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전환: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의 길

급격한 전환: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의 길

2024-08-09 0 By 월드뷰

이상원(전 총신대학교 교수 / 월드뷰 대표주간)

총신대학교 신학과(B. A.), 동 신학대학원(M. Div.),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Th. M.), 네덜란드 캄펜신학대학교(Th. 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와 <월드뷰> 대표주간 등으로 섬기고 있다.


한국 장로교 조직신학자 박형룡은 일제 시대 때 조선(朝鮮)의 영문 음역으로 워드 플레이(word-play)를 했다. 당시 조선의 공식 영어 음역은 ‘Chosen’이었는데, Chosen은 ‘choose(선택하다)’의 완료형이므로 조선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에 일어났던 일이 조선에도 일어난다고 말하며,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태도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했던 것처럼, 조선의 운명도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태도에 따라 정해진다고 역설했다.
성경에 기록된 두 개의 사건이 박형룡의 워드 플레이가 의미 있는 관점임을 뒷받침한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배를 타고 항해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 위기에 빠진 사건들이다. 하나는 바울이 탑승한 로마로 가는 배였고(행 27장), 다른 하나는 요나가 탑승한 다시스로 가는 배였다(욘 1장).


바울이 탄 배와 요나가 탄 배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시내에 있는 모습을 목격한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전의 이방인 금지구역에 들여보낸 것으로 오인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이 계기가 되어 바울은 로마군에 체포되어 가이사랴로 이송되고, 가이사랴의 감옥에 갇힌 바울은 두 명의 총독과 만난다.
첫 번째 총독은 돈을 좋아했던 벨릭스였다. 가이사랴 지역 교회 성도들이 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와 위문하는 것을 본 벨릭스는 자신에게 일정액의 돈을 주면 바울을 석방시켜 주겠다는 암시를 주었다. 이때 성도들은 바울과 석방문제를 놓고 상의했을 것이다. “선생님, 우리가 돈만 조금 벨릭스에게 쥐여주면 선생님을 석방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할까요?” 바울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던 것 같다. 돈이 건네지는 순간 바울과 가이사랴의 교회들은 치명적인 도덕적 상처를 입고, 바울의 선교사역은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도 가이사랴의 성도들도 돈을 건넬 생각을 하지 않자 바울의 구금은 2년이나 계속되었다.
그 후 바울은 벨릭스의 후임으로 부임한 베스도에게 로마의 가이사에게 상소할 뜻을 밝혔다. 이 말은 곧 바울이 로마에 갈 때까지 구금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로마에서 가이사의 재판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와 스페인 선교를 위해 로마로 가기 위한 방편으로 가이사 재판을 이용한 것이었다.
바울을 호송하는 로마군 호송대는 연안여객선을 타고 무라항에 도착한 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탈리아까지 운항하는 장거리 곡물 수송선으로 갈아타고 미항(美港)에 이르렀다. 겨울 항해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바울은 미항에서 겨울을 보낼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항이 규모가 작아 겨울나기에 불편함을 느낀 호송 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의 말을 더 신뢰하였고, 미항에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더 큰 항구도시 뵈닉스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항해에 나선다. 그러나 항해에 나선 직후 수송선은 유라굴로라는 토네이도성 태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파선 직전에 이르렀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한밤중에 바울에게 나타나 이렇게 전한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행 27:24).” 하나님이 바울과 함께 배에 승선한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곡물 수송선에 탄 탑승자들의 운명은 바울이 탑승한 후 새로운 방식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바울이 탑승하기 전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백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나, 바울이 탑승한 후에는 전적으로 바울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이 곡물 수송선 탑승객들을 살려 주시는 근거는 딱 하나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바울이 가이사 앞에 선다는 것은 로마와 스페인에 복음을 전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방 전도의 소명(행 26:15-18)에 순종하는 바울을 살리시기로 하셨는데, 바울을 살리실 때 바울과 함께 탑승한 모든 사람들의 목숨도 함께 살리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한편, 요나가 탄 배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사건은 바울 사건과 대조된다. 다시스로 항해하는 배에 탄 이방인들의 운명은 요나가 타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과 무관했다. 그러나 요나가 탑승한 후에 그들의 운명 역시 전적으로 요나에 의해 결정되는 방향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했다. 요나가 다시스행 배에 탑승하자 하나님은 요나를 벌하시기 위해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키셔서 배를 침몰의 위기로 몰아넣으셨다(욘 1:4). 하나님의 사람 요나를 배에서 제거하자 거짓말처럼 폭풍은 잦아들고 배는 다시 순항하기 시작했다.
이제 로마로 가는 수송선과 다시스행 배의 자리에 국가를 대입해 보자. 국가 안에 기독교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국가의 운명은 기독교인과 무관하게 결정된다. 그러나 국가 안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소수라도) 등장한 이후부터 국가의 운명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일에 임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를 위기로부터 구해 주시기 원하시며, 이때 그가 속한 국가 전체도 함께 살려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피하여 달아나면 하나님이 그를 벌하실 때 국가 전체를 함께 위기에 빠뜨리신다. 이것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인증하신,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세속사의 의미이다.


