땅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 내는 너

나는 오늘 너에게

한 수를 배운다 인생 공부

힘들어도 해내야 할 일 있음을..

약국 앞에 화단에 서 있던 아주 조그만 복사꽃은 추위를 견디며 피어 있었다. 그것도 아직 3월 초의 쌀쌀함이 코트 깃을 세우게 하는 차가운 새벽에 활짝 피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저 복사꽃이 혹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인생에 해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마음속에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다. 어쩌면 그 복사꽃의 사명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곳에 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새벽 화장지 뭉치가 흠씬 젖도록 울고 교회를 나온 나에게 그 작은 복사꽃이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걸어왔으니까 말이다. 이제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인생에도 태풍이 온다는 것, 그리고 그 태풍은 우리의 자유를 한동안 제한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 태풍을 다스리는 분이 계시기에 태풍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도…

그뿐만 아니라 소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남은 사람은 혹독한 태풍 후에는 더욱 견고해져 성숙해져 있는 아주 멋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후에 주어지는 예비 된 복된 삶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추워도 봄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이제 희망의 3월을 맞이하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luomingshu@hanmail.net>

나은혜 | 남경사범대학 한어언문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M.div 및 선교학 석사(MA), 미국 그레이스 신학교에서 선교학 박사(D.miss)를 하였다. 1997~2007년에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고, 현재 한국에서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GMLS)를 설립하여 대표로 문서 선교와 선교사 멤버 케어 사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떠오르는 부인 선교사 리더십 개발하기(2005, 선교타임즈)>와 <세 개의 보석(2007, 선교타임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