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 과연 해도 좋을까

북한 선교, 과연 해도 좋을까

2018-07-06 0 By worldview

북한 선교, 과연 해도 좋을까

 

월드뷰 07 JULY 2018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7

 

남정욱/ 숭실대 교수

 

영화를 뒤집어 보기와 삐딱하게 보기, 다를까 같을까. 가령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좋게 보면 무의미한 일상을 꾸려가던 촌부村婦에게 짧았지만 뜨거운 추억을 남겨준 사건이 되겠지만 나쁘게 보면 사진작가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럭저럭 행복했을 한 여자의 이야기다. 칠레의 사회주의자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낙도落島 우편배달부의 우정을 다룬 ‘일 포스티노’는 또 어떤가. 네루다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림 같은 섬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청년의 삶이었다. 네루다의 영향으로 시를 알고, 정치를 배운 끝에 청년은 사회당을 지지하고 대중 집회에서 사고로 죽는다. 당사자는 어떨지 모르지만 남겨진 사람들, 그러니까 청년의 아내와 아이에게는 좋지 않은 만남이었다. 둘 다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은 따뜻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나쁘게 보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결국 찢어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소개하는 영화 ‘신이 보낸 사람’도 비슷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동사인 ‘보내다’가 신이 구원을 위해 누군가를 보내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골로 보내다’할 때의 용례인 ‘보내다’ 인지 헛갈린다. 영화 포털 사이트에서 퍼 온 줄거리는 이렇다.

1급 정치범으로 아내와 함께 수용소에 끌려갔던 철호(김인권 분). 자신의 목숨은 건졌지만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 내지 못한다. 2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온 철호는 죽은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조선으로의 탈북을 결심한다. 하지만 탈북을 준비하던 중 철호는 1급 정치범으로 또 다시 고발당하게 되고, 자유를 찾아 탈북을 결심하게 된 마을 사람들 역시 국경경비대에 잡혀갈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과연 철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탈북에 성공할 수 있을까?

결말을 말씀드리자면 성공 못한다. 아니, 성공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 죽는다. 마을 사람도 죽고 철호도 죽는다. 지옥도 일상이 되면 살만하다. 북한 인민들의 삶은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그들 나름대로 살만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복음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의 일상은 흔들린다. 사회주의적 삶의 가치와 기독교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스스로 내부의 적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알고 난 뒤 그들의 삶은 행복해졌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인간적인 가치 기준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신의 목적, 인간의 시선

‘아메리칸 스나이퍼’란 영화가 있다. 9ㆍ11 이후 이라크에 파병 간 한 저격수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이 미군의 진입을 돕기 위해 건물들 사이에 숨어있는 이라크 병사들을 처치하는 장면이다. 부르카를 뒤집어 쓴 한 여인이 예닐곱 아이와 함께 건물에서 나오더니 품에서 포탄을 꺼내 아이에게 들려준다.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포탄을 들고 미군 쪽으로 달려간다. 스나이퍼는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아이를 사살한다. 작전에서 돌아온 스나이퍼는 부르카 여인을 ‘악마’라고 욕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부르카 여인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이슬람의 순교는 기독교의 순교와 다르다. 기독교는 신앙을 지키는 수동적인 차원이지만 이슬람의 순교는 포교를 하다가, 포교를 가로막는 적과의 싸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보상은 천국에서의 화려하고도 영원한 삶이다. 부르카 여인은 아이에게 영생의 길을 인도한 것뿐이다. 부르카 여인이나 아이나 둘 다 중동에서 태어나지 않고 이슬람을 믿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삶이었다. 종교는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일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감당할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신이 보낸 사람’은 철호의 공개 총살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목록)가 올라오면서 몇 가지 정보들이 나온다. 현재 북한에는 지하 교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하 교인들은 대물림 신앙이거나 탈북 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마음에 신앙을 품고 온 경우, 두 가지라고 한다. 한 북한 선교 단체에 따르면 이러한 지하 교인의 수는 14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무엇을 근거로 산출한 수치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인 북한에서 무려 14만 명이라니. 확실한 건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는’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북한 기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리는 이것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말한 대로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제 68조를 보면 분명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전제가 붙는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전제가 붙는 것은 보장이나 자유가 아니다. 말뿐이란 얘기다. 북한에도 교회는 있다. 방북했던 애북愛北(종북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고 하여 만든 억지로 단어다) 인사들은 북쪽 교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다고 자랑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북한에는 교회가 있다. 1988년 신축된 평양 봉수교회의 경우 평소에는 관리인만 거주하고 외국인이 참관할 때만 당에서 엄선한 남녀 수 백 명이 모여 예배를 본다. ‘신이 보낸 사람’에도 등장하는 평양시 만경대 칠골이란 마을에는 칠골 교회가 있다. 김일성이 현지 지도를 나왔다가 ‘이 곳에 우리 부모가 다니던 교회가 있었다’고 하자 바로 교회가 지어졌다. 그래서 칠골 교회를 반석교회라고도 한다. 역시 외국인이나 남측 인사가 방문하면 연출 예배를 본다. 이를 보통 지상 교회라고 한다.