기독교인의 등장은 한민족 역사의 급격한 전환의 계기


한민족의 운명은 기독교인이 등장하기 전에는 기독교인과 아무런 상관없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등장하고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활동이 이 땅에 시작된 이후에는 나라가 급격한 전환을 맞이했다.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에게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전환의 시점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 전환들은 동일한 패턴의 반복을 보여주었을 뿐 새로운 세계로의 급격한 전환을 이루지는 못했다. 종교사적으로는 무속종교에서 불교, 불교에서 유교로의 전환이 있었고, 여기에 북한의 공산주의적 주체교가 따라붙었다. 정치적으로는 고조선 시대로부터 삼국 시대, 삼국 시대로부터 고려 시대, 고려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나 왕조정치라는 골격에는 변동이 없었다. 북한의 김씨 왕조는 여전히 그 끝자락에 붙어 있다.
종교사상과 정치체제의 순환적 반복에 급격한 전환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기독교인의 등장과 맞물린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한민족을 지배했던 무속신앙, 불교신앙, 유교신앙, 그리고 북한의 공산주의적 주체교의 공통된 특징은 유물론(materialism)에 있다. 이 종교체계들은 초월과 내세를 말하지 않거나 아주 모호하게 언급할 뿐이었다. 무속신앙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귀신은 죽은 사람의 혼령이 현세에 머무르면서 배회하는 것일 뿐이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 불교신앙은 독경(讀經)과 수행(修行)을 통해 득도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나, 이 경지는 공(空)이며, 공에 이르지 못한 중생은 윤회적으로 모두 현세로 귀환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 유교신앙은 처세학으로서 하늘을 사람으로 환원시키며, 초월과 내세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다. 북한의 주체교는 김씨 일가가 제시하는 거짓된 현세적 유토피아 이외에는 그 어떤 초월적 유토피아도 제시하지 않으므로 유물론적이다. 한민족의 종교사상은 하나의 형태의 유물론에서 떠나면 약간 변조된 또 다른 형태의 유물론으로 귀착하는 유물론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에게는 세계 초월적인 절대적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마음 안에는 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인간이 절대적 창조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자리를 절대적 능력을 가진 내적인 세속적 대체물로 채우게 되어 있다. 이 같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은 정치적으로 전체주의적인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왕조를 추구하고 형성한다. 전체주의적 왕조는 한민족의 고대로부터 북한 세습왕조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


이러한 한민족의 유물론 종교와 전체주의 왕조를 붕괴시킨 것이 바로 기독교다. 기독교는 유물론의 빗장을 풀고 물질세계의 전모(全貌)를 영의 세계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했다. 물질세계는 절대적인 신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인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한 자원이라는 해석이 등장하면서 자연과학과 과학기술 발전이 열렸다. 이같은 인식변화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강국이 될 수 있었다. 한국 교회는 복음 전도와 부흥을 통해 얻은 인력과 물질을 1970년대부터 세계선교에 헌신적으로 투입하여 세계 제2위 선교사 파송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최상위권으로 올라서게 된 것은 한국 교회의 선교 노력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피조물에게 신적 지위를 허용하지 않는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중앙집권적이고 독재적인 정치체제는 불가능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정상급의 헌법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민족에 내재한 힘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변화된 기독교인들의 헌신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소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안보와 번영을 지키는 첩경이다.