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2019-02-04제자리
월드뷰 02 FEBR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ULTURE & WORLD VIEW 2 |
최충희/ 작가
“여보, 여보! 이리 좀 와봐요. 어머, 어쩜! 얘가 웬일이래요? 야아! 정말 신기하다!”
“아니, 뭔데 그래?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봐요!”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온 남편에게 창가에 놓인 화분을 보여 주었습니다.
“얘가 드디어 꽃을 피우려나 봐요! 여기 이쪽 애는 조금 있으면 꽃이 피겠네! 정말 신기하죠? 도대체 몇 년 만이래?”
남편도 여기저기 소담스럽게 꽃망울을 맺고 있는 화분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들여다보았습니다.
“당신, 그렇게 정성을 들이더니…. 그 정성이 통했나 보네? 성공을 축하해요!”
몇 년 전, 선인장 화분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저는 이 선인장에 만발한 꽃에 매료되어 탄성을 질렀습니다. 마디마다 분홍빛이 감도는 꽃송이들이 공작새 꼬리 마냥 흐드러지게 피어, 집안 분위기를 얼마나 화사하게 만들어 주던지요! 그런데 이 선인장이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점점 시들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몇 송이 희미하게 맺히다가 금방 시들시들 져버리고, 그러다 결국 아예 꽃피우기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사시사철 시퍼렇게 이파리만 무성했습니다.
물을 잘못 주었나, 아니면 영양이 부족해서인가 하여 흙을 갈아 주고 비료도 주며 꽃피우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선인장은 기나긴 잠을 자는 듯했습니다.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지요. 그러다가 저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도님 댁에 심방을 갔다가 저희 집과 똑같은 선인장이 마디마디 꽃송이를 화사하게 피어 올린 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님 댁 선인장과 저희 집 선인장이 비교되어 아무래도 제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선인장 키우는 법을 찾아보았습니다. 물은 아주 마르지 않을 정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주고, 반투명 창으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라고 하더군요. 물은 맞게 준 것 같은데…. 혹시 아침 볕만 잠깐 들어오는 곳에 놓은 것이 원인일까 싶어, 결국 자리를 옮겨 주기로 했습니다. 집 안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어디일까 두루 살피다가 집에서 가장 밝은 방에 화분을 옮겨다 놓고 창문에 반투명 종이 커튼을 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바꿔주고 얼마 후, 물을 주러 갔다가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소담하게 물오른 어여쁜 꽃망울을 발견한 것입니다! 선인장 마디마디에 탐스러운 꽃봉오리들이 쏙쏙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니 기적 같았습니다.
7년 세월 잠들어 있던 꽃이 이제서야 눈을 뜨다니! 그리고 며칠 후, 그 꽃봉오리들이 터지면서 아름다운 분홍 빛깔의 꽃들이 만개할 때, 저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요리조리 각도를 달리하며 마치 모델 촬영하듯 그렇게 수선을 떨었지요. 첫 봉우리가 터져 꽃을 피웠을 때 얼마나 놀랍고 기쁘던지요!
몇 년째 꽃을 피우지 못한 선인장이 멋지게 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자리’였습니다.
선인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햇볕이 잘 드는, 그러나 직사광선이 아닌 반투명한 광선이 비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제자리가 아니니 자신의 모습을 있는 대로 드러내지 못한 것입니다. 꽃을 피울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선인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예쁘게 꽃을 피울 수 있는데 제 무지로 인해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꽃을 못 피우는 것으로 무시하여 포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디 화초뿐일까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 제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있다면 저희 집 선인장처럼 어쩌면 영원히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안타까운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본 모습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제자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시편 1편에 나무 한 그루가 등장합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 없고 더위가 와도 잎이 청정하며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나무는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립니다. 그 나무 그늘에 거하는 자들은 쉼을 얻고 나무가 맺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먹습니다. 제자리를 찾은 나무입니다. 만약 이 나무가 사막이나 가시덤불이 있는 광야에 심겼다면 이처럼 푸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 못 가 시들시들 마르고 결국 죽게 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답은 여러분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분의 은혜 안에 머무는 자리. 그 자리에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비로소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는 메마른 땅에 서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조금씩 시들어 가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잊어버린 채 결국에는 저희 집 선인장처럼 열매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지금의 자리는 어디인지요? 혹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자신이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늘 살펴보기 원합니다. 혹 지금의 자리가 악한 자들의 꾀를 따르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혹 나도 모르게 죄의 그늘진 자리에 있지는 아니한지, 아니면 은근히 나 자신을 높이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 만약 그렇다면, 지금 곧 그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옮겨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영혼에 병이 듭니다. 영혼의 병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고 불행하게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choi.choonghee@gmail.com)
글/ 최충희 (작가)
미국 세인트루이스 한인장로교회에서 사모로 섬기다가 2000년 미주 교양지 <광야>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귀국해 남편과 함께 주님의십자가 교회를 섬기며, 전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심리치료를 공부하며 상처 입은 이웃들을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