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2019-03-08모자이크
월드뷰 03 MARCH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VIEW 1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9~10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이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이 아는 지식의 특징을 ‘부분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예로서 예언을 든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언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부분적이다. 설교자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서술된 하나님의 말씀의 전모를 100% 알고 전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내용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비상한 기억력, 성경 원어에 대한 해박한 이해, 성경 기록 당시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의 숙지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전부가 아니라 극히 일부만을 기록한 것일 뿐이다.
바울이 이 말을 할 때는 수십억 개의 퍼즐 조각들로 구성된 거대한 모자이크 판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이 모자이크 판은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판이다. 이 모자이크 판 왼쪽 귀퉁이, 오른쪽 귀퉁이, 가운데에서 각각 퍼즐 조각 하나씩 세 개를 모아서 얻은 정보는 너무나 빈약하고 파편적이어서 이 정보를 가지고는 모자이크 판 전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
인간의 지식의 부분성은 인간이 가진 모든 유형의 지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은 역사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모두 알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기에는 현존하는 자료의 분량이 너무나 빈약하고, 현존하는 자료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가도 문제이며, 더욱이 미래의 역사의 모습에 대해서는 추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시 물리학은 물질의 마지막 단위가 원자임을 알아냈으나, 원자도 핵 주위를 전자가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는 복합적 구조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핵과 전자의 특성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핵과 전자의 특성이 왜 다른지, 전자가 어떤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회전운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핵과 전자는 더 작은 입자로 무한히 쪼개져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 물질의 미시적 기원을 찾아내는 일은 사실상 오리무중에 빠졌다. 생명과학은 바늘 끝보다도 더 작은 세포의 세계 연구에 집중하여 이 작은 세포가 하나의 국가와도 같은 거대한 자율적인 운영체임을 밝혀냈다. 이 운영체 안의 지극히 작은 영역인 핵과 핵막 사이에 500 페이지 분량의 책 5000권이 소장된 중형 도서관 분량의 정보를 담은 DNA가 들어 있는데, 한 인간의 세포가 60조개 정도이므로 현존하는 인류만 해도 5,000권 X 60,000,000,000,000 X 7,000,000,000 =21,000,0000,000,000,000,000,000,000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다는 천문학적인 사실은 세포의 세계가 이미 인간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게다가 DNA의 유전정보들 가운데 해명이 가능한 정보는 3-5%에 지나지 않으며, 일부 염기들이 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지, 유전정보 전달이나 단백질 생성이나 분화나 유전자 발현이 어떤 원인에 의하여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다. 천문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인간의 지식의 왜소함은 한층 더 실감 난다. 무한한 숫자의 별들과 은하들이 우주에 널려 있으며, 빛의 속도 때문에 현재 순간의 별들의 모습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태양도 항상 10분 전의 모습이며, 어떤 별은 100년 전, 만 년 전, 1억 년 전, 수조 년 전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며,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별들도 많다. 하늘의 별들은 모두 유령 별들인 셈이다. 망원경과 지구에 도달하는 우주선 정도를 통하여 얻은 정보는 너무나 단편적인 것이어서 우주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난망할 뿐이다.
수십억 개의 퍼즐로 구성된 모자이크 작품의 전모를 세 개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역사와 세계의 전모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 그러면 역사와 세계의 모자이크 판의 전모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울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라고 말한다. 세 개의 퍼즐 조각을 가지고 수십억 개의 퍼즐로 구성된 모자이크 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도토리 키 재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자리에, 모자이크 판을 만든 제작자가 나타나서 판을 보여 주면 논쟁은 끝난다. 이처럼 재림 때 역사와 세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역사의 세계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시면(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은 순식간에 끝나 버린다(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역사와 세계에 관한 온전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바울이 제시한 모자이크 판의 비유는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지식에 근거하여 자율적으로 우리의 삶 전체와 우리가 추구하는 학문 전체의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과 학문의 방향성과 의미와 목적을 설정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자료가 너무나 빈약하며, 이 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자이크 퍼즐 조각을 가지고 바로 옆에 있는 퍼즐과 맞추어서 모자이크 그림의 일부를 구성하는 작업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조금 더 능력을 발휘하면 옆 퍼즐 옆에 있는 퍼즐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 더 비범하면 옆의 옆의 옆에 있는 퍼즐의 모습은 희미하게나마 그려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작업은 우리의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다.
우리의 삶과 학문에 방향성과 의미와 목적을 자율적으로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는 우리의 능력과 지식에 부당하게 많은 권위를 부여하고, 우상화하며,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화된 능력과 지식과 학문은 반드시 왜곡되며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예를 들어 보면 마르크스주의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예리하게 분석하여 그 모순구조를 드러내는 일에 단편적으로 기여를 했으나, 이 단편적인 지식을 토대로 계급이 철폐된 인류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고 밀고 나갔다가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논증을 통하여 인간의 경제활동이 자신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로 나타날 때가 많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겸손하게 자신이 터득한 경제 원리를 상대화시킨 토대 위에 경제학 체계를 구성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거센 도전까지도 극복하고 3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삶과 학문의 의미와 목표를 정하는 일은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정하시도록 하나님께 넘겨 드려야 한다. 이것이 개혁주의 전통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론의 요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잠언1:7). 기독교인은 한편으로는 꾸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한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자신의 삶과 학문을 성찰하는 노력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학문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이 정하신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도 하나님이 설정하신 나의 삶과 학문 전체의 방향성과 의미와 목표가 나에게 완전히 계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하게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학문이 잘못되고 왜곡된 길로 가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조정해 주실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자이크 퍼즐이 모자이크 판 안에서 부여된 작지만 중요한 한자리를 잘 담당할 수 있도록 그 퍼즐 자체를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 퍼즐을 내 옆에 있는 다른 퍼즐들과 잘 끼워 맞추어 퍼즐과 가까운 영역에서 아름다운 관계와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자이크 제작자가 모자이크 퍼즐에게 부여한 기능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과 학문과 관계들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아름답고 매력 있는 퍼즐 조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정을 사랑과 도덕적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형성시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고 힘을 다하여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학문 연구를 성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철학자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성실하게 성찰하여 글을 쓰고, 역사가는 주어진 역사 문헌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연구하여 과거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해석하고, 과학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실험과 관찰의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하며 그 의미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작업 결과와 연구 결과가 탄탄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시되어 내 옆에 있는 일터와 학계의 동료들을 끌어 들이고 인접 학문들과 연계되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로 최선을 다하여 책임 있는 노력을 행한 후에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겸허하게 고백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자신의 노고가 어떤 의미와 목적으로 쓰일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시도록 위임해야 한다. 학자로서의 성취에 대한 욕구와 명예욕이 여기서 더 나아가도록 요구해도 그 요구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자이크 퍼즐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이 퍼즐이 모자이크 판 전체에서 가지는 의미와 목적은 모자이크 판의 제작자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swlee773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