김일성은 일찍이 ‘종교는 반동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발언에 김일성대 최창룡 부총장이 이의를 제기한다. ‘주체사상이 사람 중심의 사상인데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사람을 기본으로 하고 인간적인 지향이 있기 때문에 종교를 외면할 근거가 없다고 본다’고 발언한 것이다. 김일성 종합대학에 종교학과를 개설하도록 지시한 것은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종합대학 내에 종교학과를 설치하고 1년 간 5명 내지 10 여 명의 종교 전문가를 배출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는 종교를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는 지시에 따라 1989년 설립되었다. 89년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 등 남한 기독교인들의 통일 운동이 절정에 달한 때다. 종교학과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이슬람교 등 5개의 전공과목이 있다. 종교학과 개설 동기 자체가 기독교였던 만큼 기독교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강의를 담당했던 홍동근 목사의 출애굽기 연구 참고 서적을 보면 북한 종교학과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림춘추,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며’,
‘님 웨일즈, 아리랑의 노래’,
‘송건호, 해방 전후사의 인식’,
‘부르스 커밍스, 분단 전후의 현대사’

북한에도 교회가 있고 목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학과 학생들이 졸업 후 대학에 남아 연구 활동을 하거나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종교학과의 설치는 목회의 측면이 아니라 학문적인 연구에 그 필요성이 더 실려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더 이상 깊게 북한의 공식적인 교회나 목사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사전의 기독교 용어 풀이를 보면 그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 지 확실히 알 수 있다. 81년에 간행된 현대 조선말 사전을 보자.

장로 : 예수교의 한 갈래인 장로교 직책의 하나,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 낡은 사회에서 종교의 탈을 쓰고 인민을 기만하여 착취계급의 리익을 옥호하기 위하여 복무한다

전도사 :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교리를 선전하고 보급을 사명을 지닌 제일 아래급의 교회직무에 있는 남자.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교를 퍼뜨리면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착취자들에게 복무한다.

현재의 사전은 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이나 ‘시선’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전술’이 바뀐 것이라면 그 정의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2010년 말 북한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God Loves You)’라는 문구가 새겨진 영문 티셔츠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밀수를 통해 들어간 것인데 영어를 모르는 북한 주민들이 이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 것이다. 결국 문제가 되어 당국에서 회수에 들어갔지만 주민들은 쉽게 내놓지 않았다. 물론 셔츠의 질감이 좋아 그런 까닭도 있겠지만 그 말이 좋아 그리 했다고 결사적으로 믿고 싶은 분이라면 ’신이 보낸 사람‘을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할 수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미묘한 지점에 북한 선교가 있다.

남정욱| 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겸임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저서로는 ‘편견에 도전하는 한국 현대사’, ‘결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